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뇨의 '자리이타(自利利他)'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 자기중심도, 자기희생도 아닌 길. 자신의 충만함과 타인에 대한 기여는 서로 의존하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희생은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함께 무너진다. 거절하지 못해 지치던 시간을 떠올리면, 그것은 배려라기보다 나를 돌보지 못한 미숙함에 가까웠다. 부탁을 부드럽게 받아넘기면서 내 경계를 지키는 힘, 서평이 '포요옹의 힘'이라고 소개한 그 탄력은 이기심이 아니라 오래 다정하기 위한 기술이다. 마지막으로 잇큐의 질문은 모든 가르침을 하나로 묶어 준다. "문 앞의 소나무 장식은 저승길의 이정표, 기쁘기도 하고 기쁘지 않기도 하다." 누가 나를 칭찬하든 시간은 죽음을 향해 흐르고, 타인의 평가는 평가하는 사람의 기분과 사정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그렇게 불확실한 것에 내 가치를 맡기는 것은 얼마나 불안한 일인가. "내 목숨이 앞으로 일주일뿐이라면 지금의 고민과 인정받으려는 노력에 시간을 쓸 것인가"라는 질문은 불필요한 것들을 단번에 걷어 낸다. 이 질문 앞에서 남는 것이야말로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일 것이다.
물론 이 열 명의 가르침을 읽는다고 하루아침에 삶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비교하고, 서운해하고, 불쑥 화를 낼 것이다. 다만 이제는 그럴 때 돌아갈 곳이 생겼다. 흔들림은 달의 주기일 뿐이고, 내가 보는 세계는 하나의 해석일 뿐이며, 지금 손에 쥔 것은 하룻밤 묵어가는 여관 같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나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동양 철학이 건네는 가장 큰 선물은 "더 나아져라"가 아니라 "이미 충분하니 힘을 빼도 된다"는 허락이라고 생각한다. 성장을 멈추라는 말이 아니다. 불안에 쫓겨 달리는 성장이 아니라, 안심한 마음에서 자라는 성장을 택하자는 제안이다. 있는 그대로 있는 연습은 결국 나를 포기하는 연습이 아니라, 나를 믿어 주는 연습이다. 오늘 밤 나는 노트를 펴고 내가 이미 가진 것 다섯 가지를 적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