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부리는 아이들 - AI 사교육 시대, 격차가 벌어지는 진짜 이유
김선형 지음 / 리프레시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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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얼마 전 초등학교 5학년 아이를 둔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애가 숙제를 너무 빨리 끝내요. 처음엔 기특했는데, 알고 보니 전부 AI가 써준 거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나는 한참 생각에 잠겼다. 문제는 아이가 AI를 썼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아이가 그 결과물을 자신의 것이라고 느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지금 매우 낯선 시대를 살고 있다. 모르는 것이 생겨도 30초면 정제된 답변이 화면 위에 펼쳐진다. 복잡한 수학 문제도, 긴 독후감도, 영어 에세이도 AI 앞에서는 순식간에 해결된다. 아이들은 이 편리함 속에서 자라고 있다. 그리고 어른들은 불안해한다. AI가 아이들의 사고력을 빼앗아 가는 것은 아닐까 하고. 그러나 나는 이 불안의 방향이 조금 어긋나 있다고 생각한다. 진짜 문제는 AI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아이가 AI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있다.

생각해보면, 생각의 외주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참고서의 해설지를 베껴 숙제를 낸 아이도 있었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답을 찾아 제출한 학생도 있었다. 도구만 바뀌었을 뿐, 불편한 사고의 과정을 피하려는 욕구는 늘 존재해왔다. 다만 AI는 그 욕구를 전례 없이 완벽하고 빠르게 충족시켜 준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예전의 도구들이 의존성에 적당한 마찰을 가했다면, AI는 그 마찰을 완전히 제거해버린다. 문제는 바로 이 '마찰의 소멸'에 있다. 학습은 본질적으로 불편한 과정이다. 모르는 것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답답함,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 연습장을 가득 채우는 시행착오, 흩어진 정보를 자신의 논리로 엮어내는 수고로움. 이 과정들이 뇌의 회로를 연결하고 사고의 근육을 만든다. 편리한 도구가 이 과정을 대신해줄수록, 아이의 뇌는 정보를 처리하는 공장이 아니라 결과를 확인하는 검수창구로 조금씩 퇴화할 위험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유창성의 착각'이라고 부른다. 타인이 정리한 논리를 눈으로 따라가면서 마치 자신이 이해한 것처럼 느끼는 현상이다. 아이가 AI의 풀이를 보며 "나도 알고 있었어"라고 느끼는 순간이 바로 그 착각의 순간이다. 화면이 꺼지면 그 이해는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된 적 없는 지식은 뇌에 뿌리내리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기를 빼앗는 것이 답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구를 금지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지 못한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아이가 그 도구 앞에서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를 가르치는 일이다. AI를 잘 활용하는 아이들을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AI에게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사고를 검증해달라고 요청한다. "내가 이렇게 풀었는데 논리적으로 맞는지 봐줘", "내가 쓴 글에서 어색한 부분이 어딘지 찾아줘"라고 묻는 것이다. 이 작은 차이가 학습의 주도권을 어디에 두느냐를 결정한다. 전자는 AI가 운전하는 차에 탑승한 승객이고, 후자는 AI를 조수석에 태운 운전자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백지 앞에서 굳어버리는 아이에게 "처음부터 혼자 써봐"라고 다그치는 것보다, AI가 쓴 초안을 건네며 "이 글에서 어색한 부분을 찾아볼래? 네 말투로 다시 고쳐줄 수 있어?"라고 요청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아이는 수동적인 작성자가 아니라 비판적인 편집자가 된다. 기계적인 문장과 살아있는 문장의 차이를 감별하고, 자신만의 경험과 감정을 덧붙이는 과정에서 진짜 문해력이 자란다. AI가 만들어낸 매끄러운 문장에서 "논리는 맞는데 재미가 없어요"라고 느끼는 순간, 그 아이는 이미 작가의 눈으로 텍스트를 읽고 있는 것이다. 수학에서는 더 선명하다. 정답을 맞혔다는 사실에서 멈추는 아이와, 정답 이후에 "이 풀이가 최선일까? 더 간단한 방법은 없을까?"라고 묻는 아이는 결국 전혀 다른 곳에 도달한다. 계산은 기계가 압도적으로 잘한다. 그러나 풀이의 방향을 설계하고, 여러 해법을 비교하며, 어떤 접근이 더 우아한지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부모의 역할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한국 교육에서 좋은 부모의 표상은 지식을 가르치고 스케줄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AI 튜터는 어떤 부모보다 친절하고 정확하게 설명하며, 같은 질문을 몇 번이고 반복해도 지치지 않는다. 스케줄 관리 역시 앱이 더 정확하다. 부모가 AI가 잘하는 영역에서 AI와 경쟁하려 할 때 갈등이 시작된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숙제 다 했니?"가 아니라 "오늘 공부하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게 뭐였어?"라고 묻는 것이다. "AI가 그렇게 말했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는 한 문장이 아이의 뇌를 다시 깨운다. 결과를 확인하는 관리자에서, 사고의 과정을 응원하는 코치로 자리를 옮기는 것. 그것이 이 시대 부모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전환이다. AI는 아이의 마음이 무너진 날 곁에 앉아 함께 있어줄 수 없다. 시험을 망치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돌아온 아이에게, 성적표보다 먼저 눈을 맞추는 것은 부모만이 할 수 있다.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것이 있다. 아이가 다시 일어서도록 마음을 붙들어주는 일, 그 일만큼은 어떤 AI도 대신할 수 없다.

결국 이 시대의 교육이 우리에게 묻는 것은 하나다. 아이가 AI를 쓰는 사람으로 머물 것인가, 아니면 AI를 부리는 사람으로 자랄 것인가. 그 차이는 도구의 성능에 달려 있지 않다. 아이가 도구 앞에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가에 달려 있다. 화면이 꺼지고, 인터넷이 끊기고, AI가 침묵한 그 자리에서도 자신의 언어로 생각을 꺼낼 수 있는 아이. 그 아이를 키우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교육의 본질이다. 편리함은 계속해서 더 완벽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아이에게 불편함을 견디는 힘을 물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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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 실리콘밸리, 워싱턴 D.C. 그리고 텍사스 - 토스증권 애널리스트가 직관한 미국의 핵심 기업과 산업
토스증권 리서치센터 외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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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한동안 숫자를 믿었다. PER, EPS, 매출 성장률, 영업이익률. 엑셀 시트 안에 가득 찬 숫자들을 들여다보면 마치 세상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국 주식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시를 찾아보고, 실적 발표 영상에 자막을 달아가며 이해하려 했고, 유명 애널리스트의 리포트를 프린트해 줄을 그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감각이 생겼다. 내가 읽고 있는 정보가, 이미 시장이 다 알고 있는 정보라는 느낌. 내가 아무리 열심히 들여다봐도, 어딘가 에서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이미 행동을 마친 이후라는 찜찜함. 그 감각의 정체를 이번에야 비로소 이해했다. 정보의 문제가 아니었다. 관점의 문제였다.

이번에 토스증권 애널리스트들이 쓴 탐방기를 읽으면서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부러움이 아니었다. 오히려 안도에 가까운 것이었다. 내가 막연히 느꼈던 그 공허함의 정체를 누군가가 정확하게 짚어주는 느낌. 공시와 뉴스로 얻을 수 있는 정보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넘어서려면 결국 발로 뛰어야 한다는 것. 물론 내가 직접 실리콘밸리로 날아가 애플 엔지니어를 만나거나, 워싱턴 D.C.의 싱크탱크 세미나에 참석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장을 다녀온 사람의 시선을 빌릴 수는 있다. 그리고 그 시선을 통해 내가 투자를 바라보는 방식을 다시 한번 점검해볼 수는 있다. 이 탐방기에서 애널리스트들이 가장 반복적으로 강조한 것은 놀랍게도 '정답'이 아니었다. 그들이 현지에서 가져오려 했던 것은 정보가 아니라 관점이라고 했다. 처음엔 당연한 말처럼 들렸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그 문장이 깊이 박혔다. 나는 그 동안 투자에서 정답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어떤 종목이 오를 것인가, 언제 사고 언제 팔아야 하는가. 하지만 진짜 투자의 내공은 정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입체적으로 감지하는 능력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현장을 직접 밟은 사람과 모니터만 들여다본 사람의 차이는, 결국 그 감지력의 차이일 것이다.

실리콘밸리 이야기를 읽을 때 나는 자율주행차 부분에서 한참 멈춰 있었다. 한국에서 자율주행은 여전히 뉴스 속 미래의 언어다. 언젠가는 올 기술, 아직은 멀었다는 전제가 깔린 이야기들. 그런데 현지 탐방에서 돌아온 애널리스트들의 감상은 달랐다. 테슬라와웨이모를 직접 타보고, 핸들을 놓은 채 목적지까지 이동하면서 체감한 것은 신기함만이 아니었다. 기술이 이미 생활 속에 녹아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숫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확신이다. 투자에서의 '체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생각했다. 내가 어떤 기업의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는 것, 그 서비스가 실제 사람들의 일상을 어떻 게 바꾸고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 그것이 수십 장의 리포트보다 강력한 투자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 물론 나는 당장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웨이모를 탈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사용하는 서비스, 내 주변 사람들이 열광하는 제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일상 속에도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워싱턴 D.C. 탐방기에서는 또 다른 층위의 깨달음이 있었다. 트럼프 2기 정부와 MAGA, 대중국 전략, DOGE. 나는 이 이야기들을 정치 뉴스로만 소비해왔다. 어떤 날은 관세 발표에 포트폴리오가 출렁이고, 어떤 날은 무역 협상 뉴스에 안도하며. 그렇게 날씨처럼 변하는 시장의 기분에 맞춰 나도 같이 흔들렸다. 그런데 탐방기는 그 흔들림 너머의 구조를 짚어주려 했다. 미국 우선주의는 트럼프 개인의 언어가 아니라, 미국이 국가적 위기감을 느낄 때마다 반복적으로 소환해온 역사적 반응이라는 것. 그것이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 중장기적 정책 기조라는 인식을 가지고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관점 하나가 나의 투자 태도를 실제로 바꿀 수 있다고 느꼈다. 뉴스 한 줄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큰 흐름 위에 나의 포지션을 어 디에 둘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것.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숲을 직접 걸어본 사람의 서술을 읽는 것만으로도,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조금씩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텍사스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가장 신선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미국 경제를 뉴욕과 실리콘밸리로만 상상해왔다. 월 스트리트의 금융과 빅테크의 기술, 그 두 축이 미국을 움직인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텍사스, 플로리다, 조지아, 워 싱턴주가 지금 뉴욕과 캘리포니아를 합친 것에 버금가는 경제적 무게를 가진 성장 거점이 되어가고 있다는 분석은 나의 지도를 다시 그리게 만들었다. 낮은 세금과 친기업 정책이 인재와 자본을 끌어당기고, 그것이 다시 인프라와 산업을 키우 는 선순환. 투자자로서 나는 그 지형의 변화를 제대로 보고 있었을까. 탐방기를 다 읽고 난 뒤, 나는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갖게 되었다. 보통 좋은 책이란 답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진짜 좋은 책은 더 좋은 질문을 갖게 해주는 책이라는 말이 있다. 이 탐방기는 확실히 후자에 속했다. Al 이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반이민 정책이 장기화되면 누가 수혜를 받고 누가 타격을 입을까. 우주 산업이 본격적인 투자 테마가 되는 시점은 언제일까. 에너지가 단순한 경제 변수가 아니라 안보 변수가 된 세상에서 어떤 기업이 살아남을까 의문이 들었다. 이 질문들에 나는 지금 당장 답하지 못한다. 아마 어떤 전문가도 완벽한 답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투자는 본질적으 로 불확실성을 다루는 일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불확실성을 더 잘 이해하고 관리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탐방기를 읽으며 느낀 것은, 그 불확실성을 제대로 직면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는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애널리스트들이 "탐방없는 리서치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할 때, 나는 그것이 직업인으로서의 원칙만이 아니라 투자자로서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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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초급 스페인어 문법 - 초급 학습자를 위한 기초 스페인어 문법서 [원어민 MP3+스페인어 필수 동사표 100 PDF]
BONA.시원스쿨 스페인어연구소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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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느 날 문득, 달력을 바라보다 깨달았다. 여름이 오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이 유난히 길어진 어느 오후, 나는 습관처럼 SNS를 스크롤하다 멈췄다. 새하얀 벽에 원색의 꽃들이 가득 피어 있고, 좁은 골목 사이로 황금빛 햇살이 쏟 아지는 사진 한 장. 그 아래 짧은 태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세비야 #스페인. 그 순간이었다. 심장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두근거렸다. 스페인. 언제나 막연하게 동경하면서도 한 번도 진지하게 꿈꿔본 적 없던 나라. 플라멩코의 붉은 드레스, 가우디의 화려한 건축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너머로 쏟아지는 빛. 그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떠 오르며 가슴 한편을 저릿하게 당겼다. 나는 그날, 조용히 결심했다. 올여름, 스페인으로 간다. 패키지가 아닌, 온전한 나만 의 자유여행으로.

결심은 쉬웠지만, 현실은 달랐다. 자유 여행이란 결국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식당에서 메뉴를 고르고, 길을 묻고, 작은 시장에서 흥정하는 일들. 영어조차 잘 통하지 않는 스페인의 작은 마을에서, 스페인어 한마디 모르는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그 생각이 설렘 위로 살며시 얹혔다. 나는 서점으로 향했다. 스페인어 코너 앞에 서서 한동안 책들을 바라봤다. 수십 권의 책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번에 읽을 기회가 있었던 책이 눈에 들어왔다.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표지. 손에 들고 첫 페이지를 펼쳤을 때, 이상하게도 겁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설렜다. 시원스쿨 스페인어 BONA 강사의 문법 입문서였다. 집에 돌아와 책을 천천히 살펴봤다. 이 책은 스페인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을 위해 A1에서 A2 수준의 기초 문법만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시중의 많은 문법서들이 초급부터 고급까지 한 권에 담으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초보 학습자에게는 벽이 된다는 걸 이 책은 정확히 짚고 있었다. 기초 중의 기 초, 그것만 제대로 파고드는 책. 그 단순하고 명확한 방향이 마음에 들었다.

책의 구성도 인상적이었다. 매 과는 '오늘의 문장 오늘의 문법+ 상황별 예문 QUIZ로 확인하기 + 오늘의 핵심' 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이론을 익히고, 예문으로 확인하고, 문제로 복습하는 구조.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반복하면서 문법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도록 설계된 커리큘럼이었다. 초보 학습자가 가장 어려워한다는 동사 변형과 시제도 Bonus Track 코너를 통해 손으로 직접 써 내려가며 익힐 수 있었다. 공부를 시작한 첫날, 나는 동사 변형표를 손으로 옮겨 적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손가락이 생각보다 빨리 아파왔지만, 그 아픔이 싫지 않았다. '내가 지금 정말 무언가를 배우고 있구나'라는 실감이 났다. 각 과 마지막에 정리된 필수 어휘 덕분에 따로 사전을 뒤적이지 않아도 됐고, 수업 흐름이 끊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를 책 앞에 붙잡아 둔 것은 원어민 MP3였다. 이어폰을 끼고 '오늘의 문장'과 '상 황별 예문'의 음성을 들으며 따라 읽을 때, 스페인어가 활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언어로 느껴졌다. 처음에는 혀가 꼬이던 발음들이 조금씩 자연스러워지는 게 신기했다. 함께 제공되는 필수 동사표100 PDF는 출력해서 책상 위에 붙여 두었다. 밥을 먹다가도, 잠들기 전에도 눈길이 갔다. 어느 날은 자다 깨서 동사 변형이 중얼거려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혼자 웃기도 했다. 매일 저녁, 퇴근 후 씻고 나서 책상 앞에 앉는 것이 루틴이 됐다.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시 간이 스페인어 예문을 소리 내어 읽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 "Buenos dias." ":Como estas?" 그 말들이 입 안에서 굴러가는 느낌이 좋았다. 서툰 발음이지만, 소리를 낼 때마다 스페인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달력을 꺼내 여름까지 남은 날들을 세어봤다. 다섯 달 남짓. 완벽한 스페인어를 구사하겠다는 욕심은 없다. 세비야의 작은 타파스 바에서 자신 있게 메뉴를 주문하고, 길을 잃었을 때 근처 사람에게 용기있게 길을 물을 수 있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서툰 스페인어 한 마디가 완벽한 영어 문장보다 그 나라 사람의 마음에 더 가깝게 닿을 때가 있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생각해보면, 스페인 여행은 이미 시작됐다. 비행기에 오르는 그 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책상 앞에서. 서툴게 발음을 따라 읽고, 동사 변형표를 손으로 써 내려가고, 예문 속 문장의 뜻을 하나씩 헤아리는 이 모든 순간들이 이미 여행의 일부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그 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를 깎는 일이다. 아직 거칠고 투박하지만, 조금씩 모양을 갖춰가고 있다. 여름이 오면, 나는 스페인의 햇살 속에 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용감하고, 조금 더 자 유로운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 여름을 향해, 오늘도 책을 펼친다. "'Va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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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교실 - AI 시대, 학교가 물어야 할 독서와 문해력 수업의 모든 것
조병영 지음 / 해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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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점점 더 많은 것을 읽고 쓰는 세상에서, 역설적으로 인간이 직접 읽는 행위의 가치는 더 커진다. 왜냐하면 AI는 읽으면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AI에게 읽기는 연산이지만, 인간에게 읽기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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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교실 - AI 시대, 학교가 물어야 할 독서와 문해력 수업의 모든 것
조병영 지음 / 해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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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늘날 생성형 AI는 수십 페이지의 논문을 3초 만에 요약하고, 맥락에 맞는 글을 유려하게 생산한다. 많은 학생들이 독후감을 AI에게 맡기고, 직장인들은 보고서 초안을 AI로 대신한다. 표면적으로는 효율의 문제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효율 뒤에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 읽는다는 것은 정보를 두뇌에 입력하는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능동적인 독서는 텍스트를 마주하는 순간, 자신의 경험과 기억, 감정과 편견을 텍스트 속으로 끌어들인다.'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 '나도 비슷한 아픔이 있었는데 ,'이건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구나‘ 등 이 내밀한 독백의 연쇄가 바로 읽기의 본질이다. AI가 요약해준 텍스트에는 이 과정이 없다. 결과만 있을 뿐, 자기와의 만남이 없다. 읽기가 곧 자기 성찰의 과정이라고 할 때, Al에게 읽기를 위탁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타인에게 내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의 교육 현장의 경우는 어떨까? AI 시대 문해력을 위한 독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책은 그 해 답을 진지하게 이야기 한다.

'부동산 리터러시', '비트코인 리터러시'라는 말이 유행처럼 쓰인다.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리터러시를'특정 분야의 지식을 아는 것'으로 축소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리터러시의 본질은 지식이 아니라 실천(Practice)이다. 부동산이라는 주제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충돌, 누군가의 이익이 다른 누군가의 손실로 이어지는 구조, 그 안에서 개인과 사회가 어떻게 엮이는가를 읽어내고 판단하는 능력. 이것이 진짜 리터러시다. 이 차이는 교실 설계에서도 결정적인 함의를 갖는다. 지식을 전달 하는 교실과 실천을 도모하는 교실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자는 교사가 중심이 되고 학생은 수신자가 된다. 후자는 학생이 텍스트 앞에서 스스로 질문하고, 의심하고, 연결하는 주체가 된다. 생성형 AI 시대의 역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 다. AI는 지식 전달 측면에서는 교사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다. 그렇다면 교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교실이 AI보다 잘 할 수 있는 것, 아니 교실만이 할 수 있는 것은 학생이 텍스트와 자기 자신 사이에서 벌어지는 씨름을 경험하게 하는 일이 다. 특목고 수업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깊다. 논리적 분석은 완벽하게 해내면서도, "선생님, 왜 이런 걸 읽혀요?"라고 묻는 학생들. 그들은 텍스트를 분석하는 법은 배웠지만, 텍스트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텍스트를 '문제'로 풀 줄은 알지만, 텍스트와 '대화'하는 경험은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읽는 교실이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다.

읽는 교실은 정답을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다. 질문을 키우는 공간이다. '이 글의 주제문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이 글에서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고, 누구의 목소리가 지워져 있는가'를 묻는 공간. 텍스트를 읽기 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적고, 읽은 후 변화한 자신을 확인하는 공간, '이대남 관련 칼럼'을 읽으면서 거기 담기지 않은 목소리를 의식적으로 찾아보는 공간. 이런 교실에서 학생들은 텍스트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첨예하게 분열되어 있다. 젠더, 세대, 정치 이념을 둘러싼 갈등은 인터넷 공론장에서 날마다 격화된다. 자신의 의견과 다른 주장은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된다. 정치인은 일곱 글자짜리 문장으로 여론을 흔들고, 그 한 줄이 아무런 근거도 논리도 없이 수십만 명의 공감을 얻는다. 이 풍경의 근저에는 읽기 훈련의 부재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동의하는 것만 읽고, 동의하지 않는 텍스트는 열어보기도 전에 닫아버린다. 디지털 알고리즘은 이 경향을 더욱 가속화한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정보 거품 속에서 자신의 확신만 더 견고하게 쌓아올린다. 읽는 교실이 이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방식은 바로 '불편한 텍스트를 읽는 연습'이다. 이것은 나와 다른 의견을 무조건 수용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상대의 논리 구조를 이해하고, 그 안에 담긴 경험과 맥락을 파악하며, 내 논리의 얄팍한 부분을 직면하는 것이다. 빨간 펜을 들고 허점을 찾으러 읽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깊고 분석적으로 읽어보는 것. 이 연습이 쌓일 때 비로소 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 생성형 AI 시대는 이 훈련을 더 어렵게 만든다. AI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글을 요약하고 편집해준다. Al에게 "이 글의 문제점을 찾아줘"라고 요청하면, AI는 내 기대에 부응하는 답을 내놓는다. 이 편안한 확증 구조 속에서 불편함을 견디는 능력은 더욱 빠르게 약해진다. 그러므로 교실은 의도적으로 불편함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학생 이 당연하게 여기던 것에 질문을 던지고,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관점의 텍스트를 손에 쥐어주고, 그 낯설음 속에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해야 한다. 이 과정은 느리고 때로는 갈등을 유발한다. 그러나 그 느림과 갈등이야말로 리터러시가 자라나는 토양이다.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말은 어떤 세대가 디지털 공간에서 태어났다는 뜻이지, 그 공간을 올바르게 사용 하는 능력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과, 스마트폰을 통해 유통되는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읽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이다. 읽는 교실은 바로 이 간극을 메우는 곳이다.


AI가 점점 더 많은 것을 읽고 쓰는 세상에서, 역설적으로 인간이 직접 읽는 행위의 가치는 더 커진다. 왜냐하면 AI는 읽으면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AI에게 읽기는 연산이지만, 인간에게 읽기는 경험이다. 그 경험 속에서 우리는 어제의 자신과 다른 사람이 된다. 믿었던 것을 의심하고, 몰랐던 세계를 마주하고, 다른 삶의 결을 느낀다. 읽는 교실은 이 경험이 일어나 는 장소여야 한다. 정답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학생이 텍스트와 자기 자신 사이에서 질문을 키워가는 곳. 연필을 꽂아 두고, 밑줄을 긋고, 불편함을 견디며, 내가 이 텍스트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곳이다. 아이가 처음 책을 손에 쥐었을 때의 그 신기함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것을 회복하려는 의지를 잃었을 뿐이다. 읽는 교실은 그 의지를 되살리는 일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의지를 가진 독자들이 한 명, 또 한 명 늘어날 때 , 한 줄짜리 혐오가 아닌, 맥락이 있는 대화가 가능한 사회에 조금씩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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