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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 - 보스에서 렘브란트까지 그림 속 중세 이야기, 그림으로 읽는 세상 중세편
이택광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기억은 과거가 아니라 그것의 극장을 탐사하기 위한 도구이다."
학창 시절 서양 미술사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처음 몇 장을 넘기다가 재미없고 장황하고 지루해서 덮어버린 기억이 난다. 그때 이후로 미술사는 나에게 지루하다는 이미지와 연결됐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보스와 렘브란트 같은 중세시대의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도 그 작품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되었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할 수 없다.
문화평론가이자 영문학자인 이택광의 저서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는 3권으로 기획된 '그림으로 읽는 세상' 시리즈의 두번째 책이다.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를 읽으면서 나는 그런 부족한 부분을 채울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졌다. 이 책의 저자는 어릴적부터 중세에 대한 깊은 동경이 있었다. 그 관심에서 출발해 중세의 그림들을 만나면서 현실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럼 중세란 무엇이고 우리가 유럽의 중세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갖게 된다. 저자는 근대가 중세의 속박으로부터 인간이 해방된 사건이라는 일부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중세는 근대와 '다른' 세계였고, 이런 까닭에 근대가 만들어놓은 다양한 문제점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를 갖고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어떻게 하면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는가를 중세시대 유명화가들의 그림을 해석하며 설명하고 있다.
책의 부제로 사용된 <보스에서 렘브란트까지 그림 속 중세 이야기>에서 드러나듯이 보스와 렘브란트는 중세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이다. 둘다 대표적인 종교화가로 보스는 특이한 색채로 무서운 지옥의 세계를 많이 그렸고, 렘브란트는 색채 및 명암의 대조를 강조하여 인물들의 심리를 담아내는 독특한 초상화 그림들을 많이 제작하였다. 이들 그림의 특징은 그 시대의 관행을 뛰어넘어, 각자의 개성을 잘 발휘했다는데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중세의 그림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볼 수 있는 낙관주의와 탐미주의보다도 사회 비판이나 풍자를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최후의 심판>,<성 앤터니의 유혹>이라는 그림에서 보스가 보여주려 했던 것은 하나의 환상이지만, 동시에 몰락하고 있던 그 시대의 현실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중세시대는 흔히 르네상스 이전의 암흑의 시대로만 알고 있었는데,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대표적인 그림들이 무슨 내용을 담았고 무슨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는지를 이 책의 저자는 화가의 상상력까지 아우르는 깊이있는 이해로 어려운 미술사를 쉬운 설명으로 풀어놓고 있다. 이를 통해 내가 알고 있던 중세에 대한 편견을 벗어던지고 서양 중세시대의 사람들의 사고와 가치관에 대한 이해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신과 자연, 그리고 인간을 하나의 존재로 인식했던 중세인의 '죽음'과 '성애'에 대한 태도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서양중세미술사의 많은 그림들(120여점 삽화)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는 근대서양문명에 의해 해석된 중세시대의 신비주의를 비판하며 중세의 그림과 예술가들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시간을 제공해 준다.
[참고] 아트북스의 '그림으로 읽는 세상' 시리즈는 현대판(근간)으로 마무리 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