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작하는 서양철학사 - 탈레스부터 보드리야르까지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기
강영계 지음 / 해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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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정말 의미가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대개 일상의 바쁨 속에서 묻혀버리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물음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철학은 바로 이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현대사회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간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뉴스를 접하고, SNS를 통해 타인의 삶을 엿보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비하고 생산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 자신에 대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본질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할 시간이 없다. 습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상식, 비판 없이 따르는 관습들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한다. 철학은 바로 이러한 일상에 대한 반성과 비판에서 출발한다. 이번에 읽어본 <처음 시작하는 서양 철학사>를 읽으며 어렵지만 서양 철학사에 대해서 짧으나마 이해를 하기위해 노력해 본다. ^.^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본성상 앎을 추구한다"고 말했듯이, 우리는 본능적으로 진리를 갈구한다.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고 선을 추구하며 아름다움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철학은 이러한 인간의 근원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지적 여정이다. 서양철학의 역사는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다.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주장했을 때, 그것은 물질에 대한 관찰을 넘어서는 혁명적 사고의 전환이었다. 눈에 보이는 구체적 현상 너머에 있는 근본 원리를 찾고자 한 것이다. 탈레스의 위대함은 그가 제시한 답이 옳고 그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최초로 추상적 사고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 신화와 미신으로 세계를 설명하던 시대에, 이성적 탐구를 통해 자연의 본질을 밝히려 했다는 점에서 철학의 진정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후계자들이 탈레스의 견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물이 너무 구체적이라며 '무한정자'라는 더 추상적인 개념을 제시했다. 아낙시메네스는 다시 이것이 너무 추상적이라며 '공기'를 원질로 보았다. 이러한 비판과 종합의 과정에서 우리는 서양철학의 핵심적 특징을 발견한다. 바로 끊임없는 질문과 비판정신이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철학에 새로운 차원을 더했다. 그들은 만물의 근원을 '수'로 보았다. 이것은 단순히 물질적 원질을 찾는 것을 넘어, 세계를 지배하는 질서와 법칙, 조화의 원리를 탐구한 것이다. 칠현금의 음조가 현의 길이라는 수적 비율로 설명된다는 발견은, 자연현상 이면에 수학적 법칙이 존재한다는 통찰로 이어졌다. 피타고라스학파의 사상에서 흥미로운 점은 수학적 탐구와 윤리적 실천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조화로운 우주의 질서를 깨닫고, 그러한 조화를 자신의 삶에서도 실현하고자 했다. 엄격한 금욕생활과 영혼의 순화를 추구한 것은, 철학이 단순한 지적 유희가 아니라 삶의 방식 자체여야 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탐구는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여전히 세계의 근본 원리가 무엇인지,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은 무엇인지 질문한다. 현대 물리학의 통일장이론이나 만물의 이론 추구는, 탈레스가 시작한 그 질문의 연장선상에 있다.

중세철학은 흔히 '암흑시대의 철학'으로 폄하되곤 한다. 신학이 학문을 지배했고, 자유로운 사고가 억압받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인 이해다. 중세철학은 그리스의 합리적 사유와 기독교의 신앙을 종합하려는 거대한 지적 프로젝트였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이러한 중세철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는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했고, 마니교를 거쳐 신플라톤주의를 공부했으며, 최종적으로 기독교로 귀의했다. 이러한 그의 지적 여정은 고대의 철학적 유산을 기독교 신학 안에 통합하는 과정이었다. 특히 그의 시간론은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현재는 순간적으로 사라진다. 그렇다면 시간은 존재하는가? 아우구스티누스는 과거·현재·미래가 모두 '지금'이라는 영원 속에 있다고 말한다. 과거는 기억으로서의 지금이고, 현재는 감각으로서의 지금이며, 미래는 기대로서의 지금이다. 이러한 통찰은 현대 현상학의 시간 이해를 선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세철학이 근대철학의 모태가 되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신앙과 이성의 관계, 보편자 논쟁, 신 존재 증명 등 중세에 다루어진 문제들은 근대 철학자들의 사유를 자극하는 원천이 되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나는 오류를 범할지라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통찰에 빚지고 있다.


근대철학은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했다. 베이컨은 귀납법을 통해, 데카르트는 연역법을 통해 확실한 지식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다. 칸트는 영국 경험론과 대륙 합리론을 종합하여 인간 인식의 한계와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탐구했다.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는 철학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그는 우리가 사물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 틀을 통해서만 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인간 이성의 능동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 한계를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이성에 대한 과도한 신뢰는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쇼펜하우어는 세계의 본질을 맹목적인 '의지'로 보았고, 니체는 이성 중심의 서양 철학 전통 자체를 비판했다. 그들은 이성만으로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삶의 비합리적이고 본능적인 측면, 고통과 욕망, 권력에의 의지 같은 것들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20세기 철학은 언어에 주목했다.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라고 말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사고하고,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 따라서 철학의 문제는 상당 부분 언어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표현했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존재가 드러나는 방식 그 자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계-내-존재로서의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 관계 맺으며, 의미를 창조한다. 이러한 언어철학의 전개는 철학의 과제를 새롭게 규정했다. 철학은 더 이상 세계의 궁극적 본질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 자체를 성찰하는 것이 되었다. 이는 철학의 영역을 축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장한 것이다. 과학, 예술, 일상언어 등 모든 의미 있는 담론이 철학적 성찰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서양철학사 2500년의 여정을 돌아보면, 한 가지 일관된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끊임없는 질문과 비판, 종합과 극복의 과정이다. 탈레스의 물은 아낙시만드로스에 의해 비판되었고, 아낙시만드로스의 무한정자는 아낙시메네스에 의해 재해석되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비판되었고, 중세 스콜라철학은 근대 합리론에 의해 극복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극복은 단순한 부정이 아니었다. 각 시대의 철학자들은 선배들의 통찰을 계승하면서도, 그것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다. 칸트가 경험론과 합리론을 종합했듯이, 헤겔이 변증법을 통해 대립을 지양했듯이, 철학은 항상 더 높은 종합을 향해 나아갔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복잡하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인간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기후위기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고하게 만든다. 극심한 불평등과 양극화는 정의와 윤리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요구한다. SNS와 가짜뉴스의 범람은 진리와 허위의 구분을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철학은 즉각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철학은 우리에게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법을 가르쳐준다. 현상 너머의 본질을 보는 법을, 상식을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대립하는 견해들을 종합하여 더 높은 진리에 도달하는 법을 알려준다.


철학함이란 과거의 철학사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과 세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태도다.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을 물었듯이,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외쳤듯이, 우리도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좋은 사회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혼란의 시대에 철학은 나침반이 된다. 수많은 정보와 가치가 충돌하는 시대에, 철학은 우리에게 명확한 사고의 틀을 제공한다. 상대주의와 허무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철학은 의미와 가치를 탐구하는 길을 열어준다. 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에, 철학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지키는 보루가 된다. 철학함이란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여정이다. 그것은 쉬운 길이 아니다. 때로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하고, 익숙한 사고방식을 버려야 하며, 확실성 없이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 깊이 사고하고, 더 현명하게 판단하며, 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 철학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다. 지금이야말로 철학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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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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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무 살의 수잔 스캔런이 뉴욕 주립 정신의학연구소의 병동 문을 처음 통과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거기서 3년을 보내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1992년, 프로이트 사진이 간호사 스테이션을 내려다보던 그곳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공간이었다. 프로작이 등장하고 정신의학의 패러다임이 바뀌던 시대에, 그녀는 여전히 히스테리아 진단을 받았고, 의사들은 그녀의 자살 시도를 설명할 "마법 같은 트라우마"를 찾아 과거를 파헤쳤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계속 멈춰 섰다. 병동의 여성 환자들이 항정신성 약물로 인한 지발성 운동장애로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피우는 장면, 스캔론이 자신의 고통을 의사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연기"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이미지들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도 어딘가에서 반복되고 있을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정말로 그때보다 나아진 것일까? 스캔런은 자신이 "아픈 것을 더 잘하게 되었다"고 쓴다. 돌봄을 받기 위해 질병을 수행하는 법을 배웠다고. 이 문장 앞에서 나는 오래 머물렀다. 그것은 단지 1990년대 정신병동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고통을 타인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번역하고, 포장하고, 때로는 과장하거나 축소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의료 시스템이 요구하는 서사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일. 그것은 케어를 받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처럼 보인다.


스캔런은 전통적인 회복 서사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병리학의 시작점을 계속 찾지만, 그것은 어머니의 죽음일 수도, 뉴욕으로의 이사일 수도, 첫 자살 시도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없다. 의료 기록이 제공하는 깔끔한 이야기—우울한 젊은 여성이 병원에 들어가고, 3년을 머물고, 의사들의 개입 덕분에 나아진다—는 거짓말이다. 아니, 적어도 불완전한 진실이다. "나는 세부사항들을 원한다"고 그녀는 쓴다. "공식적인 언어, axis 1이나 axis 2, 약물과 증상의 목록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은 그 병원에서의 우리의 길고 지루한 날들과 해들의 이야기다. 내가 회복하고 싶은 것은 일상이다." 나는 우리가 얼마나 자주 사람들의 삶을 진단명과 증상 목록으로 환원하는지 생각했다. 의료 차트는 효율적이고 필요하지만, 그것은 한 사람의 텍스처, 그들의 일상, 그들이 살아낸 시간의 질감을 담지 못한다. 책은 그 의료 기록에 대한 수정이자 반박이며, 무엇보다 증언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진단명보다 훨씬 더 크고 복잡하고 모순적이라고 말한다.

스캔런이 퇴원한 1995년, 그 병동은 영구 폐쇄되었다. 그리고 1997년, FDA가 제약회사들의 직접 광고를 허용하면서, 정신질환자들은 "소비자"가 되었다. "당신에게도 졸로프트가 맞을까요?" 라고 묻는 광고들이 쏟아졌다. 화학적 불균형 이론—아직도 논쟁적이고 반복적으로 반박되어 온—은 엘리 릴리와 다른 제약회사들에 의해 대중화되었다. 나는 2004년, 열아홉 살에 처음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당시 내 주변에는 그런 약을 먹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안 먹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렵다. 우울증은 더 이상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생물학적 질병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이전의 "성격적 결함"이라는 관념을 반박하고, 도움을 구하는 것을 덜 부끄럽게 만들었다. 이것은 진보다. 하지만 스캔러이 지적하듯, 약이 작동한다고 해서 화학적 불균형이 우울증의 원인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약들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가? 2023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29%가 평생 동안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항우울제 사용은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우울하다. 이 역설 앞에서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정신질환의 사회적, 정치적 원인들을 무시하고, 그것을 개인적 생물학적 문제로 환원하면서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정신질환은 세상의 어떤 것이 아픈지를 보여주는 거울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 거울을 약으로 흐리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캔런을 구원한 것은 약도, 정신분석도 아니었다. 그것은 독서와 글쓰기였다. 버지니아 울프, 실비아 플라스, 오드리 로드, 이 작가들은 스캔론에게 자신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더 넓은 틀을 제공했다. 로드의 <암 일기>는 "지배적인 의료 모델의 질병과 회복 서사에 맞서 당신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정상성 바깥에서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슬픔이 삶의 장애물이 아니라 당신을 만드는 것의 일부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과민했다. 평생 그렇게 들어왔다. 그것은 약점이었다. 하지만 독서에 있어서는 그것이 힘이었다. 초예민함." 우리는 너무 자주 민감함을 치료해야 할 증상으로 본다. 하지만 그 민감함이야말로 세계를 더 깊이 느끼고, 더 많이 이해하고, 더 아름답게 쓸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아닐까. 스캔론은 자신의 "다공성"을 약점이 아닌 예술가로서의 자산으로 재해석한다. 애니타 힐이 클래런스 토머스를 고발하는 청문회를 병동에서 지켜보며, 스캔런은 깨달았다. "내가 살 수 있는 두 개의 세계가 있었다. 조 바이든과 클래런스 토머스 같은 남자들이 권위를 가진 세계, 그리고 문학의 세계." 그녀는 문학을 선택했다.


책의 마지막 장면은 섬뜩하다. 현재의 스캔론이 새로운 의사를 만난다. 그녀의 파일을 본 의사는 놀라며 말한다. "이건 매우 드문 경우네요. 요즘은 환자들을 그렇게 오래 입원시키지 않아요. 상황을 더 악화시키니까요." 스캔론은 안다고 답한다. 그녀가 그것을 살았으니까. 15분 진료가 끝날 때, 의사는 말한다. "당신이 왜 그렇게 오래 입원했었는지 정말 상상이 안 가네요." 여기서 나는 의료 시스템의 망각을 본다. 3년이 스캔런의 삶에 여전히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인 반면, 그것은 의사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다. 스캔런은 생각한다. 만약 의사가 인문학을, 의료 역사를 더 배웠다면, 그녀를 호기심이 아닌 한 사람으로 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이것을 읽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쓴다: 이건 나일 수도 있다"고 스캔런은 말한다. "나는 아픈 사람과 아팠던 사람의 구분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죽을 운명이고, 모두 연약하다. 우리는 모두 해체로부터 한순간 떨어진 곳에 있다." 이것이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정상과 비정상, 정신과 광기, 건강과 질병 사이의 경계가 우리가 믿고 싶어 하는 것만큼 확고하지 않다는 인식.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어머니를 잃은 여덟 살 소녀가 슬픔을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했듯이, 우리 모두는 때때로 우리 안의 무언가를 말할 언어를 찾지 못한다. 책은 그 언어를 찾는 과정의 기록이다. 그것은 의료 차트가 아니라 문학이 될 수 있는, 진단이 아니라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언어. 그녀가 찾은 것은 완전한 회복이 아니다. "나는 다시는 정상인이 되지 못했다. 병의 느낌을 내 시스템에서 완전히 빼내지 못했다." 대신 그녀는 그 병을, 그 민감함을, 그 다공성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쓰는 법을 배웠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더 나은 약을 가지고 있지만 더 많이 아프다. 더 빠른 진단을 받지만 덜 이해받는다. 더 많이 치료하지만 덜 치유된다. 스캔런이 제시하는 대안은 단순하지만 급진적이다: 읽고, 쓰고, 생각하라. 고통을 의료 차트가 아닌 이야기로 만들어라. 그리고 무엇보다, 민감함을 약점이 아닌 힘으로 보라. 정신질환의 치료는 1992년 이후 변했지만, 그것이 진정한 진보인지는 여전히 열린 질문이다. 의학이 실패하는 곳의 틈을 메우고, 더 사려 깊고 확장된 방식으로 인간 경험의 핵심에 있는 슬픔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일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은 후, 그 일에 동참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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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명품 - 사람이 명품이 되어가는 가장 고귀한 길
임하연 지음 / 블레어하우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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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품격’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그녀는 화려한 배경과 특권의 상징처럼 보였지만, 실은 그 모든 빛 아래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다시 정의한 사람이었다. 이번에 읽은 <인간명품>은 재클린의 대담 형식의 이야기 접하면서 자기 운명을 다시 쓰는 인간의 지혜를 접하게 되었다. 그녀의 삶은 ‘누구에게서 무엇을 물려받았는가’보다 ‘그것을 어떻게 새롭게 해석할 것인가’를 묻는 여정이었다. 우리는 흔히 “수저의 색깔”로 인생의 출발선을 규정한다. 금수저, 흙수저, 혹은 아무 색도 없는 무명(無名)의 수저. 하지만 재클린은 이 불평등의 언어 속에서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다. “나는 무엇을 물려받았는가”가 아니라, “나는 그것을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로 사고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그 순간 그녀의 삶은 사회적 위치가 아니라, 스스로 길러낸 정신의 유산으로 빛났다.

‘상속자 정신’은 피와 가문의 전통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넘어서는 힘, 과거를 재구성하는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재클린은 자신이 태어난 환경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갔다. 그녀에게 상속이란 부모의 재산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세상을 해석하는 눈이었다. 그녀는 불행을 숨기지 않았다. 남편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세상은 그녀에게서 절망을 기대했지만 재클린은 침묵으로 응답했다. 그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자기 존엄을 지키는 언어였다. 그녀는 고통을 감추는 대신, 그것을 품격으로 승화시켰다. 이것이 바로 ‘상속자 정신’의 본질이다. 주어진 운명에 휘둘리지 않고, 그 운명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써내려가는 힘이다. 우리는 종종 삶의 불평등 앞에서 체념한다. 그러나 재클린은 말했다. “상속은 부모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좋은 스승, 우연한 만남, 한 권의 책도 나를 길러내는 유산이 된다.” 그녀의 말은 내게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렇다. 상속이란 반드시 눈에 보이는 자산일 필요가 없다. 나를 성장시키는 감동, 나를 변화시킨 관계, 나의 시선을 바꾼 한 문장 또한 상속의 형태다. 그녀의 철학은 자율 승계권이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받은 것들을 다시 해석하고, 그 의미를 새롭게 덧칠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이 권리를 행사하는 순간, 우리는 수혜자가 아니라 창조자가 된다. 그녀는 우리에게 말했다. “인생의 상속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재클린의 매력은 화려한 언어가 아니라 조용한 태도에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고, 오히려 한 걸음 물러나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절제 속에서 더 큰 힘이 흘러나왔다. 그녀가 백악관을 ‘권력의 집’이 아니라 ‘국민의 집’으로 바꾸었던 일은 그녀의 겸손과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품격은 목소리가 큰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품격은 마음을 다스리는 자의 조용한 영향력에서 비롯된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았고, 비극을 견디면서도 다른 이에게 희망을 건넸다. 그녀의 침묵은 고통의 무게를 가리는 가면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배려의 형태였다. 오늘의 사회는 ‘보이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명품 가방, 고급 자동차, 화려한 직함. 그러나 <인간명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가장 값진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재클린의 우아함은 그녀가 걸친 옷이 아니라, 그녀의 사유와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녀는 외적인 장식이 아니라 내면의 단단함으로 세상과 마주했다.

먼저 읽었던 제클린의 책을 생각해 본다. 책은 특히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서른은 과거를 되돌아보며 후회를 느끼는 시기이자, 미래를 향한 불안이 커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클린의 철학은 이 불안한 시기를 ‘성장으로의 초대’로 바꾸어놓는다. 그녀는 말했다. “젊음은 불안정하지만, 그 불안은 변화를 향한 희망이다.” 불안이란 미숙함의 증거가 아니라, 가능성의 흔들림이다. 우리는 불안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배운다. 그 배움이 바로 성숙의 과정이며, 상속자 정신의 출발점이다. 재클린은 변화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그녀는 과거의 상처를 끌어안되, 그것에 종속되지 않았다. 그녀의 인생은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의 증거였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그녀는 비극을 품격으로 바꿔낼 수 있었다. 서른의 나이에 이르러 나 또한 묻게 된다. “나는 무엇을 물려받았고,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비교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이의 삶이 아니라, 나의 삶을 기준으로 나를 재정의하는 일. 그것이 재클린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일지도 모른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삶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은 태어나면서 걸작이 아니다. 걸작은 살아가는 동안 만들어지는 것이다. 품격은 유전되지 않으며, 경험 속에서 길러진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그 상처를 어떤 색으로 칠할지는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인간명품’이라는 말은 단지 세련된 외형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면의 조화, 타인에 대한 배려, 그리고 삶을 아름답게 해석하려는 의지의 총합이다. 재클린의 상속자 정신은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은 이미 누군가의 유산이며, 또 다른 누군가의 시작이다.” 이제 나는 재클린의 우아함을 단지 외적인 미덕으로 보지 않는다. 그녀의 품격은 자기 운명을 스스로 빚어낸 사람의 조용한 강인함이었다. 그녀처럼, 나 또한 내 삶의 상속자가 되기를 바란다. 눈에 보이는 금빛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품격의 빛으로. 그 빛은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으며, 누군가의 인생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또 하나의 유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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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철학 - 고대 철학가 12인에게 배우는 인생 기술
권석천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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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다. 변화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어제의 정답이 오늘은 통하지 않는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수천 년 전 고대 철학자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유효할 수 있을까? <최선의 철학>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서 사회 문제를 날카롭게 관찰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인의 막막함이 사실은 고대인들이 마주했던 고민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해답의 실마리를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자 12인에게서 찾아낸다. 책은 철학을 박제된 지식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소크라테스, 세네카, 키케로 등 12명의 철학자들이 평생을 바쳐 탐구한 질문들은 직장에서의 갈등, 미래에 대한 불안, 갑작스러운 좌절 같은 우리의 일상적 문제와 직접 맞닿아 있다. 저자는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고대 철학을 현실에 적용 가능한 구체적 지혜로 풀어낸다. 특히 책의 표지를 펼치면 나타나는 '철학가 마을 지도'는 각 철학자의 사유를 공간으로 시각화하여, 우리 자신에게 필요한 철학을 선택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한다.

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신념'이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를 통해 저자가 풀어내는 신념의 의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신념을 지닌 삶이란 세상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을 세우되, 다른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건설적인 대화와 토론을 향해 마음을 열어두는 것, 자신의 주장과 다른 생각 앞에서도 근거와 논리를 재정비할 수 있는 것, 바로 그것이 진정한 신념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종종 자기 신념을 품고 사는 것을 포기한다. 남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가는 것이 더 편하고 안전해 보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순간에 '내가 굳이...'라는 생각으로 한 발 물러서고, 오해와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에 조용히 침묵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편안함은 결국 자기 자신을 배신하는 결과를 낳는다. 조심조심 살아가는 사이 어느새 우리 안에 있던 기준도, 중심도 흐려져버리는 것이다. 안티고네는 시대의 흐름과 권력에 맞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지켰다. 죽음 앞에서도 후회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과 확신에 따른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내 가슴을 설레게 하고 침묵할 수 없게 만드는 가치는 무엇인가? 밀려오는 이슈들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신념을 갖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소크라테스가 보여준 질문의 기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하다. 플라톤의 대화편 <메논>은 진정한 성장이 외부에서 무언가를 주입받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새로운 앎은 누가 누구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지혜를 밖으로 끌어내는 과정이다. 해답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화를 통해 함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 통찰은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중요하다.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고 허둥대거나 지레 포기하기보다는, 용기 내어 능동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정답이 주어지기를 기다리는 수동적 자세가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는 적극적 태도가 필요한 시대다. 소크라테스의 질문법은 단순히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앎을 향해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투키디데스는 사랑하는 조국 아테나이의 도전과 패배, 몰락을 기록하며 불편한 진실을 응시했다. 자신의 믿음과 충돌하는 사실조차 받아들이는 정직함, 사실 확인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 그리고 자기 의견도 상대화할 수 있는 유연함. 이것이 그가 남긴 진정한 유산이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진실을 분별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 편향에 갇히기 쉽다. 이런 시대에 투키디데스의 태도는 더욱 빛을 발한다. 불편하더라도 사실을 직시하고, 내 편견과 충돌하는 정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를 향한 첫걸음이다.

책이 제시하는 12명의 철학자들은 각기 다른 인생의 기술을 알려준다. 어떤 철학자는 마음의 평온을 얻는 법을, 다른 철학자는 역경을 이겨내는 법을 가르친다. 중요한 것은 모든 철학자의 생각에 동의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위로와 해결책을 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저자는 철학을 거창한 학문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스스로를 단단히 다지는 힘, 타인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태도, 사회를 바라보는 균형 있는 시선까지, 책은 생각의 깊이를 넓히되 현실과 단절되지 않는다. 추상적인 이론을 일상의 판단과 선택에 작용하는 사고의 틀로 변환시킨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최고의 삶'이 아니라 '최선의 삶'이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향에 따라 각자의 방식으로 충실히 살아내는 것.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바로 철학이 추구하는 삶의 태도다.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 시작은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오늘 하루 내가 어떤 기준으로 행동하는지를 돌아보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신념을 지키는 삶이란 세상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만의 기준을 갖되, 타인의 입장에도 귀 기울이고, 자신의 시선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태도다. 그 과정이 있어야만 우리는 남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신념의 뿌리를 깊이 내릴 때, 우리는 비로소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들이 있다. 나를 진심으로 설레게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밀려오는 이슈들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 기준을 지키기 위해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매일의 선택 속에서, 막막한 갈림길 앞에서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서 있을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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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트렌드 인사이트 2026 도쿄 트렌드 인사이트
정희선 지음 / 원앤원북스 / 202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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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본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라짐'이다. 중산층이 사라지고, 세대 구분이 사라지며, 지방이 사라지고, 전통적 가족 형태가 사라진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구 자체가 줄어든다. <도쿄 트렌드 인사이트 2026>은 이러한 다섯 가지 소멸 현상을 위기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은 변화의 틈새에서 싹트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고, 실제로 시장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의 전략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한국 사회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아니, 어쩌면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일본의 현재는 우리의 가까운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 책은 단지 트렌드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변화에 대응하는 구체적 전략과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실질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중산층의 축소는 소비 시장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과거처럼 대다수를 차지하던 중간 가격대 상품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제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움직인다. 합리적 가격으로 일상을 해결하거나, 의미 있는 경험을 위해 과감하게 지갑을 여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저가 시장에서조차 단순히 싸다는 이유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현대의 소비자들은 똑똑해졌다. 그들은 동일한 금액에 대해 더 높은 가치를 요구한다. 품질, 디자인, 서비스, 그리고 구매 경험까지 모든 요소가 종합적으로 만족스러울 때만 지갑을 연다. 이는 가격 경쟁이 아닌, 가치 전달 능력의 경쟁으로 시장의 법칙이 변했음을 의미한다. 쓰리 코인즈가 보여주는 전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은 저가 시장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을 선보이며 소비자에게 '발견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단지 저렴한 물건이 아니라, 합리적 가격에 기분 좋은 쇼핑 경험을 덧붙인 것이다. 워크맨이 추구하는 극한의 효율성 역시 같은 맥락이다. 고품질과 저가격이라는, 언뜻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를 동시에 잡기 위해 프로세스의 모든 군더더기를 제거했다. 반대편 극단에서는 새로운 부유층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소비를 통해 정체성을 표현하고, 가격보다는 의미와 경험을 중시한다. 백화점들이 '백화점'이라는 명칭조차 버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간은 사라졌지만, 양 극단에서는 분명한 수요가 존재하며, 이를 정확히 겨냥한 기업들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

60대가 아이돌 콘서트를 찾고, 10대가 전통 공방에 매료된다. 연령으로 소비자를 구분하던 전통적 세그먼테이션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나이는 숫자일 뿐, 소비를 결정짓는 진짜 변수는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작동한다. 장기적 경제 침체는 세대 간 소비 환경의 차이를 줄였다. 과거처럼 나이에 따라 분명하게 구분되던 라이프스타일이 희미해진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보편화 역시 세대 간 문화적 격차를 좁혔다. 이제 60대도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관심사를 탐색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한다. 이는 기업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다. 연령대별로 타깃을 설정하던 기존 마케팅 방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더욱 세밀하게 개인의 관심사와 열정을 파악해야 한다. '덕질'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해진 이유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깊은 애정과 몰입은 나이를 초월한다. 완구 시장이 저출산 시대에도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어린이가 아닌 성인 수집가와 마니아들을 새로운 고객층으로 발견했기 때문이다. 취향 기반 커뮤니티는 강력한 소비의 동력이 된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를 응원하며, 함께 소비한다. 츠타야가 단순한 서점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제안자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도, 책이라는 상품이 아니라 독서와 문화에 대한 취향 자체를 공간 속에 구현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지하고 싶은 욕구가 지갑을 열게 만든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일본의 지방은 심각한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몇몇 지역은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핵심은 '관계 인구'라는 개념이다. 완전한 이주를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지역과 사람을 지속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미라이 편의점은 이러한 전략의 상징적 사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의점이라 불리는 이곳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그 자체가 목적지, 즉 데스티네이션이 된다. 사람들은 편의점에 가기 위해 그 지역을 방문한다. 비손이나 미치노에키 같은 공간들도 마찬가지다. 먹거리와 경험을 통해 지역의 매력을 전달하고, 방문객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다. 오테츠타비의 '여행하며 일하기' 모델이나 별장 구독 서비스는 더욱 직접적으로 관계 인구를 늘리는 전략이다. 평일에는 도시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지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정착민은 아니지만, 그 지역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소비를 일으킨다. 심지어 이름 없던 산을 브랜딩하여 등산객을 유치하는 야마프 같은 시도도 등장한다. 무인양품의 사례는 기업이 어떻게 지역 재생에 기여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단순한 유통업체가 아니라 지역의 인프라로 자리매김하며, 지역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아코메야 도쿄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지역 특산품에 의미를 부여하고, 도시 소비자들과 지방을 이어준다. 지역의 스포츠 팀을 활성화하여 도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례도 있다. 이 모든 접근법의 공통점은 지역을 일방적 지원 대상이 아닌, 매력적인 가치를 지닌 파트너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1인 가구는 이제 예외가 아닌 표준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인구학적 변화를 넘어 소비 패턴과 서비스 방식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고령 1인 가구의 급증이다. 혼자 사는 것은 더 이상 외로움의 상징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자유와 편안함을 위해 능동적으로 혼자이기를 선택한다. "결혼보다 덕질이 좋다"는 말이 농담이 아닌 진심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하지만 이들은 고립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할 때 연결되고, 원할 때 혼자일 수 있는 유연한 관계를 추구한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탄생시킨다. 좁은 공간에 최적화된 '스페파' 가전처럼 1인 가구의 실제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제품들이 등장한다. 관광객이 사라진 호텔이 '솔로 사우나'로 변신하여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려는 수요를 공략하는 것처럼, 기존 인프라를 재해석하는 창의적 시도도 보인다. 혼자여도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설계는 이제 필수적 고려사항이 되었다. 고령 1인 가구는 더욱 복잡한 니즈를 지닌다. 단순히 혼자 살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안전하고 편안하며 필요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주거 형태가 요구된다. 시니어 전용 셰어하우스나 고령자만을 위한 부동산 R65 같은 서비스는 이러한 필요에 대한 응답이다. 유품 정리부터 반려동물 위탁까지 포함하는 유언신탁 서비스는, 1인 가구의 생애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적 지원 체계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나홀로 시니어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들이 등장하는 것은, 이것이 단순한 틈새시장이 아니라 거대한 새로운 시장임을 의미한다.

인구가 줄어들면 모든 산업이 축소될까?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서점도 은행도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사양 산업은 없다"는 명제를 제시한다. 중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다. 벼랑 끝에 몰린 재봉틀 회사가 히트 상품을 연발하는 사례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수요가 침체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우리의 진짜 가치는 무엇인가?" 재봉틀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이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찾아낸 것이다. 이는 축소 시장에서의 상품 개발법에 대한 중요한 교훈이다. 서점의 변신은 더욱 극적이다. 츠타야는 책이 아니라 체험을 판다. 책장 임대를 통해 누구나 서점 주인이 될 수 있게 한 공유형 서점은,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혁신했다. 입장료 2만 원을 받는 서점에 젊은이들이 몰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곳에서 얻는 경험이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최애 성우의 목소리를 들으며 책을 고를 수 있는 서점은, 독서라는 행위에 새로운 차원의 즐거움을 더한다. 책이 있는 공간 자체를 유통한다는 발상은, 제품이 아닌 경험을 파는 시대의 본질을 포착한다. 더 나아가 일부 기업들은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상품화한다. 브랜드가 은행이 되고, 서점이 창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는 단순히 사업 다각화가 아니다. 자신들이 축적한 노하우와 시스템이 하나의 독립적 가치를 지닌다는 인식의 전환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시대에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정교하고 효율적인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수요는 존재한다.


책이 우리에게 특별히 의미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일본이 겪고 있는 다섯 가지 소멸은 한국 사회가 마주할 가까운 미래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더 빠른 속도로 같은 변화를 경험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위기만을 경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변화 속에서 기회를 포착한 기업들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전략을 보여준다. 쓰리 코인즈, 무인양품, 츠타야, 워크맨 같은 일본 기업들의 사례는 추상적 트렌드 분석이 아닌, 시장에서 검증된 살아있는 지혜다. 소멸은 끝이 아니라 변곡점이다. 중간이 사라지면 새로운 극단이 형성되고, 세대가 해체되면 더 정교한 취향의 시장이 열리며, 지방이 위기에 처하면 관계의 새로운 형태가 모색되고, 1인 가구가 증가하면 그들을 위한 혁신적 서비스가 탄생하며, 인구가 줄어들면 더욱 창의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한다. 변화를 읽고 대응하는 자만이 다음 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다.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소멸을 두려워할 것인가, 아니면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기회를 잡을 것인가? 답은 이미 도쿄의 거리와 일본 기업들의 전략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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