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다크심리학 - 왜 교묘한 사람이 성공하는가?
사이토 이사무 지음, 김은선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악마의 법칙'이라는 부제목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일반적인 자기계발서가 ' 긍정의 힘', '성실함의 미덕' , '끝없는 노력'을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이 책은 애초에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일본 릿쇼대학 명예교수 이자 일본 비즈니스 심리학회 회장인 사이토 이사무의 이 책은, 심리학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직장인이 반드시 알아야 할 100가지 법칙을 제시한다. 악마의 법칙이라는 부제는 책이 다루는 내용은 그만큼 강력하고,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될 수도 있을 만큼 예리한 인간 심리의 실체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책이 제시하는 법칙 중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게으른 사람과 부지런한 사람의 비율은 항상 8대 2이다"라는 명제다. 흔히 '파레토 법칙'이라고 불리는 이 원칙은 경제학에서 출발했지만, 사이토 이사무는 이를 심리학적 시각으로 재해석한다. 조직 내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구성원은 전체의 20%에 불과하며, 나머지 80%는 그 성과를 지탱하거나 혹은 그냥 존재하는 데 그친다는 것이다. 처음 이 법칙을 접하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쪽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법칙의 진짜 가치는 자기 성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을 바라보는 현실적인 눈을 갖게 하는 데 있다. 리더나 관리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왜 우리 팀은 몇 명이 다 하는 것 같지?"라는 의문에 오랫 동안 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8대 2 법칙은 그 의문에 간명하게 답한다. 조직은 본래 그렇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 인식은 매우 실용적인 함의를 지닌다. 일 잘하는 사람은 모두가 열심히 하기를 기대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핵심 20%가 번아웃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나머지 80%의 에너지를 전략적으로 배분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이것이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의 차이이며, 일 잘하는 사람'과 '열심히만 하는 사람'의 차이이기도 하다.

책의 또 다른 핵심 축은 인간관계의 심리학이다. 책의 각 장은 표면적으로는 다른 내용을 다루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의 주제로 연결된다.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권력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대인•사회심리 학의 전문가인 사이토 이사무는 사람들이 타인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모방하는 경향, 권위있는 사람의 말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심리, 첫인상이 이후의 판단 전체를 지배하는 '초두 효과' 등을 법칙으로 정리한다. 이러한 심리학적 원리들은 학술 연구실 안에만 머무는 이론이 아니다. 협상 테이블에서, 회의실에서, 식사 자리에서 매 순간 작동하는 실제 메커니즘이다. 조종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뉘앙스에도 불구하고, 이 법칙들은 중립적인 도구다. 설득의 심리학을 이해하것은 다른 사람을 착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의도하지 않게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거나 부당한 영향력 아래 놓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즉, 이 법칙을 아는 사람은 방어할 수 있고, 모르는 사람은 당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악용 금지'라는 전제 아래 이 내용을 공개하는 이유일 것이다.

' 다크 심리로 설과를 만드는 전략'은 이 책에서 가장 철학적이면서도 실용적인 부분이다. 사이토 이사무는 성공과 실패를 능력이나 운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상당 부분 자기 자신과 환경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귀인 이론(Attribution Theory)'으로 설명한다. 실패했을 때 그 원인을 자신의 내부(능력 부족, 노력 부족)에서 찾느냐, 외부(상황, 타인)에서 찾느냐에 따라 이후의 행동 방향이 완전히 달라진다. 일 잘하는 사람들은 실패를 외부 탓으로만 돌리지 않으면서도, 과도한 자기비난으로 스스로를 무력화하지도 않는다. 이 균형감각이야말로 탁월한 성과를 지속적으로 내는 사람들의 공통된 심리적 특성이다. 또한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개념도 이 장의 핵심을 이룬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한 사람일수록,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집중한다. 이는 단순한 자신감과 다르다.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 현실적인 확신이자,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는 심리적 근육이다. 이 책은 독자에게 바로 이 근육을 키우는 방법을 제시한다.

'욕망을 부추기는 동기부여의 기술 '은 많은 직장인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내용일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 라는 실존적 의문에 부딪힌다. 이 책은 그 질문에 감성적으로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학적 메커니즘으로 답한다. 동기부여에는 두 가지 원천이 있다. 일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 성취감, 의미감으로부터 비롯되는 '내재적 동기'와 급여, 승진, 인정 등 외부 보상에 의해 움직이는 '외재적 동기'가 그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지나친 외재적 보상이 오히려 내재적 동기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과정당화 효과(Overjustification Effect)'다. 보상이 커질수록 일 자체의 즐거움이 희석되고, 보상이 사라지면 동기도 함께 사라지는 악순환이 생긴다. 일 잘하는 사람들은 이 두 가지 동기를 상황에 따라 현명하게 조합할 줄 안다. 장기적인 몰입을 위해서는 내재적 동기가 필요하고, 단기적 인 집중력을 위해서는 명확한 외재적 목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책은 그 본능을 의식적으 로 설계할 수 있도록 언어화해 준다.

책이 전달하는 핵심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다.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는 자가 일을 지배한다." 그것이 설령 인간의 약점이나 편향, 무의식적 반응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이해 없이는 조직을 운영할 수도, 관계를 이끌 수도, 자신을 성장시킬 수도 없다. ' 다크 심리학 ' 라는 비유는 자극적 마케팅이 아니다. 이 법칙들은 사람들이 불편하게 여기거나, 알면서도 외면하거나, 혹은 존재 자체를 몰랐던 인간 심리의 음지를 직접 조명한다. 그 음지를 외면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선택처럼 보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을 얻는 힘 : 인간력
다사카 히로시 지음, 장은주 옮김 / 북플레저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력이란 화려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타인의 다름을 존중하며,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의식하고, 고통 스러운 경험에서도 의미를 찾아내는 조용하고 깊은 능력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을 얻는 힘 : 인간력
다사카 히로시 지음, 장은주 옮김 / 북플레저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관계 속에 던져진다.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 친구와 동료, 연인과 낯선 이. 삶의 모든 장면에는 반드시 '타인'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인간은 수천 년간 문명을 쌓고 기술을 발전시켜 왔지만, 정작 '옆 사람과 잘 지내는 법'은 여전히 서툴기만 하다. 회사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관계의 문제로 상처받고, 지치고, 무너지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나는 오랫동안 이 질문을 붙잡고 살아왔다. "왜 나는 가까운 사람에게 더 쉽게 상처를 주는가?" 그리 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문제는 상대방이 아니었다. 문제는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더 정확히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했던 나의 태도였다. 다사카 히로시의 인간력을 통해 그동안 생각못했던 인간 관계에 대한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 사회는 완벽함을 강요한다. 실수하지 말 것, 약점을 보이지 말 것, 언제나 강하고 유능하게 보일 것. 이러한 압박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결점을 철저히 숨기는 법을 배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자신의 허점을 숨기면 숨길수록 인간관계는 점점 더 얕아진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진심으로 마음을 열게 되는 사람은 대개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실수하면서도 솔직하게 인정하고, 때로는 엉뚱하고 어설프지만 그 자체를 감추지 않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에게 우리는 마음을 연다. 약함 을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상대의 마음을 열게 하는 열쇠가 된다. 미숙함을 인정하는 것은 자기 비하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이며, 성장을 향한 첫 걸음이다. "나는 아직 부족하다"는 고백은 약자의 언어가 아니라, 끊임없이 나아가려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강자의 언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완벽한 사람이 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솔직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실수했을 때 먼저 손을 내밀고, 불편한 감정이 생겼을 때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 그것이 내가 꿈꾸는 관계의 시작점이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두 개의 목소리가 공존한다. 하나는 "내가 옳아,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속삭이는 목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부족했어, 더 나아지자"라고 말하는 목소리다. 전자는 자아를 보호하려는 본능에서 비롯된다. 잘못을 인정하면 체면이 깎이고, 무능해 보이고, 상처받을 것 같다는 두려움.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타인에 게 원인을 돌리며,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 방어 기제는 결국 관계를 갉아먹는 독이 된다. 자신의 잘못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사람 곁에 남고 싶은 이는 없다. 반면, 잘못을 인정하고 "내가 틀렸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신뢰가 쌓인다. 신뢰는 관계의 토대이자, 그 어떤 갈등도 녹여낼 수 있는 온기다. 나는 종종 내 마음속 작은 목소리가 고개를 들 때를 느낀다. 누군가와 다툰 뒤 "어차피 저 사람도 잘못이 있어"라고 합리화하고 싶어질 때, 혹은 칭찬받아야 할 상황에서 타인이 먼저 인정받으면 묘한 불편함이 올라올 때. 그 순간, 나는 그 감정을 억누르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저 조용히 바라본다. 아, 내 안에 지금 이런 감정이 일어나고 있구나.' 그렇게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그 감정의 힘은 신기하게 줄어든다.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 자체가 성숙함의 시작이다.

살아가다 보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난다. 말투가 거슬리거나, 일하는 방식이 나와 전혀 달라 답답하거나, 가치관이 충돌하여 대화 자체가 불편한 사람.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런 사람을 '문제 있는 사람', '결점이 많은 사람'으로 분류해버린다. 하지만 잠시 멈춰 생각해보자. 과연 그 기준은 무엇인가? 그 기준은 결국 '나 자신'이다. 내 방식, 내 기준, 내 가 치관. 우리는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두고 타인을 재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편협한 시각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만의 고유한 역사가 있고, 그 역사 속에서 형성된 독특한 성격과 방식이 있다. 그것을 결점이라 부르는 것은 타인의 삶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오히려 그 다름은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세계를 열어주는 창문이 될 수 있다. 특히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위치에 있다면, 이 관점은 더욱 중요해진다. 구성원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강점으로 연결할 때, 조직은 비로소 살아 숨쉬는 공동체가 된다. 직원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들의 부족함을 고쳐야할 결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각자의 색깔을 인정하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다. 말은 관계의 온도를 결정하고, 나아가 감정 자체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흔히 감정이 먼저 생기고 그에 따라 말이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에 대한 험담을 계속하다 보면 처음에는 그저 불편했던 사람이 점점 더 싫어진다. 반대로 억지로라도 상대의 장점을 찾아 입 밖으로 내뱉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에 대한 시선이 조금씩 달라진다. 말이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심리적 트릭이 아니다. 말은 뇌의 인 식 방식을 바꾸고, 관계의 패턴을 바꾸며, 결국 현실 자체를 바꾼다. 그렇기에 어떤 말을 선택하느냐는 단순한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선택이 된다. 나는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의식적으로 말을 선택하려 노력한다. 불편한 상황에서도 감사의 말을 찾고, 비판하고 싶은 순간에도 먼저 공감의 말을 꺼내려 한다.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노력이 쌓 일 때, 관계는 조금씩 따뜻해진다.

인생을 돌아보면,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관계가 가장 많이 나를 성장시켰음을 깨닫는다. 호된 질책을 받았던 상사, 배신 감을 안겨주었던 친구, 뜻이 맞지 않아 멀어진 동료. 그 만남들은 당시에는 상처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새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연마의 과정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상처받은 마음으로 "그래, 그 만남에 감사해"라고 말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억지로 용서하거나, 무리하게 화해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 경험 속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를 묻는 것만으로도 그 만남의 의미는 달라진다. 불행한 사건이 성장의 계기로 재해석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관계를 끊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멀어진 사람에 대해 마음속으로 라도 문을 닫지 않는 것, 언제든 다시 연결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그것은 상대를 위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을 위한 자유다. 관계의 문을 닫는 순간, 그 문 안에 갇히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는 결국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결정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도 사랑하기 어렵고, 자신에게 가혹한 사람은 타인에게도 가혹해지기 쉽다. 인간력이란 화려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타인의 다름을 존중하며,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의식하고, 고통 스러운 경험에서도 의미를 찾아내는 조용하고 깊은 능력이다.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과 실천 속에서 만들어 지는 삶의 자세다. 나는 앞으로도 수없이 실수하고,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나는 배울 것이다. 더 나은 관계를 위해, 더 나은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님의 달리기 - 승복 입은 러너의 11,450킬로미터 마음 수행기
지찬 지음 / 유노북스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신호등이 깜빡이는 횡단보도 앞, 승복을 입은 채 냅다 뛰어버린 한 스님. 그 장면 하나가 이 책 전체의 씨앗이다. 딱히 바쁜 일도 없었건만 몸이 먼저 반응했고, 겨우 몇 걸음 뛰었을 뿐인데 숨이 차올랐다. 중년을 넘어서며 어느새 둔해진 육신을 스스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지찬 스님은 그 당혹감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선원에서 치열하게 정진하던 시절의 자신은 어디로 갔는가. 수행자로서 몸을 돌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물음이 달리기라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그를 이끈다. 헬스장에 등록하고, 처음에는 천천히 걷듯 뛰기 시작했다. 특별한 목표도, 화려한 의지도 아니었다. 단지 흐트러진 몸을 다시 세워 보겠다는 소박한 다짐이었다. 이 출발점이 인상 깊은 까닭은, 스님이 수행과 육체를 분리하지 않는 데 있다. 몸이 무너지면 의지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것, 숨이 가빠지면 생각도 거칠어진다는 것을 그는 수행의 언어로 풀어낸다. 달리기는 수행의 도구가 아니라 수행 그 자체였다.

책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대목은 호흡에 관한 성찰이다. 불교의 수식법(數息法)은 호흡을 알아차리는 수행이다. 스님은 달리기를 하면서 그 수식법이 길 위에서도 고스란히 작동함을 발견한다. 숨이 흐트러질 때 억지로 다잡으려 할수록 오히려 더 빠르게 무너진다. 반면 몸의 리듬을 믿고 기다리면 호흡은 스스로 제자리를 찾는다. 이 이치는 좌선에서도 같다. 억지로 고요를 만들려는 수행은 금세 긴장으로 변한다. 고요란 어떤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방해하지 않을 때 저절로 드러나는 상태에 가깝다. 스님은 달리기라는 몸의 훈련을 통해 이 진실을 다시 배웠다고 고백한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그저 아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단순함이 수행의 본질임을 몸으로 깨달은 것이다. 7킬로미터 지점에서 숨이 턱까지 차올라 멈추려던 순간, 무언가 가득했던 것이 빠져나가듯 호흡이 수월해지고 잡념이 일시에 가라앉았다는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숨을 참게 된다. 스님이 러너스 하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그 상태를, 그는 행복감보다 무념무상에 가까운 평온으로 기억한다. 젊은 시절 선원에서 몰입에 들었을 때와 같은 감각이었다고. 달리기는 그렇게 움직이는 좌선이 되었다.

스님은 달리기를 통해 욕심의 얼굴을 새롭게 마주한다. 기록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더 잘 달리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든다. 즐거움으로 시작한 달리기가 어느새 증명해야 할 과제가 되고, 하루의 훈련을 빠뜨리면 괜한 불편함이 찾아온다. 부상 이후에야 스님은 그 사실을 직면한다. 몸이 신호를 보냈지만 마음이 듣지 않았다. 수행자도 집착을 피해 가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수행자이기에 더 깊이 그 올가미에 걸릴 수 있다. 정진한다는 자부심, 이 정도는 해낼 수 있다는 과신이 몸의 신호를 흐리게 한다. 스님은 회복력이야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中道)에 가장 가까운 감각이 아닐까 한다고 적는다. 극단을 피하고 지금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달리기에서도 삶에서도 오래가는 힘이다. 연장만 갈고닦지 말고 풀을 뽑으라는 도반의 글귀가 책 중반에 등장한다. 기록이 연장이 될 때도 있고, 침묵이 연장이 될 때도 있다. 손에 쥔 것이 무엇인가보다 그 손이 어디를 향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 달리기를 통해 스님이 배운 덜어냄의 진리다. 더 멀리 가기 위해 비워야 할 것이 있고, 오래가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다는 말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스님은 '레푸기움(refugium)'이라는 라틴어를 빌려 달리기의 의미를 정의한다. 피난처이자 휴식처. 그러나 도망치는 장소가 아니라, 다시 돌아오기 위한 자리. 달리고 나서 마음이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정돈된 상태가 된다는 표현이 정확하게 와닿는다. 무언가를 더 얻은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내려앉은 느낌. 이 레푸기움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다. 어떤 이에게는 오래된 책상이고, 어떤 이에게는 조용한 차 한 잔이며, 스님에게는 길 위에서 호흡과 발걸음이 나란히 이어지는 그 짧은 시간이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역할도, 이름도, 직함도 잠시 물러나고, 지금 이 순간의 자신으로만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달리는 동안 판단이 줄어들고, 잘하고 있는지 따지는 마음이 사그라든다. 길 위에서 회복한 것은 체력보다 감각이라는 스님의 말이 책의 핵심을 담는다. 지금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마음이 어디쯤 와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힘. 그 힘 덕분에 다시 수행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석정 스님의 인장에는 삼락자(三樂者)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다 한다.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 사람. 그 즐거움은 중이 된 일, 머리를 깎는 일, 국수 잡수시는 일. 어떤 대단한 성취도 아니고, 남보다 나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 자리에 있으면 되는 즐거움이다. 스님도 그림을 그리고 자전거를 탄다. 잘 그리지 못하고, 빠르게 달리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 시간이 좋다. 결과를 향한 욕심이 자연스럽게 빠져나가고, 지금 이 순간의 몸이 현재를 만끽하기 때문이다. 잘하지 않아도 되는 즐거움은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다. 거기서 우리는 비교를 내려놓고,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는 감각을 배운다. 마라톤도 그런 운동이다. 서브3만이 인정받는 경기가 아니라, 결승선을 통과한 모든 사람이 박수를 받는 드문 스포츠. 누군가에게는 생애 첫 10킬로미터가 다른 누군가의 풀코스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불교적 깨달음도 이와 닮았다고 스님은 말한다. 깨달음에는 등수가 없고, 속도가 빠르다고 더 옳지 않다.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삶을 온전히 통과해 냈을 때, 그만큼의 깊이가 주어진다.

책을 읽고 나면 달리기라는 행위가 달라 보인다. 빠르게 달리는 것, 오래 달리는 것, 멀리 달리는 것보다 어떤 마음으로 달리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스님은 몸으로 보여 준다. 수행도, 운동도, 나아가 삶도 결국은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라는 말이 오래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퇴근길 지하철 안을 둘러본다. 저마다의 이어폰을 꽂고, 저마다의 화면을 들여다보며, 저마다의 세계 속으로 침잠해 있는 사람들. 우 리는 이토록 가까이 붙어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완벽하게 닿지 않는다. 문득 이 풍경이 오늘날 우리 삶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붐비는 도시 한가운데서, 우리는 각자의 섬이 되어가고 있다. 통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변화를 숫자로 말해왔다. 대한민국 전체 가구의 35 퍼센트가 넘는 수가 1인 가구다. 둘이 살거나 셋이 사는 집보다 혼자 사는 집이 더 많은 시대. 그러나 나는 이 숫자보다 그 숫자 뒤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더 오래 마음에 걸린다. 그들은 어떤 밤을 보내고 있을까.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불 꺼진 집으로 돌아가는 그 귀 갓길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김수영님의 책을 통해 그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았다.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어떻게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는가.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혼자를 선택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하 루하루를 버티다 보니, 일에 치이고 관계에 지치다 보니, 어느 순간 주변이 조용해져 있었다. 결혼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결혼을 생각 할 여백이 없었고, 누군가를 밀어낸 것이 아니라 나를 들여다볼 틈조차 없었다. 그렇게 '어쩌다 혼자'가 되었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 는 많은 사람도 비슷한 이야기를 갖고 있을 것이다. 드라마틱한 결심이나 분명한 사연 없이, 그냥 그렇게 흘러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 서 혼자라는 삶은 선택이기도 하고, 선택이 아니기도 하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사회 자체가 이미 특정한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취업 시장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경영하라'고 말하고, 사회는 '스스로 책임지라'고 요구한다. 그 구조 안에서 개인들은 생존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된다. 가족을 꾸리는 일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난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불분명한 영 역에 에너지를 쏟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사업체를 경영해야 하는 사람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왜 혼자 지?'라고 물었을 때 이미 혼자가 된 지 오래인 것이다. 혼자 사는 삶에는 분명 자유가 있다. 아무에게도 맞추지 않아도 되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나만의 속도로 하 루를 채울 수 있다. 그 자유는 진짜다.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자유의 이면에는 묘한 허기가 있다.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이거 먹어봤어?'라고 말을 건넬 사람이 없다는 것. 아플 때 '나 좀 이상한 것 같아'라고 꺼내놓을 누군가가 없다는 것이다.

웃긴 일이 생겼을 때, 슬픈 일이 생겼을 때, 그냥 아무 이유 없이 피곤할 때, 옆에 사람이 있다는 그 감각이 없다는 것. 경제적 결핍보다 훨씬 조용하게, 그러나 훨씬 깊이 스며드는 결핍. 그것이 관계의 결핍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식물에 말을 걸고, 오래된 물건에 이름 을 붙이고, 좋아하는 책을 곁에 두고 위안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처음엔 그저 개인의 취향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교 감하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이 찾아낸 출구다.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은 어떤 방식으로든 흘러나온다. 아무리 혼자이기를 택한 사람이 라도, 그 마음까지 지울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거창한 답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당장 결혼을 하라거나, 다시 가족을 이루라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더 작고, 더 유연하고, 더 인간적인 무언가를 생각한다. 예컨대 느슨한 연대. 혈연도 아니고, 계약도 아니고, 의무도 아닌, 그 저 '나는 당신이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라고 말해주는 관계. 매일 만나지 않아도 되고, 깊이 얽히지 않아도 되지만, 어떤 순간에 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밥 한 끼를 나누고, 그 사람이 힘들어 보일 때 눈을 마주쳐 주는 관계.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아마 도 이런 종류의 연결일 것이다. 꼭 가족이 아니어도, 꼭 친한 친구가 아니어도, 그냥 같은 시간을 사는 사람으로서 서로를 알아봐 주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 이상적으로 들린다면, 적어도 이것만은 생각해보자. 나 자신을 잘 돌보는 일. 누군가가 나를 챙겨줄 거라는 기대를 내려놓은 자리에서, 내가 먼저 나를 먹이고, 재우고, 쉬게 해주는 것. 혼자 사는 삶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역량을 요구한다. 요리도, 살림도, 건강도, 감정의 관리도 모두 혼자 감당해야 한다. 그 무게를 가볍게 볼 수 없다. 그래서 더더욱,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돌보는 일이 사치가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 된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피하고 싶지 않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불안 중 하나는 바로 '혼자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다. 고독사는 특별히 불행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가능성이다. 죽음 그 자체보 다,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내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 은 비극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장 솔직한 고백이다. 아마도 그것이 우리가 연결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아무리 자유 롭고 독립적인 삶을 사랑한다 해도, 우리는 결국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고,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남고 싶다. 그 마음을 부끄 럽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것이 인간이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는 거대한 전환의 한가운데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낡은 제도는 아직 그 자리에 있고, 새로운 삶의 방식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그 사이를 연결해줄 언어와 시스템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틈새에서 많 은 사람이, 조용히, 이유도 잘 모른 채, 다치고 있다.

하나의 아픔이 다른 아픔을 알아보며, 함께 덜 외로워지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어쩌면, 이 필연적 혼자의 시대를 우리가 살아낼 수 있는 방 법일 것이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방식으로 살아가길 바라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