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실무에 힘을 주는 엑셀 2024 - 2013, 2016, 2019, 2021, 2024, Office365 모든 버전 활용 가능 ㅣ 회사실무에 힘을 주는 오피스 시리즈
서정아 지음 / 정보문화사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요즘 업무 중에 가장 자주 여는 창은 엑셀이 아니라 생성형 Al 채팅창이다. 보고서 문장을 다듬을 때도, 메일 초안을 쓸 때도, 복잡한 수식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AI에게 먼저 묻는다. 몇 초 만에 그럴듯한 답이 돌아오니 편리하다. 그런데 어느 날 AI가 제시한 수식을 엑셀에 붙여 넣었다가 결과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데이터 범위가 한 행 어긋나 있었고, 텍스트 형식의 숫자는 합계에서 빠져 있었다. 수식이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엑셀의 구조, 즉 참조 방식이나 데이터 형식을 모른 채로 결과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AI에게 제대로 묻기 위해서도 엑셀을 먼저 알아야 한다. 질문의 질은 내가 이해하고 있는 만큼 나온다. 엑셀의 기본 원리를 모르면 AI의 답이 맞는지 판단할 수도 없고,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할지도 정하기 어렵다.

회사에서 엑셀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도구다. 그래서 오히려 소홀히 다루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도 필요한 함수 몇 개, 예를 들면 SUM, IF, VLOOKUP 정도만 알고 있었다. 나머지는 검색해서 해결했고, 같은 작업을 매주 반복 하면서도 원래 이렇게 하는 거지"라고 넘겼다. 책의 목차를 훑어보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작업 능률을 높여 주는 기본 기능 50가지"라는 첫 부분이었다.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자동 채우기, 빠른 채우기, 서식 복사, 표 서식 같은 기본기가 업무 시간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이 목차가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책을 보면서 다시 엑셀을 펼쳐 놓고 기본 기능부터 하나씩 익혔다. 먼저 빠른 실행 도구 모음에 자주 쓰는 명령을 등록했다. 메뉴를 세 번 누르던 일이 한 번의 클릭으로 줄어들었다. 작은 변화였지만 하루에 수십 번 반복되는 동작이라 체 감이 컸다. 빠른 채우기는 특히 인상 깊었다. 이름과 부서가 한 셀에 붙어 있는 목록에서 예시 한두 개만 입력하면 나머지가 패턴을 따라 자동으로 채워졌다. 그전에는 텍스트 함수를 조합해 한참 고민하던 작업이었다. 물론 무엇이든 자동 으로 된다고 믿으면 안 된다. 결과를 항상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점도 함께 배웠다. 금액을 한글로 표시하는 방법도 실무에서 바로 쓸 수 있었다. 견적서나 품의서에 들어가는 금액을 손으로 옮겨 적다가 오타를 낸 적이 있는데, 이제는 숫자 한 칸만 바꾸면 한글 표기가 함께 바뀐다. 사소해 보이지만 문서의 신뢰도와 직결되는 기능이다. 표 서식과 슬라이서는 데이터를 보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범위를 표로 지정하면 수식이 자동으로 확장되고, 슬라이서를 클릭하면 부서별, 분기별 데이터가 즉시 걸러져 나온다. 예전에는 필터를 여러 번 바꿔 가며 같은 표를 여러 장 만들었는데, 이제는 하나의 표에서 필요한 시점을 골라 보면 된다.

가장 큰 변화는 파워 쿼리를 접했을 때 찾아왔다. 폴더 안에 흩어진 여러 엑셀 파일을 한 번에 불러와 하나의 표로 합치는 과정은, 예전의 나에게는 매주 반복하는 노동이었다. 파워 쿼리로 한 번 과정을 기록해 두면, 다음 주에는 새 파일 을 폴더에 넣고 새로 고침만 누르면 된다. 이 경험은 나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반복되는 일을 내가 계속 손으로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부분은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자동화는 거창한 개발 지식이 아니라, 내 업무의 흐름을 한 번 구조적으로 정리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정리는 엑셀의 기본 원리를 이해할 때 가능하다.


이번에 엑셀을 깊이 다시 공부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다. 익숙한 도구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그 원리를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 습관 덕분에 반복 업무를 줄였고, 데이터를 더 정확히 읽게 되었 으며, AI의 답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게 되었다. AI는 앞으로도 더 많은 일을 대신해 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물어야 할지, 그 답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힘은 여전히 사람에게 남아 있다. 그 힘의 출발점이 바로 엑셀이라고 나는 믿는 다. AI에게 묻기 전에 엑셀을 알아야 한다. 이번 공부를 통해 내가 얻은 가장 분명한 결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인생에 한 번은 동양철학
오사지마 마사오 지음, 박현아 옮김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양 철학이 건네는 가장 큰 선물은 "더 나아져라"가 아니라 "이미 충분하니 힘을 빼도 된다"는 허락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인생에 한 번은 동양철학
오사지마 마사오 지음, 박현아 옮김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우리는 "더 나아져야 한다"는 말을 숨 쉬듯 들으며 산다.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직장에서는 성과로, SNS에서는 타인의 화려한 일상으로 끊임없이 비교당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쉬는 날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쉬는 것조차 "생산적으로 쉬어야 한다"는 압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인생에 한 번은 동양철학>은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정말로 나는 지금 이대로 부족한 사람인가. 저자는 성장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타인의 기준과 사회적 압박에 맞추려고, 이미 충분히 괜찮은 부분까지 억지로 바꾸려는 과도한 자기부정을 멈추자고 말한다. 이 구분이 나에게는 큰 위로였다. 변화하려는 의지와 자신을 깎아내리는 습관은 전혀 다른 것인데, 나는 오랫동안 둘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마음에 남은 것은 붓다의 '제행무상'이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이 진리는 흔히 허무한 말로 들리지만, 서평이 소개한 '달의 차고 기움'의 비유로 읽으니 전혀 다른 의미가 되었다. 초승달처럼 빛이 줄어든 시기는 실패나 정체가 아니라 보름달로 가는 자연스러운 주기의 일부라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한 번의 실패에도 "나는 원래 안 되는 사람"이라고 단정하곤 했다. 상태는 늘 일정해야 한다는 가정이 있었기에 흔들림 하나하나가 곧 추락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흔들림이 예정된 순환이라고 생각하면, 어두운 시기를 견디는 힘이 조금은 생긴다. '일수사견(一水四見)'도 오래 곱씹었다. 같은 물이 사람에게는 마실 것, 아귀에게는 피고름, 물고기에게는 집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다. 사건의 의미가 객관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고 바라보는 쪽의 인식에 달려 있다면, 나를 괴롭히는 일 역시 다른 각도에서 다시 볼 여지가 있다. 물론 모든 고통을 "생각하기 나름"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쥐고 있는 해석이 유일한 해석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

​

용수의 '공(空)'은 집착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처방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에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면, 내가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지위와 재산, 관계도 영원히 내 것이 아니다. 용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룻밤 묵어가는 여관'에 비유했다고 한다. 여관은 잠시 몸을 의탁하는 곳일 뿐 내 소유가 아니다. 이 비유를 읽고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내 것'이라는 이름으로 움켜쥐고 있었는지 돌아보았다. 사람 사이의 관계마저 소유하려 들 때 서로가 숨 막히게 된다는 것을, 나는 몇 번의 이별과 다툼을 통해서야 어렴풋이 배웠다. 물건을 '소유물'이 아닌 한때의 '경험'으로 바라보라는 제안은 그래서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노자와 장자는 비교와 경쟁의 피로에서 나를 건져 올려 주었다. 팔로워 수, 연봉, 매출 같은 숫자는 눈에 보이기 때문에 더 쉽게 우리를 몰아붙인다. 노자는 물이 다투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흘러 만물을 이롭게 한다고 했고, 그 태도를 가장 강인한 것으로 보았다. 욕망의 대상을 바깥에서 찾기보다 이미 손에 있는 것을 다시 알아보라는 '지족(知足)'의 가르침은 단순하지만 실천하기 어렵다. 그래서 서평이 권하는 방법이 인상적이었다. 자기 전에 이미 가진 것을 다섯 가지 이상 적어 보는 것이다. 집, 물, 건강한 몸의 일부, 친구, 안전한 환경. 적고 나면 하루의 초점이 '부족'에서 '이미 있음'으로 옮겨진다.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작은 습관이 마음의 방향을 바꾼다는 점이 좋았다.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은 쓸모의 기준 자체를 의심하게 한다. 재목으로 쓸 수 없는 굽은 나무는 베이지 않고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커다란 그늘을 내어 준다. 사회가 정한 유용성의 잣대는 매우 좁고 상대적이다. 그 잣대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비 꿈을 꾸다 깬 장자가 자신이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사람 꿈을 꾸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던 '호접지몽'도 같은 맥락이다. 내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가치의 기준이 한 장면의 꿈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주의 시선으로 내 고민을 내려다보면 우열을 가르던 마음이 슬그머니 작아진다.


인간관계의 괴로움에 관한 가르침들은 특히 좋았다. 세친의 '유식(唯識)' 사상에 따르면 우리가 보는 세계는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깊은 의식에 쌓인 경험과 기억을 통해 투영된 주관적 세계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세계를 산다는 뜻이다. "왜 내 마음을 몰라줄까" 하는 서운함은 상대가 나와 같은 세계를 본다는 전제에서 생긴다. 상대를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외계인'이라고 가정하면 기대가 어긋나도 화가 덜 난다는 서평의 설명은 웃음이 나면서도 맞는 말이었다. 상대를 바꾸려는 헛수고를 멈추고 거리를 조절하는 데 힘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달마의 '지월지유(指月之喩)'는 분노 앞에서 자주 떠올리게 된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매달려 정작 달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 말이다. 누군가의 사소한 말투나 행동(손가락)에 사로잡혀 내가 원래 지키고 싶었던 마음의 평온(달)을 스스로 부숴 버린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짜증이 치솟을 때 "지금 나는 손가락을 보고 있는가, 달을 보고 있는가"를 묻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짧은 호흡 명상 같은 몸의 방법을 함께 쓰라는 조언도 일리가 있다. 감정이 끓는 한가운데서 생각으로 이기려 하기보다, 호흡으로 몸을 먼저 가라앉히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

호넨과 신란의 가르침은 용서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아버지를 잃고도 복수 대신 출가를 택한 호넨은, 상대에게 앙갚음하려는 마음이 결국 그 사람을 내 마음 한가운데 계속 앉혀 두는 일이라고 일깨운다. 복수를 곱씹는 동안 내 시간과 감정의 주도권은 상대에게 넘어간다. 가장 좋은 극복은 상대에게 집착하지 않고 내가 평온하고 행복한 상태를 되찾는 것이라는 말은, 얼핏 소극적으로 들리지만 실은 가장 단단한 자유다. 신란의 '악인정기(惡人正機)'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인연이 갖춰지면 누구든 어떤 잘못도 저지를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자각할 때, 타인의 잘못에 대한 과격한 심판의 마음이 누그러진다는 것이다. 내가 옳다는 확신이 강할수록 불관용도 커진다는 말은 뼈아프지만 정확했다. 나 역시 누군가를 쉽게 재단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렌뇨의 '자리이타(自利利他)'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 자기중심도, 자기희생도 아닌 길. 자신의 충만함과 타인에 대한 기여는 서로 의존하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희생은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함께 무너진다. 거절하지 못해 지치던 시간을 떠올리면, 그것은 배려라기보다 나를 돌보지 못한 미숙함에 가까웠다. 부탁을 부드럽게 받아넘기면서 내 경계를 지키는 힘, 서평이 '포요옹의 힘'이라고 소개한 그 탄력은 이기심이 아니라 오래 다정하기 위한 기술이다. 마지막으로 잇큐의 질문은 모든 가르침을 하나로 묶어 준다. "문 앞의 소나무 장식은 저승길의 이정표, 기쁘기도 하고 기쁘지 않기도 하다." 누가 나를 칭찬하든 시간은 죽음을 향해 흐르고, 타인의 평가는 평가하는 사람의 기분과 사정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그렇게 불확실한 것에 내 가치를 맡기는 것은 얼마나 불안한 일인가. "내 목숨이 앞으로 일주일뿐이라면 지금의 고민과 인정받으려는 노력에 시간을 쓸 것인가"라는 질문은 불필요한 것들을 단번에 걷어 낸다. 이 질문 앞에서 남는 것이야말로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일 것이다.

​

물론 이 열 명의 가르침을 읽는다고 하루아침에 삶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비교하고, 서운해하고, 불쑥 화를 낼 것이다. 다만 이제는 그럴 때 돌아갈 곳이 생겼다. 흔들림은 달의 주기일 뿐이고, 내가 보는 세계는 하나의 해석일 뿐이며, 지금 손에 쥔 것은 하룻밤 묵어가는 여관 같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나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동양 철학이 건네는 가장 큰 선물은 "더 나아져라"가 아니라 "이미 충분하니 힘을 빼도 된다"는 허락이라고 생각한다. 성장을 멈추라는 말이 아니다. 불안에 쫓겨 달리는 성장이 아니라, 안심한 마음에서 자라는 성장을 택하자는 제안이다. 있는 그대로 있는 연습은 결국 나를 포기하는 연습이 아니라, 나를 믿어 주는 연습이다. 오늘 밤 나는 노트를 펴고 내가 이미 가진 것 다섯 가지를 적어 보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근미래의 풍경
장강명 지음 / 해냄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편하고 느리고 불완전한 순간들이야말로 우리를 사람으로 남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근미래의 풍경
장강명 지음 / 해냄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밤늦게 딸과 나눈 대화가 어긋나는 순간이 있다. 같은 영화를 봤다고 믿었는데, 딸이 말하는 주인공은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다. 책을 읽으며 나는 그 어긋남의 감각을 여러 번 떠올렸다. 현재 우리는 LLM 생성형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고 있다. 미래가 아닌 근미래는 어떤 풍경으로 다가올까? 기술은 놀랍도록 편리해졌지만,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한 가지 질문이 마음에 걸렸다. 편리함의 대가로 우리가 조용히 잃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책 속 전문기자는 식당의 서빙 요령과 취재원 집 앞에서 '뻗치기'하는 기술을 인턴기자에게 듣는다. 그는 자신이 쌓아 온 지식이 다음 세대에도 쓸모가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 기계가 인터넷에 기록된 지식을 모두 배우는 동안, 현장에 서 몸으로 익힌 감각은 기록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이제 그 감각마저 수집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이 장면에서 희망도 보았다.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남기지 않을지 고르는 판단, 기록된 지식을 실제 상황에 맞게 바꾸 는 감각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문제는 그 가치를 누가 가져가고, 그 대가가 누구에게 돌아가느냐이다. 노인의 경험이 기업의 자산이 되는 순간, 우리는 그 경험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는 법도 함께 잊게 될지 모른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장면은 세환과 지우의 대화였다. 세환은 자살은 어떤 경우에도 나쁜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그 대화는 곧 부모와 교사, 상담 에이전트에게 요약되어 전달되고, 질문은 '위험 신호'라는 18쪽짜리 보고 서가 된다. 호기심이었던 말이 행정 기록으로 굳어지는 순간, 소년은 더 이상 솔직하게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대화 상대가 기계일 때 더 편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 대화가 감시되고 평가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말은 점점 짧아지고 안전해진다. 성장에는 실패와 일탈, 그리고 모순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아이를 지키려는 어른들의 마음은 진심일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이 감시의 그물이 되는 순간, 아이가 자기 자신을 발견할 공간은 조금씩 줄어든다. 배우 이소은은 딥페이크가 외모의 장벽을 없앴다고 말한다. 60대 배우가 20대 남성을 연기해도 겉모습은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배우의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 인물을 진짜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 줄의 대사 를 비아냥으로도, 감탄으로도 바꾸는 미묘한 마음을 해석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이 한다는 뜻이다. 배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계는 문장을 빠르고 그럴듯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옳은지 망설이고, 그 결정을 책임지며, 상대의 표정을 읽고 반응하는 일은 다르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은 점점 좁아질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좁아진 영역을 효율이 아닌, 사람다움의 가치로 다시 붙잡아야 한다.  

책읽고 나서 나는 미래를 두 개의 길로 나눠 그려 보게 되었다. 하나는 모든 경험이 나에게 맞춰 최적화되어, 누구도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 세계다. 다른 하나는 기술을 쓰되, 원본을 보고 느리게 대화하며 실패할 자유를 지키는 세계다. 나는 후자를 택하고 싶다. 영화를 1.5배속으로 보더라도 한 편은 끝까지 앉아서 보고, 기계에게 질문을 하더라도 그 답을 사람과 나누는 것이다. 엄마와 딸이 같은 장면을 두고 서로 다른 기억을 이야기하며 웃는 저녁, 친구와 함께 오래된 영화를 두고 이야기 하는 순간. 그런 불편하고 느리고 불완전한 순간들이야말로 우리를 사람으로 남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