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I, 인문학에 길을 묻다
최재운 지음 / 데이원 / 2025년 7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전환점에 서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창작하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과연 기계와 인간의 본질적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직면하고 있다. 챗GPT가 시를 쓰고, 미드저니가 그림을 그리며, 알파고가 바둑의 새로운 정석을 창조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인공지능을 단순한 도구로만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역설적으로 인문학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우리는 더 깊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해야 하며, 기계가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를 성찰해야 한다. AI 시대의 인문학은 미래를 살아갈 인간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에 최재운님의 <AI, 인문학에 길을 묻다>를 읽으며 그 길을 생각해 본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인간다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과거에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창작, 번역, 심지어 철학적 사고까지 AI가 수행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혼란스러워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고유한 영역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AI가 어떻게 학습하고 사고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AI는 인간이 남긴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여 패턴을 인식하고 새로운 결과물을 생성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I는 인간의 편견과 한계도 함께 학습하게 된다. 예를 들어, 채용 AI가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특정 성별이나 학력을 선호하는 결과를 보이거나, 언어 모델이 사회적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현상은 이를 잘 보여준다. 여기서 인문학적 성찰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AI의 판단이 공정한가? 그 결과가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일치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철학, 윤리학, 사회학 등 인문학적 사고 없이는 제대로 답할 수 없다. AI가 더 똑똑해질수록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인간의 지혜가 더욱 필요해지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하지만,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들은 종종 데이터로 측정하기 어렵다. 사랑, 우정, 희망, 용기와 같은 감정들은 어떻게 수치화할 수 있을까?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이나 문학 작품이 주는 감동을 알고리즘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최근 한 대학병원에서 일어난 사례를 생각해본다. AI 진단 시스템이 환자의 병리 검사 결과를 분석하여 90% 이상의 정확도로 암을 진단했다. 하지만 의사는 환자에게 결과를 전달하며 단순히 수치만을 제시하지 않았다. 환자의 표정을 살피고, 가족의 반응을 고려하며, 절망감에 빠지지 않도록 희망적인 메시지도 함께 전달했다. 이러한 공감과 배려, 맥락에 대한 이해는 아직까지 AI가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이다. 인문학은 바로 이러한 "데이터로 표현되지 않는 진실"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문학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역사를 통해 과거의 교훈을 얻으며, 철학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성찰한다. AI 시대에 이러한 인문학적 상상력은 더욱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기계가 제공하는 정보를 인간다운 관점에서 해석하고, 그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창작 영역에서 특히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AI가 그린 그림이 국제 미술 공모전에서 1등을 차지하고, AI가 작곡한 음악이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시대다. 작가들은 AI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르게 소설을 쓰고, 디자이너들은 AI를 활용해 무한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창작자들은 위기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AI는 도구일 뿐,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지, 무엇을 표현할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기 때문이다. 한 시인은 "AI가 제안한 시어들을 보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표현을 발견했지만, 그 시어들을 어떻게 조합하여 내 마음을 담아낼지는 여전히 나의 고민"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와의 관계를 경쟁으로만 보지 않는 것이다. AI는 인간의 창작 과정에서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는 협력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협력이 의미를 가지려면 창작자 스스로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에 대한 명확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결국 기술적 도구의 발달은 인간 내면의 깊이와 성찰을 더욱 중요하게 만들고 있다.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윤리적 문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자율주행차가 불가피한 사고 상황에서 누구를 보호할 것인가? AI가 개인정보를 분석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프라이버시 침해 사이의 경계는 어디인가? 딥페이크 기술로 만들어진 가짜 영상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은 단순히 기술적 차원에서만 찾을 수 없다. 사회의 가치관, 문화적 맥락, 역사적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서양의 개인주의 문화와 동양의 집단주의 문화에서 AI의 활용 방식과 그에 따른 윤리적 기준은 다를 수 있다. 또한 같은 기술이라도 그것이 사용되는 사회적 맥락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최근 한 글로벌 IT 기업에서는 AI 윤리 위원회에 철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 등 인문학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했다. 기술 개발자들만으로는 AI의 사회적 영향을 제대로 예측하고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들은 새로운 AI 서비스를 출시하기 전에 "이 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 "소외받는 계층은 없을 것인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가?" 등의 질문을 던지며 기술의 방향성을 점검한다.
AI 시대의 교육은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정보 전달이나 암기 위주의 교육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AI가 모든 정보를 즉시 제공할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미래의 교육은 "정보를 아는 것"에서 "정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으로, "정답을 맞히는 것"에서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변화해야 한다. 비판적 사고력, 창의력, 공감 능력, 협업 능력 등 인문학적 소양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한 고등학교에서는 "AI와 함께하는 인문학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AI에게 역사적 사건에 대해 질문하고, 그 답변을 다른 역사적 자료와 비교 분석한다. 또한 AI가 쓴 시를 읽고 인간이 쓴 시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토론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정보의 출처를 확인하는 방법, 다양한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과 경험의 가치를 배우게 된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AI를 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할 동반자로 인식하도록 돕는다. 학생들은 AI의 장점을 활용하면서도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을 개발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AI와 인문학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하는 관계다. AI는 인간에게 더 많은 시간과 자유를 제공하고, 인문학은 그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활용할지에 대한 지혜를 제공한다. AI는 복잡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인문학은 그 해결책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방향인지를 성찰하게 한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기계가 모든 것을 대신하는 세상이 아니라, 인간과 기계가 각자의 장점을 살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무엇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 말이다. AI 시대의 인문학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학문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학문이다. 기술의 홍수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키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지혜를 제공하는 학문이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인문학적 사고를 기르고, AI와 함께하는 새로운 시대를 현명하게 헤쳐 나가야 할 때다. AI의 시대는 인간다움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더 깊이 탐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탐구의 여정에서 인문학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