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문 안 인구 30만 프로젝트 - 건축가 황두진이 그리는 지속 가능한 도시적 삶
황두진 지음 / 해냄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주말 아침, 서울 한복판을 걷다 보면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광화문 앞 세종대로, 종로 일대, 청계천 변이 텅 비어 있다. 카페 몇 곳에 불빛이 켜져 있을 뿐, 이 나라 최고의 업무 지구가 마치 유령 도시처럼 고요하다. 평일 낮이라면 사람이 넘쳐날 거리가, 유동 인구가 사라진 시간대에는 그 공백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서울이 잘못 설계된 도시라는 증거다. 아니, 더 정확히는, 오래도록 잘못된 방향으로 정책이 운용되어온 결과다.

​

<사대문 안 인구 30만 프로젝트>는 그 잘못된 흐름을 되돌리자는 제안이다. 현재 사대문 안 상주인구는 약 10만 명. 조선 후기 수준에서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1980년대 정점을 찍은 이후 40여 년간 꾸준히 줄어들었다. 서울 인구 전체는 팽창했지만 그 무게 중심은 강남, 수도권 외곽으로 옮겨갔고, 도심은 비어갔다. 30만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인구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이 도시가 진짜 도시답게 기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직주 근접(職住近接). 일하는 곳과 사는 곳이 가까운 것. 당연한 이치처럼 들리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대다수 직장인에게 이것은 사치에 가깝다. 광화문에서 일하면서 일산에서 자고, 판교에 출근하면서 수원에서 아침을 먹는다. 왕복 두세 시간의 통근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사대문 안은 원래 직주 근접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공간이었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시장은 종로변에, 관청은 궁궐 앞에, 주거는 그 사이사이에 얽혀 있었다. 걸어서 삶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도시였다. 내사산이 만들어낸 분지 안, 약 16.5제곱킬로미터의 공간은 지형적으로도 걷기에 이상적이다. 청계천 상류 광화문에서 동대문까지의 평균 경사가 0.3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 공간이 얼마나 보행 친화적인지를 말해준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이점을 스스로 지워버렸다. 1970년대부터 학교를 강남으로 이전시키고, 주거 기능을 도심에서 밀어냈다. 기업과 관공서는 남았지만 사람이 떠났다. 낮에는 붐비고 밤에는 텅 비는 비정상적 구조가 수십 년에 걸쳐 고착되었다. 편의점 하나 찾기 어려운 도심, 자전거 수리점을 찾아 마포 공덕동까지 가야 하는 서촌의 현실은 그 결과다. 상주인구가 줄면 생활 인프라가 사라지고, 인프라가 사라지면 상주인구가 더 줄어드는 악순환. 이것이 사대문 안이 지금 걸린 병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도시 문명 자체를 흔들 것처럼 보였다. 재택근무가 일반화되고, 교외로의 이주가 유행처럼 번졌다. 도시는 끝났다는 선언이 쏟아졌다. 그러나 3년여 만에 그 '뉴 노멀' 담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밀도를 혐오하던 사람들도 결국 도시의 편의와 자극 앞에 돌아왔다. 오히려 팬데믹은 도시에 대한 성찰을 더 정교하게 만들었다. 파리의 '15분 도시' 개념이 주목받은 것도 이 시기였다. 핵심은 단순하다. 도보나 자전거로 15분 안에 직장, 학교, 병원, 시장, 공원을 모두 닿을 수 있는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기능별로 지역을 분리하는 근대적 조닝(zoning)의 실패를 인정하고, 복합 도시로 돌아가자는 선언이다. 이것은 실은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 조선의 한양이 그랬고, 뉴욕 맨해튼의 그리니치빌리지가 그랬다. 밀도에 대한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거부감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전쟁과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한국인은 과밀의 고통을 몸으로 겪었다. 한 반에 60명, 2부제 수업, 출퇴근 지하철의 지옥도. 그 기억이 밀도 혐오를 낳았고, 도시 정책은 낮은 용적률을 미덕으로 삼았다. 그러나 역설이 있다. 용적률을 낮추면 도시는 수평으로 팽창하고, 팽창할수록 이동 거리는 늘어나며, 체감 밀도는 오히려 높아진다. 강남역 사거리의 법정 용적률 800퍼센트 이하라는 숫자가 세계적 대도시 기준으로 얼마나 낮은지를 생각하면, 우리가 얼마나 비효율적인 도시를 만들어왔는지 가늠된다.


그렇다면 사대문 안에 어떤 건축을 담아야 할까. 이 글은 단지형 아파트를 명확히 거부한다. 단지형 아파트는 도로를 막고, 담을 치고, 도시를 조각냈다. 용적률은 높아 보이지만 건폐율이 낮아 실제 밀도 효과는 제한적이다. 경희궁자이가 들어선 뒤 오히려 주변 인구가 줄었다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사대문 안에는 그런 대규모 부지 자체가 없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무지개떡 건축'이다. 저층부엔 상점과 카페, 중층부엔 사무실과 학원, 상층부엔 주거와 옥상 마당. 상업, 업무, 주거가 한 필지에 수직으로 중첩된 이 방식은 1960~70년대 한국의 상가 아파트에서 이미 실험된 바 있다. 낙원상가, 세운상가, 서소문아파트. 당시에는 기술적 한계와 법적 규제의 부재로 문제도 많았지만, 그 개념 자체는 탁월했다. 도시의 밀도와 복합성을 동시에 실현하는 방식이었으니까.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전통 한옥의 원리와도 닿아 있다는 점이다. 한옥은 비정형 자연석 기단, 직선 목구조, 3차원 곡면 지붕이라는 전혀 다른 세 가지 기하학을 하나의 건축 안에 중첩시킨다. 무지개떡 건축도 마찬가지다. 층마다 다른 기하학적 질서, 다른 재료, 다른 공간 경험. 이것이 도시를 살아있게 만드는 다양성이다. 뉴욕 소호의 건물들이 개별적으로 보면 단조롭지만 거리 풍경이 생동감 있는 이유도 저층부의 상점들, 그 위의 주거, 그리고 각각의 층이 만드는 도시적 접촉성 때문이다.


직주 근접은 편의의 문제만이 아니다. 탄소 배출의 문제이기도 하다. 운정에서 서울역까지 GTX로 출퇴근한다면 편도 탄소 배출량만 약 1,545그램이다. 여기에 역까지 이동하는 탄소까지 더하면 수치는 더 올라간다. 대구시 온실가스 배출의 41퍼센트가 도로 교통에서 나온다는 통계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직시하게 한다. 반면 걷거나 자전거로 사대문 안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의 탄소 배출량은 0이다. 기존 건물의 리모델링도 같은 맥락에서 중요하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해 사용하는 것은 같은 규모를 새로 짓는 것보다 에너지를 평균 55퍼센트 이상 절약한다. 아무리 친환경 자재로 신축해도 철거와 건설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지역사회의 맥락 단절이라는 비용을 상쇄하기 어렵다. 도시의 지속 가능성은 새로운 건물을 얼마나 잘 짓느냐가 아니라, 이미 있는 도시를 얼마나 잘 쓰느냐에 달려 있다. ESG가 평가의 무게 중심을 거기로 옮겨야 하는 이유다.


사대문 안을 다시 사람이 사는 곳으로 만들자는 이 제안은, 낭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가 줄어드는 시대에, 넓게 퍼진 도시 구조를 유지하는 비용은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수도권 광역 인프라를 계속 확장하는 것은 해법이 아니다. 이미 있는 자원, 이미 잘 갖춰진 공간을 더 잘 쓰는 것이 지속 가능한 방향이다. 사대문 안은 그 조건을 갖추고 있다. 수많은 일터, 역사적 투자가 축적된 인프라, 산으로 둘러싸인 자연환경, 걷기 좋은 평탄한 지형, 그리고 600년이 넘는 이야기. 이 공간이 밤이면 텅 빈 채로 방치되는 것은 낭비이자 실패다. 여기에 사람이 다시 살게 하는 것, 그것이 서울이 진짜 세계적인 도시로 성숙해지는 길이다.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맨해튼을 '인류가 만든 가장 친환경적인 도시'라 불렀다. 역설처럼 들리지만, 직주 근접이 실현된 고밀도 도시야말로 가장 적은 탄소로 가장 많은 삶을 담는다는 뜻이다. 사대문 안 인구 30만 명 프로젝트는 그 역설을 서울에서 실현하려는 시도다. 새로운 건축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동기 부여, 오래된 지혜의 현대적 재해석. 도심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미래의 실험실이다. 그 실험실을 다시 사람으로 채우는 일, 이제 시작할 때가 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