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란티어에 주목하라 - 제2의 테슬라
안유석 지음 / 처음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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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AI의 폭팔적인 수요 증가와 함께 빅데이터를 활용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주가의 상승 곡선에 따라 관심은 많으나, 정작 팔란티어 기업에 대한 정보는 거의 찾지 못한 것 같다. 이번에 팔란티어의 기업에 대한 역사와 매출 구조, 이익 부분, 경영 철학과 미래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을 이야기하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안뉴석님의<팔란티어에 주목하라>였다. 제 2의 테슬라로 이야기 되고 있는 팔란티어에 대해 알아본다.

팔란티어라는 이름이 생소하다. 팔란티어라는 이름은 J.R.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유래되었다. 이 이름은 '멀리 보는 것'을 의미하는 'Palantír'에서 따온 것으로, 고대의 마법적인 구슬을 가리킨다. 이 구슬은 사용자가 멀리 있는 장소를 볼 수 있게 해주는 도구로, 정보의 수집과 분석을 상징한다. 팔란티어는2003년에 설립되었으며, 주로 정부 및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이 회사의 제품은 복잡한 데이터 세트를 시각화하고 분석하여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팔란티어의 기술은 특히 보안 및 방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다양한 산업에서 활용되고 있다. 저자는 팔란티어의역사와 CEO, 경영 철학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 해 준다. 단지 주가의 흐름이나 매출, 영업이익 등 기업 현황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철학을 이해하는 것은 미래를 예측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팔란티어(Palantir)의 공동 창립자인 피터 틸(Peter Thiel)과 알렉스 카프(Alex Karp)는 각각 독특한 경영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팔란티어의 성장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피터 틸(Peter Thiel)은 팔란티어의 공동 창립자이자 초기 투자자로, 실리콘밸리의 저명한 기업가이자 투자자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이후 페이팔(PayPal)의 공동 창립자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틸은 기술과 혁신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고자 하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의 경영 철학은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통해 시장에서 차별화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그는 "경쟁이 없는 시장을 창출하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팔란티어의 데이터 분석 솔루션이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틸은 정보와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알렉스 카프 (Alex Karp)는 팔란티어의CEO로, 회사의 비전과 전략을 이끌고 있다. 카프는 팔란티어의 기술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카프는 데이터의 윤리적 사용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팔란티어의 비즈니스 모델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는 데이터 분석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고객이 데이터를 책임감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카프는 팀워크와 협력을 중시하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모여 혁신적인 솔루션을 개발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그는 "회사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초기에는 미국 정부의 정보기관과 협력하여 테러리즘 방지 및 국가 안보를 위한 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2008년에는 팔란티어 고담(Palantir Gotham)이라는 제품을 출시하여 정부 기관의 데이터 분석을 지원하였다. 이 제품은 정보의 통합 및 시각화를 통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팔란티어는2010년대 초반부터 민간 부문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산업에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며 고객 기반을 넓혔다. 2020년에는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하여 대중에게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현재 팔란티어는 정부, 금융,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팔란티어는 여러 가지 강점을 가지고 있다. 팔란티어의 주력 제품인 고담(Gotham)과 파운드리(Foundry)는 방대한 데이터를 통합하고 분석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소프트웨어는 다양한 데이터 소스를 연결하고, 패턴을 찾아내어 고객이 필요한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력은 팔란티어가 시장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팔란티어는CIA, NSA, FBI 등 주요 정부 기관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국가 안보와 관련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협력은 팔란티어의 기술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정부와의 파트너십은 팔란티어의 신뢰성을 높이고, 고객 기반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팔란티어는 데이터 분석 분야에서 오랜 경험과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복잡한 데이터 세트를 처리하고, 이를 통해 유의미한 통찰력을 도출하는 데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전문성은 고객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팔란티어는 강력한 기술과 비전을 가지고 있지만, 몇 가지 약점도 존재한다. 팔란티어의 데이터 수집 및 분석 능력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와 권력 남용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정부 기관과의 협력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감시와 통제의 문제는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팔란티어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팔란티어는비밀주의적인 운영 방식으로 비판받고 있다. 고객과의 계약에 포함된 비밀유지 조항과 소프트웨어 사용에 대한 정보 부족은 회사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킬 수 있다. 이러한 투명성 부족은 팔란티어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을 초래할 수 있다. 팔란티어의 기술은 매우 강력하지만, 고객이 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고객이 기술을 잘못 사용하거나 악용할 경우, 팔란티어의 명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회사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팔란티어테크놀로지스는 강력한 데이터 분석 기술과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이다. 데이터 분석 및 소프트웨어, AIP 측면에서 장점 및 강정이 확실하지만 프라이버시 침해, 윤리적 우려, 투명성 부족 등의 약점도 존재한다. 팔란티어의 미래는 기술 발전, 글로벌 시장 확장, 사회적 책임, 그리고 경쟁 심화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할 때, 팔란티어는 앞으로도 중요한 기술 기업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 과정에서 윤리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필수적일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팔란티어에 대해 모든 측면에서 분석하여 상세히 제공하여 투자자들에게 좋은 레퍼런스를 전해주고 있다. 미국 주식및팔란티어 투자에 관심이 있는 투자자들에게 좋은 투자 교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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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골동품점
범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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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두운 밤, 세상은 잠잠해지고 우리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누군가의 아픔을 잠시나마 잊는다. 하지만 이 시간, 대다수의 가게들이 문을 닫고 어두운 골목이 침묵 속에 잠길 때, 한 곳에서는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 바로 호랑골동품점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다. 평범한 골동품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곳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모은 공간이다. 그 이야기들은 단지 물건에 묻어 있지 않다. 물건 하나하나가 겪어온 고통과 외로움, 원한과 아픔을 담고 있으며, 그것들이 서로 이어져 한 세상,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 간다.

이곳의 물건들은 그저 오래되고 낡은 것들에 지나지 않지만, 그 속에 묻어 있는 사연들은 현실을 넘어선 감정과 연결된다. 이 소설은 호러나 미스터리의 장르 같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깊이를 지닌다. 겉으로는 으스스하고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그 속에는 이 세상에서 잊힌 존재들, 고통과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품고 있는 갈망과 위로의 메시지가 숨어 있다.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것들이 전하는 고요한 위로의 손길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위로의 손길은 결국 우리가 삶에서 찾고자 하는 가장 인간적인 감정, 사랑과 연대의 형태로 다가온다.

<호랑골동품점>은 물건만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잊힌 영혼들이 쉴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다. 여기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결국 그 이야기는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깊은 교훈을 품고 있다. 고통과 상처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어루만지며 치유할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호랑골동품점은 그야말로 우리가 잊고 있던, 혹은 외면해왔던 인간의 본능적인 교감의 공간이다. 이 소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가 겪은 고통은 그저 지나가는 한 부분일 뿐,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만날 수 있다." 작은 메시지들이 결국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발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되는 것 같다.

호랑골동품점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물건을 매개로 전개된다. 그 물건들은 일게 골동품만이 아니라, 과거의 슬픔과 고통, 사랑의 단편들이다. 성냥갑에서 들려오는 영국의 어린 노동자들의 비극적인 죽음의 이야기, 그리고 그로 인해 그녀들의 영혼이 무엇인가를 외치고 있는 장면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이 성냥갑을 훔치고 난 후, 그 억울하게 죽은 소녀들의 목소리에 시달리게 되며, 자신이 외면했던 고통을 다시 직면하게 된다.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의 무심함과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되돌아보게 된다. 성냥갑이 주는 메시지는 너무도 강렬하다. "너의 고통은 소리 없이 지나가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외치고 있다."

​이처럼, 호랑골동품점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위로와 깨달음을 선사한다. 각기 다른 시대의 인물들이 물건과 마주하며 삶의 위기를 맞이하고, 그 물건이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조금씩 변화를 경험한다. 한 공중전화기의 신비로운 능력에 의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게 된다. 그리고 그 전화기 속에서 친구의 목소리를 듣고, 그는 다시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가 느낀 변화가 초자연적인 사건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친구의 목소리라는 인간적인 교감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소설은 초자연적인 사건들 속에서 인간의 진정성과 연결될 수 있는 순간들을 그려낸다.

물건들은 저마다 고유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물건들과 마주하는 인물들은 결국 각자의 상처와 마주하며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경험한다. 어떤 이는 사회적 시선에 찢겨 나가는 직장인으로서 자아를 잃어버리고, 어떤 이는 악의의 희생양이 되어 자신을 끊임없이 책망하고 있다. 그들은 마침내 호랑골동품점에서 만난 물건들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이 그토록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다시 찾아가게 된다. 그 물건들이 가진 이야기는 과거의 고통만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작은 불씨가 된다. 그 불씨는 다시 인간 관계와 연결되어, 비로소 치유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점은 물건들이 결코 능동적으로 사람을 조종하거나 해를 끼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오래 묵혀두었던 감정을 끄집어내고, 그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마주하지 못했던 감정을 드러내게 하고, 그것을 치유하는 것은 결국 물건이 아닌, 그 물건을 통해 다시 찾아낸 인간적인 연대이다. 이 연대의 힘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게 강력한 변화의 원동력이 된다. 물건이 전하는 이야기는 그저 과거의 한 부분일 뿐, 그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감정을 공유하며 삶을 새롭게 이어간다.

책은 감정을 치유하는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가 매일 겪는 고통과 아픔 속에서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준다.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주 간단하다. 바로 사랑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사랑을 주면, 그거 하나로도 세상은 달라진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찾아야 할 진리다.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의 아픔을 나누며, 또 다른 이의 아픔을 인정해 주는 것. 그것이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소설을 읽고 나면서, 나는 내가 또 다른 누군가의 호미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호미는 특별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고통을 이해해주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존재이다. 우리는 모두 그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기적들이 모여, 세상은 점차 따뜻해진다. 나 또한 언젠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이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우리가 세상에서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겪은 상처는 결코 단지 우리만의 것이 아니며, 누군가와 나누어야만 진정으로 치유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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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미래 - AI라는 유혹적 글쓰기 도구의 등장, 그 이후
나오미 배런 지음, 배동근 옮김, 엄기호 해제 / 북트리거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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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금융관련 기사를 챗GPT를 이용해서 실시간으로 제공해 주는 서비스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생성형 인공지능 AI가 신문시자와 문학의 역역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생성형 인공지능의 영향은 어떻게 될까? 이번에 이러한 생성형 인공지능 AI의 쓰기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에 관하여 상세 분석 이야기 해 주는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나오미 배런의 <쓰기의 미래>였다.

글쓰기는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언어를 통해 자신을 세계에 위치시키는 행위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에서부터 현대 디지털 시대의 블로그에 이르기까지, 글쓰기는 인류의 역사를 꿰뚫는 가장 오래되고 근본적인 문화적 실천이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일기를 쓰고, 회고록을 남기는 일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삶을 반추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며 시대를 증언하는 작업이다. 또한 글쓰기는 인간의 내면을 외화하는 창이며, 사유의 도구이기도 하다. 우리가 글을 쓸 때, 우리는 알고 있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쓰는 과정을 통해 생각을 정련하고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된다. 생각이 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가 생각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생각하는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선언이며, 글쓰기는 곧 인간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AI는 이 과정을 데이터 처리 문제로 환원한다. 수많은 텍스트를 학습하여 가장 가능성 높은 단어를 확률적으로 배열할 수는 있지만, 거기에는 ‘나’의 존재나 삶의 맥락이 빠져 있다. AI의 글쓰기는 정교하고 유창할 수는 있지만, ‘자기 삶의 반영’이라는 인간 글쓰기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을 갖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대에 다시 묻게 된다. 인간의 글쓰기란 도대체 무엇이었으며, 지금은 어떤 의미로 남아야 하는가?

생성형 AI는 그야말로 '쓰는 기계'다. GPT-4는 그 어떤 인간보다 더 빠르게, 논리적으로, 심지어 감성적으로 보이는 글을 생성할 수 있다. 언론사는 이미 AI에게 속보 작성의 상당 부분을 맡기고 있으며, 대학에서는 AI를 활용한 과제 제출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논문을 AI가 스스로 작성하고, 인간은 최소한의 수정을 가해 출판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묻게 된다. 그렇다면 글쓰기 능력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더 이상 인간의 고유 능력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중심으로 교육하고 평가해야 하는가? AI의 글쓰기 능력은 모방이나 서포트를 넘어 점점 창작의 영역으로 침투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인간 중심적 창작관을 흔든다. 예를 들어, 예술에서 ‘창작’은 인간의 고통, 역사, 감정의 표현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AI가 시를 짓고, 소설의 플롯을 구성하며, 심지어 감동적인 문장을 구성해낼 때, 우리는 창작과 모방의 경계를 다시 그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때 중요한 것은, AI가 창작의 외형을 흉내 내더라도 그 안에 ‘살아 있는 경험’이나 ‘역사적 맥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들어,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참전 군인이 전쟁에 대해 쓰는 글과, AI가 전쟁 관련 기록을 분석해 생성한 글은 문장 수준에서는 비슷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글이 전달하는 감정의 무게, 기억의 진실성, 목소리의 윤리성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인간의 글쓰기는 단지 언어적 구성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살아낸 자만이 쓸 수 있는 목소리의 문제이다.

AI가 글을 써주는 세상에서 인간은 더 이상 글쓰기 능력을 유지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계산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머릿속에서 암산을 하지 않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글쓰기와 문해력은 인간의 사고력, 비판적 판단력, 공감 능력과 직결되어 있다. 이 능력을 상실하면, 우리는 타인의 말을 듣고,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 자신의 입장을 표현하는 데 치명적인 약점을 안게 된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미 그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학생들은 AI 도구를 사용해 요약, 번역, 심지어 창작물까지 의존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으며, 점차 자기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나아가 기업 채용에서조차 ‘쓰기 능력’을 중요하게 보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다. 문해력의 쇠퇴는 단순히 교육적 위기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책임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한 근본 조건의 해체다. 나오미 배런은 이 지점을 강하게 경고한다. 글을 쓰지 않는 인간은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 되며, 그것은 민주주의와 사회적 공존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이른바 ‘AI 도구를 통한 편리한 삶’은 실은 인간의 사고 근육을 서서히 마비시키는 독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묻게 된다. 편리함을 위해 무엇을 희생하고 있는가? 글쓰기가 우리에게 주는 내면의 힘을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AI가 쓴 글을 읽으며 감탄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의 삶에서 비롯된 언어는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고통을 언어로 정제해 글로 남기며, 공동체와 연결되고, 미래 세대에게 증언을 남긴다. 글쓰기는 인간의 사유를 형성하고, 세계에 대한 감각을 확장시키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 그 자체다. AI는 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 여정 자체를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저자는 이렇게 묻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것인가?” 그리고 나는 여기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우리는 글을 써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인간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AI와 함께 글을 쓴다고 해도, 그 중심에는 반드시 살아 있는 목소리, 인간의 감각, 존재의 진실성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만이 쓸 수 있는 글이며, 앞으로도 우리가 쓰기를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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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숏컷의 기술 - 예민해서 고생해온 정신과의사가 터득한 나를 괴롭히지 않는 생각법
니시와키 슌지 지음, 박재영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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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흔들린다. 기쁜 일에도 눈물이 나고, 아무 일도 없는데 가슴이 두근거린다. 누군가의 한 마디에 며칠씩 잠 못 이루고, 사소한 오해에도 마음이 일렁인다. 대학 시절 배운 심리학 수업의 한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감정은 인지와 연결되어 있고, 그 인지는 우리가 사건에 부여하는 의미에서 비롯된다고. 즉,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우리의 감정을 결정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이 이론은 너무나 차가운 위로처럼 들린다.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몸과 마음에 새겨진 습관이기 때문이다. 그 습관은 때로, ‘예민함’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괴롭힌다. 이번에 이렇게 예민하고 조그마한 일에도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그 고민을 자를 수 있는 숏컷의 기술을 흥미롭게 이야기 해 주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니시와키 슌지의 <고민 숏컷의 기술>이었다. 고민을 단숨에 자를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예민한 사람은 소리와 빛, 냄새, 분위기, 말투에 민감하다. 눈빛 하나, 말끝의 떨림 하나로 타인의 기분을 감지하고, 그 감지된 정보에 따라 행동을 조심스레 조율한다. 이런 사람들은 종종 ‘지나치게 민감하다’거나 ‘별 일도 아닌데 너무 생각이 많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생각이 많은 것이 아니다. 더 많이 느끼고, 더 깊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책<고민 숏컷의 기술>은 그런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넨다. “그건 당신이 예민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감각이 활발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마치 무기력한 자신을 탓하며 살아가던 이에게 전해지는, 온기 어린 안부 인사 같다.

​저자는 진단한다. 상처의 시작은 종종 ‘기대’에서 비롯된다. 타인이 나를 이해해주리라는 기대, 사랑해주리라는 기대, 나와 같은 방식으로 반응해주리라는 기대. 그런데 세상은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경우보다, 좌절시키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러면 우리는 곧 실망하고, 그 실망은 나를 향한 비난으로 바뀐다.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랐구나.” “내가 예민해서 그래.” 책은 이야기한다. ‘기대하지 않기’는 무관심이나 체념이 아니다. 그것은 ‘실망하지 않기 위한 지혜’다.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않고, 타인을 탓하지 않으며 살아가기 위한, 작지만 단단한 마음의 훈련이다.

대학에서 배운 심리학에서는 감정과 인지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말한다. 슬퍼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고,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이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인지 교정’이다. 대학때 이 인지의 왜곡에 대해서 재미있게 배웠던 것이 기억난다. 예컨대, “모두가 나를 싫어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면, 정말 ‘모두’가 그럴까? 라고 되묻는다. 이 단순한 질문이 내 안의 파도를 조금 잠재운다. 예민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심리 치료가 아니라, 이런 작은 점검의 습관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의 고민에 대해서 단순하고 면료하게 진단한다. 우리가 왜 고민을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세가지이다. 돈, 건강, 인간관계... 정말 심플하고 명료하다. 우리가 다 아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 세가지가 우리의 고민의 근원의 모든 것일까? 저자는 명확하게 이 세가지의 원인에 의한 고민을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책을 읽다보면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 진다... 특히 인간관계... 우라가 사회에서 가장 어려워 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것이 우리 고민의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저자는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가지 숏컷 기술들을 이야기 한다. 그 전에 우리가 알아야 할 인간들의 유형들(퍼스넬러티 중시 유형, 퍼포먼스 중시 유형, 브랜드 중시 유형...), 리스크/호프, 픽스/플렉스 등 기본적인 툴을 먼저 이야기 하며 숏컷의 기술을 설명하는 것이다. 책의 구성이 2~3페이지의 설명과 사진, 표, 그림으로 구성되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

비교는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우리는 종종 남의 ‘한 면’만을 보고, 그에 비해 나의 부족한 ‘한 면’을 꺼내 비교한다. 예쁘고 똑똑한 사람을 보면 자신이 초라해지고, 재능 넘치는 사람을 보면 무기력해진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다면적이다. 예쁜 사람도 고민이 있고, 똑똑한 사람도 실수를 한다. 우리는 상대의 표면만 보고, 자신의 내면 깊숙한 상처와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책은 말한다. 자신을 입체적으로 보라. 그리고 상대도 입체적인 존재임을 잊지 말라고. 그 말은 곧,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입니다.”라는 속삭임이기도 하다.

​예민한 사람은 책임감이 강하고, 부탁을 거절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쉽게 지치고, 감정적으로 소모된다. 책은 ‘거절도 부탁도 잘하는 사람’을 모델로 제안한다. 즉, 경계 설정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내 마음을 지키는 것, 그것이 감정 소모를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첫걸음이다. 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하려 하지 않는 것. 타인의 기대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리듬’대로 사는 것. 그것이 예민함을 살아내는 기술이 된다.

​예민한 사람에게는 거창한 목표보다 작고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책은 ‘스몰스텝’을 강조한다. 한꺼번에 바뀌려고 하지 말고, 오늘은 하루만큼 덜 괴롭기. 단 한 사람에게만 마음을 열어보기. 이런 사소한 시도들이 쌓일 때, 마음은 조금씩 회복된다. 예민한 사람은 어쩌면 ‘활동적인 모험가’다. 몸은 가만히 있어도, 머릿속에서는 수백 번의 생각과 감정의 여정이 이어진다. 그러니 더 천천히, 더 부드럽게 스스로를 이끌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제 알게 된다. 고민이 생겼을 때, 거창한 해답을 찾기보다 숏컷을 활용하는 것이, 우리를 조금 더 살기 편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는 우리의 감정에, 조용히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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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23 - 피아니스트 조가람의 클래식 에세이
조가람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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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음악은 언어 이전의 말이라고 한다. 말로는 다 닿지 못하는 마음의 여백에, 음악은 조용히 내려앉아 그 사람의 내면을 껴안는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어떤 선율을 들을 때 이유도 없이 가슴이 저리거나, 한없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경험한다. 하지만 음악이 온전한 예술로 남기기 위해서는, 아름다움 뒤에 깃든 체계와 질서가 필요하다. 바로 그 지점에서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라틴어로 ‘작품’을 의미하는 Opus, 줄여서 Op..

우리가 흔히 듣는 “쇼팽의 Op.9”, “베토벤의 Op.27” 같은 표현은 음악을 구분하기 위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한 음악가가 남긴 시간의 층위, 그리고 그가 세상에 내어놓은 창조적 세계의 차례이자, 음악 인생의 한 조각이다. 음악가의 인생이 선율로 녹아든 작품을, 인류는 번호를 매겨 기록했다. Opus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Opus의 기원은 고대 라틴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동’, 혹은 ‘일’이라는 뜻을 지닌 이 단어는, 창작자의 땀과 시간, 고뇌와 희열이 담긴 결과물을 통칭하기 위한 이름이었다. 르네상스 이후 음악이 점차 인쇄되어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작곡가의 작품들을 정리하는 필요성이 생겼다. 그리하여 가장 널리 퍼진 방식이 바로 출판 순서에 따라 번호를 붙이는 ‘Opus number’였다.

물론 이 번호는 항상 작곡된 순서를 정확히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작품은 늦게 출판되어 숫자가 뒤로 밀리고, 또 어떤 작품은 생전에 출판되지 못해 ‘WoO’(Werke ohne Opuszahl, 작품번호 없는 작품)라는 이름을 달기도 한다. 하지만 Opus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시간의 무게를 품은 음악들을 다시금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많은 작품번호 중에서, ‘Op.23’이라는 숫자에 이끌리는 순간이 있다. 그 짧은 조합은 내게 하나의 세계를 환기시킨다. 어두운 밤, 운명처럼 다가오는 선율의 첫 음. 불안과 열정, 비극과 격정 사이를 넘나들며 사람의 감정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곡. 바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의 10개의 전주곡 Op.23이 떠오른다.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고통과 사랑, 고독과 희망이 응축된 ‘작품집’이다. 특히 Op.23 No.5, 우리가 흔히 “라흐마니노프 행진곡”이라 부르는 곡은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의 레퍼토리로 남았고, 듣는 이들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열정과 감동을 선사해왔다. 숫자 하나가 불러낸 깊은 울림. 그것이 바로 Opus의 마법이다. 이번에 이 opus를 제목으로하는 신선한 책을 읽었다. <Op. 23>이었다. 피아니스트인 조가람님의 음악 에세이.... 예술가로서의 그녀의 감성이 느껴진다..

​모든 생에는 각자의 박자와 조율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날들 또한 마치 한 편의 악보처럼, 선율로 엮여 있으며 음표처럼 의미를 품는다. 누군가는 인생을 한 권의 책으로 기억하고, 또 누군가는 한 폭의 그림처럼 담아내지만, 나에게 있어 삶은 언제나 ‘음악’이었다. 울퉁불퉁한 리듬 속에서 조용히 흐르던 일상도 있었고, 전주 없이 갑작스럽게 몰아치는 격정의 순간도 있었다. 어떤 날은 아무것도 연주되지 않은 쉼표 같았고, 어떤 날은 마치 라르고(Largo)처럼 더디지만 단단하게 흘러갔다.

그런 내게 'Op.23'이라는 숫자가 말을 걸어왔다. 음악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Op.'가 ‘Opus’, 즉 ‘작품 번호’를 뜻한다는 것을 안다. 이는 작곡가가 세상에 내놓은 자신의 창작물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는 방법이다. 이 간단한 숫자와 약어가 품고 있는 것은 단순한 순번이 아니라, 작곡가의 인생 그 자체다. Op.1에서 시작된 그들의 여정은 삶의 경험, 슬픔, 사랑, 고뇌, 기쁨이 모두 담긴 시간의 궤적이며, 그 번호 하나하나에는 어떤 계절의 숨결과, 한 시대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쇼팽의 Op.23은 발라드 1번, 차이콥스키의 Op.23은 피아노 협주곡 1번, 슈만의 Op.23은 밤의 노래, 라흐마니노프의 Op.23은 전주곡, … 그러니 나 또한 나의 인생에 Op.23이라는 번호를 붙여도 좋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 이 시기는 내가 내 삶의 첫 번째 발라드를 쓰는 시점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쇼팽이 그렸던 내면의 불꽃일 수도 있고, 차이콥스키가 터뜨렸던 격정의 선언일 수도 있으며, 슈만이 밤의 정적에 띄운 고백일 수도 있다. 혹은 라흐마니노프가 노트마다 심장을 새기듯 남겨놓은 전주곡처럼, 묵직하고 깊게 울려 퍼지는 나만의 이야기일 수 있다.


책은 음악에 대한 해설이나 작곡가의 생애를 서술만 하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음악을 삶으로 번역하는 이야기’이며, ‘인생의 순간들을 음악의 언어로 그려낸 시적 고백’이다. 저자는 피아니스트로서, 청자로서, 예술가로서의 경험을 오롯이 펼쳐 보이며 말한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고유한 '작품 번호'를 붙일 수 있으며, 그것은 단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자기만의 악보’임을 말이다.

나도 오늘, 이 글을 쓰는 지금, 내 인생의 Op.23 앞에 서 있다. 이 번호는 나의 전환점이며,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이 맞닿는 교차점이다. 여기서 나는 고백처럼 써 내려가고 싶다. 쇼팽과 함께 울고, 라흐마니노프와 함께 기다리고, 포고렐리치와 함께 외로워하며, 브람스와 함께 묵묵히 버텨낸 시간들을 말이다. 음악은 결코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삶의 모든 감정과 호흡, 희망과 상처에 깃들어 있었고, 이 Op.23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나만의 연주를 이어가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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