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미래의 풍경
장강명 지음 / 해냄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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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밤늦게 딸과 나눈 대화가 어긋나는 순간이 있다. 같은 영화를 봤다고 믿었는데, 딸이 말하는 주인공은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다. 책을 읽으며 나는 그 어긋남의 감각을 여러 번 떠올렸다. 현재 우리는 LLM 생성형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고 있다. 미래가 아닌 근미래는 어떤 풍경으로 다가올까? 기술은 놀랍도록 편리해졌지만,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한 가지 질문이 마음에 걸렸다. 편리함의 대가로 우리가 조용히 잃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책 속 전문기자는 식당의 서빙 요령과 취재원 집 앞에서 '뻗치기'하는 기술을 인턴기자에게 듣는다. 그는 자신이 쌓아 온 지식이 다음 세대에도 쓸모가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 기계가 인터넷에 기록된 지식을 모두 배우는 동안, 현장에 서 몸으로 익힌 감각은 기록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이제 그 감각마저 수집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이 장면에서 희망도 보았다.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남기지 않을지 고르는 판단, 기록된 지식을 실제 상황에 맞게 바꾸 는 감각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문제는 그 가치를 누가 가져가고, 그 대가가 누구에게 돌아가느냐이다. 노인의 경험이 기업의 자산이 되는 순간, 우리는 그 경험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는 법도 함께 잊게 될지 모른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장면은 세환과 지우의 대화였다. 세환은 자살은 어떤 경우에도 나쁜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그 대화는 곧 부모와 교사, 상담 에이전트에게 요약되어 전달되고, 질문은 '위험 신호'라는 18쪽짜리 보고 서가 된다. 호기심이었던 말이 행정 기록으로 굳어지는 순간, 소년은 더 이상 솔직하게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대화 상대가 기계일 때 더 편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 대화가 감시되고 평가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말은 점점 짧아지고 안전해진다. 성장에는 실패와 일탈, 그리고 모순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아이를 지키려는 어른들의 마음은 진심일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이 감시의 그물이 되는 순간, 아이가 자기 자신을 발견할 공간은 조금씩 줄어든다. 배우 이소은은 딥페이크가 외모의 장벽을 없앴다고 말한다. 60대 배우가 20대 남성을 연기해도 겉모습은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배우의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 인물을 진짜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 줄의 대사 를 비아냥으로도, 감탄으로도 바꾸는 미묘한 마음을 해석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이 한다는 뜻이다. 배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계는 문장을 빠르고 그럴듯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옳은지 망설이고, 그 결정을 책임지며, 상대의 표정을 읽고 반응하는 일은 다르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은 점점 좁아질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좁아진 영역을 효율이 아닌, 사람다움의 가치로 다시 붙잡아야 한다.  

책읽고 나서 나는 미래를 두 개의 길로 나눠 그려 보게 되었다. 하나는 모든 경험이 나에게 맞춰 최적화되어, 누구도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 세계다. 다른 하나는 기술을 쓰되, 원본을 보고 느리게 대화하며 실패할 자유를 지키는 세계다. 나는 후자를 택하고 싶다. 영화를 1.5배속으로 보더라도 한 편은 끝까지 앉아서 보고, 기계에게 질문을 하더라도 그 답을 사람과 나누는 것이다. 엄마와 딸이 같은 장면을 두고 서로 다른 기억을 이야기하며 웃는 저녁, 친구와 함께 오래된 영화를 두고 이야기 하는 순간. 그런 불편하고 느리고 불완전한 순간들이야말로 우리를 사람으로 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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