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달리기 - 승복 입은 러너의 11,450킬로미터 마음 수행기
지찬 지음 / 유노북스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신호등이 깜빡이는 횡단보도 앞, 승복을 입은 채 냅다 뛰어버린 한 스님. 그 장면 하나가 이 책 전체의 씨앗이다. 딱히 바쁜 일도 없었건만 몸이 먼저 반응했고, 겨우 몇 걸음 뛰었을 뿐인데 숨이 차올랐다. 중년을 넘어서며 어느새 둔해진 육신을 스스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지찬 스님은 그 당혹감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선원에서 치열하게 정진하던 시절의 자신은 어디로 갔는가. 수행자로서 몸을 돌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물음이 달리기라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그를 이끈다. 헬스장에 등록하고, 처음에는 천천히 걷듯 뛰기 시작했다. 특별한 목표도, 화려한 의지도 아니었다. 단지 흐트러진 몸을 다시 세워 보겠다는 소박한 다짐이었다. 이 출발점이 인상 깊은 까닭은, 스님이 수행과 육체를 분리하지 않는 데 있다. 몸이 무너지면 의지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것, 숨이 가빠지면 생각도 거칠어진다는 것을 그는 수행의 언어로 풀어낸다. 달리기는 수행의 도구가 아니라 수행 그 자체였다.

책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대목은 호흡에 관한 성찰이다. 불교의 수식법(數息法)은 호흡을 알아차리는 수행이다. 스님은 달리기를 하면서 그 수식법이 길 위에서도 고스란히 작동함을 발견한다. 숨이 흐트러질 때 억지로 다잡으려 할수록 오히려 더 빠르게 무너진다. 반면 몸의 리듬을 믿고 기다리면 호흡은 스스로 제자리를 찾는다. 이 이치는 좌선에서도 같다. 억지로 고요를 만들려는 수행은 금세 긴장으로 변한다. 고요란 어떤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방해하지 않을 때 저절로 드러나는 상태에 가깝다. 스님은 달리기라는 몸의 훈련을 통해 이 진실을 다시 배웠다고 고백한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그저 아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단순함이 수행의 본질임을 몸으로 깨달은 것이다. 7킬로미터 지점에서 숨이 턱까지 차올라 멈추려던 순간, 무언가 가득했던 것이 빠져나가듯 호흡이 수월해지고 잡념이 일시에 가라앉았다는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숨을 참게 된다. 스님이 러너스 하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그 상태를, 그는 행복감보다 무념무상에 가까운 평온으로 기억한다. 젊은 시절 선원에서 몰입에 들었을 때와 같은 감각이었다고. 달리기는 그렇게 움직이는 좌선이 되었다.

스님은 달리기를 통해 욕심의 얼굴을 새롭게 마주한다. 기록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더 잘 달리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든다. 즐거움으로 시작한 달리기가 어느새 증명해야 할 과제가 되고, 하루의 훈련을 빠뜨리면 괜한 불편함이 찾아온다. 부상 이후에야 스님은 그 사실을 직면한다. 몸이 신호를 보냈지만 마음이 듣지 않았다. 수행자도 집착을 피해 가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수행자이기에 더 깊이 그 올가미에 걸릴 수 있다. 정진한다는 자부심, 이 정도는 해낼 수 있다는 과신이 몸의 신호를 흐리게 한다. 스님은 회복력이야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中道)에 가장 가까운 감각이 아닐까 한다고 적는다. 극단을 피하고 지금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달리기에서도 삶에서도 오래가는 힘이다. 연장만 갈고닦지 말고 풀을 뽑으라는 도반의 글귀가 책 중반에 등장한다. 기록이 연장이 될 때도 있고, 침묵이 연장이 될 때도 있다. 손에 쥔 것이 무엇인가보다 그 손이 어디를 향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 달리기를 통해 스님이 배운 덜어냄의 진리다. 더 멀리 가기 위해 비워야 할 것이 있고, 오래가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다는 말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스님은 '레푸기움(refugium)'이라는 라틴어를 빌려 달리기의 의미를 정의한다. 피난처이자 휴식처. 그러나 도망치는 장소가 아니라, 다시 돌아오기 위한 자리. 달리고 나서 마음이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정돈된 상태가 된다는 표현이 정확하게 와닿는다. 무언가를 더 얻은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내려앉은 느낌. 이 레푸기움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다. 어떤 이에게는 오래된 책상이고, 어떤 이에게는 조용한 차 한 잔이며, 스님에게는 길 위에서 호흡과 발걸음이 나란히 이어지는 그 짧은 시간이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역할도, 이름도, 직함도 잠시 물러나고, 지금 이 순간의 자신으로만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달리는 동안 판단이 줄어들고, 잘하고 있는지 따지는 마음이 사그라든다. 길 위에서 회복한 것은 체력보다 감각이라는 스님의 말이 책의 핵심을 담는다. 지금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마음이 어디쯤 와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힘. 그 힘 덕분에 다시 수행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석정 스님의 인장에는 삼락자(三樂者)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다 한다.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 사람. 그 즐거움은 중이 된 일, 머리를 깎는 일, 국수 잡수시는 일. 어떤 대단한 성취도 아니고, 남보다 나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 자리에 있으면 되는 즐거움이다. 스님도 그림을 그리고 자전거를 탄다. 잘 그리지 못하고, 빠르게 달리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 시간이 좋다. 결과를 향한 욕심이 자연스럽게 빠져나가고, 지금 이 순간의 몸이 현재를 만끽하기 때문이다. 잘하지 않아도 되는 즐거움은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다. 거기서 우리는 비교를 내려놓고,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는 감각을 배운다. 마라톤도 그런 운동이다. 서브3만이 인정받는 경기가 아니라, 결승선을 통과한 모든 사람이 박수를 받는 드문 스포츠. 누군가에게는 생애 첫 10킬로미터가 다른 누군가의 풀코스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불교적 깨달음도 이와 닮았다고 스님은 말한다. 깨달음에는 등수가 없고, 속도가 빠르다고 더 옳지 않다.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삶을 온전히 통과해 냈을 때, 그만큼의 깊이가 주어진다.

책을 읽고 나면 달리기라는 행위가 달라 보인다. 빠르게 달리는 것, 오래 달리는 것, 멀리 달리는 것보다 어떤 마음으로 달리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스님은 몸으로 보여 준다. 수행도, 운동도, 나아가 삶도 결국은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라는 말이 오래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