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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철학 - 고대 철학가 12인에게 배우는 인생 기술
권석천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10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다. 변화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어제의 정답이 오늘은 통하지 않는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수천 년 전 고대 철학자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유효할 수 있을까? <최선의 철학>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서 사회 문제를 날카롭게 관찰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인의 막막함이 사실은 고대인들이 마주했던 고민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해답의 실마리를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자 12인에게서 찾아낸다. 책은 철학을 박제된 지식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소크라테스, 세네카, 키케로 등 12명의 철학자들이 평생을 바쳐 탐구한 질문들은 직장에서의 갈등, 미래에 대한 불안, 갑작스러운 좌절 같은 우리의 일상적 문제와 직접 맞닿아 있다. 저자는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고대 철학을 현실에 적용 가능한 구체적 지혜로 풀어낸다. 특히 책의 표지를 펼치면 나타나는 '철학가 마을 지도'는 각 철학자의 사유를 공간으로 시각화하여, 우리 자신에게 필요한 철학을 선택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한다.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신념'이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를 통해 저자가 풀어내는 신념의 의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신념을 지닌 삶이란 세상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을 세우되, 다른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건설적인 대화와 토론을 향해 마음을 열어두는 것, 자신의 주장과 다른 생각 앞에서도 근거와 논리를 재정비할 수 있는 것, 바로 그것이 진정한 신념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종종 자기 신념을 품고 사는 것을 포기한다. 남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가는 것이 더 편하고 안전해 보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순간에 '내가 굳이...'라는 생각으로 한 발 물러서고, 오해와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에 조용히 침묵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편안함은 결국 자기 자신을 배신하는 결과를 낳는다. 조심조심 살아가는 사이 어느새 우리 안에 있던 기준도, 중심도 흐려져버리는 것이다. 안티고네는 시대의 흐름과 권력에 맞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지켰다. 죽음 앞에서도 후회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과 확신에 따른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내 가슴을 설레게 하고 침묵할 수 없게 만드는 가치는 무엇인가? 밀려오는 이슈들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신념을 갖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소크라테스가 보여준 질문의 기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하다. 플라톤의 대화편 <메논>은 진정한 성장이 외부에서 무언가를 주입받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새로운 앎은 누가 누구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지혜를 밖으로 끌어내는 과정이다. 해답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화를 통해 함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 통찰은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중요하다.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고 허둥대거나 지레 포기하기보다는, 용기 내어 능동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정답이 주어지기를 기다리는 수동적 자세가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는 적극적 태도가 필요한 시대다. 소크라테스의 질문법은 단순히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앎을 향해 나아가는 출발점이다.투키디데스는 사랑하는 조국 아테나이의 도전과 패배, 몰락을 기록하며 불편한 진실을 응시했다. 자신의 믿음과 충돌하는 사실조차 받아들이는 정직함, 사실 확인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 그리고 자기 의견도 상대화할 수 있는 유연함. 이것이 그가 남긴 진정한 유산이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진실을 분별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 편향에 갇히기 쉽다. 이런 시대에 투키디데스의 태도는 더욱 빛을 발한다. 불편하더라도 사실을 직시하고, 내 편견과 충돌하는 정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를 향한 첫걸음이다.책이 제시하는 12명의 철학자들은 각기 다른 인생의 기술을 알려준다. 어떤 철학자는 마음의 평온을 얻는 법을, 다른 철학자는 역경을 이겨내는 법을 가르친다. 중요한 것은 모든 철학자의 생각에 동의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위로와 해결책을 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저자는 철학을 거창한 학문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스스로를 단단히 다지는 힘, 타인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태도, 사회를 바라보는 균형 있는 시선까지, 책은 생각의 깊이를 넓히되 현실과 단절되지 않는다. 추상적인 이론을 일상의 판단과 선택에 작용하는 사고의 틀로 변환시킨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최고의 삶'이 아니라 '최선의 삶'이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향에 따라 각자의 방식으로 충실히 살아내는 것.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바로 철학이 추구하는 삶의 태도다.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 시작은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오늘 하루 내가 어떤 기준으로 행동하는지를 돌아보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신념을 지키는 삶이란 세상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만의 기준을 갖되, 타인의 입장에도 귀 기울이고, 자신의 시선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태도다. 그 과정이 있어야만 우리는 남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신념의 뿌리를 깊이 내릴 때, 우리는 비로소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들이 있다. 나를 진심으로 설레게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밀려오는 이슈들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 기준을 지키기 위해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매일의 선택 속에서, 막막한 갈림길 앞에서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서 있을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