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환자들이 시골 병원으로 오십니다 - 〈내과의사 사이먼〉의 기능의학 처방전
오기창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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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시의 빌딩 숲에서 살아가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몸의 신호를 무시하는 법을 배웠다. 피곤하면 커피로, 아프면 진통제로, 잠이 오지 않으면 수면제로 해결하는 것이 당연해진 삶의 연속이다. 그런 일상 속에서 오기창 원장의 이 책을 만났을 때,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고향집 마당의 우물물을 마시는 듯한 느낌이었다. <래서 환자들이 시골 병원으로 오십니다>. 제목부터가 궁금증을 자아낸다. 왜 환자들이 시골 병원으로 가는 것일까? 첨단 의료장비와 전문의들이 즐비한 대형 병원들을 두고 말이다. 그 답은 책을 읽어가며 서서히 드러난다. 그곳에는 몸을 부분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로서 전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이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집중한다면, 기능의학은 건강을 유지하고 증진시키는 데 초점을 둔다. 이는 단순한 접근법의 차이가 아니라, 근본적인 철학의 차이다. 증상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 약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몸 스스로의 치유력을 깨우는 것이다. 저자는 인체의 30조 개 세포 하나하나가 끊임없이 손상과 복구를 반복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복구보다 손상이 많아질 때 질병이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이 말을 읽으며, 문득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얼마나 세포에게 가혹한지 떠올랐다. 불규칙한 식사, 만성적인 수면 부족, 끝없는 스트레스. 이 모든 것들이 세포 단위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전쟁의 결과라는 사실이 새삼 와닿았다.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식탁혁명'이다. 음식이 곧 나를 만든다는 말이 이토록 절실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백미 대신 현미를, 가공식품 대신 자연식품을 선택하는 것이 단순한 건강 트렌드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간헐적 단식에 대한 부분이었다. 아침을 굶을 것인가, 저녁을 굶을 것인가에 대한 명쾌한 답변이 있어서 실용적이었다. 우리의 생체리듬과 호르몬 분비 패턴을 고려할 때, 저녁보다는 아침을 거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트랜스지방에 대한 경고도 깊이 새겨들었다. '트랜스지방 0g'이라고 표기된 제품에도 실제로는 미량의 트랜스지방이 들어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이런 작은 거짓들이 쌓여서 우리의 혈관을 서서히 망가뜨리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고와 사망을 부르는 미세 수면'이라는 제목을 보며 섬뜩함을 느꼈다. 졸음운전의 위험성은 알고 있었지만, 단순히 피곤함의 문제로만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을 뇌가 보내는 위험신호로 해석한다. 수면 부족이 단순히 컨디션 난조가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했다. 잠의 첫 3시간이 중요하다는 설명도 인상적이었다. 이 시간 동안 성장호르몬이 분비되고 뇌의 노폐물이 배출된다니, 수면의 질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수면 시간만 신경 썼지 수면의 질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저자가 제시하는 8가지 건강혁명 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와닿은 것은 '면역혁명'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면역력의 중요성을 절감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면역력을 키워야 하는지는 막연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면역력이라는 것이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우리 몸이 원래 가지고 있던 자연스러운 능력임을 알게 되었다. 백혈병 환자가 약한 면역을 지키는 두 가지 지혜라는 부분에서는 질병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와 몸의 복원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극한 상황에서도 몸은 스스로를 지키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었다.


비타민C, 비타민D, 요오드. 이 세 가지 영양소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것들이 많았다. 특히 비타민C에 대한 부분은 놀라웠다. 괴혈병으로 죽어간 선원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현대인의 돌연사까지 연결하는 서술은 역사와 의학을 오가며 흥미진진했다. 젊은이들의 돌연사나 과로사가 현대판 괴혈병이라는 해석은 충격적이었다. 과거에는 비타민C를 섭취할 수 없어서, 현재는 너무 많이 소모해서 결핍이 온다는 것. 결국 원인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는 통찰이 깊이 인상에 남았다. 요오드에 대한 정보도 새로웠다. 갑상선에만 필요한 것으로 알았던 요오드가 실제로는 전신의 다양한 기능에 관여한다는 사실, 그리고 해조류를 많이 먹는 한국인들조차 요오드 부족일 수 있다는 점은 의외였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큰 변화를 느낀 부분은 약물에 대한 인식이었다. 무조건 약이 나쁘다거나 좋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약물의 역할과 한계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콜레스테롤 약인 스타틴에 대한 설명이나, 당뇨약을 끊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부분들은 희망적이었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절망감에서 벗어나,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약물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주었다. 특히 고혈압약에 대한 부분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의 사례를 든 것은 인상적이었다. 당시에는 혈압약이 없어서 고혈압으로 사망했지만, 현재는 오히려 혈압약의 부작용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 의학 기술의 발전이 반드시 인간의 건강 증진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역설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중금속 배출 치료인 킬레이션에 대해서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혈관질환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설명을 읽으며, 현대 의학에서 주목받지 못하지만 실제로는 유효한 치료법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관상동맥이 좁아진 환자가 킬레이션 치료 후 증상이 호전된 사례는 인상적이었다. 스텐트 시술 대신 킬레이션으로 호전될 수 있다는 것은 환자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침습적인 수술 없이도 혈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었다.


위암 발병률 세계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가진 우리나라의 현실을 마주하며 씁쓸했다. 하지만 헬리코박터균에 의한 위암이 항생제로 치료 가능하다는 사실은 희망적이었다. 완치율이 80%라는 수치는 놀라웠다. 진통제를 장기 복용하는 사람들이 헬리코박터균 보균자인 경우 궤양 발병률이 50배나 높다는 통계는 충격적이었다. 두통이나 관절통 때문에 습관적으로 진통제를 복용하던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했다. 말기암 사망률보다 높은 골다공증 골절 사망률이라는 표현을 보며 경각심을 느꼈다. 뼈 건강을 단순히 노인 문제로만 여겼는데, 젊을 때부터 준비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했다. 골다공증이 뼈에 구멍이 많아서가 아니라는 설명도 새로웠다. 뼈의 질 자체가 문제라는 것, 그리고 이것이 심근경색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은 뼈 건강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치매와 파킨슨병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부모님 세대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다. 하지만 뇌 노폐물 배설이 치매 예방의 핵심이라는 설명을 보며, 예방 가능한 질병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효과는 강력하지만 돈 걱정 없는 치매 치료제 3가지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비싸고 복잡한 치료법이 아니라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방법들로 뇌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책을 덮으며 머릿속에는 구체적인 실천 계획들이 그려졌다. 백미를 현미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서, 비타민C와 비타민D 보충, 규칙적인 수면 패턴 만들기까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작은 습관들의 누적이 건강을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간헐적 단식을 시도해보고 싶어졌다. 16:8 방식으로 아침을 거르고 점심과 저녁만 먹는 패턴을 일주일이라도 시도해보려고 한다. 몸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 책은 건강 정보서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었다. 질병을 바라보는 시각, 몸과 마음의 관계, 자연과 인간의 조화에 대한 철학적 사유까지 담고 있었다. 저자의 15년간의 임상 경험이 녹아있는 생생한 사례들은 읽는 재미를 더했다. 무엇보다 '몸속 최고의 의사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메시지가 인상 깊었다. 외부의 치료에 의존하기보다는 내 몸의 자연치유력을 믿고 키워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건강의 비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동 지리산 자락의 작은 병원으로 전국에서 환자들이 찾아오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그곳에는 몸을 기계처럼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로서 존중하고 보살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야말로 최고의 치료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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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로드 - 시선과 기록이 만드는 길
박환이 지음 / 책과강연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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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책과의 만남은 책을 읽기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그것은 삶의 방향을 재정의하는 나침반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막막한 현실 앞에서 한 줄기 빛이 되어 우리를 이끌기도 한다. 이번에 읽을 기회가 있었던 박환이의 《더 로드》는 바로 그런 책이었다. "보물은 운이 아니다. 시선과 기록으로 길을 그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결과다." 처음 마주했을 때, 내 안에서 무언가가 움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막연히 품고 있던 꿈들,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 하며 미뤄왔던 계획들, 그리고 현실의 벽 앞에서 포기해버린 수많은 가능성들이 한순간에 떠올랐다. 저자가 말하는 '시선과 기록'이라는 도구가 어떻게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그 궁금증은 곧 확신으로 바뀌었다.

저자의 경험은 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군 복무 중 소대장 시절의 이야기를 전군에 알리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을 포스트잇에 적어 벽에 붙여두었던 것. 그로부터 2년 후, 그 바람은 500명이 모인 자리에서의 발표로 현실이 되었다.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일까? 아니다. 매일 그 포스트잇을 바라보며 무의식 속에서 그 목표를 향한 준비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망상활성화계(Reticular Activating System)의 작용이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정보를 선별하여 의식으로 끌어올리는 뇌의 필터링 시스템. 목표를 시각화하고 지속적으로 바라볼 때, 뇌는 그 목표와 관련된 기회와 정보를 놓치지 않게 된다.

삶은 늘 순탄하지 않다. 저자 역시 영구장해라는 예상치 못한 시련을 마주했다. 베테랑 탐험가에서 병실 환자로, 극적인 상황 변화 앞에서 그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죽지 않았잖아. 머리는 괜찮고, 오른발도 붙어 있잖아." 작은 감사에서 시작된 그의 재정비는 깊은 통찰로 이어졌다. 위기를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받아들인 것. 그리고 그 멈춤을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준비 시간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지혜다. 실패, 좌절, 예상치 못한 변화 앞에서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을 끝으로 볼 것인가, 새로운 시작으로 볼 것인가. 저자의 경험은 후자의 힘을 보여준다. 시선과 기록이라는 도구는 위기의 순간에도 우리가 방향을 잃지 않게 도와준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론은 놀랍도록 간단하다. 보물지도(시각화된 목표)와 탐험일지(일일 기록), 단 두 가지 도구면 충분하다. 하지만 이 단순함 속에 깊은 지혜가 숨어있다. 보물지도는 우리의 꿈과 목표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글자로 된 목록이 아니라, 이미지와 색깔, 그림으로 구성된 생생한 미래의 모습. 이를 매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뇌는 그 방향으로의 변화를 시작한다. 탐험일지는 매일의 여정을 기록하는 공간이다. 목표를 향한 작은 진전, 마주한 도전, 느낀 감정들을 솔직하게 적어나간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패턴을 발견하고, 효과적인 전략을 찾아간다.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지속성이다. 매일 5분이라도 좋으니 보물지도를 바라보고, 한 줄이라도 좋으니 탐험일지에 기록하는 것. 작은 습관이 쌓여 큰 변화를 만든다는 것을 저자는 자신의 경험으로 증명했다.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 저자가 던지는 질문이 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미지의 영역이 있지 않을까?" 이는 나이를 불문하고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는 질문이다. 익숙한 테마파크를 벗어나 진짜 탐험을 시작하는 것.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삶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길을 걷는 것. 저자는 이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말한다. 물론 쉽지 않다. 익숙함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은 언제나 두렵고 불안하다. 하지만 시선과 기록이라는 도구가 있다면, 그 미지의 여행도 충분히 가능하다. 나침반과 일지가 있는 탐험가처럼, 우리도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갈 수 있다. 결국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삶은 이미 보물섬이라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물을 찾아 떠나는 용기가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있는 보물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지혜다. 시선과 기록은 그 지혜를 실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복잡한 이론이나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누구나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는 단순한 습관. 하지만 그 습관이 쌓여 만들어내는 변화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매일 아침 보물지도를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매일 저녁 탐험일지에 그날의 여정을 기록하는 것. 이 작은 루틴이 어떻게 인생을 바꿀 수 있을지 상상해보라. 15년간 38개 중 33개의 보물을 현실로 만들어낸 저자의 경험이 그 가능성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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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관계 수업
정다원 지음 / 모티브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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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많은 부부들이 이 진실을 결혼생활을 통해 깨닫게 된다.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과 사랑만으로는 평생을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일상의 크고 작은 갈등들 속에서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의 부부교육 전문가의 27년 결혼생활과 10년간의 상담 경험을 통해 부부관계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녀 역시 처음부터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린 것은 아니었다.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심리학이라는 거울을 마주하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엄마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도 행복할 수 없다"는 강력한 진실이 그녀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청소년 상담을 하면서 그녀가 절실히 느낀 것은, 아무리 좋은 상담을 받아도 집으로 돌아간 아이를 맞이하는 부모의 언어가 건강하지 않다면 진정한 회복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는 곧 부부관계의 중요성으로 이어졌다. 감정이 망가진 부부 사이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느낌으로 학습한다. 따라서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라도 부부관계의 회복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혼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을 넘어서는 개념임을 이해해야 한다. 진정한 결혼은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주는 관계이다. 배우자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누구보다 먼저 곁을 지키고, 마음을 다독이며 지지해주는 심리적, 정서적 보호자가 되는 것이 핵심이다. 혼자였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도 배우자가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된다. 서로를 보호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약점을 감싸주고, 어려움 속에서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계에서 집에 돌아와 배우자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혼생활은 진정한 어른이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들, 사소한 말다툼이 큰 갈등으로 번지는 상황들을 마주하면서 우리는 성숙해진다. 각자가 가진 크고 작은 욕구와 욕망을 그대로 표출하기보다 스스로 다스릴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다. 부부는 서로에게 득이 되는 관계여야 한다. 단순히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더 단단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과정이 결혼이다. 경제적 공동체로서 함께 성장하고, 심리적으로도 서로를 지지하며 발전시키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부부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서로의 성향을 이해하는 것이다. W.N.P.M이라는 성향 심리 체계를 통해 우리는 자신과 배우자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이 체계는 인간의 성향을 여덟 가지로 분류하여 각각의 특성과 행동 양식을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이 배우자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줄 때 크게 상처받는다고 말한다. 상대가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외면했을 때, 우리는 서운함과 함께 깊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말투 하나, 전달 방식 하나에도 감정은 쉽게 상할 수 있다. 상의하지 않고 혼자 결정할 때, 배려가 부족할 때, 대화가 단절될 때, 그 모든 것이 감정을 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감정의 상처가 꼭 사랑이 식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개인적 성향이나 과거 경험, 현재의 스트레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결혼을 하면 더 이상 익숙한 방식만 고집할 수 없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조율하고 변화해야 한다. 경제 문제와 생활습관, 양가가족과의 관계, 육아, 성생활 등 모든 영역에서 유연한 태도와 배려가 필요하다.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서로를 배려하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 기본적인 자세다. 건강하고 행복한 부부관계는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그래서 끊임없는 부부관계 공부가 필요하다.

자녀 교육 문제는 많은 부부들에게 주요한 갈등 요소가 된다. 부모로서 아이가 세상의 풍파에 잘 견뎌낼 수 있도록 자존감 높은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지만, 교육 방법에 대한 의견은 다를 수 있다. 아이의 성적이 노력만큼 따라주지 않을 때 걱정스러운 대화가 의견충돌로 이어지고,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부부가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어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건강한 관계가 아이에게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보다 관계에서 더 많은 것을 학습한다. 따라서 아이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서라도 부부관계의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

부부관계 개선의 첫걸음은 서로의 성향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W.N.P.M 성향 체계를 통해 나와 배우자의 특성을 파악하고, 각각의 갈등 패턴과 해결책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지중해 성향의 배우자를 둔 경우라면 그들의 헌신적인 성격과 동시에 내재된 섭섭함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남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이를 단순히 비판하기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심리를 이해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서는 상대방의 성향에 맞는 대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논리적 설득이 효과적인 성향이 있는가 하면, 감정적 공감이 더 중요한 성향도 있다. 획일적인 접근보다는 상대방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소통이 필요하다. 또한 갈등 상황에서는 즉각적인 반응보다는 잠시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는 건설적인 대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부부관계는 한 번 좋아지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영역이다. 개인의 성장과 변화에 따라 관계도 계속해서 조율되어야 한다. 정기적인 대화 시간을 갖고, 서로의 변화와 성장을 나누며, 함께 발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단순한 문제 해결을 넘어서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결혼은 함께 걸어가는 여정이다. 이 여정에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갈등과 어려움을 만나게 되지만, 동시에 성장과 성숙의 기회도 얻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을 혼자가 아닌 함께 겪어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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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의 원리 - 신비한 자연과 직립보행의 만남
이환종.조태봉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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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종종 삶의 속도에 지쳐간다. 빌딩 숲 속에서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며,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우리 안에서 무언가가 갈증을 호소한다. 바로 '걷기'에 대한 원초적 욕구다. 이번에 읽을 기회가 있었던, 이환종과 조태봉이 공저한 『트레킹의 원리』는 트레킹 기법을 전수하는 매뉴얼을 넘어서, 걷기라는 행위가 지닌 철학적 깊이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종합적인 인문서다. 43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트레킹이 레저 활동만이 아닌, 인간 존재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생명 활동임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저자들은 트레킹의 근원을 인류의 진화사에서 찾는다. 수백만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걸었고, 이러한 보행 유전자가 현재의 우리에게도 면면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유전자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책 속 인용구는 다소 자극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는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현대인이 느끼는 트레킹에 대한 갈망은 단순한 취미나 유행이 아니라, 수천 세대에 걸쳐 축적된 유전적 정보가 요구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해석이다. 특히 '바이오필리아(Biophilia) 가설'을 통해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의 본질을 설명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나무와 녹지가 사람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면서 인지력을 증강시킨다는 과학적 사실은,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이 왜 산과 들로 향하는지를 명확히 해준다. 저자들은 리처드 도킨스의 '밈(meme)' 개념을 차용해 트레킹을 분석한다. 밈이란 유전자와 구별되는 문화적 복제의 기본 단위로, 트레킹 문화 역시 하나의 강력한 밈으로 작용하여 현대 사회에 확산되고 있다는 관점이다. 이러한 접근은 트레킹을 개인적 취향의 영역에서 끌어올려, 인류 문화사의 맥락에서 바라보게 한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트레킹이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는 개념을 통해, 사람이 아무런 인지 활동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부위가 평소 연결되지 못하는 뇌의 각 부위를 연결시켜 통찰력을 이끌어낸다고 설명한다. 이는 니체의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는 명언과 일맥상통한다. 걷기라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가 오히려 창의적 사고와 깊은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독일 철학자 틸리히의 구분을 인용하여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이라고 정의한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트레킹은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자신과의 진정한 대화가 가능해진다는 해석이다. 몽테뉴의 말을 빌려 "휴식의 의미를 홀로 있는 고독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 대목에서는, 현대인들이 놓치고 있는 진정한 휴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트레킹이 신체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은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폐와 심혈관 기능 강화, 지방 제거, 면역력 강화, 두뇌 건강 향상, 뼈 건강, 근력 및 근지구력 향상, 우울증 치료, 암 예방 등 트레킹이 가져다주는 건강 효과는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이다. 특히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각종 성인병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자연스럽게 해소할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에서, 트레킹은 개인의 건강관리는 물론 사회적 의료비 절감에도 기여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다.

트레킹의 구체적인 기술과 방법도 이야기 해준다. 올바른 걷기 자세부터 시작해서 트레킹 폴 사용법, 독도법, 배낭 꾸리기, 백패킹 실전, 극한 상황 대처법까지 실전에서 필요한 모든 정보를 망라한다. 특히 트레킹 폴 사용법을 평지, 오르막길, 내리막길, 돌다리나 계곡 건널 때 등 상황별로 세분화해서 설명한 부분은 매우 실용적이다. 또한 발에 물집이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트레킹용 양말 안에 얇은 폴리에스테르 양말을 함께 신으라는 조언 같은 세심한 팁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초보자들에게는 든든한 지침서 역할을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나 당장 트레킹을 시작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무작정 히말라야나 안데스 산맥으로 떠날 수는 없는 법. 저자들도 강조하듯이 "집 주변과 가까운 산책로를 걷거나 산행을 떠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네 뒷산이나 근린공원의 산책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트레킹 코스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의 웅장함이 아니라 걸으면서 자연과 교감하고 자신과 대화하는 자세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트레킹의 핵심은 "최소한의 준비물로 몸과 마음의 자유로움을 얻는다는 마음"이다. 물질적 소유욕을 줄이고 자연과의 순수한 만남에 집중하라는 철학적 메시지다. 트레킹은 소비 지향적인 현대 문화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비싼 장비나 호화로운 숙박시설 없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현상학적 태도"는 트레킹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개념이다. 편견을 버리고 일어나는 현상을 중심으로 의식을 개입하여 직관을 발휘하는 태도는, 트레킹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다. 산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모든 것들 - 새소리, 바람소리, 나무의 냄새, 돌멩이의 질감 - 을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다 보면, 일상에서도 보다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E.M. 포스터는 "기차나 자동차는 육체의 수동성과 세계를 멀리하는 길만 가르쳐주지만, 걷기는 전에 알지 못했던 장소들과 얼굴들을 발견하고 몸을 통해서 무궁무진한 감각과 관능의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대하기 위하여 걷는다"고 했다. 트레킹의 본질을 정확히 포착한 표현이다. 트레킹은 단순히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과 세상에 대해 새로운 것을 발견해가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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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인문학에 길을 묻다
최재운 지음 / 데이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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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전환점에 서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창작하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과연 기계와 인간의 본질적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직면하고 있다. 챗GPT가 시를 쓰고, 미드저니가 그림을 그리며, 알파고가 바둑의 새로운 정석을 창조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인공지능을 단순한 도구로만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역설적으로 인문학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우리는 더 깊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해야 하며, 기계가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를 성찰해야 한다. AI 시대의 인문학은 미래를 살아갈 인간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에 최재운님의 <AI, 인문학에 길을 묻다>를 읽으며 그 길을 생각해 본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인간다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과거에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창작, 번역, 심지어 철학적 사고까지 AI가 수행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혼란스러워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고유한 영역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AI가 어떻게 학습하고 사고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AI는 인간이 남긴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여 패턴을 인식하고 새로운 결과물을 생성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I는 인간의 편견과 한계도 함께 학습하게 된다. 예를 들어, 채용 AI가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특정 성별이나 학력을 선호하는 결과를 보이거나, 언어 모델이 사회적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현상은 이를 잘 보여준다. 여기서 인문학적 성찰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AI의 판단이 공정한가? 그 결과가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일치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철학, 윤리학, 사회학 등 인문학적 사고 없이는 제대로 답할 수 없다. AI가 더 똑똑해질수록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인간의 지혜가 더욱 필요해지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하지만,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들은 종종 데이터로 측정하기 어렵다. 사랑, 우정, 희망, 용기와 같은 감정들은 어떻게 수치화할 수 있을까?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이나 문학 작품이 주는 감동을 알고리즘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최근 한 대학병원에서 일어난 사례를 생각해본다. AI 진단 시스템이 환자의 병리 검사 결과를 분석하여 90% 이상의 정확도로 암을 진단했다. 하지만 의사는 환자에게 결과를 전달하며 단순히 수치만을 제시하지 않았다. 환자의 표정을 살피고, 가족의 반응을 고려하며, 절망감에 빠지지 않도록 희망적인 메시지도 함께 전달했다. 이러한 공감과 배려, 맥락에 대한 이해는 아직까지 AI가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이다. 인문학은 바로 이러한 "데이터로 표현되지 않는 진실"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문학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역사를 통해 과거의 교훈을 얻으며, 철학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성찰한다. AI 시대에 이러한 인문학적 상상력은 더욱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기계가 제공하는 정보를 인간다운 관점에서 해석하고, 그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창작 영역에서 특히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AI가 그린 그림이 국제 미술 공모전에서 1등을 차지하고, AI가 작곡한 음악이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시대다. 작가들은 AI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르게 소설을 쓰고, 디자이너들은 AI를 활용해 무한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창작자들은 위기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AI는 도구일 뿐,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지, 무엇을 표현할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기 때문이다. 한 시인은 "AI가 제안한 시어들을 보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표현을 발견했지만, 그 시어들을 어떻게 조합하여 내 마음을 담아낼지는 여전히 나의 고민"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와의 관계를 경쟁으로만 보지 않는 것이다. AI는 인간의 창작 과정에서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는 협력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협력이 의미를 가지려면 창작자 스스로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에 대한 명확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결국 기술적 도구의 발달은 인간 내면의 깊이와 성찰을 더욱 중요하게 만들고 있다.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윤리적 문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자율주행차가 불가피한 사고 상황에서 누구를 보호할 것인가? AI가 개인정보를 분석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프라이버시 침해 사이의 경계는 어디인가? 딥페이크 기술로 만들어진 가짜 영상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은 단순히 기술적 차원에서만 찾을 수 없다. 사회의 가치관, 문화적 맥락, 역사적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서양의 개인주의 문화와 동양의 집단주의 문화에서 AI의 활용 방식과 그에 따른 윤리적 기준은 다를 수 있다. 또한 같은 기술이라도 그것이 사용되는 사회적 맥락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최근 한 글로벌 IT 기업에서는 AI 윤리 위원회에 철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 등 인문학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했다. 기술 개발자들만으로는 AI의 사회적 영향을 제대로 예측하고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들은 새로운 AI 서비스를 출시하기 전에 "이 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 "소외받는 계층은 없을 것인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가?" 등의 질문을 던지며 기술의 방향성을 점검한다.


AI 시대의 교육은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정보 전달이나 암기 위주의 교육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AI가 모든 정보를 즉시 제공할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미래의 교육은 "정보를 아는 것"에서 "정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으로, "정답을 맞히는 것"에서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변화해야 한다. 비판적 사고력, 창의력, 공감 능력, 협업 능력 등 인문학적 소양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한 고등학교에서는 "AI와 함께하는 인문학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AI에게 역사적 사건에 대해 질문하고, 그 답변을 다른 역사적 자료와 비교 분석한다. 또한 AI가 쓴 시를 읽고 인간이 쓴 시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토론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정보의 출처를 확인하는 방법, 다양한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과 경험의 가치를 배우게 된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AI를 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할 동반자로 인식하도록 돕는다. 학생들은 AI의 장점을 활용하면서도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을 개발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AI와 인문학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하는 관계다. AI는 인간에게 더 많은 시간과 자유를 제공하고, 인문학은 그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활용할지에 대한 지혜를 제공한다. AI는 복잡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인문학은 그 해결책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방향인지를 성찰하게 한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기계가 모든 것을 대신하는 세상이 아니라, 인간과 기계가 각자의 장점을 살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무엇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 말이다. AI 시대의 인문학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학문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학문이다. 기술의 홍수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키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지혜를 제공하는 학문이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인문학적 사고를 기르고, AI와 함께하는 새로운 시대를 현명하게 헤쳐 나가야 할 때다. AI의 시대는 인간다움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더 깊이 탐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탐구의 여정에서 인문학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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