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덕은 '화가들이 인정한 화가'였다. 동료 화가들 사이에서 그의 색채 감각과 조형적 순수성은 누구도 따라오기 어려운 것으로 통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미술사에서 지워져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월북했고, 이후 행적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남아 있는 작품이 채 열 점도 되지 않는 그의 그림들은, 그러나 한결같이 놀라운 감각으로 빛난다. '하얀 집의 테라스'는 정원 너머 흰 벽의 2층 집이 햇빛을 받고 있는 장면을 담았다. 밝고 섬세한 붓 터치, 오돌토돌한 물감의 질감, 난간 위 작은 화분들의 앙증맞은 존재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빛의 방향을 알려주는 동시에 화면에 풍성한 이미지를 더한다. 단순한 흰 벽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색이 공존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화려하지 않다. 거창한 이념도 없고, 역사적 사건도 담겨 있지 않다. 다만 일상의 한 순간, 빛이 잠깐 머무는 자리를 예민하게 포착했을 뿐이다. 시인 김광균은 그를 '천사가 이 세상을 잠깐 다녀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중섭과 나란히 놓인 그 말은, 최재덕의 예술이 지닌 순수성과 단명(短命)에 대한 아쉬움을 동시에 담고 있다.
전쟁 중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1951년, 광주에서 천경자는 매일 아침 일곱 시에 화실에 들어가 저녁 일곱 시까지 뱀을 그렸다. 여동생의 죽음, 가난, 불화했던 사랑, 그 모든 슬픔을 뱀의 형상 속에 밀어 넣었다. 25일 만에 완성한 그 작품의 이름은 '생태(生態)'였다. 뱀은 보통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다. 그러나 천경자에게 뱀은 삶에 대한 저항이자 구원의 상징이었다. 화면 가득 뒤엉킨 뱀들의 덩어리, 무리에서 빠져나와 기어 나오는 몇 마리의 형상. 초록과 붉은색이 겹치며 만들어내는 색의 생동감. 그것은 단순한 생물의 묘사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꿈틀거리고 살아남으려는 생명의 의지였다. 천경자의 채색화는 전통 동양화의 채색 방식을 계승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표현의 차원을 열었다. 물감을 여러 겹 올리고, 호분을 덮고, 다시 색을 얹어 만들어낸 투명하고 깊은 색층은 보는 이의 시각뿐 아니라 촉각까지 건드린다. 그녀의 그림은 아름다운 것만이 미술이 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거슬렀다. 해방 이후 화단이 채색화를 왜색(倭色)이라 몰아붙이던 시절에도 그녀는 자신의 언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과 그림을 일치시키는 것, 그것이 천경자의 예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