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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안다는 착각 - 전 세계를 지배하는 진짜 힘의 실체는 무엇인가
김봉중 지음 / 빅피시 / 2024년 10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곤경에 빠지는 건 무지 때문이 아니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라고.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 나는 그것이 단순한 경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이라는 나라를 조금씩 들여다보면서, 그 말이 얼마나 정확한 경고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미국을 안다고 생각한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CNN 뉴스를 접하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애플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살아간다. 영어를 배우면서 미국식 억양을 흉내 내고, 유학을 꿈꾸거나 실제로 다녀온 사람도 주변에 꽤 있다. 그러니 미국이 낯설 리 없다고 느낀다. 하지만 과연 그 익숙함이 진짜 앎일까? 미국의 역사와 제도, 사회와 문화를 폭넓게 다룬 한 책으로, 그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처럼 보이지만, 그 구조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때로는 직관에 반한다. 우리는 흔히 '더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이긴다'고 생각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각 주에서 1위를 차지한 후보가 그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 전체를 가져가는 '승자 독식' 방식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전국 득표수에서 트럼프를 앞섰지만, 선거인단 수에서 뒤져 패배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미국 민주주의를 얼마나 단순하게 이해해왔는지 알 수 있다. 선거인단 구성도 인구에 단순히 비례하지 않는다. 인구가 더 적은 네 개 주를 합해도 캘리포니아보다 많은 선거인단을 가질 수 있다. 결국 어느 경합 주에서 승리하느냐,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를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대통령 선거의 실질적인 승부를 결정짓는다. 미국 정치를 이해하려면 이 구조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미국 대선을 접하는 방식은 선거 당일 결과 속보를 보는 것이 전부다. 그 배경에 깔린 지형과 논리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사회적 갈등의 깊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흑백 갈등이나 총기 문제를 뉴스로 접하며 '아직도 저런 일이'라고 혀를 차지만, 그것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는 잘 모른다. 미국에서 총기 소유는 단순한 취미나 문화가 아니다. 그것은 헌법 수정 제2조로 보장된 권리이며, 건국 이래 개인의 자유와 국가 권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철학적 뿌리를 갖고 있다. 총기 규제 논쟁이 진보와 보수 진영 사이에서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는 것은 그 논쟁이 단순히 '총이 위험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가치 충돌이기 때문이다. 흑인과 백인의 갈등도 마찬가지다. 노예제 폐지로 모든 것이 해결됐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적 평등이 사회적 평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수백 년에 걸쳐 누적된 구조적 불평등은 제도 하나로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설문조사에서 흑백 갈등이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 문제' 중 하나로 꼽혔다는 사실은, 그 상처가 얼마나 깊고 복잡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약 문제 역시 그렇다.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망이 18세에서 45세 사이 미국인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상상하는 '강하고 부유한 미국'의 이면에 얼마나 심각한 균열이 있는지를 드러낸다.
지역주의의 문제도 예상보다 훨씬 뿌리가 깊다. 미국 남부 지역을 가리키는 '바이블 벨트'라는 표현은 단순히 종교적 색채를 넘어, 정치·문화적 보수성과 맞닿아 있다. 남부와 북부, 태평양 연안과 내륙 사이의 성향 차이는 지리적 경계보다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북전쟁의 기억, 산업화의 속도 차이, 이민자 구성의 차이가 켜켜이 쌓여 오늘날의 지역 정서를 형성했다. 어떤 의미에서 미국의 지역주의는 한국의 그것보다 훨씬 완고하다. 외교와 패권의 문제에 이르면 미국에 대한 우리의 착각은 더욱 선명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세계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자유와 인권의 보루로 이해한다. 그 이미지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전부도 아니다. 미국의 외교는 역사적으로 실리주의와 이상주의 사이를 오가며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결합해왔다. 19세기 '문호 개방 정책'에도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이권 확보라는 현실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오늘날 미국 우선주의의 부상도 갑작스러운 돌연변이가 아니라, 고립주의라는 오랜 흐름의 재발현이다. 그리고 한국에 관해서도 우리는 착각한다. 한국이 미국에게 특별한 나라라고 믿고 싶어 한다. 동맹이니, 혈맹이니 하는 표현들이 그 믿음을 강화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한국은 스스로의 역량으로 미국에게 무시하기 어려운 존재가 된 것이지, 처음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이 아니다. 이 냉정한 시각 없이는 국제 관계에서 진짜 자국의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다.
문화적으로도 미국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다층적이다. 미식축구와 야구에 열광하는 것은 단순한 스포츠 취향이 아니다.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고, 나아가 미국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문화적 코드이기도 하다. 역동적이고 충돌하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경향, 개인이 집단보다 우선시되는 자유의 문화, 이 모든 것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근본 철학과 연결되어 있다. 결국, 미국을 안다는 착각은 단순한 무지보다 더 위험하다. 무지한 사람은 적어도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착각하는 사람은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미국의 정치가 우리의 경제와 안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더 깊은 이해다. 표면 너머를 들여다보려는 의지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나라이면서 동시에 깊은 내상을 안고 있는 나라다. 지역 간 갈등, 인종 간 불신, 마약과 총기라는 만성적 위기, 그리고 패권 유지에 대한 내부의 회의감. 이것들은 미국의 실패가 아니라 미국의 실체다. 그 실체를 직시할 때, 비로소 우리는 미국을 아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트웨인의 말처럼, 곤경은 무지에서보다 착각에서 더 자주 온다. 미국에 대한 착각을 걷어내는 일,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솔직한 공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