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따뜻한 실용주의 - 이념을 넘어 국민의 삶을 중심에
김태철.황산 지음 / 해냄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술관에서 한 점의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이 있다. 멀리서 보면 흐릿한 색채의 조합으로만 보이던 것이, 가까이 다가가면 세밀한 붓터치와 의도된 구성이 드러난다. 정치 또한 그와 같지 않을까. 거대한 담론과 선명한 구호로 포장된 표면 아래, 실제로는 무수한 개별적 삶들이 촘촘히 엮여 있는 복합적 현실이 존재한다.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대통령의 실용주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새 정부의 실용주의적 접근법은, 바로 이런 관점의 전환을 요구한다. 정치를 거대한 서사나 이념적 대결의 무대가 아닌, 구체적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실리만을 추구하는 냉혹한 계산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실용주의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에서 출발한다. 실용주의를 기회주의나 편의주의로 오해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진정한 실용주의는 "무엇이 효과적인가"보다 "누구를 위한 효과인가"를 먼저 묻는다. 이는 철학자 존 듀이가 강조했던 민주주의적 실용주의의 핵심이기도 하다. 정책의 성패는 그것이 얼마나 이론적으로 완벽한가가 아니라, 실제 시민들의 삶에 얼마나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는가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표방하는 실용주의 정치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항상 "이것이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가"를 기준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론적 순수성보다는 실천적 효용성을, 완벽한 체계보다는 점진적 개선을 추구하는 접근법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갈등 지수가 OECD 최상위권이라는 진단은 충격적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진보와 보수, 세대 간, 계층 간 대립이 첨예화되면서 건설적 대화는 실종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용주의적 접근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그것은 이념적 순수성을 고집하기보다는 공통의 이익과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을 중시한다. 물론 이런 접근이 항상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원칙 없는 타협으로 비판받을 수도 있고, 명확한 가치 기준의 부재로 인한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열과 갈등으로 지친 사회에서 실용주의는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찾아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실용주의 정치의 핵심은 현장성에 있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 정책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가 관건이다. 여론조사나 통계 자료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경험과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새 정부의 리더십이 강조하는 "밑바닥 경험"의 중요성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가난과 차별을 몸소 체험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다른 감수성을 갖게 된다. 그것은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꾸어 놓는다. 어떤 정책이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여도, 실제 현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정치학에서는 효율성과 형평성이 상충하는 가치로 여겨져 왔다. 효율성을 추구하면 불평등이 심화되고, 형평성을 중시하면 경제적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용주의적 접근에서는 이 두 가치가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이나 지역화폐와 같은 정책은 단순히 복지의 확대가 아니라 경제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소비 여력이 부족한 계층에게 구매력을 제공함으로써 내수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이것이 다시 전체 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형평성 추구는 장기적 효율성 증대의 전제 조건이 된다. 실용주의 정치가 성공하려면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수적이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시민들이 그것을 이해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실효성을 거둘 수 없다. 따라서 실용주의는 본질적으로 참여민주주의적 성격을 갖는다. 국무회의 공개나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 확대 같은 조치들은 홍보 전략만이 아니라, 시민들을 정치 과정의 주체로 만들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시민들이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확인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실용주의 정치가 가능해진다.

실용주의 정치의 진가는 지방 단위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거대한 정책 담론으로 포장되던 것들이, 지방에서는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생활 문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시민들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지방정부야말로 실용주의적 접근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지방정부가 실용주의를 실천한다는 것은 지역 주민들의 실제 needs에 기반한 정책을 만들고, 그 효과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개선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중앙정부의 획일적 정책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특성과 여건에 맞는 창의적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실용주의 정치에서 소통은 홍보나 설득의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정책의 효과성을 높이는 핵심적 요소다. 정부와 시민 사이의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질 때, 정책은 더욱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향으로 설계될 수 있다. 언론의 역할도 이런 맥락에서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언론은 정부와 시민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단순히 정부 정책을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것을 넘어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고 정부의 정책 의도를 시민들에게 명확히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실용주의적 접근에서 경제는 단순히 성장률이나 GDP로 측정되는 추상적 지표가 아니다. 그것은 실제 사람들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구체적 현실이다. 따라서 경제정책 또한 숫자상의 성과보다는 실질적 체감도를 우선시해야 한다. 지역경제 활성화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대규모 투자 유치나 거대 프로젝트보다는 지역 주민들의 일상적 경제활동을 지원하고, 지역 내 경제 순환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 더욱 실용적일 수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욱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실용주의 정치가 성공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정치 지도자들의 진정성이다. 실용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정치적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시민들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둘째, 시민들의 성숙한 정치 의식이다. 단기적 이익에만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을 평가하는 시민 의식이 필요하다. 셋째, 제도적 뒷받침이다. 실용주의적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그에 맞는 행정 시스템과 법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넷째, 지속성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모든 정책이 뒤바뀌는 것이 아니라, 검증된 좋은 정책은 계승될 수 있는 정치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실용주의 정치는 만능 해결책이 아니다. 그것도 하나의 접근 방식일 뿐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다른 접근법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열과 갈등으로 지친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실용주의적 접근은 분명히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용주의를 단순한 정치적 전략으로 소비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사회 전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학계, 언론 등 모든 주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치는 예술과 같다. 완벽한 작품은 없지만, 끊임없이 더 나은 작품을 추구하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다. 실용주의 정치 또한 완성된 모델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발전해 나가야 할 실험이다. 그 실험의 성공 여부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 새정부에 보달 밝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져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