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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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퇴근길 지하철 안을 둘러본다. 저마다의 이어폰을 꽂고, 저마다의 화면을 들여다보며, 저마다의 세계 속으로 침잠해 있는 사람들. 우 리는 이토록 가까이 붙어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완벽하게 닿지 않는다. 문득 이 풍경이 오늘날 우리 삶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붐비는 도시 한가운데서, 우리는 각자의 섬이 되어가고 있다. 통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변화를 숫자로 말해왔다. 대한민국 전체 가구의 35 퍼센트가 넘는 수가 1인 가구다. 둘이 살거나 셋이 사는 집보다 혼자 사는 집이 더 많은 시대. 그러나 나는 이 숫자보다 그 숫자 뒤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더 오래 마음에 걸린다. 그들은 어떤 밤을 보내고 있을까.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불 꺼진 집으로 돌아가는 그 귀 갓길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김수영님의 책을 통해 그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았다.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어떻게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는가.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혼자를 선택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하 루하루를 버티다 보니, 일에 치이고 관계에 지치다 보니, 어느 순간 주변이 조용해져 있었다. 결혼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결혼을 생각 할 여백이 없었고, 누군가를 밀어낸 것이 아니라 나를 들여다볼 틈조차 없었다. 그렇게 '어쩌다 혼자'가 되었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 는 많은 사람도 비슷한 이야기를 갖고 있을 것이다. 드라마틱한 결심이나 분명한 사연 없이, 그냥 그렇게 흘러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 서 혼자라는 삶은 선택이기도 하고, 선택이 아니기도 하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사회 자체가 이미 특정한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취업 시장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경영하라'고 말하고, 사회는 '스스로 책임지라'고 요구한다. 그 구조 안에서 개인들은 생존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된다. 가족을 꾸리는 일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난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불분명한 영 역에 에너지를 쏟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사업체를 경영해야 하는 사람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왜 혼자 지?'라고 물었을 때 이미 혼자가 된 지 오래인 것이다. 혼자 사는 삶에는 분명 자유가 있다. 아무에게도 맞추지 않아도 되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나만의 속도로 하 루를 채울 수 있다. 그 자유는 진짜다.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자유의 이면에는 묘한 허기가 있다.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이거 먹어봤어?'라고 말을 건넬 사람이 없다는 것. 아플 때 '나 좀 이상한 것 같아'라고 꺼내놓을 누군가가 없다는 것이다.

웃긴 일이 생겼을 때, 슬픈 일이 생겼을 때, 그냥 아무 이유 없이 피곤할 때, 옆에 사람이 있다는 그 감각이 없다는 것. 경제적 결핍보다 훨씬 조용하게, 그러나 훨씬 깊이 스며드는 결핍. 그것이 관계의 결핍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식물에 말을 걸고, 오래된 물건에 이름 을 붙이고, 좋아하는 책을 곁에 두고 위안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처음엔 그저 개인의 취향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교 감하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이 찾아낸 출구다.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은 어떤 방식으로든 흘러나온다. 아무리 혼자이기를 택한 사람이 라도, 그 마음까지 지울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거창한 답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당장 결혼을 하라거나, 다시 가족을 이루라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더 작고, 더 유연하고, 더 인간적인 무언가를 생각한다. 예컨대 느슨한 연대. 혈연도 아니고, 계약도 아니고, 의무도 아닌, 그 저 '나는 당신이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라고 말해주는 관계. 매일 만나지 않아도 되고, 깊이 얽히지 않아도 되지만, 어떤 순간에 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밥 한 끼를 나누고, 그 사람이 힘들어 보일 때 눈을 마주쳐 주는 관계.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아마 도 이런 종류의 연결일 것이다. 꼭 가족이 아니어도, 꼭 친한 친구가 아니어도, 그냥 같은 시간을 사는 사람으로서 서로를 알아봐 주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 이상적으로 들린다면, 적어도 이것만은 생각해보자. 나 자신을 잘 돌보는 일. 누군가가 나를 챙겨줄 거라는 기대를 내려놓은 자리에서, 내가 먼저 나를 먹이고, 재우고, 쉬게 해주는 것. 혼자 사는 삶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역량을 요구한다. 요리도, 살림도, 건강도, 감정의 관리도 모두 혼자 감당해야 한다. 그 무게를 가볍게 볼 수 없다. 그래서 더더욱,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돌보는 일이 사치가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 된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피하고 싶지 않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불안 중 하나는 바로 '혼자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다. 고독사는 특별히 불행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가능성이다. 죽음 그 자체보 다,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내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 은 비극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장 솔직한 고백이다. 아마도 그것이 우리가 연결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아무리 자유 롭고 독립적인 삶을 사랑한다 해도, 우리는 결국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고,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남고 싶다. 그 마음을 부끄 럽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것이 인간이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는 거대한 전환의 한가운데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낡은 제도는 아직 그 자리에 있고, 새로운 삶의 방식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그 사이를 연결해줄 언어와 시스템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틈새에서 많 은 사람이, 조용히, 이유도 잘 모른 채, 다치고 있다.

하나의 아픔이 다른 아픔을 알아보며, 함께 덜 외로워지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어쩌면, 이 필연적 혼자의 시대를 우리가 살아낼 수 있는 방 법일 것이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방식으로 살아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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