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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는 숲에서 시작되었다 - 90세 과학자의 가슴 뛰는 자연 관찰기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강유리 옮김 / 윌북 / 2026년 5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종종 숲에서 길을 잃고 싶다고 생각한다. 지도 앱이 없어서도 아니고, 방향 감각이 무뎌서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 면, 내가 바라는 것은 목적지 없이 걷는 상태 즉, 다음 발걸음보다 지금 이 발밑의 낙엽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 그런 상태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삶은 너무 많은 것을 미리 알고 시작한다. 검색창에 이름을 치면 나오는 정보들, 화면 속 다 큐멘터리가 보여주는 완벽하게 편집된 자연. 우리는 자연을 알기도 전에 이미 '안다고 느끼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베 른트 하인리히(Bernd Heinrich)의 에세이집 A Naturalist at Large를 처음 펼쳤을 때, 나는 묘한 감각을 느꼈다. 그것 은 마치 오래된 흙 냄새 같았다. 아스팔트 아래 깊이 눌려 있다가 비가 온 뒤에야 비로소 올라오는 그 냄새. 설명하기 어렵 지만, 분명히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무언가 있다. 하인리히는 나에게 길을 잃는 법을 다시 가르쳐 주었다.우리는 보통 자연을 마주했을 때 이름을 찾는다. 저 새는 무슨 새일까. 저 꽃은 무슨 꽃일까. 이름을 알면 아는 것 같은 기 분이 든다. 하지만 하인리히의 에세이를 읽으면 이름이 지식의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깨닫게 된다. 꿀벌은 왜 같은 종류의 꽃을 반복해서 찾아가는가. 왜 새의 알은 종마다 색깔이 다른가. 까마귀는 무리 안에서 어떤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 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수십만 년의 진화, 환경과 생명체 사이의 끊임없는 협 상, 그리고 생존이라는 치열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하인리히는 결코 현학적이지 않다. 그는 독자에게 복잡한 학술 언어로 말을 걸지 않는다. 대신 그는 숲 속 통나무 위에 앉아 몇 시간이고 까마귀를 바라보는 사람처럼, 조용하고 집요하게 이야 기를 건넨다. 그의 문장들은 실험실 노트가 아니라 오랜 시간 자연과 함께 살아온 사람의 일기처럼 읽힌다. 그 일기를 따 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창문 밖 나뭇가지에 앉은 참새에게 시선이 머문다. 저 새는 왜 저기 앉아 있을까. 왜 저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까. 이름 하나 아는 것과, 그 존재의 이유를 묻는 것 사이에는 얼마나 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는가.책에서 내가 가장 깊이 울린 것은 어떤 특정 에세이가 아니라, 책 전체에 흐르는 하나의 태도였다. 그것은 겸손함이다. 하 인리히는 생물학자다. 유전자와 진화를 이야기하고, 생리 생태학의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하지만 그의 글에서 자연은 결코'분석의 대상으로 납작하게 놓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자연의 일부임을 끊임없이 인정하는 방식으로 쓴다. 숲 속 오두막에서 자고, 영하의 날씨에 혼자 서서 새를 기다리고, 손으로 흙을 만지고, 직접 몸으로 그 계절을 겪는다. 이 점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자연에 대해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 그리고 얼마나 적게 '있었는가? 책을 읽으며 나는 어린 시절의 어느 오후를 떠올렸다. 시골 할머니 댁 뒷산에서 혼자 돌멩이를 뒤집으며 그 아래 사는 것들을 들여다보던 오후.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저 그것들이 거기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서 앉아 있던 시간. 이름도 몰랐고 설명할 수도 없었지만, 그 순간 나는 분명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었다. 하인리히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 연결의 감각을 다시 불러오는 일이다. 뉴스와 화면과 소음으로 채워진 일상 속에서, 세상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해도 아름답게 작동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켜 주는 일이다.언젠가 읽었던 문장이 있다. 과학은 경이에서 시작되고, 경이는 직접 보는 것에서 비롯된다! 하인리히의 에세이들은 그 명제를 살아있는 언어로 증명한다. 그가 꽃과 벌의 관계를 서술할 때, 수백만 년에 걸쳐 서로를 조각해 온 두 존재의 이야 기가 눈앞에 펼쳐진다. 꽃은 벌을 훈련시키고, 벌은 꽃을 선택한다. 이 단순해 보이는 사실 안에 얼마나 깊은 시간이 담겨 있는지, 얼마나 정교한 협력의 역사가 있는지를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면, 다음번에 길가 에서 벌 한 마리를 만났을 때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워진다. 저 작은 몸 안에 어떤 기억이 있는가. 저 날갯짓 하나에 얼마나 많은 세대의 시간이 녹아 있는가. 이것이 하인리히가 내게 준 선물이다. 자연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자연을 다시 보게 하 는 눈. 이미 보던 것을 처음 보듯이 바라볼 수 있는 능력. 익숙한 것을 낯설게 느끼는 용기.책을 덮고 나서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창밖에는 바람이 불고, 나무가 흔들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을 풍경이, 오늘은 조금 달리 보였다. 저 나뭇잎이 저렇게 흔들리는 것도 다 이유가 있겠지. 저 흔들림 속에 살고 있는 곤충들 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인리히가 말하는 자연주의자(naturalist)란 단지 자연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 반복해서 같은 장소를 걷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익숙한 새소리 하나에 도 그날의 온도와 빛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감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느끼는 것.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 하인리히의 에세이는 과학서이면서 동시에 초대장 이다.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을 멈추고, 밖으로 나가 진짜 숲으로, 진짜 강으로, 진짜 바람 속으로 들어오라는 초대장이다. 경이는 잃어버릴 수 없다. 잠시 잊을 뿐이다. 그리고 베른트 하인리히의 글은, 나에게 그것을 다시 찾는 길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