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습니다! : 실리콘밸리, 워싱턴 D.C. 그리고 텍사스 - 토스증권 애널리스트가 직관한 미국의 핵심 기업과 산업
토스증권 리서치센터 외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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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한동안 숫자를 믿었다. PER, EPS, 매출 성장률, 영업이익률. 엑셀 시트 안에 가득 찬 숫자들을 들여다보면 마치 세상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국 주식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시를 찾아보고, 실적 발표 영상에 자막을 달아가며 이해하려 했고, 유명 애널리스트의 리포트를 프린트해 줄을 그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감각이 생겼다. 내가 읽고 있는 정보가, 이미 시장이 다 알고 있는 정보라는 느낌. 내가 아무리 열심히 들여다봐도, 어딘가 에서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이미 행동을 마친 이후라는 찜찜함. 그 감각의 정체를 이번에야 비로소 이해했다. 정보의 문제가 아니었다. 관점의 문제였다.

이번에 토스증권 애널리스트들이 쓴 탐방기를 읽으면서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부러움이 아니었다. 오히려 안도에 가까운 것이었다. 내가 막연히 느꼈던 그 공허함의 정체를 누군가가 정확하게 짚어주는 느낌. 공시와 뉴스로 얻을 수 있는 정보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넘어서려면 결국 발로 뛰어야 한다는 것. 물론 내가 직접 실리콘밸리로 날아가 애플 엔지니어를 만나거나, 워싱턴 D.C.의 싱크탱크 세미나에 참석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장을 다녀온 사람의 시선을 빌릴 수는 있다. 그리고 그 시선을 통해 내가 투자를 바라보는 방식을 다시 한번 점검해볼 수는 있다. 이 탐방기에서 애널리스트들이 가장 반복적으로 강조한 것은 놀랍게도 '정답'이 아니었다. 그들이 현지에서 가져오려 했던 것은 정보가 아니라 관점이라고 했다. 처음엔 당연한 말처럼 들렸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그 문장이 깊이 박혔다. 나는 그 동안 투자에서 정답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어떤 종목이 오를 것인가, 언제 사고 언제 팔아야 하는가. 하지만 진짜 투자의 내공은 정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입체적으로 감지하는 능력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현장을 직접 밟은 사람과 모니터만 들여다본 사람의 차이는, 결국 그 감지력의 차이일 것이다.

실리콘밸리 이야기를 읽을 때 나는 자율주행차 부분에서 한참 멈춰 있었다. 한국에서 자율주행은 여전히 뉴스 속 미래의 언어다. 언젠가는 올 기술, 아직은 멀었다는 전제가 깔린 이야기들. 그런데 현지 탐방에서 돌아온 애널리스트들의 감상은 달랐다. 테슬라와웨이모를 직접 타보고, 핸들을 놓은 채 목적지까지 이동하면서 체감한 것은 신기함만이 아니었다. 기술이 이미 생활 속에 녹아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숫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확신이다. 투자에서의 '체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생각했다. 내가 어떤 기업의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는 것, 그 서비스가 실제 사람들의 일상을 어떻 게 바꾸고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 그것이 수십 장의 리포트보다 강력한 투자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 물론 나는 당장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웨이모를 탈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사용하는 서비스, 내 주변 사람들이 열광하는 제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일상 속에도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워싱턴 D.C. 탐방기에서는 또 다른 층위의 깨달음이 있었다. 트럼프 2기 정부와 MAGA, 대중국 전략, DOGE. 나는 이 이야기들을 정치 뉴스로만 소비해왔다. 어떤 날은 관세 발표에 포트폴리오가 출렁이고, 어떤 날은 무역 협상 뉴스에 안도하며. 그렇게 날씨처럼 변하는 시장의 기분에 맞춰 나도 같이 흔들렸다. 그런데 탐방기는 그 흔들림 너머의 구조를 짚어주려 했다. 미국 우선주의는 트럼프 개인의 언어가 아니라, 미국이 국가적 위기감을 느낄 때마다 반복적으로 소환해온 역사적 반응이라는 것. 그것이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 중장기적 정책 기조라는 인식을 가지고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관점 하나가 나의 투자 태도를 실제로 바꿀 수 있다고 느꼈다. 뉴스 한 줄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큰 흐름 위에 나의 포지션을 어 디에 둘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것.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숲을 직접 걸어본 사람의 서술을 읽는 것만으로도,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조금씩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텍사스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가장 신선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미국 경제를 뉴욕과 실리콘밸리로만 상상해왔다. 월 스트리트의 금융과 빅테크의 기술, 그 두 축이 미국을 움직인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텍사스, 플로리다, 조지아, 워 싱턴주가 지금 뉴욕과 캘리포니아를 합친 것에 버금가는 경제적 무게를 가진 성장 거점이 되어가고 있다는 분석은 나의 지도를 다시 그리게 만들었다. 낮은 세금과 친기업 정책이 인재와 자본을 끌어당기고, 그것이 다시 인프라와 산업을 키우 는 선순환. 투자자로서 나는 그 지형의 변화를 제대로 보고 있었을까. 탐방기를 다 읽고 난 뒤, 나는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갖게 되었다. 보통 좋은 책이란 답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진짜 좋은 책은 더 좋은 질문을 갖게 해주는 책이라는 말이 있다. 이 탐방기는 확실히 후자에 속했다. Al 이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반이민 정책이 장기화되면 누가 수혜를 받고 누가 타격을 입을까. 우주 산업이 본격적인 투자 테마가 되는 시점은 언제일까. 에너지가 단순한 경제 변수가 아니라 안보 변수가 된 세상에서 어떤 기업이 살아남을까 의문이 들었다. 이 질문들에 나는 지금 당장 답하지 못한다. 아마 어떤 전문가도 완벽한 답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투자는 본질적으 로 불확실성을 다루는 일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불확실성을 더 잘 이해하고 관리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탐방기를 읽으며 느낀 것은, 그 불확실성을 제대로 직면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는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애널리스트들이 "탐방없는 리서치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할 때, 나는 그것이 직업인으로서의 원칙만이 아니라 투자자로서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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