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론을 읽는 시간 - 김수행 교수의 경제학 강의
김수행 지음, 애덤 스미스 원작, 박도영 정리 / 해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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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애덤 스미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두 가지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나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신비로운 메타포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시장의 수호성인이라는 후광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스미스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가 얼마나 복잡하고 입체적인 사상가였는지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그는 단순히 자본주의의 옹호자가 아니었으며, 자신이 세운 이론의 한계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었던 지식인이었다.

스미스가 살았던 18세기 영국은 거대한 전환의 시대였다. 지주 계급, 자본가 계급, 임금노동자 계급이라는 세 축이 사회를 재편하는 가운데, 도시에서는 공장제 수공업이 확산되고 있었다. 기술적으로는 여전히 손 도구에 의존하는 수공업에 가까웠지만, 생산 조직의 측면에서는 자본주의적 대공업의 맹아가 이미 움텄다. 스미스는 바로 이 경계선 위에 서 있었다. 산업혁명의 본격적인 기계화가 도래하기 직전, 그는 분업의 효용을 설파했지만 기계가 사회에 미칠 영향은 충분히 살펴볼 수 없었다. 이 시대적 한계는 그의 이론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스미스의 지적 여정은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허치슨 교수 밑에 도덕철학을 배우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교수들의 직무 유기에 실망하고 흄의 철학에 깊이 빠져들면서, 그는 신학에서 자연신학으로, 신의 계시에서 인간의 이성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자연과 인간 사회는 신의 직접적 명령이 아니라 이성으로 파악 가능한 자연적 질서에 따라 작동한다는 믿음, 이것이 훗날 그의 경제학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적 토대가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자연적 질서에 대한 신뢰가 과학적 증명이라기보다 하나의 신념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스미스 스스로도 이를 완전히 해명하지 못했기에, 결국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시적이지만 모호한 표현에 기댔다.

<국부론>의 핵심 논지 중 하나는 분업이 노동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핀 공장의 예는 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열 명의 노동자가 분업을 통해 혼자 일할 때보다 수백 배 많은 핀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협업과 전문화의 힘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스미스는 숙련도의 향상, 시간 절약, 기계 발명의 촉진이라는 세 가지 메커니즘으로 분업의 이익을 설명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는 것이 이 책의 진정한 가치다. 스미스는 국부론 후반부에서 자신이 앞서 찬양했던 분업의 어두운 이면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평생 하나의 단순한 작업만 반복하는 노동자는 사고력이 마비되고, 사회적 판단력을 잃으며,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조차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게 된다고 그는 경고했다. 이 고백은 놀랍도록 용기 있는 자기 비판이다. 찬양에서 시작해 비판으로 끝나는 이 구조는 스미스가 단순한 이념의 전도사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려 했던 사상가였음을 증명한다.

공장 안의 분업과 사회 안의 분업의 구분도 중요한 지점이다. 스미스는 이 둘을 하나의 개념으로 뭉뚱그렸는데, 이는 이후 적잖은 혼란을 낳았다.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부품이 오가는 것은 교환이 아니다. 그러나 농민과 대장장이가 쌀과 도구를 맞바꾸는 것은 분명한 교환이다. 전자는 자본가의 계획 아래 움직이는 통제된 세계이고, 후자는 무수한 개별 결정들이 충돌하고 조율되는 시장의 세계다. 이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으면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엥겔스가 훗날 공장의 계획성과 사회의 무정부성이라는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을 짚어낸 것은 바로 스미스가 흐릿하게 남겨놓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보이지 않는 손'을 둘러싼 분석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다. 이 표현이 국부론 전체에서 단 한 번만 등장한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흥미롭다. 우리가 스미스 경제학의 핵심으로 알고 있는 이 개념은, 사실 스미스가 증명하지 못한 자연적 질서를 얼버무리기 위해 빌려온 은유에 가깝다. 개인의 이익 추구가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명제는 검증된 법칙이 아니라, 절대왕정의 경제적 간섭을 비판하기 위한 혁명적 슬로건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했다. 스미스 자신도 이기적인 경제인이 정의의 원칙을 쉽게 위반할 수 있음을 알았기에, 정부의 법 집행과 교육의 역할을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

중상주의 비판은 국부론이 당대 정치경제학에 던진 가장 날카로운 도전이었다. 국부는 금과 은이 아니라 국민이 소비할 수 있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이라는 선언, 수입 제한과 수출 장려책이 결국 일부 상인과 제조업자의 사익을 위해 국민 전체의 이익을 희생시킨다는 비판은 당시로서는 혁명적 통찰이었다. 식민지 경영에 대한 분석도 예리하다. 아메리카 식민지는 영국 전체로 보면 유지비가 이득을 훨씬 초과하는 짐이었으며, 독립을 허용하는 것이 오히려 자유로운 통상 관계를 통해 더 큰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은 당대의 제국주의적 관성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국부론과 자본론의 대비는 스미스를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스미스는 인간의 본성, 즉 교환 성향이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을 경제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반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라는 사회 구조 자체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자본가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그의 본성이 아니라,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구조적 강제의 결과다. 이 시각 차이는 단순한 방법론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근본적으로 다른 렌즈다. 스미스의 접근이 자본주의를 인간 본성에 가장 자연스러운 체제로 영구화하는 경향을 낳는다면, 마르크스의 접근은 자본주의를 역사적으로 등장했다가 변화할 수 있는 특정한 사회 구조로 이해하게 한다.

책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은, 스미스를 특정 이념의 깃발로 동원하는 일이 얼마나 그를 왜곡하는가 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을 내세워 모든 규제 철폐를 정당화하지만, 스미스는 분업의 폐해를 경고하고 노동자 교육을 강조했으며, 독점과 상인 집단의 로비가 정책을 왜곡한다고 비판했다. 그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고 주장했다는 것은 절반의 진실, 혹은 편의를 위한 오독이다. 잠옷 바람으로 사색에 빠진 채 25킬로미터를 걷고, 찻잔에 빵과 버터를 넣어 끓이고도 아무렇지 않았던 이 괴짜 학자는, 어쩌면 자기 시대의 가장 큰 질문들과 씨름하느라 늘 딴 곳에 정신이 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씨름의 결과물이 불완전하고 모순을 품고 있더라도, 그것은 살아있는 사유의 흔적이다. 완성된 체계가 아니라 진행 중인 질문으로서 스미스를 읽을 때, 비로소 그는 우리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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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 평생 연금을 설계할 마지막 타이밍
최윤영(황금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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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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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이라는 나이는 이상한 지점에 있다. 아직 젊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마지막 언저리이면서, 동시에 노후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피부에 닿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나이에 두 가지 감각을 동시에 품고 살아간다. "아직 20년은 더 일할 수 있다"는 안도와, "벌써 35년이 지났는데 모아놓은 게 이게 전부인가"라는 불안이다. 그 두 감각이 공존하는 이 지점에서, 노후 준비에 관한 가장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거나 혹은 무기한으로 미뤄진다. 준비를 미루는 이유는 항상 합리적으로 들린다. 아이가 어리고, 전세 만기가 돌아오고, 부모님 건강이 걱정되고, 직장은 아직 불안정하다. 이 이유들은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이 이유들은 35세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45세에도, 55세에도 비슷한 이유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다시 나타난다. 아이의 대학 등록금, 부모님 요양비, 이직 공백, 집값 상승분. 준비하기 좋은 완벽한 타이밍은 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35세를 향해 "마지막 기회"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이 말은 협박이 아니라 수학의 언어다.


복리에 대해 사람들이 자주 듣지만 잘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복리의 효과가 초반에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10년간 연 7%로 운용된 자산이 두 배가 된다는 계산을 들을 때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그 두 배가 마지막 몇 년에 집중해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35세에 시작한 사람과 45세에 시작한 사람이 똑같이 65세에 은퇴한다면, 전자는 30년을 가지고 후자는 20년을 가진다. 단순히 10년 차이가 아니다. 복리 구조에서 그 10년은 전체 자산 증가분의 절반 이상을 설명할 수 있다. 마지막 타이밍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 여기에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늦어질수록 복리가 아닌 산술로 싸워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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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35세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종목, 상품, 포트폴리오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준비의 출발점은 그 이전에 있다. 먼저 은퇴 이후의 삶에 필요한 현금흐름의 규모를 숫자로 적어야 한다. "넉넉하게" 혹은 "적당히"라는 말은 설계도가 될 수 없다. 월 250만 원인지, 400만 원인지, 600만 원인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그 숫자가 정해지는 순간, 역산이 시작된다. 지금 어디에 있고, 어느 속도로 움직여야 하며, 어떤 구조를 쌓아야 하는지가 비로소 구체적인 형태를 갖는다. 국민연금은 이 구조의 일부가 될 수 있지만 전부일 수는 없다. 수령 시점은 점점 늦어지고 있고, 수령액은 가입 기간과 납입 금액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퇴직금은 목돈처럼 느껴지지만, 부채 상환이나 창업 자금으로 소진되는 경우가 현실에서 적지 않다. 개인연금은 납입 여력 자체가 생활비에 눌려 제한된다. 이 구조를 맹목적으로 신뢰했다가 65세에 현실을 마주하는 것과, 35세에 이 구조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신만의 현금흐름 시스템을 병렬로 구축하기 시작하는 것 사이의 간격은 좁혀지지 않는다.


현금흐름 시스템이라는 말은 거창하게 들리지만, 본질은 단순하다. 내가 일하지 않는 날에도 정기적으로 돈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 구조를 만드는 방법은 시대마다 달라졌지만, 핵심 원리는 변하지 않았다. 자산이 나 대신 일하게 하는 것이다. 배당을 지급하는 자산을 꾸준히 축적하는 방식은 이 원리를 가장 단순하게 구현하는 방법 중 하나다. 매달 혹은 분기마다 계좌로 들어오는 분배금은, 그것이 처음에는 5만 원이든 10만 원이든, 시스템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재투자의 재료가 된다. 중요한 것은 그 금액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이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반복되는 현금이 다시 같은 자산을 사고, 그 자산이 다시 현금을 만들어내는 구조가 시간과 맞물릴 때 복리는 숫자가 아닌 감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실수는 성급함이다. 배당률이 높을수록 빠를 것이라는 기대로 검증되지 않은 고수익 상품에 집중하거나, 초기에 들어오는 분배금을 생활비로 전용하면서 재투자의 사이클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평생 현금흐름을 만드는 시스템은, 초반에 현금을 꺼내 쓰는 순간 그 성장 속도가 크게 꺾인다. 배당 투자에서 축적기의 원칙은 명료하다. 받은 배당은 다시 같은 곳에 넣는다. 이 단순한 규칙이 실제로 지켜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35세라는 나이가 유리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시간이고, 둘째는 실수를 만회할 여유다. 45세에 시작하면 잘못된 선택 하나가 회복할 시간 없이 은퇴 자금의 일부를 영구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 35세에 시작하면 1~2년의 시행착오는 전체 여정에서 수업료에 가깝다. 작게 경험하고, 구조를 이해하고, 자신의 성향에 맞는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 비교적 여유롭게 허용된다. 이 나이에 이미 시장을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차이는 5년 뒤에 뚜렷해진다. 시장이 흔들릴 때 매도 버튼에 손이 가는 사람과, 오히려 평온하게 재투자 일정을 확인하는 사람의 차이는 지식이나 배짱의 차이가 아니다. 경험의 차이다. 한 번이라도 -20%를 버텨본 사람은 다음 하락을 다르게 읽는다. 그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시간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평생 연금을 설계한다는 것은 상품을 고르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의 형태를 먼저 그리고, 그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현금흐름의 규모를 계산하고, 그 현금흐름을 만드는 구조를 지금부터 천천히 쌓아가는 과정이다. 구조가 복잡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단순할수록 오래 유지된다. 지키기 어려운 원칙은 원칙이 아니라 계획일 뿐이고, 계획은 위기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 35세에 매달 30만 원씩 배당 ETF를 매수하고, 들어오는 분배금을 전액 재투자하며, 분기마다 포트폴리오를 점검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과, 같은 나이에 "나중에 목돈이 생기면 시작하겠다"고 미루는 사람이 65세에 가진 자산의 차이를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숫자로 보여주어도 실감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고, 30년이 지난 후에는 되돌릴 수 없다. 마지막 타이밍이라는 말은 두려움을 심으려는 말이 아니다. 지금 시작하면 아직 충분히 유리하다는 말이다. 그 유리함은 내년이 되면 조금 줄어들고, 5년 후에는 눈에 띄게 줄어든다. 35세의 시간은 35세일 때만 존재한다. 그 시간이 복리와 만나는 방식으로 쓰여야 한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말하고 싶은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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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 일제강점기에서 전쟁까지, 한국 근대미술 대표 화가 40인 40선
박영택 지음 / 심통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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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와 전쟁이라는 가혹한 조건 속에서도 화가들이 붓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은, 예술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새삼 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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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 일제강점기에서 전쟁까지, 한국 근대미술 대표 화가 40인 40선
박영택 지음 / 심통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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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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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언제나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숨결을 담는다. 붓 한 자루, 먹 한 방울 속에도 시대의 무게가 스며든다. 한국 근대미술이 걸어온 길은 단순한 양식의 변천사가 아니다. 그것은 나라를 잃고, 전쟁을 겪으며, 그럼에도 살아남으려 했던 사람들의 내밀한 기록이다. 1900년대 초 개화의 물결과 함께 서양 미술의 개념이 밀려들어오고, 식민지의 질곡 속에서도 화가들은 붓을 놓지 않았다. 책은 일제 강점기 시대를 살다간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한국 근대미술이 어떠한 맥락 속에서 피어났는지를 상세히 이야기 한다.


1910년 8월, 조선은 일본에 병합되었다. 나라가 사라지는 그 직전의 봄, 신문 한 면에 작은 그림 하나가 실렸다. 이도영이 그린 판소리 장면이었다. 갓 쓰고 두루마기 입은 소리꾼이 부채를 들고 고수의 장단에 맞춰 소리를 내지르는 그 그림은, 한국 최초의 시사만화로 기록되었다. 이도영의 그림이 특별했던 것은 삽화만의 의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뻐꾸기 소리를 '복국(復國)'으로 바꿔 부르는 소리꾼의 절절한 외침이 담겨 있었다. 나라를 되찾으라는 간절한 염원을 판소리 형식에 빌려 표현한 것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민중도 그림과 소리꾼의 몸짓만으로 그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당시 신문에 연재된 시사만화는 계몽의 도구이자 저항의 언어였다. 이도영은 전환국에서 인쇄술을 익히고, 안중식과 조석진에게 전통 화법을 사사받은 인물이었다. 그는 서양의 사실적 묘사 방식을 받아들이면서도 모필의 전통적인 선 감각을 살려, 인물의 동작과 표정을 생생하게 포착해냈다. 오세창이 글을 쓰고 이도영이 그림을 그린 대한민보의 시사만화는, 그림이 단순한 장식이나 기록을 넘어 정치적 발언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후 그는 '미술계의 국보'라 불리며 서화계의 어른으로 자리 잡았으나, 1933년 쉰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너무 이른 작별이었다.


조선의 산수화는 오랫동안 유교적 이상 세계를 그리는 관념의 그림이었다. 사대부 문인들이 추구한 군자의 세계를 자연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왕조가 무너지고 성리학적 세계관이 해체되면서, 그 이념을 담던 그릇도 함께 비어갔다. 그 공백 속에서 이상범은 다른 방향을 찾아나섰다. 이상범이 추구한 것은 관념이 아닌 실경(實景), 즉 눈앞에 실제로 존재하는 우리 산하의 모습이었다. 1930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차지한 그의 작품 '잔추(殘秋)'는 그 탐구의 결정이었다. 늦가을 어느 농촌의 황량한 풍경, 민둥산과 작은 초가집, 드문드문 서 있는 앙상한 나무들. 먹색 하나만으로 그려낸 그 장면은 쓸쓸하지만 거짓이 없었다. 그것은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농촌 현실을 그대로 담아낸 풍경이었다. 이상범은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이후 실경산수의 맥을 근대적 시각으로 이어받은 작가였다. 그는 전통 화법의 근간을 유지하면서도 서구 풍경화의 시선을 결합하여, 한국 산야가 지닌 고유한 정서를 가시화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갈필로 문질러나간 건조한 붓질, 농담을 달리하며 쌓아 올린 먹의 층위, 그 속에서 배어나오는 서늘하고 적막한 정서야말로 이상범이 아니면 그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우리 산야에서 찾아낸 감정은 화사함이 아니라 쓸쓸함이었고, 그 쓸쓸함이 오히려 보는 이의 마음 깊이 닿았다.


정물화는 미술 아카데미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놓인 장르였다. 역사화나 초상화에 비해 이야기도 없고, 인물에 대한 통찰도 없이 그저 사물을 그리는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상봉의 정물화를 마주하면 그 편견이 흔들린다. 1930년에 그려진 그의 작품 '파와 정물'은 식탁 위에 파 한 묶음과 귤 두 개, 토마토 하나가 놓인 단출한 장면이다. 화려하거나 풍성하지 않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 묵직한 존재감이 있다. 파 뿌리의 흰 빛이 눈부시고, 좌측에서 흘러드는 빛이 과일들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물감은 얇고 건조하게 발려 있어 마치 오래된 벽에 스며든 것처럼 화면에 착 달라붙어 있다. 도상봉은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한 아버지의 영향 아래 반일의식을 품고 살았으며, 조선총독부 주관의 조선미술전람회에는 단 한 번도 출품하지 않았다. 그 대신 서화협회전과 동문들과의 그룹전을 통해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정물화가 지닌 고요하고 격조 있는 분위기는 단순한 기법의 성취가 아니라, 시대와 불화하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 한 인간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물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눈길, 꾸밈없는 담백함, 그것이 도상봉 정물화의 진정한 힘이었다.


최재덕은 '화가들이 인정한 화가'였다. 동료 화가들 사이에서 그의 색채 감각과 조형적 순수성은 누구도 따라오기 어려운 것으로 통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미술사에서 지워져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월북했고, 이후 행적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남아 있는 작품이 채 열 점도 되지 않는 그의 그림들은, 그러나 한결같이 놀라운 감각으로 빛난다. '하얀 집의 테라스'는 정원 너머 흰 벽의 2층 집이 햇빛을 받고 있는 장면을 담았다. 밝고 섬세한 붓 터치, 오돌토돌한 물감의 질감, 난간 위 작은 화분들의 앙증맞은 존재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빛의 방향을 알려주는 동시에 화면에 풍성한 이미지를 더한다. 단순한 흰 벽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색이 공존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화려하지 않다. 거창한 이념도 없고, 역사적 사건도 담겨 있지 않다. 다만 일상의 한 순간, 빛이 잠깐 머무는 자리를 예민하게 포착했을 뿐이다. 시인 김광균은 그를 '천사가 이 세상을 잠깐 다녀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중섭과 나란히 놓인 그 말은, 최재덕의 예술이 지닌 순수성과 단명(短命)에 대한 아쉬움을 동시에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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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1951년, 광주에서 천경자는 매일 아침 일곱 시에 화실에 들어가 저녁 일곱 시까지 뱀을 그렸다. 여동생의 죽음, 가난, 불화했던 사랑, 그 모든 슬픔을 뱀의 형상 속에 밀어 넣었다. 25일 만에 완성한 그 작품의 이름은 '생태(生態)'였다. 뱀은 보통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다. 그러나 천경자에게 뱀은 삶에 대한 저항이자 구원의 상징이었다. 화면 가득 뒤엉킨 뱀들의 덩어리, 무리에서 빠져나와 기어 나오는 몇 마리의 형상. 초록과 붉은색이 겹치며 만들어내는 색의 생동감. 그것은 단순한 생물의 묘사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꿈틀거리고 살아남으려는 생명의 의지였다. 천경자의 채색화는 전통 동양화의 채색 방식을 계승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표현의 차원을 열었다. 물감을 여러 겹 올리고, 호분을 덮고, 다시 색을 얹어 만들어낸 투명하고 깊은 색층은 보는 이의 시각뿐 아니라 촉각까지 건드린다. 그녀의 그림은 아름다운 것만이 미술이 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거슬렀다. 해방 이후 화단이 채색화를 왜색(倭色)이라 몰아붙이던 시절에도 그녀는 자신의 언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과 그림을 일치시키는 것, 그것이 천경자의 예술이었다.


일제강점기에서 전쟁에 이르는 시간 동안 한국의 화가들은 극히 다른 방식으로 시대와 마주했다. 이도영은 붓으로 저항의 소리를 냈고, 이상범은 황량한 우리 산야를 진실하게 응시했다. 도상봉은 사물 속에 고요한 품격을 담았고, 최재덕은 일상의 빛을 감각적으로 건져 올렸으며, 천경자는 고통을 생명의 꿈틀거림으로 바꾸어냈다. 이들이 남긴 그림들은 어떤 거창한 선언이나 이념보다 더 깊이 시대를 증언한다. 그림은 설명이 아니라 경험이기 때문이다. 붓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선 하나, 먹이 스민 여백 하나가 그 시절의 공기를 지금 여기까지 전달한다.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가혹한 조건 속에서도 화가들이 붓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은, 예술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새삼 묻게 한다. 그것은 아마도 살아남기 위한, 혹은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가장 절실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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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안다는 착각 - 전 세계를 지배하는 진짜 힘의 실체는 무엇인가
김봉중 지음 / 빅피시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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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곤경에 빠지는 건 무지 때문이 아니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라고.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 나는 그것이 단순한 경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이라는 나라를 조금씩 들여다보면서, 그 말이 얼마나 정확한 경고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미국을 안다고 생각한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CNN 뉴스를 접하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애플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살아간다. 영어를 배우면서 미국식 억양을 흉내 내고, 유학을 꿈꾸거나 실제로 다녀온 사람도 주변에 꽤 있다. 그러니 미국이 낯설 리 없다고 느낀다. 하지만 과연 그 익숙함이 진짜 앎일까? 미국의 역사와 제도, 사회와 문화를 폭넓게 다룬 한 책으로, 그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처럼 보이지만, 그 구조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때로는 직관에 반한다. 우리는 흔히 '더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이긴다'고 생각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각 주에서 1위를 차지한 후보가 그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 전체를 가져가는 '승자 독식' 방식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전국 득표수에서 트럼프를 앞섰지만, 선거인단 수에서 뒤져 패배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미국 민주주의를 얼마나 단순하게 이해해왔는지 알 수 있다. 선거인단 구성도 인구에 단순히 비례하지 않는다. 인구가 더 적은 네 개 주를 합해도 캘리포니아보다 많은 선거인단을 가질 수 있다. 결국 어느 경합 주에서 승리하느냐,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를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대통령 선거의 실질적인 승부를 결정짓는다. 미국 정치를 이해하려면 이 구조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미국 대선을 접하는 방식은 선거 당일 결과 속보를 보는 것이 전부다. 그 배경에 깔린 지형과 논리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사회적 갈등의 깊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흑백 갈등이나 총기 문제를 뉴스로 접하며 '아직도 저런 일이'라고 혀를 차지만, 그것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는 잘 모른다. 미국에서 총기 소유는 단순한 취미나 문화가 아니다. 그것은 헌법 수정 제2조로 보장된 권리이며, 건국 이래 개인의 자유와 국가 권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철학적 뿌리를 갖고 있다. 총기 규제 논쟁이 진보와 보수 진영 사이에서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는 것은 그 논쟁이 단순히 '총이 위험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가치 충돌이기 때문이다. 흑인과 백인의 갈등도 마찬가지다. 노예제 폐지로 모든 것이 해결됐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적 평등이 사회적 평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수백 년에 걸쳐 누적된 구조적 불평등은 제도 하나로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설문조사에서 흑백 갈등이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 문제' 중 하나로 꼽혔다는 사실은, 그 상처가 얼마나 깊고 복잡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약 문제 역시 그렇다.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망이 18세에서 45세 사이 미국인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상상하는 '강하고 부유한 미국'의 이면에 얼마나 심각한 균열이 있는지를 드러낸다.

지역주의의 문제도 예상보다 훨씬 뿌리가 깊다. 미국 남부 지역을 가리키는 '바이블 벨트'라는 표현은 단순히 종교적 색채를 넘어, 정치·문화적 보수성과 맞닿아 있다. 남부와 북부, 태평양 연안과 내륙 사이의 성향 차이는 지리적 경계보다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북전쟁의 기억, 산업화의 속도 차이, 이민자 구성의 차이가 켜켜이 쌓여 오늘날의 지역 정서를 형성했다. 어떤 의미에서 미국의 지역주의는 한국의 그것보다 훨씬 완고하다. 외교와 패권의 문제에 이르면 미국에 대한 우리의 착각은 더욱 선명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세계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자유와 인권의 보루로 이해한다. 그 이미지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전부도 아니다. 미국의 외교는 역사적으로 실리주의와 이상주의 사이를 오가며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결합해왔다. 19세기 '문호 개방 정책'에도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이권 확보라는 현실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오늘날 미국 우선주의의 부상도 갑작스러운 돌연변이가 아니라, 고립주의라는 오랜 흐름의 재발현이다. 그리고 한국에 관해서도 우리는 착각한다. 한국이 미국에게 특별한 나라라고 믿고 싶어 한다. 동맹이니, 혈맹이니 하는 표현들이 그 믿음을 강화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한국은 스스로의 역량으로 미국에게 무시하기 어려운 존재가 된 것이지, 처음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이 아니다. 이 냉정한 시각 없이는 국제 관계에서 진짜 자국의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다.

문화적으로도 미국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다층적이다. 미식축구와 야구에 열광하는 것은 단순한 스포츠 취향이 아니다.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고, 나아가 미국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문화적 코드이기도 하다. 역동적이고 충돌하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경향, 개인이 집단보다 우선시되는 자유의 문화, 이 모든 것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근본 철학과 연결되어 있다. 결국, 미국을 안다는 착각은 단순한 무지보다 더 위험하다. 무지한 사람은 적어도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착각하는 사람은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미국의 정치가 우리의 경제와 안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더 깊은 이해다. 표면 너머를 들여다보려는 의지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나라이면서 동시에 깊은 내상을 안고 있는 나라다. 지역 간 갈등, 인종 간 불신, 마약과 총기라는 만성적 위기, 그리고 패권 유지에 대한 내부의 회의감. 이것들은 미국의 실패가 아니라 미국의 실체다. 그 실체를 직시할 때, 비로소 우리는 미국을 아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트웨인의 말처럼, 곤경은 무지에서보다 착각에서 더 자주 온다. 미국에 대한 착각을 걷어내는 일,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솔직한 공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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