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한 번은 동양철학
오사지마 마사오 지음, 박현아 옮김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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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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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나아져야 한다"는 말을 숨 쉬듯 들으며 산다.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직장에서는 성과로, SNS에서는 타인의 화려한 일상으로 끊임없이 비교당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쉬는 날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쉬는 것조차 "생산적으로 쉬어야 한다"는 압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인생에 한 번은 동양철학>은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정말로 나는 지금 이대로 부족한 사람인가. 저자는 성장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타인의 기준과 사회적 압박에 맞추려고, 이미 충분히 괜찮은 부분까지 억지로 바꾸려는 과도한 자기부정을 멈추자고 말한다. 이 구분이 나에게는 큰 위로였다. 변화하려는 의지와 자신을 깎아내리는 습관은 전혀 다른 것인데, 나는 오랫동안 둘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마음에 남은 것은 붓다의 '제행무상'이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이 진리는 흔히 허무한 말로 들리지만, 서평이 소개한 '달의 차고 기움'의 비유로 읽으니 전혀 다른 의미가 되었다. 초승달처럼 빛이 줄어든 시기는 실패나 정체가 아니라 보름달로 가는 자연스러운 주기의 일부라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한 번의 실패에도 "나는 원래 안 되는 사람"이라고 단정하곤 했다. 상태는 늘 일정해야 한다는 가정이 있었기에 흔들림 하나하나가 곧 추락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흔들림이 예정된 순환이라고 생각하면, 어두운 시기를 견디는 힘이 조금은 생긴다. '일수사견(一水四見)'도 오래 곱씹었다. 같은 물이 사람에게는 마실 것, 아귀에게는 피고름, 물고기에게는 집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다. 사건의 의미가 객관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고 바라보는 쪽의 인식에 달려 있다면, 나를 괴롭히는 일 역시 다른 각도에서 다시 볼 여지가 있다. 물론 모든 고통을 "생각하기 나름"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쥐고 있는 해석이 유일한 해석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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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의 '공(空)'은 집착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처방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에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면, 내가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지위와 재산, 관계도 영원히 내 것이 아니다. 용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룻밤 묵어가는 여관'에 비유했다고 한다. 여관은 잠시 몸을 의탁하는 곳일 뿐 내 소유가 아니다. 이 비유를 읽고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내 것'이라는 이름으로 움켜쥐고 있었는지 돌아보았다. 사람 사이의 관계마저 소유하려 들 때 서로가 숨 막히게 된다는 것을, 나는 몇 번의 이별과 다툼을 통해서야 어렴풋이 배웠다. 물건을 '소유물'이 아닌 한때의 '경험'으로 바라보라는 제안은 그래서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노자와 장자는 비교와 경쟁의 피로에서 나를 건져 올려 주었다. 팔로워 수, 연봉, 매출 같은 숫자는 눈에 보이기 때문에 더 쉽게 우리를 몰아붙인다. 노자는 물이 다투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흘러 만물을 이롭게 한다고 했고, 그 태도를 가장 강인한 것으로 보았다. 욕망의 대상을 바깥에서 찾기보다 이미 손에 있는 것을 다시 알아보라는 '지족(知足)'의 가르침은 단순하지만 실천하기 어렵다. 그래서 서평이 권하는 방법이 인상적이었다. 자기 전에 이미 가진 것을 다섯 가지 이상 적어 보는 것이다. 집, 물, 건강한 몸의 일부, 친구, 안전한 환경. 적고 나면 하루의 초점이 '부족'에서 '이미 있음'으로 옮겨진다.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작은 습관이 마음의 방향을 바꾼다는 점이 좋았다.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은 쓸모의 기준 자체를 의심하게 한다. 재목으로 쓸 수 없는 굽은 나무는 베이지 않고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커다란 그늘을 내어 준다. 사회가 정한 유용성의 잣대는 매우 좁고 상대적이다. 그 잣대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비 꿈을 꾸다 깬 장자가 자신이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사람 꿈을 꾸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던 '호접지몽'도 같은 맥락이다. 내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가치의 기준이 한 장면의 꿈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주의 시선으로 내 고민을 내려다보면 우열을 가르던 마음이 슬그머니 작아진다.


인간관계의 괴로움에 관한 가르침들은 특히 좋았다. 세친의 '유식(唯識)' 사상에 따르면 우리가 보는 세계는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깊은 의식에 쌓인 경험과 기억을 통해 투영된 주관적 세계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세계를 산다는 뜻이다. "왜 내 마음을 몰라줄까" 하는 서운함은 상대가 나와 같은 세계를 본다는 전제에서 생긴다. 상대를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외계인'이라고 가정하면 기대가 어긋나도 화가 덜 난다는 서평의 설명은 웃음이 나면서도 맞는 말이었다. 상대를 바꾸려는 헛수고를 멈추고 거리를 조절하는 데 힘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달마의 '지월지유(指月之喩)'는 분노 앞에서 자주 떠올리게 된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매달려 정작 달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 말이다. 누군가의 사소한 말투나 행동(손가락)에 사로잡혀 내가 원래 지키고 싶었던 마음의 평온(달)을 스스로 부숴 버린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짜증이 치솟을 때 "지금 나는 손가락을 보고 있는가, 달을 보고 있는가"를 묻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짧은 호흡 명상 같은 몸의 방법을 함께 쓰라는 조언도 일리가 있다. 감정이 끓는 한가운데서 생각으로 이기려 하기보다, 호흡으로 몸을 먼저 가라앉히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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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넨과 신란의 가르침은 용서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아버지를 잃고도 복수 대신 출가를 택한 호넨은, 상대에게 앙갚음하려는 마음이 결국 그 사람을 내 마음 한가운데 계속 앉혀 두는 일이라고 일깨운다. 복수를 곱씹는 동안 내 시간과 감정의 주도권은 상대에게 넘어간다. 가장 좋은 극복은 상대에게 집착하지 않고 내가 평온하고 행복한 상태를 되찾는 것이라는 말은, 얼핏 소극적으로 들리지만 실은 가장 단단한 자유다. 신란의 '악인정기(惡人正機)'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인연이 갖춰지면 누구든 어떤 잘못도 저지를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자각할 때, 타인의 잘못에 대한 과격한 심판의 마음이 누그러진다는 것이다. 내가 옳다는 확신이 강할수록 불관용도 커진다는 말은 뼈아프지만 정확했다. 나 역시 누군가를 쉽게 재단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렌뇨의 '자리이타(自利利他)'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 자기중심도, 자기희생도 아닌 길. 자신의 충만함과 타인에 대한 기여는 서로 의존하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희생은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함께 무너진다. 거절하지 못해 지치던 시간을 떠올리면, 그것은 배려라기보다 나를 돌보지 못한 미숙함에 가까웠다. 부탁을 부드럽게 받아넘기면서 내 경계를 지키는 힘, 서평이 '포요옹의 힘'이라고 소개한 그 탄력은 이기심이 아니라 오래 다정하기 위한 기술이다. 마지막으로 잇큐의 질문은 모든 가르침을 하나로 묶어 준다. "문 앞의 소나무 장식은 저승길의 이정표, 기쁘기도 하고 기쁘지 않기도 하다." 누가 나를 칭찬하든 시간은 죽음을 향해 흐르고, 타인의 평가는 평가하는 사람의 기분과 사정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그렇게 불확실한 것에 내 가치를 맡기는 것은 얼마나 불안한 일인가. "내 목숨이 앞으로 일주일뿐이라면 지금의 고민과 인정받으려는 노력에 시간을 쓸 것인가"라는 질문은 불필요한 것들을 단번에 걷어 낸다. 이 질문 앞에서 남는 것이야말로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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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열 명의 가르침을 읽는다고 하루아침에 삶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비교하고, 서운해하고, 불쑥 화를 낼 것이다. 다만 이제는 그럴 때 돌아갈 곳이 생겼다. 흔들림은 달의 주기일 뿐이고, 내가 보는 세계는 하나의 해석일 뿐이며, 지금 손에 쥔 것은 하룻밤 묵어가는 여관 같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나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동양 철학이 건네는 가장 큰 선물은 "더 나아져라"가 아니라 "이미 충분하니 힘을 빼도 된다"는 허락이라고 생각한다. 성장을 멈추라는 말이 아니다. 불안에 쫓겨 달리는 성장이 아니라, 안심한 마음에서 자라는 성장을 택하자는 제안이다. 있는 그대로 있는 연습은 결국 나를 포기하는 연습이 아니라, 나를 믿어 주는 연습이다. 오늘 밤 나는 노트를 펴고 내가 이미 가진 것 다섯 가지를 적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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