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 일제강점기에서 전쟁까지, 한국 근대미술 대표 화가 40인 40선
박영택 지음 / 심통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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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와 전쟁이라는 가혹한 조건 속에서도 화가들이 붓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은, 예술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새삼 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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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 일제강점기에서 전쟁까지, 한국 근대미술 대표 화가 40인 40선
박영택 지음 / 심통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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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술은 언제나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숨결을 담는다. 붓 한 자루, 먹 한 방울 속에도 시대의 무게가 스며든다. 한국 근대미술이 걸어온 길은 단순한 양식의 변천사가 아니다. 그것은 나라를 잃고, 전쟁을 겪으며, 그럼에도 살아남으려 했던 사람들의 내밀한 기록이다. 1900년대 초 개화의 물결과 함께 서양 미술의 개념이 밀려들어오고, 식민지의 질곡 속에서도 화가들은 붓을 놓지 않았다. 책은 일제 강점기 시대를 살다간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한국 근대미술이 어떠한 맥락 속에서 피어났는지를 상세히 이야기 한다.


1910년 8월, 조선은 일본에 병합되었다. 나라가 사라지는 그 직전의 봄, 신문 한 면에 작은 그림 하나가 실렸다. 이도영이 그린 판소리 장면이었다. 갓 쓰고 두루마기 입은 소리꾼이 부채를 들고 고수의 장단에 맞춰 소리를 내지르는 그 그림은, 한국 최초의 시사만화로 기록되었다. 이도영의 그림이 특별했던 것은 삽화만의 의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뻐꾸기 소리를 '복국(復國)'으로 바꿔 부르는 소리꾼의 절절한 외침이 담겨 있었다. 나라를 되찾으라는 간절한 염원을 판소리 형식에 빌려 표현한 것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민중도 그림과 소리꾼의 몸짓만으로 그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당시 신문에 연재된 시사만화는 계몽의 도구이자 저항의 언어였다. 이도영은 전환국에서 인쇄술을 익히고, 안중식과 조석진에게 전통 화법을 사사받은 인물이었다. 그는 서양의 사실적 묘사 방식을 받아들이면서도 모필의 전통적인 선 감각을 살려, 인물의 동작과 표정을 생생하게 포착해냈다. 오세창이 글을 쓰고 이도영이 그림을 그린 대한민보의 시사만화는, 그림이 단순한 장식이나 기록을 넘어 정치적 발언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후 그는 '미술계의 국보'라 불리며 서화계의 어른으로 자리 잡았으나, 1933년 쉰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너무 이른 작별이었다.


조선의 산수화는 오랫동안 유교적 이상 세계를 그리는 관념의 그림이었다. 사대부 문인들이 추구한 군자의 세계를 자연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왕조가 무너지고 성리학적 세계관이 해체되면서, 그 이념을 담던 그릇도 함께 비어갔다. 그 공백 속에서 이상범은 다른 방향을 찾아나섰다. 이상범이 추구한 것은 관념이 아닌 실경(實景), 즉 눈앞에 실제로 존재하는 우리 산하의 모습이었다. 1930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차지한 그의 작품 '잔추(殘秋)'는 그 탐구의 결정이었다. 늦가을 어느 농촌의 황량한 풍경, 민둥산과 작은 초가집, 드문드문 서 있는 앙상한 나무들. 먹색 하나만으로 그려낸 그 장면은 쓸쓸하지만 거짓이 없었다. 그것은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농촌 현실을 그대로 담아낸 풍경이었다. 이상범은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이후 실경산수의 맥을 근대적 시각으로 이어받은 작가였다. 그는 전통 화법의 근간을 유지하면서도 서구 풍경화의 시선을 결합하여, 한국 산야가 지닌 고유한 정서를 가시화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갈필로 문질러나간 건조한 붓질, 농담을 달리하며 쌓아 올린 먹의 층위, 그 속에서 배어나오는 서늘하고 적막한 정서야말로 이상범이 아니면 그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우리 산야에서 찾아낸 감정은 화사함이 아니라 쓸쓸함이었고, 그 쓸쓸함이 오히려 보는 이의 마음 깊이 닿았다.


정물화는 미술 아카데미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놓인 장르였다. 역사화나 초상화에 비해 이야기도 없고, 인물에 대한 통찰도 없이 그저 사물을 그리는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상봉의 정물화를 마주하면 그 편견이 흔들린다. 1930년에 그려진 그의 작품 '파와 정물'은 식탁 위에 파 한 묶음과 귤 두 개, 토마토 하나가 놓인 단출한 장면이다. 화려하거나 풍성하지 않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 묵직한 존재감이 있다. 파 뿌리의 흰 빛이 눈부시고, 좌측에서 흘러드는 빛이 과일들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물감은 얇고 건조하게 발려 있어 마치 오래된 벽에 스며든 것처럼 화면에 착 달라붙어 있다. 도상봉은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한 아버지의 영향 아래 반일의식을 품고 살았으며, 조선총독부 주관의 조선미술전람회에는 단 한 번도 출품하지 않았다. 그 대신 서화협회전과 동문들과의 그룹전을 통해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정물화가 지닌 고요하고 격조 있는 분위기는 단순한 기법의 성취가 아니라, 시대와 불화하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 한 인간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물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눈길, 꾸밈없는 담백함, 그것이 도상봉 정물화의 진정한 힘이었다.


최재덕은 '화가들이 인정한 화가'였다. 동료 화가들 사이에서 그의 색채 감각과 조형적 순수성은 누구도 따라오기 어려운 것으로 통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미술사에서 지워져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월북했고, 이후 행적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남아 있는 작품이 채 열 점도 되지 않는 그의 그림들은, 그러나 한결같이 놀라운 감각으로 빛난다. '하얀 집의 테라스'는 정원 너머 흰 벽의 2층 집이 햇빛을 받고 있는 장면을 담았다. 밝고 섬세한 붓 터치, 오돌토돌한 물감의 질감, 난간 위 작은 화분들의 앙증맞은 존재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빛의 방향을 알려주는 동시에 화면에 풍성한 이미지를 더한다. 단순한 흰 벽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색이 공존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화려하지 않다. 거창한 이념도 없고, 역사적 사건도 담겨 있지 않다. 다만 일상의 한 순간, 빛이 잠깐 머무는 자리를 예민하게 포착했을 뿐이다. 시인 김광균은 그를 '천사가 이 세상을 잠깐 다녀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중섭과 나란히 놓인 그 말은, 최재덕의 예술이 지닌 순수성과 단명(短命)에 대한 아쉬움을 동시에 담고 있다.

전쟁 중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1951년, 광주에서 천경자는 매일 아침 일곱 시에 화실에 들어가 저녁 일곱 시까지 뱀을 그렸다. 여동생의 죽음, 가난, 불화했던 사랑, 그 모든 슬픔을 뱀의 형상 속에 밀어 넣었다. 25일 만에 완성한 그 작품의 이름은 '생태(生態)'였다. 뱀은 보통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다. 그러나 천경자에게 뱀은 삶에 대한 저항이자 구원의 상징이었다. 화면 가득 뒤엉킨 뱀들의 덩어리, 무리에서 빠져나와 기어 나오는 몇 마리의 형상. 초록과 붉은색이 겹치며 만들어내는 색의 생동감. 그것은 단순한 생물의 묘사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꿈틀거리고 살아남으려는 생명의 의지였다. 천경자의 채색화는 전통 동양화의 채색 방식을 계승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표현의 차원을 열었다. 물감을 여러 겹 올리고, 호분을 덮고, 다시 색을 얹어 만들어낸 투명하고 깊은 색층은 보는 이의 시각뿐 아니라 촉각까지 건드린다. 그녀의 그림은 아름다운 것만이 미술이 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거슬렀다. 해방 이후 화단이 채색화를 왜색(倭色)이라 몰아붙이던 시절에도 그녀는 자신의 언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과 그림을 일치시키는 것, 그것이 천경자의 예술이었다.


일제강점기에서 전쟁에 이르는 시간 동안 한국의 화가들은 극히 다른 방식으로 시대와 마주했다. 이도영은 붓으로 저항의 소리를 냈고, 이상범은 황량한 우리 산야를 진실하게 응시했다. 도상봉은 사물 속에 고요한 품격을 담았고, 최재덕은 일상의 빛을 감각적으로 건져 올렸으며, 천경자는 고통을 생명의 꿈틀거림으로 바꾸어냈다. 이들이 남긴 그림들은 어떤 거창한 선언이나 이념보다 더 깊이 시대를 증언한다. 그림은 설명이 아니라 경험이기 때문이다. 붓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선 하나, 먹이 스민 여백 하나가 그 시절의 공기를 지금 여기까지 전달한다.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가혹한 조건 속에서도 화가들이 붓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은, 예술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새삼 묻게 한다. 그것은 아마도 살아남기 위한, 혹은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가장 절실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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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안다는 착각 - 전 세계를 지배하는 진짜 힘의 실체는 무엇인가
김봉중 지음 / 빅피시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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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곤경에 빠지는 건 무지 때문이 아니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라고.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 나는 그것이 단순한 경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이라는 나라를 조금씩 들여다보면서, 그 말이 얼마나 정확한 경고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미국을 안다고 생각한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CNN 뉴스를 접하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애플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살아간다. 영어를 배우면서 미국식 억양을 흉내 내고, 유학을 꿈꾸거나 실제로 다녀온 사람도 주변에 꽤 있다. 그러니 미국이 낯설 리 없다고 느낀다. 하지만 과연 그 익숙함이 진짜 앎일까? 미국의 역사와 제도, 사회와 문화를 폭넓게 다룬 한 책으로, 그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처럼 보이지만, 그 구조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때로는 직관에 반한다. 우리는 흔히 '더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이긴다'고 생각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각 주에서 1위를 차지한 후보가 그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 전체를 가져가는 '승자 독식' 방식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전국 득표수에서 트럼프를 앞섰지만, 선거인단 수에서 뒤져 패배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미국 민주주의를 얼마나 단순하게 이해해왔는지 알 수 있다. 선거인단 구성도 인구에 단순히 비례하지 않는다. 인구가 더 적은 네 개 주를 합해도 캘리포니아보다 많은 선거인단을 가질 수 있다. 결국 어느 경합 주에서 승리하느냐,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를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대통령 선거의 실질적인 승부를 결정짓는다. 미국 정치를 이해하려면 이 구조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미국 대선을 접하는 방식은 선거 당일 결과 속보를 보는 것이 전부다. 그 배경에 깔린 지형과 논리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사회적 갈등의 깊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흑백 갈등이나 총기 문제를 뉴스로 접하며 '아직도 저런 일이'라고 혀를 차지만, 그것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는 잘 모른다. 미국에서 총기 소유는 단순한 취미나 문화가 아니다. 그것은 헌법 수정 제2조로 보장된 권리이며, 건국 이래 개인의 자유와 국가 권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철학적 뿌리를 갖고 있다. 총기 규제 논쟁이 진보와 보수 진영 사이에서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는 것은 그 논쟁이 단순히 '총이 위험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가치 충돌이기 때문이다. 흑인과 백인의 갈등도 마찬가지다. 노예제 폐지로 모든 것이 해결됐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적 평등이 사회적 평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수백 년에 걸쳐 누적된 구조적 불평등은 제도 하나로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설문조사에서 흑백 갈등이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 문제' 중 하나로 꼽혔다는 사실은, 그 상처가 얼마나 깊고 복잡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약 문제 역시 그렇다.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망이 18세에서 45세 사이 미국인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상상하는 '강하고 부유한 미국'의 이면에 얼마나 심각한 균열이 있는지를 드러낸다.

지역주의의 문제도 예상보다 훨씬 뿌리가 깊다. 미국 남부 지역을 가리키는 '바이블 벨트'라는 표현은 단순히 종교적 색채를 넘어, 정치·문화적 보수성과 맞닿아 있다. 남부와 북부, 태평양 연안과 내륙 사이의 성향 차이는 지리적 경계보다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북전쟁의 기억, 산업화의 속도 차이, 이민자 구성의 차이가 켜켜이 쌓여 오늘날의 지역 정서를 형성했다. 어떤 의미에서 미국의 지역주의는 한국의 그것보다 훨씬 완고하다. 외교와 패권의 문제에 이르면 미국에 대한 우리의 착각은 더욱 선명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세계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자유와 인권의 보루로 이해한다. 그 이미지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전부도 아니다. 미국의 외교는 역사적으로 실리주의와 이상주의 사이를 오가며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결합해왔다. 19세기 '문호 개방 정책'에도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이권 확보라는 현실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오늘날 미국 우선주의의 부상도 갑작스러운 돌연변이가 아니라, 고립주의라는 오랜 흐름의 재발현이다. 그리고 한국에 관해서도 우리는 착각한다. 한국이 미국에게 특별한 나라라고 믿고 싶어 한다. 동맹이니, 혈맹이니 하는 표현들이 그 믿음을 강화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한국은 스스로의 역량으로 미국에게 무시하기 어려운 존재가 된 것이지, 처음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이 아니다. 이 냉정한 시각 없이는 국제 관계에서 진짜 자국의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다.

문화적으로도 미국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다층적이다. 미식축구와 야구에 열광하는 것은 단순한 스포츠 취향이 아니다.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고, 나아가 미국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문화적 코드이기도 하다. 역동적이고 충돌하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경향, 개인이 집단보다 우선시되는 자유의 문화, 이 모든 것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근본 철학과 연결되어 있다. 결국, 미국을 안다는 착각은 단순한 무지보다 더 위험하다. 무지한 사람은 적어도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착각하는 사람은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미국의 정치가 우리의 경제와 안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더 깊은 이해다. 표면 너머를 들여다보려는 의지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나라이면서 동시에 깊은 내상을 안고 있는 나라다. 지역 간 갈등, 인종 간 불신, 마약과 총기라는 만성적 위기, 그리고 패권 유지에 대한 내부의 회의감. 이것들은 미국의 실패가 아니라 미국의 실체다. 그 실체를 직시할 때, 비로소 우리는 미국을 아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트웨인의 말처럼, 곤경은 무지에서보다 착각에서 더 자주 온다. 미국에 대한 착각을 걷어내는 일,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솔직한 공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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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1억 습관 - 저축부터 주식·ETF·ISA·금테크까지 쌈짓돈도 1억으로 불리는 부자 루틴
김나연(요니나)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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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어느 월급날 아침이었다. 분명 월급은 들어왔는데, 통장을 열어보니 지난달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잔액이 나를 맞이했다. 돈이 어디로 갔는지 추적해보려 했지만, 딱히 낭비했다는 기억도 없었다. 밥을 먹었고, 커피를 마셨고, 가끔 옷을 샀고,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 특별한 지출 없이도 돈은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문제는 내가 얼마를 버느냐가 아니라, 돈이 내 손을 거쳐 어디로 흘러가는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이때 책을 접했다. 1억이라는 숫자는 솔직히 처음에는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책의 제목에는 '최소한'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었다. 화려한 투자 기법을 다루는 책이 아니라, 아주 기본적인 출발선을 제안하는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인상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공감한 것은 소비를 바라보는 태도의 문제였다. 나는 그동안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고, 스스로도 다짐해왔다. 그러나 결심은 번번이 흐지부지됐다. 왜였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소비를 억제해야 할 적으로만 바라봤지, 소비의 구조 자체를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어디에 쓰는 돈이 나에게 실질적인 만족을 주고, 어디에 쓰는 돈이 그저 습관적으로 빠져나가는지를 구분하지 않은 채, 그냥 막연하게 덜 써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소비를 기록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체감했다. 기록은 절약을 강제하는 도구가 아니라, 내 소비의 민낯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거울을 봐야 무엇을 고쳐야 할지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와닿은 것은 통장 쪼개기라는 개념이었다. 월급통장 하나에 모든 돈을 몰아넣고 쓰다 보면, 남은 돈이 곧 쓸 수 있는 돈처럼 느껴진다. 목적에 따라 통장을 나누는 것은 단순해 보이지만, 돈의 흐름을 의식적으로 설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생활비, 저축, 투자, 비상금을 각기 다른 공간에 배치해두면, 돈이 막연하게 사라지지 않고 내가 설계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한 번 구조를 만들어두면 이후에는 거의 자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핵심이다. 돈 관리를 매번 의지력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재테크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투자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ETF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왜 ETF가 좋은 출발점인지를 설명하는 방식이 현실적이었다. 주식 투자를 해야 한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막상 종목을 고르려 하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SNS에서 누군가 추천하는 종목을 따라 샀다가 손해를 봤다는 이야기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ETF는 그 두려움을 낮춰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특정 기업 하나에 모든 것을 거는 대신, 시장 전체의 흐름에 올라타는 방식은 초보자가 시장에 적응하면서 감각을 키우기에 적합하다. 물론 ETF도 손실이 날 수 있다. 하지만 공부 없이 단타를 반복하다 계좌가 녹아버리는 것과, 꾸준히 적립식으로 시장에 참여하며 경험을 쌓는 것은 전혀 다른 출발이다. 연금 관련 내용도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真 真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다. IRP와 연금저축펀드는 세액공제라는 혜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노후는 아직 먼 이야기라며 미루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책에서 지적하듯, 연금은 일찍 시작할수록 복리의 효과를 더 오래 누릴 수 있다. 지금 당장 큰 금액을 넣지 않더라도, 계좌를 개설하고 소액이라도 꾸준히 납입하는 습관 자체가 중요하다. 노후 준비를 미래의 나에게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부터 책임지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결국 하나다. 재테크는 특별한 기술이나 남다른 정보력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 가능한 작은 행동들을 얼마나 오래, 흔들리지 않고 이어가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거창한 결심보다 작고 단단한 루틴이 결국 자산의 차이를 만든다. 1억이라는 숫자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매달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는 저축금이 쌓이고, 시장이 흔들려도 팔지 않는 인내가 쌓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에도 구조가 대신 작동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나만의 최소한의 1억 습관을 정의하자면, 나는 세 가지를 중심에 두고 싶다. 첫째, 매달 첫 번째 월급날 자동이체를 통해 저축과 투자를 먼저 분리하는 것이다. 남은 돈으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저축과 투자를 먼저 하고 남은 돈으로 생활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 이것이 가장 기본이면서도 가장 지키기 어려운 습관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자동화라는 장치를 활용하면, 의지력 없이도 구조가 작동한다. 둘째, 소비를 기록하되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기록의 목적은 자책이 아니라 파악이다. 어디에 돈을 쓰는지 알아야 어디를 조정할 수 있는지 보인다. 처음에는 모든 지출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것이 부담스럽겠지만, 한 달만 해봐도 스스로의 소비 패턴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 패턴이 보이는 순간,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셋째, 시장이 흔들릴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투자를 시작한 초보자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하락장에서 겁에 질려 팔아버리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는 시장에 꾸준히 올라타는 전략은 화려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가장 강력한 전략임이 증명된다. 이를 위해서는 단기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심리적 훈련이 필요하다.

1억이라는 숫자에 집착하기보다, 그 숫자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습관에 더 집중하고 싶다. 돈이 모이는 구조를 갖춘 사람은 1억 이후에도 계속 자산을 키워나갈 수 있지만, 구조 없이 운 좋게 1억을 손에 쥔 사람은 그것을 지키기 어렵다. 결국 재테크의 진짜 목표는 어떤 숫자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돈에 끌려다니지 않는 삶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 구조의 시작이 바로 최소한의 1억 습관이라고, 나는 지금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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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부터 시작하는 월 300 연금 만들기
황호봉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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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간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늘 '다음 달 월급'을 기다리며 산다. 월급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일상의 리듬이고, 생활의 버팀목이며, 미래를 향한 막연한 안도감의 근거다. 그런데 그 월급이 어느 날 갑자기 끊긴다면 어떨까? 퇴직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사건이지만, 준비된 퇴직과 그렇지 않은 퇴직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100세 시대를 넘어 150세까지 내다보는 요즘, 직장인이 현업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30년이다. 반면 은퇴 이후 살아가야 할 시간은 그보다 훨씬 길 수 있다. 이 불균형한 방정식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막연한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주거 문제와 함께 노후 자금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시기에 이 책을 만났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이게 된 대목은 연금 투자의 출발점에 관한 이야기였다. 많은 사람이 투자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은 '어떤 자산을 사야 하나?'다. S&P500인지, 배당주인지, 채권인지를 따지며 자산의 종류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저자는 같은 자산을 사더라도 어떤 계좌에서 사느냐가 은퇴 후 삶의 질을 결정한다고 강조한다. 연금저축, IRP, ISA — 이 세 가지 절세 계좌는 각각의 역할과 세제 혜택이 다르다. 연금저축은 세액공제 혜택이 크고 부분 인출이 가능한 유연한 그릇이다. IRP는 퇴직금을 안전하게 보관하면서도 운용 전략을 직접 설계할 수 있는 도구다. ISA는 연금에 바로 넣기엔 부담스러운 자금을 잠시 담아두다가, 만기 후 연금계좌로 이전하면 추가 세액공제까지 받을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책이 제시하는 납입 순서는 명쾌하다. 세제 혜택이 가장 큰 연금저축부터 채우고, IRP를 보완하고, ISA로 여유 자금을 운용하는 방식이다. 이 순서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같은 돈을 넣고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제도를 이해하는 것이 곧 수익률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이 책은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일깨워준다.

투자 철학에 있어서 저자는 일관된 입장을 유지한다. 연금은 단기 수익률 게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정 테마 ETF나 급등주를 쫓는 방식은 연금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 연금 운용의 목표는 낮은 변동성으로 꾸준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쌓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포트폴리오 구성도 자산군별, 지역별, 섹터별로 분산하는 방식을 권한다. 책이 제시하는 자산의 네 가지 역할 (성장, 현금흐름의 복원, 변동성 완화, 기회의 포착)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와닿은 것은 '현금흐름의 복원'이다. 은퇴 이후 매달 일정한 돈이 들어오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 안정을 넘어 심리적 안정감으로 이어진다. 월급이 없어도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삶, 그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자산 운용에 있어 저자는 미국 시장을 중심에 두는 전략을 권유한다. 장기적으로 우상향의 흐름이 명확하고, 자산 가치 상승의 방향성이 검증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 코스피 시장에 대해서는 단순한 장기 보유보다는 이벤트성 대응이 적합하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개인적으로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이 부분에서는 글쓴이의 관점에 공감하며 읽었다.

책에서 소개하는 자금 구분 체계도 인상적이다. 12개월에서 24개월 치 생활비를 현금과 단기채로 관리하는 '필수생활자금', 채권과 우선주 중심의 '유지생활자금', 그리고 7년 이상 길게 보유할 '미래생활자금'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이 구조는 단순히 돈을 쪼개는 것이 아니라, 각 자금에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완충지대를 만드는 논리다. 급전이 필요하거나 시장이 폭락했을 때, 미래생활자금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는 구조를 먼저 갖춰야 한다. 그래야만 장기 투자의 원칙을 지킬 수 있다.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손이 근질거리는 마음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구조화된 자금 체계는 그 충동을 막아주는 방어막이 된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각자의 상황에 맞는 연금 포트폴리오를 제시한다. 퇴직금 없이 집만 있는 경우, 집도 퇴직금도 있지만 운용 방법을 모르는 경우, 자영업자처럼 제도 바깥에 있던 경우까지 현실적인 상황에 맞춘 설계를 보여준다. 특히 목돈을 일반 계좌에서 고배당 상품에 투자했다가 금융소득종합과세와 건강보험료 폭탄을 맞는 시나리오는 절세 전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책의 제목이 '50부터 시작하는'인 데는 이유가 있다. 완벽한 준비를 기다리다 보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다. 30대에 시작하면 더 좋겠지만, 50이라도 늦지 않았다. 아니, 50이 되어서야 비로소 노후의 무게를 실감하고 진지하게 움직이게 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이 책은 그들을 위한 현실적인 안내서다. 책의 총평으로 별 3.5개를 부여했지만, 실제로 이 책이 전달하는 가치는 숫자보다 크다. 연금저축, IRP, ISA라는 세 가지 계좌의 구조와 활용법, 분산 포트폴리오의 원칙, 자금의 역할별 구분 — 이 모든 내용이 기초부터 차근차근 설명되어 있어 처음 연금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실질적인 출발점이 된다. 결국 노후 준비는 거창한 투자 철학이나 탁월한 종목 선택 능력보다, 올바른 구조를 먼저 갖추는 데서 시작한다. 어느 그릇에 담느냐, 어떤 순서로 채우느냐, 얼마만큼의 완충지대를 확보해두느냐, 이 기본기를 단단히 다지는 것이 월급이 끊긴 이후의 삶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 책은 그 기본기를 알려주는 조용하고 성실한 길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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