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트렌드 인사이트 2026 도쿄 트렌드 인사이트
정희선 지음 / 원앤원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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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본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라짐'이다. 중산층이 사라지고, 세대 구분이 사라지며, 지방이 사라지고, 전통적 가족 형태가 사라진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구 자체가 줄어든다. <도쿄 트렌드 인사이트 2026>은 이러한 다섯 가지 소멸 현상을 위기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은 변화의 틈새에서 싹트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고, 실제로 시장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의 전략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한국 사회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아니, 어쩌면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일본의 현재는 우리의 가까운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 책은 단지 트렌드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변화에 대응하는 구체적 전략과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실질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중산층의 축소는 소비 시장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과거처럼 대다수를 차지하던 중간 가격대 상품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제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움직인다. 합리적 가격으로 일상을 해결하거나, 의미 있는 경험을 위해 과감하게 지갑을 여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저가 시장에서조차 단순히 싸다는 이유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현대의 소비자들은 똑똑해졌다. 그들은 동일한 금액에 대해 더 높은 가치를 요구한다. 품질, 디자인, 서비스, 그리고 구매 경험까지 모든 요소가 종합적으로 만족스러울 때만 지갑을 연다. 이는 가격 경쟁이 아닌, 가치 전달 능력의 경쟁으로 시장의 법칙이 변했음을 의미한다. 쓰리 코인즈가 보여주는 전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은 저가 시장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을 선보이며 소비자에게 '발견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단지 저렴한 물건이 아니라, 합리적 가격에 기분 좋은 쇼핑 경험을 덧붙인 것이다. 워크맨이 추구하는 극한의 효율성 역시 같은 맥락이다. 고품질과 저가격이라는, 언뜻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를 동시에 잡기 위해 프로세스의 모든 군더더기를 제거했다. 반대편 극단에서는 새로운 부유층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소비를 통해 정체성을 표현하고, 가격보다는 의미와 경험을 중시한다. 백화점들이 '백화점'이라는 명칭조차 버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간은 사라졌지만, 양 극단에서는 분명한 수요가 존재하며, 이를 정확히 겨냥한 기업들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

60대가 아이돌 콘서트를 찾고, 10대가 전통 공방에 매료된다. 연령으로 소비자를 구분하던 전통적 세그먼테이션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나이는 숫자일 뿐, 소비를 결정짓는 진짜 변수는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작동한다. 장기적 경제 침체는 세대 간 소비 환경의 차이를 줄였다. 과거처럼 나이에 따라 분명하게 구분되던 라이프스타일이 희미해진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보편화 역시 세대 간 문화적 격차를 좁혔다. 이제 60대도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관심사를 탐색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한다. 이는 기업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다. 연령대별로 타깃을 설정하던 기존 마케팅 방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더욱 세밀하게 개인의 관심사와 열정을 파악해야 한다. '덕질'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해진 이유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깊은 애정과 몰입은 나이를 초월한다. 완구 시장이 저출산 시대에도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어린이가 아닌 성인 수집가와 마니아들을 새로운 고객층으로 발견했기 때문이다. 취향 기반 커뮤니티는 강력한 소비의 동력이 된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를 응원하며, 함께 소비한다. 츠타야가 단순한 서점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제안자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도, 책이라는 상품이 아니라 독서와 문화에 대한 취향 자체를 공간 속에 구현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지하고 싶은 욕구가 지갑을 열게 만든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일본의 지방은 심각한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몇몇 지역은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핵심은 '관계 인구'라는 개념이다. 완전한 이주를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지역과 사람을 지속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미라이 편의점은 이러한 전략의 상징적 사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의점이라 불리는 이곳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그 자체가 목적지, 즉 데스티네이션이 된다. 사람들은 편의점에 가기 위해 그 지역을 방문한다. 비손이나 미치노에키 같은 공간들도 마찬가지다. 먹거리와 경험을 통해 지역의 매력을 전달하고, 방문객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다. 오테츠타비의 '여행하며 일하기' 모델이나 별장 구독 서비스는 더욱 직접적으로 관계 인구를 늘리는 전략이다. 평일에는 도시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지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정착민은 아니지만, 그 지역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소비를 일으킨다. 심지어 이름 없던 산을 브랜딩하여 등산객을 유치하는 야마프 같은 시도도 등장한다. 무인양품의 사례는 기업이 어떻게 지역 재생에 기여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단순한 유통업체가 아니라 지역의 인프라로 자리매김하며, 지역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아코메야 도쿄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지역 특산품에 의미를 부여하고, 도시 소비자들과 지방을 이어준다. 지역의 스포츠 팀을 활성화하여 도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례도 있다. 이 모든 접근법의 공통점은 지역을 일방적 지원 대상이 아닌, 매력적인 가치를 지닌 파트너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1인 가구는 이제 예외가 아닌 표준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인구학적 변화를 넘어 소비 패턴과 서비스 방식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고령 1인 가구의 급증이다. 혼자 사는 것은 더 이상 외로움의 상징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자유와 편안함을 위해 능동적으로 혼자이기를 선택한다. "결혼보다 덕질이 좋다"는 말이 농담이 아닌 진심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하지만 이들은 고립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할 때 연결되고, 원할 때 혼자일 수 있는 유연한 관계를 추구한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탄생시킨다. 좁은 공간에 최적화된 '스페파' 가전처럼 1인 가구의 실제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제품들이 등장한다. 관광객이 사라진 호텔이 '솔로 사우나'로 변신하여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려는 수요를 공략하는 것처럼, 기존 인프라를 재해석하는 창의적 시도도 보인다. 혼자여도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설계는 이제 필수적 고려사항이 되었다. 고령 1인 가구는 더욱 복잡한 니즈를 지닌다. 단순히 혼자 살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안전하고 편안하며 필요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주거 형태가 요구된다. 시니어 전용 셰어하우스나 고령자만을 위한 부동산 R65 같은 서비스는 이러한 필요에 대한 응답이다. 유품 정리부터 반려동물 위탁까지 포함하는 유언신탁 서비스는, 1인 가구의 생애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적 지원 체계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나홀로 시니어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들이 등장하는 것은, 이것이 단순한 틈새시장이 아니라 거대한 새로운 시장임을 의미한다.

인구가 줄어들면 모든 산업이 축소될까?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서점도 은행도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사양 산업은 없다"는 명제를 제시한다. 중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다. 벼랑 끝에 몰린 재봉틀 회사가 히트 상품을 연발하는 사례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수요가 침체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우리의 진짜 가치는 무엇인가?" 재봉틀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이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찾아낸 것이다. 이는 축소 시장에서의 상품 개발법에 대한 중요한 교훈이다. 서점의 변신은 더욱 극적이다. 츠타야는 책이 아니라 체험을 판다. 책장 임대를 통해 누구나 서점 주인이 될 수 있게 한 공유형 서점은,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혁신했다. 입장료 2만 원을 받는 서점에 젊은이들이 몰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곳에서 얻는 경험이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최애 성우의 목소리를 들으며 책을 고를 수 있는 서점은, 독서라는 행위에 새로운 차원의 즐거움을 더한다. 책이 있는 공간 자체를 유통한다는 발상은, 제품이 아닌 경험을 파는 시대의 본질을 포착한다. 더 나아가 일부 기업들은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상품화한다. 브랜드가 은행이 되고, 서점이 창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는 단순히 사업 다각화가 아니다. 자신들이 축적한 노하우와 시스템이 하나의 독립적 가치를 지닌다는 인식의 전환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시대에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정교하고 효율적인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수요는 존재한다.


책이 우리에게 특별히 의미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일본이 겪고 있는 다섯 가지 소멸은 한국 사회가 마주할 가까운 미래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더 빠른 속도로 같은 변화를 경험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위기만을 경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변화 속에서 기회를 포착한 기업들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전략을 보여준다. 쓰리 코인즈, 무인양품, 츠타야, 워크맨 같은 일본 기업들의 사례는 추상적 트렌드 분석이 아닌, 시장에서 검증된 살아있는 지혜다. 소멸은 끝이 아니라 변곡점이다. 중간이 사라지면 새로운 극단이 형성되고, 세대가 해체되면 더 정교한 취향의 시장이 열리며, 지방이 위기에 처하면 관계의 새로운 형태가 모색되고, 1인 가구가 증가하면 그들을 위한 혁신적 서비스가 탄생하며, 인구가 줄어들면 더욱 창의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한다. 변화를 읽고 대응하는 자만이 다음 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다.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소멸을 두려워할 것인가, 아니면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기회를 잡을 것인가? 답은 이미 도쿄의 거리와 일본 기업들의 전략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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