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따뜻한 실용주의 - 이념을 넘어 국민의 삶을 중심에
김태철.황산 지음 / 해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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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과 갈등으로 지친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실용주의적 접근은 분명히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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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따뜻한 실용주의 - 이념을 넘어 국민의 삶을 중심에
김태철.황산 지음 / 해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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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술관에서 한 점의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이 있다. 멀리서 보면 흐릿한 색채의 조합으로만 보이던 것이, 가까이 다가가면 세밀한 붓터치와 의도된 구성이 드러난다. 정치 또한 그와 같지 않을까. 거대한 담론과 선명한 구호로 포장된 표면 아래, 실제로는 무수한 개별적 삶들이 촘촘히 엮여 있는 복합적 현실이 존재한다.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대통령의 실용주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새 정부의 실용주의적 접근법은, 바로 이런 관점의 전환을 요구한다. 정치를 거대한 서사나 이념적 대결의 무대가 아닌, 구체적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실리만을 추구하는 냉혹한 계산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실용주의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에서 출발한다. 실용주의를 기회주의나 편의주의로 오해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진정한 실용주의는 "무엇이 효과적인가"보다 "누구를 위한 효과인가"를 먼저 묻는다. 이는 철학자 존 듀이가 강조했던 민주주의적 실용주의의 핵심이기도 하다. 정책의 성패는 그것이 얼마나 이론적으로 완벽한가가 아니라, 실제 시민들의 삶에 얼마나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는가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표방하는 실용주의 정치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항상 "이것이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가"를 기준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론적 순수성보다는 실천적 효용성을, 완벽한 체계보다는 점진적 개선을 추구하는 접근법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갈등 지수가 OECD 최상위권이라는 진단은 충격적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진보와 보수, 세대 간, 계층 간 대립이 첨예화되면서 건설적 대화는 실종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용주의적 접근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그것은 이념적 순수성을 고집하기보다는 공통의 이익과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을 중시한다. 물론 이런 접근이 항상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원칙 없는 타협으로 비판받을 수도 있고, 명확한 가치 기준의 부재로 인한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열과 갈등으로 지친 사회에서 실용주의는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찾아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실용주의 정치의 핵심은 현장성에 있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 정책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가 관건이다. 여론조사나 통계 자료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경험과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새 정부의 리더십이 강조하는 "밑바닥 경험"의 중요성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가난과 차별을 몸소 체험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다른 감수성을 갖게 된다. 그것은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꾸어 놓는다. 어떤 정책이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여도, 실제 현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정치학에서는 효율성과 형평성이 상충하는 가치로 여겨져 왔다. 효율성을 추구하면 불평등이 심화되고, 형평성을 중시하면 경제적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용주의적 접근에서는 이 두 가치가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이나 지역화폐와 같은 정책은 단순히 복지의 확대가 아니라 경제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소비 여력이 부족한 계층에게 구매력을 제공함으로써 내수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이것이 다시 전체 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형평성 추구는 장기적 효율성 증대의 전제 조건이 된다. 실용주의 정치가 성공하려면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수적이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시민들이 그것을 이해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실효성을 거둘 수 없다. 따라서 실용주의는 본질적으로 참여민주주의적 성격을 갖는다. 국무회의 공개나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 확대 같은 조치들은 홍보 전략만이 아니라, 시민들을 정치 과정의 주체로 만들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시민들이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확인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실용주의 정치가 가능해진다.

실용주의 정치의 진가는 지방 단위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거대한 정책 담론으로 포장되던 것들이, 지방에서는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생활 문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시민들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지방정부야말로 실용주의적 접근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지방정부가 실용주의를 실천한다는 것은 지역 주민들의 실제 needs에 기반한 정책을 만들고, 그 효과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개선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중앙정부의 획일적 정책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특성과 여건에 맞는 창의적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실용주의 정치에서 소통은 홍보나 설득의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정책의 효과성을 높이는 핵심적 요소다. 정부와 시민 사이의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질 때, 정책은 더욱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향으로 설계될 수 있다. 언론의 역할도 이런 맥락에서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언론은 정부와 시민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단순히 정부 정책을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것을 넘어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고 정부의 정책 의도를 시민들에게 명확히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실용주의적 접근에서 경제는 단순히 성장률이나 GDP로 측정되는 추상적 지표가 아니다. 그것은 실제 사람들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구체적 현실이다. 따라서 경제정책 또한 숫자상의 성과보다는 실질적 체감도를 우선시해야 한다. 지역경제 활성화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대규모 투자 유치나 거대 프로젝트보다는 지역 주민들의 일상적 경제활동을 지원하고, 지역 내 경제 순환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 더욱 실용적일 수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욱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실용주의 정치가 성공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정치 지도자들의 진정성이다. 실용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정치적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시민들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둘째, 시민들의 성숙한 정치 의식이다. 단기적 이익에만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을 평가하는 시민 의식이 필요하다. 셋째, 제도적 뒷받침이다. 실용주의적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그에 맞는 행정 시스템과 법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넷째, 지속성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모든 정책이 뒤바뀌는 것이 아니라, 검증된 좋은 정책은 계승될 수 있는 정치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실용주의 정치는 만능 해결책이 아니다. 그것도 하나의 접근 방식일 뿐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다른 접근법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열과 갈등으로 지친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실용주의적 접근은 분명히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용주의를 단순한 정치적 전략으로 소비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사회 전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학계, 언론 등 모든 주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치는 예술과 같다. 완벽한 작품은 없지만, 끊임없이 더 나은 작품을 추구하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다. 실용주의 정치 또한 완성된 모델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발전해 나가야 할 실험이다. 그 실험의 성공 여부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 새정부에 보달 밝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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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묻고 마음이 답하다
서은희 지음 / 이비락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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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몸과 마음을 분리된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머리로는 생각하고, 가슴으로는 감정을 느끼고, 몸으로는 그저 일상을 수행할 뿐이라고.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몸이 보내는 신호들이 물리적 반응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다. 근육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마음이 그 언어를 번역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운동이라는 행위는 표면적으로는 건강을 위한 선택처럼 보인다. 체중을 줄이고, 근육을 키우고, 체력을 기르는 것.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바벨을 들어 올리는 순간, 플랭크 자세를 유지하는 시간, 런닝머신 위에서 숨을 고르는 찰나. 이 모든 순간들이 몸과 마음 사이의 은밀한 대화로 가득하다. 이번에 읽은 서은희님의 <몸이 묻고 마음이 답하다>를 읽으면서 운동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 본다. 신성한 접근 방법으로 생각하는 운동에 대해서 저자의 경험을 공유해 본다. ^.^

처음에는 몸이 저항한다. 익숙하지 않은 움직임에 경직되고, 무거운 중량에 떨리고, 반복되는 동작에 지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몸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깊게 스쿼트를 할 수 있게 되고, 한 개 더 푸시업을 해낼 수 있게 된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몸이 우리에게 묻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사회가 제시하는 몸에 대한 기준은 잔혹할 정도로 명확하다. 어디는 들어가야 하고, 어디는 나와야 하고, 어떤 선은 살아있어야 하고, 어떤 부분은 매끄러워야 한다. 우리는 이런 외부의 시선으로 자신의 몸을 재단하며 살아왔다. 거울을 볼 때마다 부족한 것들만 보이고, 사진을 찍을 때마다 각도를 고민하고, 옷을 고를 때마다 감추고 싶은 부분을 생각한다. 하지만 운동을 하면서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허벅지가 굵다고 생각했던 다리가 사실은 강인한 힘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뒤로 젖혀지지 않는 어깨가 실은 일상의 모든 짐을 견뎌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배에 쌓인 살들도 내 몸을 보호하는 따뜻한 담요였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운동하는 시간 동안 우리는 몸의 진짜 모습과 마주한다. 사회적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졌는지,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지, 나 자신과 얼마나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 이런 내적 기준들이 하나씩 자리 잡으면서 외적 자신감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운동을 하다 보면 몸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금 이 무게가 적당한가?", "이 자세가 올바른가?",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쉬어야 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이런 질문들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 그저 정해진 루틴을 따라가고, 트레이너가 시키는 대로 하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 하기 바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몸의 언어를 해석하는 능력이 생긴다. 왼쪽 무릎의 미묘한 불편함을 감지하고, 어깨의 긴장을 풀어주고, 호흡의 리듬을 조절하는 법을 배운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몸과 친해진다. 마치 오랜 친구와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소통하게 된다. 몸이 던지는 질문에 귀 기울이는 것은 단순히 운동 효과를 높이는 것을 넘어선다.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자신의 감각과 직감을 믿게 만든다.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머리로만 판단하지 않고 몸의 반응도 살피게 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깨가 올라가는 것을 느끼고, 기쁠 때 가슴이 열리는 것을 감지한다. 몸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몸이 질문을 던지면 마음이 답한다. 때로는 용기를 내서 "한 번 더 해보자"고 대답하고, 때로는 지혜롭게 "오늘은 여기서 멈추자"고 말한다. 이런 대화가 반복되면서 우리는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 포기하고 싶어 하는지, 어떤 순간에 더 도전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이 나를 동기부여 시키고 무엇이 나를 좌절시키는지 알게된다. 운동하는 시간은 온전히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외부의 소음이 차단되고, 타인의 시선이 사라지고, 오직 나와 내 몸만 남는다. 이 고요한 공간에서 마음은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꺼낸다. 억눌렀던 감정들, 미루어왔던 생각들, 외면해왔던 꿈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날은 운동하면서 눈물이 나기도 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마음 깊은 곳에 쌓였던 것들이 몸의 움직임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 같다. 어떤 날은 운동 후에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평소에 해결되지 않던 문제들의 실마리가 보인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마음도 함께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삶에서 잠시 멈춰 서서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것. 운동이 주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충만함'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나 변화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경험이다. 데드리프트를 할 때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연결된 에너지의 흐름을 느끼는 순간, 요가 자세를 취할 때 호흡과 움직임이 하나가 되는 찰나, 달리기를 할 때 바람과 함께 흘러가는 시간. 이런 순간들은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이 끼어들 틈이 없다. 오직 현재만이 존재하는 순수한 시공간이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일상에서도 충만함을 느끼는 능력이 생긴다. 커피를 마실 때 향과 온도를 더 섬세하게 느끼고, 걸을 때 발과 땅의 접촉을 의식하고, 대화할 때 상대방의 표정과 목소리에 더 집중하게 된다. 운동을 통해 깨어난 감각들이 삶 전체를 더욱 생생하게 만드는 것이다. 운동은 몸과 마음이 만나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분리되어 있던 것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소외되어 있던 감각들을 되살리고, 잊고 있던 자신의 진짜 모습과 재회하게 하는 시간. 몸이 묻고 마음이 답하는 이 대화를 통해 우리는 조금씩 온전한 자신에게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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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 - 바스티유의 포성에서 나폴레옹까지 북캠퍼스 지식 포디움 시리즈 5
한스울리히 타머 지음, 나종석 옮김 / 북캠퍼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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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스울리히 타머의 <프랑스 혁명>을 읽으며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요새가 무너지던 그날은 단순히 한 건물이 파괴된 날이 아니었다. 그것은 중세적 질서가 종언을 고하고 근대적 시민사회가 탄생하는 분수령이었다. 프랑스 혁명은 한 국가의 정치 체제 변화를 넘어서 인류 역사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사상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자유와 평등을 향한 인간의 열망에 영감을 주는 원형이 되고 있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는 앙시앵 레짐(구체제) 하에서 깊은 모순에 빠져 있었다. 절대왕정의 화려한 외양 뒤에는 재정 파탄과 사회적 불평등이 자리 잡고 있었고, 계몽사상의 확산으로 인해 기존 권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다. 이러한 구조적 위기 속에서 혁명은 필연적으로 발생했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이상을 새롭게 정의했다.

프랑스 혁명의 발생 배경을 살펴보면, 이것이 결코 우발적 사건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는 다층적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인구 증가와 경제 성장이 동반하지 못하면서 일자리 부족 현상이 심화되었고, 연이은 흉작으로 인한 곡물가 상승은 도시 민중의 생계를 위협했다. 특히 파리 시민들에게 빵은 생존의 문제였다. 임금은 정체되어 있는 반면 물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서민층의 삶은 더욱 궁핍해졌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은 사회 구조의 모순과 결합하면서 폭발력을 갖게 되었다. 신분제 사회에서 특권을 누리는 성직자와 귀족들은 세금 부담에서 면제되는 반면, 실질적으로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제3신분은 과중한 세금을 부담해야 했다. 이러한 불공정한 구조는 경제적 합리성과도 배치되었고, 새롭게 부상하는 부르주아 계층의 정치적 참여 욕구와도 충돌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계몽사상의 확산이었다. 볼테르, 루소, 몽테스키외 등의 사상가들이 제시한 자연권, 사회계약론, 권력분립 등의 개념은 기존 절대왕정의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의문시했다. 이러한 사상적 토대 위에서 민중은 자신들의 권리를 각성하게 되었고, 정치적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은 단순히 경제적 불만의 폭발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의식에 기반한 체계적인 사회 변혁 운동이었다.

혁명의 진행 과정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1789년 국민의회 구성과 테니스 코트 서약은 국민주권 원리의 선언이었고,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근대적 인권 개념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시기에 확립된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 질서의 설계도였다. 그러나 혁명의 실제 전개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입헌군주제를 통한 점진적 개혁을 추구했던 초기 혁명가들의 기대와 달리, 혁명은 점차 급진화되었다. 바렌 사건으로 왕실과 혁명 세력 간의 화해 가능성이 소멸되었고, 이후 공화정 수립과 함께 정치적 갈등은 더욱 첨예해졌다. 특히 주목할 점은 혁명 과정에서 나타난 다양한 정치 세력 간의 경쟁과 갈등이다. 지롱드파와 산악파의 대립, 자코뱅파와 상퀼로트의 연대와 갈등은 혁명이 단일한 의지로 진행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각 세력은 나름의 혁명 이념과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이들 간의 경쟁은 혁명을 더욱 역동적이면서도 복잡하게 만들었다. 로베스피에르로 대표되는 공안위원회 시기의 공포정치는 혁명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혁명을 방어한다는 명분 하에 자행된 대규모 처형과 억압은 혁명의 본래 이상과 모순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시기는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려는 가장 급진적인 시도이기도 했다. 이러한 양면성은 민주주의와 자유가 얼마나 섬세한 균형 위에서 성립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프랑스 혁명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이것이 정치 혁명인 동시에 '매체 혁명'이었다는 점이다. 혁명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은 혁신적이었다. 검열이 완화되면서 신문과 팸플릿이 급속히 증가했고, 이를 통해 정치 담론이 대중화되었다. 마라의 『인민의 친구』, 에베르의 『뒤셴 신부』 등은 단순한 뉴스 전달을 넘어서 정치적 여론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러한 언론의 발달은 정치 참여의 민주화를 가져왔다. 과거에는 왕실과 귀족층에 국한되었던 정치가 이제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 관심사가 되었다. 카페와 클럽에서의 토론, 거리에서의 연설, 인쇄물을 통한 의견 교환은 새로운 정치 문화를 창조했다. 이는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과 여론의 중요성을 예고하는 역사적 선례였다. 혁명 과정에서 창조된 새로운 상징과 의례도 주목할 만하다. 삼색기, 마르세예즈, 혁명력 등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서 새로운 정치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이러한 문화적 혁신은 혁명의 이념을 대중에게 전파하고 정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은 완전한 성공작이 아니었다. 자유와 평등의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여러 한계를 드러냈다. 여성의 정치 참여는 여전히 제한적이었고, 노예제 폐지 문제에서도 일관성을 보이지 못했다. 또한 종교적 관용을 주창하면서도 가톨릭 교회에 대한 탄압을 자행하는 모순을 보였다. 무엇보다 혁명이 추구했던 민주주의적 이상은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인해 중단되었다. 이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으며, 위기 상황에서 권위주의적 유혹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폴레옹 체제는 혁명의 일부 성과를 계승하면서도 민주적 참여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혁명이 남긴 유산은 결코 소멸하지 않았다. 혁명이 확립한 국민주권, 법 앞의 평등, 개인의 자유 등의 원칙은 이후 전 세계 민주화 운동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다. 19세기 유럽의 자유주의 운동, 20세기의 탈식민지화 과정, 그리고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민주주의 확산 과정에서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은 미완성된 기획이다. 그것이 추구했던 자유, 평등, 박애의 이상은 완전히 실현되지 못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달성해야 할 목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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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래 - 거대한 변곡점, 마지막 부의 기회를 잡아라
박석중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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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에 서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시작된 새로운 세계 질서 재편은 정권 교체를 넘어선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동시에 한국은 내부적으로 가계부채 급증, 내수 침체, 기업 경쟁력 약화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내외적 도전은 위기이자 동시에 마지막 기회의 창을 열어주고 있다. 세계사를 돌아보면 패권국의 변화는 항상 주변국들에게 근본적인 선택을 강요해왔다. 19세기 말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패권 이동, 20세기 중반 브레튼우즈 체제의 확립, 1980년대 플라자 합의, 그리고 2000년대 중국의 세계 경제 편입까지, 대략 30년을 주기로 반복되어온 이러한 구조적 변화 앞에서 각국은 새로운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했다. 이제 2025년을 기점으로 시작되는 제4의 체제 전환기에서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향후 30년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과거의 성공 방식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과감한 변화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것인가. 지금은 공포에 사로잡힐 시간이 아니라 냉철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순간이다. 이번에 박석중님의 <한군의 미래>를 읽으며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의 슬로건이 많은 미국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미국의 상대적 쇠락에 대한 광범위한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지표들을 종합해보면 미국은 패권국의 구조적 쇠락 주기에 접어들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첫째, 경제적 측면에서 부채 주도 성장의 한계가 명확해지고 있다. 연방정부 부채는 GDP의 120%를 넘어서며 역사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이자 지급 비용만으로도 국방비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둘째, 사회적 측면에서 빈부격차 확대로 인한 계층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상위 1%가 전체 부의 30% 이상을 독점하는 극단적 불평등은 사회 통합을 위협하고 있다. 셋째, 정치적 측면에서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국정 운영의 효율성이 크게 저하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은 미국으로 하여금 해외 개입을 줄이고 내부 재건에 집중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기존의 글로벌 질서와 동맹 체계의 재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전략적 변화는 한국에게 다층적인 도전을 제기한다. 안보 측면에서는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와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력이 가중될 것이다. 경제 측면에서는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수출 의존형 한국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된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들이 미국의 견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의 선택 압박이다. 경제적으로는 중국이 여전히 최대 교역국이지만, 안보적으로는 미국과의 동맹이 핵심이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한국은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면서도 실용적 접근을 통해 국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1970년 이후 50여 년간 한국을 이끌어온 성장 모델이 한계에 직면했다. 수출 증가 → 투자 확대 → 고용 창출 → 내수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2012년을 기점으로 파열되기 시작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이 시행되면서 한국 기업들의 대중국 해외직접투자가 본격화됐고, 이는 국내 투자와 고용의 감소로 이어졌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면서 국내에는 투자처가 부족해졌고, 이는 부동산으로의 자금 집중을 가속화했다. 동시에 저금리 정책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가계부채가 급격히 증가했다. 현재 한국의 가계부채는 GDP 대비 100%를 넘어서며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첫 번째 위기는 가계부채 문제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힘입어 확대된 가계부채는 이제 상환 능력의 한계를 넘나들고 있다. 특히 금리 인상기에 들어서면서 이자 부담이 급증하고 있으며, 이는 소비 위축으로 직결되고 있다. 두 번째 위기는 내수 침체다.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이 맞물리면서 내수시장의 성장 동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젊은 층의 소비는 부채 상환과 주거비 부담으로 제약을 받고 있으며, 고령층의 소비는 미래 불안으로 인해 위축되고 있다. 세 번째 위기는 기업 경쟁력 약화다. 중국의 기술 추격과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우위가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은 샌드위치 상황에 놓여 있다. 더욱이 디지털 전환과 친환경 전환이라는 이중 과제 앞에서 많은 기업들이 방향성을 잃고 있다. 현재 한국이 직면한 상황은 1990년대 일본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부동산 버블 붕괴, 금융기관의 부실, 기업 경쟁력 저하, 내수 침체 등 모든 면에서 기시감을 느낄 수 있다. 일본은 이러한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장기 침체에 빠졌다. 하지만 한국에게는 아직 선택의 여지가 남아 있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여전히 높은 교육 수준과 기술 혁신 역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문화 콘텐츠를 통한 소프트파워도 크게 성장했다. 무엇보다 위기 의식이 일본보다 훨씬 높아 변화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한국 가계의 자산 구성을 보면 부동산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선진국 평균인 30-40%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부동산 편중 현상은 과거 부동산 가격 상승기에는 자산 증대 효과를 가져왔지만, 이제는 오히려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 앞으로는 부동산에서 금융자산으로, 국내에서 해외로의 자산 배분 변화가 필수적이다. 특히 글로벌 분산투자를 통해 환율 리스크를 헤지하고, 성장하는 해외 시장의 수익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AI와 같은 신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도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 리터러시 향상이 전제되어야 한다. 단순한 예적금에서 벗어나 주식, 채권, 펀드 등 다양한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장기적 관점에서의 자산 관리 능력을 기를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들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사업 포트폴리오의 리밸런싱이다. 과거의 성공 경험에 매몰되어 '모든 것을 다 하려는' 관성에서 벗어나, 핵심 역량에 집중하고 비핵심 사업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선제적 구조조정이다. 일본처럼 기업 부실이 심화된 후 강제적 구조조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여력이 있을 때 미리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디지털 전환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 혁신과 함께, 지속가능경영을 통한 정부의 역할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과거처럼 모든 산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분야에 선택적으로 집중해야 한다. 특히 AI, 바이오, 신재생에너지 등 신산업 육성에 정책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규제 개혁을 통해 기업들의 혁신 활동을 뒷받침해야 한다. 상법 개정을 통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금융규제 선진화 등이 시급한 과제다. 이를 통해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재정 정책 측면에서도 단순한 확대보다는 효율성 제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무분별한 재정 확대보다는, 생산성 향상과 성장 잠재력 확충에 도움이 되는 분야에 전략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대규모 기술혁신은 10-12년 주기로 반복되어왔다. 1986년 미국 저축대출조합 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2019년 팬데믹까지, 각각의 위기 이후에는 어김없이 새로운 기술혁신 물결이 일어났다. 이러한 패턴을 보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AI 혁명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팬데믹으로 인한 디지털 전환 가속화, 각국 정부의 대규모 부양책, 그리고 기술 기업들의 공격적 투자가 맞물리면서 AI 메가사이클이 본격화되고 있다. 초기 AI 기술은 구독형 서비스나 기업용 도구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광고, 전자상거래, 엔터테인먼트 등 일상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력, 통신, 보안, 반도체 등 주변 산업의 수요도 폭증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AI 기술 자체를 개발하는 기업보다, 그 기술을 활용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들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스마트폰 혁명 때를 돌아보면, 최종 승자는 스마트폰을 만든 회사가 아니라 그것을 플랫폼으로 활용한 기업들이었다. AI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이 이미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에게 기회가 전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한국만의 차별화된 AI 전략, 즉 '소버린 AI' 구축이 중요하다. 소버린 AI란 자국의 언어, 문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의미한다. 한국어 처리 능력, K-콘텐츠 데이터, 제조업 노하우 등을 결합하면 충분히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제조업과 AI의 융합 분야에서는 한국이 상당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조선 등 전통 강점 분야에 AI 기술을 접목하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 수 있다.


한국 투자자들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글로벌 분산투자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충분한 수익률을 확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환율과 정치적 리스크에도 과도하게 노출되어 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주 중심 지수인 나스닥과 항셍 테크 지수를 코어 포트폴리오로 구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장기 보유 전략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별 기업보다는 테마형 ETF를 통해 분산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동시에 신흥국 시장에 대한 투자도 고려해야 한다. 인도, 동남아시아, 남미 등은 여전히 높은 성장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선진국 시장과의 상관관계도 상대적으로 낮아 분산투자 효과가 크다. AI 관련 투자의 경우 인프라, 애플리케이션, 밸류체인별로 차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 인프라 단계에서는 반도체, 클라우드, 통신 등에 주목하고, 애플리케이션 단계에서는 구체적인 서비스와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들에 집중해야 한다. 전통 산업의 경우 디지털 전환과 ESG 대응 능력을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 단순히 규모가 큰 기업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을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동산 투자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거주용 부동산은 필수적이지만, 투자용 부동산은 유동성과 수익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특히 상업용 부동산은 원격근무 확산으로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역사적 기로에 서 있다.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재편되고,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표면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새로운 기회의 창이기도 하다. 과거 30년의 성공 방식에 안주한다면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감한 변화와 혁신을 통해 새로운 성장 모델을 구축한다면, 향후 30년의 번영을 이룰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가계, 기업, 정부 모든 주체가 각각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가계는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기업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며, 정부는 미래 지향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지금부터 3년 안에 확실한 방향성을 잡지 못한다면, 기회의 창은 영영 닫힐 수도 있다. 이제는 공포에 사로잡힐 때가 아니라 전략적 사고와 실행력을 발휘할 때다. 대전환의 시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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