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 AI 전쟁 (DeepSeek AI WAR) - 빅 브라더 중국 AI 굴기, 딥시크 모델 분석, 중국 현지 특파원과 AI 전문가가 들려주는 생생하고 현장감 있는 빅브라더 중국 AI이야기
배삼진.박진호 지음 / 광문각출판미디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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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5년 1월,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발표한 R1 모델은 글로벌 기술 생태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이사건은 AI 개발의 근본적 방식론에 대한 도전장이었다. 기존의 "더 많은 자본, 더 강력한 하드웨어"라는 브루트 포스(brute force) 접근법이 아닌, 효율적 아키텍처와 최적화를 통해 동등한 성능을 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 사건이 갖는 의미는 기술사적 관점에서 볼 때 CPU에서 GPU로, 다시 GPU에서 효율적 설계로의 전환점과 유사하다. 하드웨어 성능의 절대적 우위가 아닌, 소프트웨어 최적화와 알고리즘 혁신이 경쟁력의 핵심이 되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번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딥시크 AI 전쟁>에 대해 상세히 읽는 기회가 있었다.

딥시크의 성공은 전문가 혼합(Mixture of Experts, MoE) 아키텍처의 효율적 구현에 있다. 이 방식은 모델의 전체 파라미터를 활용하지 않고, 입력에 따라 필요한 전문가 모듈만을 선택적으로 활성화함으로써 연산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마치 대형 오케스트라에서 악곡에 따라 필요한 악기만을 연주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술적 선택이 우연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의 고성능 GPU 제재라는 제약 조건을 오히려 혁신의 동력으로 전환시킨 전략적 사고의 결과물이다. H800이라는 제한된 하드웨어 환경에서 최대 성능을 끌어내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 결과적으로 전체 AI 개발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된 것이다. 딥시크 R1이 기존 GPT-4 수준의 성능을 달성하는 데 소요된 비용은 기존 모델의 2%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AI 기술의 민주화를 의미한다. 천문학적 자본을 보유한 빅테크 기업만이 최고 수준의 AI를 개발할 수 있다는 기존 통념을 완전히 뒤엎은 것이다. 이러한 비용 혁신은 AI 기술 접근성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며, 중소 기업이나 신흥국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AI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기술 패권의 지형도가 자본 집약에서 지적 자본과 효율성 중심으로 이동하는 전환점이다.

중국의 AI 성공은 교육 생태계의 체계적 개혁에서 출발한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일관된 AI 교육 커리큘럼을 구축하고, 특히 칭화대학교의 '야오반'과 같은 엘리트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를 집중 양성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교육 개혁이 단순한 기술 교육을 넘어, AI 시대에 필요한 사고방식과 문제해결 능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딥시크의 채용 과정에서 보여지는 '차원 축소 분해법'과 같은 혁신적 평가 방식은 이러한 교육 철학의 연장선상에 있다. 중국의 AI 전략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정부 정책과 기업 혁신 사이의 긴밀한 연계성이다.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계획'과 같은 국가급 정책이 딥시크와 같은 스타트업의 기술 개발 방향과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다. 이는 데이터 접근성 제공, 규제 샌드박스 운영, 인재 교류 활성화 등 다층적 지원 체계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고, 기업이 실험하며, 성공 모델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제재는 중국에게 단기적으로는 어려움을 가져다주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술 자립의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딥시크의 성공은 이러한 제약을 오히려 혁신의 촉매로 활용한 대표적 사례다. 외부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결과적으로 더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AI 개발 방식을 탄생시켰다. 이는 '위기를 기회로'라는 고전적 전략 명제의 현대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딥시크의 등장은 AI 개발 경쟁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기존의 "더 많은 데이터, 더 큰 모델, 더 강력한 하드웨어" 중심의 양적 경쟁에서, 효율성과 최적화를 추구하는 질적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AI 기술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초기 단계에서는 규모의 경제가 중요하지만, 기술이 성숙해질수록 효율성과 특화가 더 중요해진다. 딥시크는 이러한 전환점에서 나타난 선도적 사례다. 딥시크가 채택한 오픈소스 전략은 생태계 주도권 확보를 위한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다. 자신들의 아키텍처와 접근 방식을 표준화하여 글로벌 개발자 커뮤니티의 중심에 서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는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오픈소스로 공개하여 모바일 OS 생태계를 장악한 전략과 유사하다. 기술 자체보다는 기술을 둘러싼 생태계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큰 가치를 창출한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딥시크의 등장은 AI 기술 발전의 새로운 전환점을 의미한다. 더 이상 자본과 하드웨어의 절대적 우위만으로는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효율성, 창의성, 전략적 사고가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한국에게는 이러한 변화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제한된 자원을 가진 우리나라에서도 효율적인 접근 방식과 차별화된 전략을 통해 AI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교육, 정책, 산업 생태계 전반의 변화가 필요하다. 중국이 보여준 것처럼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이고 일관된 전략 수립과 실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딥시크 쇼크는 우리에게 경고이자 기회다. 이 변화의 물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한국 AI 산업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과감한 변화와 혁신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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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자들이 울고 있다 - 노후 성공을 좌우하는 퇴직과 은퇴 준비
이기훈.김영복 지음 / 바이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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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평균수명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60세 정년퇴직 이후에도 수십 년의 시간이 남아있는 백세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퇴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함을 의미한다. 더 이상 퇴직은 일생의 마지막 휴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 챕터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오늘만을 살아가는 삶은 건강하지 못하다. 미래에 대한 계획과 준비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삶을 영위할 수 없다. 특히 직장인들에게 있어 퇴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이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이번에 퇴직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현실 그리고 대책에 대해 상세 설명해 주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이기훈, 김영복님의<퇴직자들이 울고 있다>였다.

많은 직장인들이 퇴직을 휴식의 시작으로 여기는 것은 시대착오적 사고다. 저자가 책에서 사례로 이야기 하고 있는 한 공장 근무자의 사례에서 보듯이, 40년간 열심히 일했다고 해서 퇴직 후 편안한 여생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족들로부터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 심리적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퇴직자들이 변화된 사회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험과 성공에만 의존하여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나이에 맞지 않는 철 없는 행동으로 귀결되며, 결국 개인과 가족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다 준다. 현대 직장인들이 범하는 가장 큰 실수는 첫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와 기술 환경에서 과거의 방식에만 안주하면 경쟁력을 잃게 된다. 둘째, 직업적 역량 개발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직장에서의 경험만으로는 퇴직 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셋째, 지속적인 학습을 게을리하는 것이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지게 된다

우리는 전략적 퇴직 준비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고대 중국의 지혜인 교토삼굴처럼, 현명한 직장인은 여러 개의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하나의 직장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며, 다양한 경력 목표를 설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적극적인 기회 창출의 의미를 갖는다. 퇴직을 제대로 준비한 사람에게는 걱정 대신 설렘이 찾아 온다. 새로운 도전과 기회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찬 출발이 가능해진다. 이것이 준비된 퇴직과 그렇지 않은 퇴직의 결정적 차이 점이다. 직장과 직업을 명확히 구분하여 이해해야 한다. 직장은 일시적인 소속이지만, 직업은 평생에 걸친 전문성의 영역이다. 월급만 받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전문성과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키워나가야 한다. 성공적인 경력 관리를 위해서는 현재의 직장을 하나의 학교로 인식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월급보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학습 기회와 경험이다.

이러한 자산들이 퇴직 후에도 지속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핵심 역량이 된다. 또한 인간관계의 전략적 관리도 필요하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와 진정한 친구관계는 구별되어야 한다. 권력과 이해관계에 기반한 관계는 상황이 변하면 쉽게 무너진다. 반면 진정한 우정에 기반한 관계는 어려운 시기에도 지속된다. 급난지붕, 즉 어려울 때 찾아갈 수 있는 친구를 만드는 것은 평소의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인생의 든든한 지지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퇴직 후 효과적인 네트워킹을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같은 업종, 같은 회사 사람들과만 어울리는 것은 시야를 좁히는 결과를 가져온다. 새로운 기회는 대부분 기존과 다른 영역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평판 관리 또한 중요한 요소다. 다른 사람들이 써주는 이력서, 즉 평판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추천서가 된다. 일관된 전문성과 신뢰성을 바탕으로 좋은 평판을 쌓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작을 위한 실천 방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 먼저 지속적인 역량 개발이 필요할 것이다. 퇴직 후에도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학습과 역량 개발이 필수적이다.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를 이해하고, 자신의 전문성을 시대적 요구에 맞게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특히 현대 사회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많은 업무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새로운 기회를 놓치게 된다. 나이를 핑계로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행위다. 많은 이들이 고민하는 창업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많은 퇴직자들이 창업을 선택하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나는 것이 현실이다. 회사 밖의 세계는 직장에서의 경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복잡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창업보다는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재취업이나 컨설팅 등의 방향을 고려하는 것이 현명하다. 만약 창업을 고려한다면, 충분한 시장 조사와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인지, 그리고 그것이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퇴직 후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한 경제적 준비의 중요성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노후에 돈이 없다는 것은 생존의 문제가 된다. 퇴직 후에도 지속적인 수입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미리부터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연금만으로는 부족한 현실에서 추가적인 수입원을 만들어야 한다. 부동산 투자나 금융 상품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한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퇴직은 더 이상 인생의 종료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야말로 백세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다. 준비된 퇴직은 두려움이 아닌 기대로, 끝이 아닌 시작으로 다가온다. 성공적인 퇴직을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직업과 경력을 전략적으로 디자인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진정한 인간관계를 구축하고 관리해야 할 것이며, 지속적인 학습과 적응을 통해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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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같은 일본 소도시 여행 - 숨은 보석처럼 빛나는 일본 소도시 30
칸코쿠마 지음 / 책밥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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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서점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한 권의 책이 내 여름 휴가 계획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칸코쿠마라는 여행가가 쓴 <동화 같은 일본 소도시 여행>이었다. 표지부터 남달랐다. 푸른 하늘 아래 고즈넉한 일본 전통 가옥들이 평화롭게 자리 잡은 모습이 마치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나는 이미 그 동화 같은 세계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작가의 시선이 남다르다는 점이었다.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의 화려함 대신, 그는 일본 전역에 숨어있는 작은 보석 같은 마을들에 주목했다. 간토 지역의 가스카베부터 시작해서 주부 지역의 스와시, 간사이 지역의 이네후나야까지, 총 30곳의 소도시를 소개하는 이 책은 마치 일본 현지인만이 알 수 있는 비밀스러운 여행 가이드 같았다.

지금까지 읽어본 일본 여행서들과 이 책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접근 방식에 있었다. 대부분의 여행서가 '꼭 가봐야 할 명소‘나 인스타그램에서 핫한 장소를 나열하는데 그친다면, 이 책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진정한 로컬 경험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실용성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각 여행지마다 QR코드를 제공해 스마트폰으로 쉽게 상세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정확한 맵코드까지 수록해 길 찾기 걱정 없이 여행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소도시 여행의 가장 큰 걸림돌인 정보 부족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한 셈이다. 또한 작가가 직접 일본에서 생활하며 체험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녹아 있어, 관광 정보를 넘어선 깊이 있는 문화적 통찰을 제공한다. 현지 축제 정보, 숨겨진 맛집, 사계절별 볼거리까지 세심하게 담아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책을 덮고 나니 마음이 이미 일본 소도시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올여름 휴가는 바로 이곳들로 정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뜨거운 도심의 아스팔트 대신 시원한 산바람이 부는 고원 마을에서, 북적거리는 관광지 대신 한적한 어촌 마을에서 진정한 휴식을 찾고 싶었다. 여름 일본 소도시 여행의 매력은 무엇보다 자연과의 조화에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나가노현의 가루이자와는 해발 1,000미터 고원에 위치해 여름에도 서늘한 기후를 자랑한다. 울창한 숲과 맑은 공기, 그리고 유 럽풍 별장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도시의 무더위를 잊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책을 읽으며 깨달은 것은 진정한 여행의 즐거움이 어디에 있는지였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화려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고, 유명한 맛집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과연 진정한 여행일까? 소도시 여행의 매력은 예상치 못한 순간들에서 피어 난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우연히 발견한 작은 카페에서 마신 커피 한 잔의 여운, 현지 할머니가 건네준 따뜻한 미소,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혼자 감상한 일출의 감동. 이런 소소하지만 특별한 경험들이야말로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 아닐까. 일본 소도시의 여름밤은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매미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고요한 밤, 연등이 비추는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름 축제철이면 작은 마을 광장에서 펼쳐지는 소박한 축제들도 특별한 경험이다. 현지인들과 함께 유카타를 입고 참여하는 본오도리(일본 전통 춤) 체험은 그 어떤 관광 프로그램보다 도 진정한 일본 문화를 느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번 여름 소도시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만의 여행 철학도 생겼다. 계획은 느슨하게 세우되 마음은 열려있게 할 것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갖고, 현지인들과의 소통을 두려워하지않을 것이다. 비록 언어가 서툴더라도 진심은 통할 것이다. SNS에 올릴 사진보다는 내 마음에 담을 풍경에 집중하고자 한다. 칸코쿠마 작가가 책에서 강조한 것처럼, 소도시 여행의 진정한 가치는 '힐링'에 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사람, 그리고 나 자신과 진솔하게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야 말로 이번 여름 휴가를 통해 얻고자 하는 가장 큰 목표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의 사진들이었다. 아름다운 풍경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과 이야기까지 함께 담아낸 듯한 사진들이 마치 동화책의 삽화처럼 느껴졌다. 이번 여름, 나도 그런 사진을 찍고 싶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사진이 아니라, 그 순간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을, 스와 호수의 새벽 안개 속으로 떠오르는 해, 이네후나야의 수상 가옥들 사이로 스며드는 석양, 가루이자와 숲속 오솔길을 걷는 나의 뒷모습까지.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모아 작은 포토북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칸코쿠마 작가처럼 나만의 일본 소도시 이야기를 담은 소중한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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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왜 죽었을까? - 오심과 권력, 그리고 인간을 심판한 법의 역사 / 자유기업원 2026 추천도서 50권 | 법경제와 규제개혁 부문
김웅 지음 / 지베르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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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4년 12월, 대한민국은 헌정사상 초유의 비상계 선포와 그에 따른 대통령 탄핵이라는 극적인 상황을 목격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법과 제도, 그리고 민주주의의 근본적 가치들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성찰하게 되었다. 법이 권력의 도구가 될 수 있는가? 대중의 분노는 언제나 정당한가? 정의는 과연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기원전 399년, 아테네의 한 철학자가 독배를 마시며 죽어갔을 때부터 인류는 같은 고민을 해왔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법과 정의, 대중과 권력 사이의 영원한 갈등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24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법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그 시작은 놀랍도록 인도적이었다. 4천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우르남므 법전부터 함무라비 법전에 이르기까지, 고대 법전들의 진정한 목적은 질서 유지가 아니라 약자 보호였다. 우리가 잔인하다고 여기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칙 조차도, 실제로는 강자가 약자에게 과도한 보복을 가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였다. 법이 없다면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될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법의 존재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법은 약자가 강자의 횡포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것은 대부분 기득권층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법을 만들리는 없다. 따라서 법은 태생적으로 편향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딜레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죽임을 당한 이유는 명확하다. 그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그의 제자들이 독재에 협력했다는 사실이 그를 정치적으로 위험한 인물로 만들었다. 법적으로는 청년 부패죄와 신성모독죄로 기소되었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희생양이었다. 민주주의의 발상지 아테네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대중의 감정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대중의 광기가 역사상 반복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 중세의 마녀사냥, 20세기의 홀로코스트까지, 인류사는 집단 광기의 어두운 기록들로 가득하다. 특히 중세 마녀사냥의 참혹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신의 이름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고문하고 살해하는 과정에서,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21세기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대중의 분노는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그 파괴력도 커졌다. 2017년 240번 버스 사건은 현대판 마녀사냥의 전형을 보여준다. 잘못된 정보에 기반한 분노가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했고, 진실이 밝혀진 후에도 사과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존재다. 우리는 쉽게 분노하고, 편견에 휩쓸리며, 자신이 옳다고 확신할 때 가장 위험해진다. 바로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에서 현대 형사사법제도의 지혜가 시작된다. 무죄추정의 원칙, 미란다 원칙, 영장주의, 공개재판 등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러한 제도들은 사실 수천 년간 인류가 쌓아온 실패와 희생의 결과물이다. 이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인간의 불완전함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범죄자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으면 그의 자백이 무효화될 수 있다. 이는 범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고한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리한 증언을 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겉으로는 비효율적이고 범죄자에게 유리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약자를 보호하는 정교한 안전장치인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실체적 정의가 아니라 절차적 정의다. 실체적 정의란 '무엇이 옳은가'를 판단하는 것이고, 절차적 정의란'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를 다루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실체적 정의에 대한 판단이 항상 옳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 공정한 절차를 통해 내린 판단이라면, 그 결과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수용할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옳은 결과라도 부당한 절차를 통해 도출되었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 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개혁 논의들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검찰개혁, 사법개혁 등의 이슈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기관이나 인물의 선악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완벽한 제도라도 그것을 운영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은 권력을 갖게 되면 그것을 남용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는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양심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공수처, 검수완박 등의 이슈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문제는 어떤 기관이 수사를 담당하느냐가 아니라, 그 기관이 권력을 남용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느냐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직면하는 딜레마가 있다. 견제 기관을 만들면 그 견제 기관을 누가 견제할 것인가? 권력을 분산시키면 효율성이 떨어지고, 집중시키면 남용의 위험이 커진다. 이는 완벽한 해답이 없는 문제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 한 딜레마를 인정하고, 끊임없이 개선해나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언론은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언론 자체도 권력이 될 수 있고, 그 권력이 남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특히 인터넷 시대에 들어서면서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급격히 늘어났지만, 그 정확성과 신뢰성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가짜뉴스, 선동적 보도, 편향된 해석 등이 범람하면서 시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언론을 규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고, 그렇다고 방치하면 민주주의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여기서도 우리는 완벽한 해답보다는 끊임없는 견제와 균형을 통해 문제를 완화시켜 나가야 한다. 시민들 역시 책임이 있다. 정보를 받아들일 때 비판적 사고를 하고, 다양한 관점을 고려하며, 성급한 판단을 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져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최근 우리 사회는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다. 정치적 이념, 세대 간 차이, 경제적 불평등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사회 통합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과 제도에 대한 신뢰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감정에 휩쓸려 성급한 판단을 내리거나, 극단적인 해결책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하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그러한 시도들은 대부분 더 큰 비극으로 이어졌다. 대신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점진적 개선을 추구해야 한다. 완벽한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지만,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관용과 이해다. 소크라테스는 죽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진리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4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질문 앞에 서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대중의 목소리는 언제나 옳은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완벽한 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 그리고 더 나은 답을 찾 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소크라테스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고, 우리가 후세에 물려주어야 할 책임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과 갈등도 결국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완벽한 해결책은 없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정한 절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조금씩이라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법과 정의의 문제는 결국 인간의 문제다. 그리고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동시에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그의 질문을 계속 던지고, 더 나은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사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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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낙관주의자
수 바르마 지음, 고빛샘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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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감정의 파도 속에서 살아간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인간관계의 복잡함, 미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이런 감정들이 우리를 압도할 때, 우리는 종종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가?'라고 자문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일어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이다. 이번에 다수 바르마의 신간 <합리적 낙관주의자>를 읽어보았다. 합리적 낙관주의는 긍정적 사고와는 다르다. 이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동시에 개선 가능성을 믿는 균형잡힌 관점이다. 마치 날씨를 예측할 때 구름이 끼어있다고 해서 비가 올 것이라고 단정하지 않듯이, 현재의 어려움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과거에는 작은 실패나 좌절에도 쉽게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경험들이 단순히 '나쁜 일'이 아니라, 성장의 기회이자 내 안의 회복력을 발견할 수 있는 순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합리적 낙관주의자의 원칙을 상세 분석 설명하고 있다. 먼저 첫 번째 원칙은 삶의 나침반 찾기다.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정작 자신이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한때 그랬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저 주어진 일들을 해내는 것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는 거창한 사명감이나 원대한 꿈일 필요가 없다. 때로는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시간,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즐거움, 혹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작은 행동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나의 경우, 글을 쓰는 순간들에서 그런 의미를 발견했다. 복잡한 생각들이 문장으로 정리되는 과정, 그리고 그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나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삶의 방향성을 찾았다. 이런 목적 의식이 생기니, 일상의 소소한 어려움들도 더 이상 나를 흔들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목적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감정적 안정의 첫 번째 열쇠이다.

두 번째 원칙은 감정과의 새로운 관계 맺기다. 감정을 다루는 가장 흔한 실수는 나쁜 감정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화가 날 때 '화내면 안 돼'라고 스스로를 다그치거나, 슬플 때 '슬퍼하지 말자'고 억지로 웃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오히려 감정을 더 강화시킬 뿐이다. 감정을 집에 온 손님처럼 여기는 관점은 내게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분노가 찾아오면 '아, 화가 났구나'라고 인정하고, 그 감정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귀기울인다. 대개 분노 뒤에는 상처받은 마음이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숨어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동료의 무례한 말에 화가 났을 때, 예전에는 그 분노를 억누르거나 폭발시키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구나.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는 중요한 가치구나'라고 해석한다. 이런 방식으로 감정을 이해하면, 더 건설적인 반응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감정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내면의 신호등이다. 그 신호를 무시하지도, 맹종하지도 않고, 지혜롭게 해석하는 것이 핵심이다.

세 번째 원칙은 문제 앞에서 주도권 되찾기다. 인생에서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완전히 무력한 것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항상 존재한다. 직장을 잃었을 때를 예로 들어보자. 그 사실 자체는 바꿀 수 없지만, 그 이후의 반응은 온전히 내 선택이다. 절망에 빠져 며칠을 보낼 수도 있고, 이를 새로운 기회로 보고 준비를 시작할 수도 있다. 두 가지 반응 모두 자연스럽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나는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은 무엇인가?'라고 자문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큰 문제일수록 작게 나누어 접근한다. 예를 들어, 건강상의 문제가 생겼을 때는 하루에 15분씩 걷기부터 시작했다. 작은 행동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내가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더 큰 변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에서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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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낙관주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것만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그 안에서 가능성을 찾고,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는 삶의 태도다. 이런 관점을 내 삶에 적용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감정에 대한 관계가 바뀐 것이다. 예전에는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면 그것에 압도되거나 억누르려고 했지만, 이제는 그 감정을 하나의 정보로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대응한다. 또한 문제가 생겼을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원망하기보다는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 이런 사고의 전환이 실제로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원칙들을 완벽하게 실행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감정에 휘둘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조차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인다. 합리적 낙관주의는 삶의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한 나침반이다. 이 나침반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더 단단하고 유연한 내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바로 의미 있는 삶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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