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역 명상록 - 마음의 평화를 찾는 가장 쉬운 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필로소피랩 엮음 / 각주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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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조용한 방 안에 울려 퍼진다. 하루 종일 쌓인 피로가 어깨를 짓누르는 저녁, 나는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하루 나는 진정 '나'답게 살았을까? 아침에 품었던 다짐들은 어디로 갔을까? 또 다시 남의 시선에 흔들리고, 예상치 못한 일에 당황하며,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표류하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들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을 때, 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펼쳤다. 1800년 전 로마의 한 황제가 자신에게 남긴 편지들이, 오늘날 서울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어떤 위로를 줄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과 함께 책을 읽어 본다.

책을 읽으며 나는 놀랐다. "감정에 휘둘리지는 않았는지, 자신만의 원칙을 지켰는지, 후회 없이 하루를 살았는지." 아우렐리우스가 자신에게 던진 질문들이 바로 내가 매일 밤 스스로에게 묻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시대와 지위를 초월해서, 인간의 고민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었다. 로마 제국의 절정기를 이끌었던 황제조차도, 감정의 파도에 휘둘리는 자신을 경계했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그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과거를 후회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이 깨달음은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도 결국 나와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이 외롭지 않게 만들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 많은 소음 속에 둘러싸여 있다. 스마트폰 알림음, 끝없는 뉴스 피드, SNS의 비교 문화, 성공에 대한 압박.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마음의 중심을 흔든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의 생각을 방치하지 마세요"라고 했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을 방치한다.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남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하며, 조급함에 사로잡힌다. 그의 글을 읽으며 나는 내 마음속 소음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대부분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타인의 평가, 미래의 불확실성, 과거의 실수들. 이런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동안, 정작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현재의 선택, 지금의 태도, 이 순간의 반응—은 놓치고 있었다.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 중 하나는 "가을이 되면 나무가 잎을 놓아주듯, 당신도 바람에 몸을 맡긴 씨앗처럼 새로운 곳에서 피어날 준비를 하세요"라는 문장이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단순한 비유로 여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깊이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종종 놓아야 할 것들을 움켜쥐고 있다. 과거의 영광, 상처받은 자존심, 이루지 못한 꿈들. 이런 것들을 붙잡고 있으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놓친다. 나뭇잎이 떨어져야 새싹이 날 수 있듯이, 우리도 때로는 과감하게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수 있다. 이 깨달음은 내 삶의 여러 영역에서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는 욕심도 줄였다. 대신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명상록을 읽은 후 나는 새로운 아침 의식을 만들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하나씩 다시 읽는 것이다. "올바른 이성에 따라 침착하게 행동하고, 내면의 순수함을 지키며 두려움 없이 현재의 일에 집중할 때, 당신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문장을 읽으며, 하루의 방향을 정한다. 이 작은 의식이 하루 전체의 톤을 바꾸었다. 급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대신, 차분하게 마음을 정리하고 시작하니 더 평온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도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되었고,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한 박자 쉬어가며 생각할 여유를 갖게 되었다. 아우렐리우스의 통찰은 인간관계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서로 돕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라는 그의 말은 단순한 이상론이 아니라, 실제로 관계에서 갈등을 줄이는 실용적인 지혜였다. 상대방의 행동에 화가 날 때, 그들도 나름의 이유와 배경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특히 직장에서 어려운 사람들과 마주할 때, 그들의 행동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책임이다"라는 인식은 나를 불필요한 감정적 소모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상대방의 태도이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명상록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는 죽음에 대한 성찰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을 인식함으로써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이 순간을 소중히 하라"는 그의 말은 죽음이 언제나 가까이 있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이런 관점은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대한 내 태도를 바꾸었다. 지하철에서 만난 짜증나는 상황,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 작은 실수들. 이런 것들이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대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 아름다운 일몰, 좋은 책 한 권이 주는 감동 같은 것들의 가치를 더 크게 느끼게 되었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주는 위로 중 하나는 그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도 실수했고, 후회했고, 때로는 감정에 휘둘렸다. 하지만 그는 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이런 진정성이 그의 글에 깊이를 더한다. 우리도 완벽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매일 조금씩 성장하려는 마음가짐이다. 실수를 했다면 반성하고,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다음에는 더 나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면 된다. 이런 자기 성찰의 과정 자체가 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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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자체로 괜찮은 날이었다
권미주 지음 / 밀리언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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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침마다 거울 앞에 서는 일상적인 순간이 있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고,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하는 그 시간. 그런데 문득 거울 속 나를 바라보며 이런 질문을 해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 본다. "지금 행복한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회피한다. 너무 무겁고, 답하기 어려우며, 때로는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질문을 피하며 살아가는 것은 마치 나침반 없이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에 도착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그저 파도에 휩쓸려 떠다니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더 나은 성과,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며 달려간다. 그런 과정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 말이다. 책은 그런 우리에게 던지는 하나의 제안이다. 무엇을 성취했느냐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의미 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존재 자체로 괜찮은 하루를 만들어가는 방법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감정을 마주한다. 기쁨, 슬픔, 분노, 두려움, 질투, 외로움... 이런 감정들을 마주할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대부분은 불편한 감정을 빨리 떨쳐내려 하거나, 없었던 일처럼 무시하려 한다. 하지만 감정은 우리 내면의 신호등과 같다. 빨간불이 켜졌을 때 "불편하다"며 신호등을 부숴버리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듯이, 감정도 마찬가지다. 그 감정이 왜 생겨났는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귀 기울여야 한다. 짜증이 날 때가 있다. 사소한 일에도 화가 치밀어 오르고, 모든 것이 귀찮게 느껴진다. 이때 "내가 왜 이렇게 예민하지?"라며 자책하는 대신, "지금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나?"라고 물어보자. 어쩌면 그 짜증은 과로에 지친 몸과 마음이 보내는 휴식의 신호일 수 있다. 서운함이 밀려올 때도 있다. 누군가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상하고, 며칠 동안 그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때도 "내가 너무 예민한가?"라며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지금 내가 무엇을 바라고 있나?"라고 들여다보자. 그 서운함은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일 수 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 친해지는 첫 번째 단계다. 감정은 틀린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려주는 소중한 정보다.

현대 사회는 완벽함을 강요한다. SNS에는 완벽한 일상들이 넘쳐나고,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타인의 삶과 나를 비교하며 초라함을 느낀다. 하지만 완벽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것은 편집된 일상의 한 조각일 뿐이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넘어지고, 때로는 길을 잃는다. 그것이 인간다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했을 때 자신을 어떻게 대하느냐이다. 나 자신에게 가혹한 판사가 되어 끊임없이 비판하고 질책할 것인가, 아니면 따뜻한 친구가 되어 위로하고 격려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 각자의 몫이다. 완벽하지 않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진정한 성장이 가능해진다. 실수를 통해 배우고, 부족함을 인정하며 도움을 요청하고, 때로는 실패를 통해 더 나은 길을 찾아갈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타인의 평가에 익숙해져 있다. 부모님의 기대, 선생님의 평가, 친구들의 시선... 이런 외부의 기준에 맞추려 애쓰다 보면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된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저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나만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그리고 그 첫 번째는 나 자신이어야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할 때,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대하게 된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적절한 경계 설정이 필요하다. 무조건적인 희생이나 헌신은 아름다워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나 자신을 소진시키고 관계를 해칠 수 있다.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내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힘, 이것들이 진정한 성숙함이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곳은 "존재 자체로 괜찮은" 상태이다. 무엇을 성취했느냐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의미 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는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성공이나 성취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외부의 인정이나 물질적 성취가 아닌, 내면의 평화와 자기 수용에서 오는 진정한 만족감을 말한다. 이런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완벽하지 않은 나를 사랑하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다운 삶을 살아가며, 작은 행복을 발견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 그리고 지속적인 성장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존재 자체로 괜찮은 날'을 만들어가는 구체적인 방법들이다. 오늘 하루도 여러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잘된 일도 있고, 아쉬운 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통해 나는 하루를 살아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하루였다.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거울 속 나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오늘도 수고했어. 존재 자체로 괜찮은 하루였어." 이런 작은 인정과 격려가 쌓여서 우리는 점점 더 나 자신과 친해지고, 더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어간다.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다. 때로는 실수하고, 때로는 넘어져도 괜찮다. 왜냐하면 나는 존재 자체로 충분히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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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쓰메 소세키 지음, 장하나 옮김 / 성림원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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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부터 선생님의 유서가 내 가슴 한편에 무거운 돌덩이처럼 자리 잡았고, 그 무게는 며칠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 나에게 남긴 것은 감동이나 여운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거울 앞에 서서 내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은, 피할 수 없는 직시였다. 선생님이라 불리는 남자의 고백을 읽으면서 나는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가슴 깊숙한 곳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인간을 믿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나는 내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타인을 의심하고, 상처받을까 두려워하며,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믿고 싶어 하는 모순된 마음. 이것이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이 아닐까.

선생님은 자신의 가족게 배신당한 후 세상 모든 사람을 의심하게 되었다고 했다. 돈 앞에서 선한 사람도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도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친구와 경쟁하며 결국 친구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초래하고 만다. 선생님이 가족를 미워하면서도 결국 자신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근본적인 허약함을 보았다. 우리는 모두 선생님이다. 타인을 판단하고 비난하면서도, 정작 자신 역시 그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존재. 완전히 선하지도, 완전히 악하지도 않은 애매한 존재.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할 수 있는 불안정한 존재. 선생님이 "틀에 찍어낸 듯한 악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의 무게를 온전히 느꼈다. 우리는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것. 특히 선생님이 K와의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겪는 갈등을 읽으면서, 나는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새삼 실감했다. 같은 여인을 사랑하게 된 두 친구. 서로를 배려하면서도 서로를 견제하는 미묘한 심리전. 그리고 마침내 한 사람은 사랑을 얻고 다른 한 사람은 목숨을 잃는 비극적 결말. 이 모든 과정에서 선생님은 자신이 K를 배신했다고 자책하지만, 과연 그것이 정말 배신이었을까?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는가?

<마음>은 100년 전에 쓰인 작품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인간의 마음은 시대를 초월한다. 사랑과 배신, 우정과 질투, 믿음과 의심, 고독과 연민. 이 모든 것들이 여전히 우리 마음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 자체가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말을 빌려 이 글을 마치고 싶다. "나는 차가운 머리로 새로운 이론을 펼치기보다, 뜨거운 혀로 평범한 생각을 말하는 것이 더 살아 있는 진리라고 믿습니다."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것도 바로 그런 살아 있는 진리가 아닐까. 화려한 수사나 거창한 철학이 아닌, 인간의 마음이라는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복잡한 진실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사랑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이 말하는 "사랑은 죄악"이라는 표현이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의 고백을 따라가면서 그 의미를 조금씩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인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이기적이고 잔혹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서라면 친구도 배신할 수 있고, 양심도 속일 수 있다. 선생님이 경험한 것이 바로 그런 사랑의 양면성이었다. "향내를 맡을 수 있는 건 향을 피우는 순간뿐이듯, 술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건 첫 잔을 마신 찰나 뿐이듯, 사랑의 충동에도 이처럼 아슬아슬한 순간이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선생님의 말은 사랑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었다. 사랑은 영원할 것 같지만 사실은 순간적이고, 그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선생님과 K, 그리고 그 여인 사이의 이야기는 바로 그런 사랑의 운명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선생님의 고독이었다.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나는 현대인의 고독을 보았다. "자유와 독립과 자아가 그득한 현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희생으로 이 외로움을 겪어야 할 겁니다"라는 선생님의 말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얻었지만, 그 대신 깊은 고독을 감수해야 했다. 누구도 완전히 믿을 수 없고, 누구도 완전히 이해 받을 수 없는 시대. 각자가 자신만의 섬에서 살아가야 하는 시대. 선생님의 고독은 바로 그런 현대인의 고독이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절망적인 이야기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마지막에 자신의 이야기를 한 젊은이에게 들려주기로 결심한 것, 그리고 "내 심장의 고동이 멈췄을 때, 당신 가슴에 새 생명이 깃들 수만 있다면, 나는 그걸로 족합니다"라고 말한 것에서 나는 희망을 본다. 자신의 실패와 고통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하려 하는 선생님의 마음에서 인간의 고귀함을 본다. 나쓰메 소세키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해부하듯 보여준다. 그 마음은 복잡하고 모순적이며, 때로는 추악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불편하고 아프지만, 그래서 더욱 의미 있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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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은 꿈꾼다
하라다 히카 지음, 최윤영 옮김 / 모모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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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하라다 히카의<지갑은 꿈꾼다>를 읽으며 든 첫 번째 생각은 의외로 친숙함이었다. 일본 작가가 쓴, 일본을 배경으로 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의 인물들이 겪는 고민과 좌절, 그리고 작은 희망들이 마치 우리 옆집에 사는 이웃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문화적 차이나 언어의 벽을 뛰어넘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본질적인 욕망과 두려움이 얼마나 보편적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소설 속 미즈호가 용돈을 아껴가며 루이비통 지갑을 사는 모습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작은 사치를 위해 몇 달간 점심값을 아끼던 누군가를 떠올린다. 주식 투자로 큰 손실을 본 남편의 모습에서는 코인이나 주식으로 쓴맛을 본 지인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학자금 대출에 시달리며 맥도널드 메뉴조차 고민하는 비정규직 여성의 현실은 한국의 청년들이 마주하는 경제적 어려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경제적 불안과 계층 이동의 어려움, 그리고 그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의지는 국경을 초월한 보편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지갑이라는 소재 선택이 특히 인상적이다.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평범한 물건이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생활 패턴과 가치관, 심지어 인생관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현금을 얼마나 들고 다니는지, 어떤 카드들을 소지하고 있는지, 영수증을 정리하는 습관은 어떤지- 이 모든 것들이 그 사람의 캐릭터를 말해준다. 하라다 히카는 이 작은 물건 하나를 통해 여러 인물들의 삶을 연결시키며, 각자의 사연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지갑이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을 거치며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다양한 계층과 직업, 나이의 사람들이 돈과 맺는 관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그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한지를 깨닫는다. 돈 그것은 꿈의 실현 도구이기도 하고, 불안의 근원이기도 하며, 때로는 관계를 파괴하는 독이 되기도 한다. 미즈호에게 루이비통 지갑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찾은 작은 사치와 자존감의 상징이었지만, 남편의 빚이 드러나는 순간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꿈의 상징이었던 것이 현실의 무게 앞에서 처분해야 할 짐이 되는 아이러니다.

소설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가 등장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 잘못된 투자 결정을 내린 사람들, 다단계에 빠진 사람들을 향해 도덕적 우위에서 훈계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그 선택들이 어떤 심리적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특히 풍수를 이용해 재테크 칼럼을 쓰는 인물의 내적 갈등은 현대인의 모순을 잘 보여준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회의를 품으면서도 생계를 위해 계속해야 하는 현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자괴감과 피로감. 이는 많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직업적 딜레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도 부동산 투자나 주식, 코인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비슷한 상황들을 자주 목격한다. 'YOLO' 나 '소확행' 같은 트렌드 역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작은 사치라도 현재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심리와 미래를 위한 저축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은 국경을 초월한 현대인의 보편적 고민이다.

소설에서 가장 따뜻했던 순간은 역설적으로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인물들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학자금 대출에 시달리는 두 여성이 맥도널드에서 쉐이크 하나를 놓고 고민하는 장면에서, 물질적 궁핍함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인간적 온기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더 깊이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헬조선'이라는 자조적 표현이 유행하면서도, 동시에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크라우드펀딩이나 기부 문화가 활발해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제목인 '지갑은 꿈꾼다'는 표현이 특히 의미심장하다. 지갑 자체가 꿈을 꾸는 것일까, 아니면 지갑을 소유한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꿈을 꾸는 것일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물질적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상상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다. 미즈호가 루이비통 지갑에 이니셜을 새기며 느꼈을 설렘과 자부심, 그리고 그것을 팔 때의 허무함은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녀는 남편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갈 용기를 얻는다. 꿈이 좌절되었지만, 그 경험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이는 한국의 많은 청년들이 겪는 과정과 유사하다. 취업이나 결혼, 내 집 마련 등의 꿈이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좌절하지만, 그 과정에서 더 현실적이고 자신다운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것. 물질적 성취만이 행복의 척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관계나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지갑은 꿈꾼다>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그것이 일본 문화에 특화된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보편적 경험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불안정, 미래에 대한 걱정, 작은 사치에 대한 갈망, 인간관계에서 오는 위로 - 이 모든 것들은 국경과 문화를 초월한 인간의 기본적 조건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들이 더욱 명확해진 상황에서, 이 소설의 메시지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완벽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지리적,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주는 감동이 동일하다는 것은, 문학이 가진 보편적 힘을 증명한다. 서로 다른 언어로 살아가지만 결국 같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과 고민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 공통된 경험들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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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사회 - 휴머니티는 커피로 흐른다
이명신 지음 / 마음연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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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장마 시작이다. 창밖으로 비가 내린다.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마치 더치커피머신에서 떨어지는 커피 방울과 닮아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머그컵의 따스함을 느끼며, 나는 문득 생각한다. 언제부터 커피가 이렇게 내 삶 깊숙이 들어왔을까. 아침 7시, 알람과 함께 시작되는 하루의 첫 번째 의식은 커피를 내리는 것이다. 원두를 갈아내는 소리, 뜨거운 물이 커피 가루를 적시며 피어오르는 향기, 그리고 첫 모금을 마실 때 입안 가득 퍼지는 쌉싸름한 맛. 이 모든 과정이 하루를 시작하는 나만의 성스러운 의식이 되었다. 커피에 대한 흥미로운 책을 읽었다… 커피 사회…

커피는 각성제다. 카페인이라는 화학적 작용으로 우리의 뇌를 깨운다. 하지만 커피가 깨우는 것은 비단 잠든 뇌세포만이 아니다. 커피는 우리의 감각을, 추억을, 그리고 관계를 깨운다. 첫 직장에서 마신 자판기 커피의 맛을 아직도 기억한다. 플라스틱 컵에 담긴 뜨겁고 달달한 액체는 분명 커피라고 부르기엔 부족했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어른이 되었음을 알려주는 상징이었다. 선배들과 함께 복도 끝 자판기 앞에서 마시던 그 커피는,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떼는 긴장감과 설렘을 함께 녹여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커피의 맛이 특별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지금 마시는 스페셜티 커피에서 느끼는 복합적인 풍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 순간의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로의 입문서였고, 어른들의 언어를 배우는 교재였으며, 무엇보다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요즘 아침마다 내리는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며, 나는 그때의 그 자판기 커피를 떠올린다. 원두의 품질이나 추출 방식의 차이를 떠나, 그 순간순간 커피와 함께한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각성이란 단순히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향유의 행위다. 단순히 목마름을 해결하거나 잠을 쫓기 위함이 아니라, 그 순간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행위다. 주말 오후, 좋아하는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손 안의 따뜻한 컵에서 피어오르는 향을 맡는다. 이때의 커피는 음료가 아니라 시간 그 자체가 된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멈춰 서서,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여유를 선사한다. 카페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도 흥미롭다. 노트북을 펼쳐놓고 집중하는 직장인, 친구와 수다를 떨며 웃는 대학생들, 혼자 책을 읽으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중년의 여성. 각자 다른 이유로 이 공간에 모였지만, 모두가 커피라는 공통분모로 연결되어 있다. 특히 혼자 카페에 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그들은 외롭지 않다. 오히려 자신만의 시간을 적극적으로 향유하고 있다.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자신과 대화하거나, 책 속 문장들과 교감하거나,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마음을 비운다. 이런 모습들을 보며, 커피가 제공하는 것은 공간이나 음료가 아니라 '나 자신과 함께 할 수 있는 용기'라는 생각이 든다.

커피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다. "커피 한 잔 할까?"라는 말만큼 자연스럽고 친근한 만남의 제안이 또 있을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카페에 앉는다. 주문을 하고, 커피가 나올 때까지의 그 짧은 기다림조차 설렌다. 각자 좋아하는 커피를 주문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달콤한 캐러멜 마키아토를 좋아하는 친구, 쓴 아메리카노만 고집하는 동료, 계절마다 다른 음료를 시도해보는 후배. 커피 취향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현재 상태를 엿볼 수 있는 작은 창구가 되기도 한다. 커피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들은 특별하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깊은 고민까지,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말들은 다른 상황에서보다 더 솔직하고 진솔하다. 커피가 주는 약간의 각성 효과와 카페라는 중립적 공간이 만들어내는 편안함이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열게 만드는 것일까. 가끔 혼자 카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면, 각각의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관계의 스펙트럼을 볼 수 있다. 첫 데이트로 보이는 어색한 커플, 진지한 표정으로 업무 얘기를 나누는 동료들, 아이와 함께 온 젊은 엄마, 오랜 친구들의 편안한 수다. 모두 다른 관계, 다른 나이, 다른 상황이지만 커피라는 공통점으로 같은 공간에 모여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커피가 만들어내는 '사회'에 대해 생각해본다. 커피는 계층이나 나이, 직업을 초월해서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다. 대기업 임원도, 알바생도, 학생도, 은퇴한 어르신도 같은 카페에서 같은 커피를 마신다. 커피 앞에서만큼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실감한다.

커피 문화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스페셜티 커피의 등장으로 커피의 품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홈카페 문화의 확산으로 집에서도 전문점 수준의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공정무역 커피, 친환경 포장재 사용 등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도 커피 산업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커피 한 잔이 주는 위안, 커피를 매개로 한 만남의 소중함, 그리고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게 해주는 커피만의 마법. 이런 본질적인 가치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커피는 우리 삶의 일부로 남아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든, 어떤 맛이든, 커피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위로하고, 각성시키는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여정에 함께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옆에는 커피 한 잔이 있다. 아직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원두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오늘 아침에 갓 로스팅한 원두로 내린 커피다. 첫 모금을 마시며, 오늘 하루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상상해본다. 누구를 만날지, 어떤 대화를 나눌지,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지. 그 모든 순간들 속에 아마도 커피가 함께할 것이다. 커피는 결국 삶 그 자체와 닮아있다. 때로는 쓰고, 때로는 달고, 때로는 향긋하다. 혼자 마셔도 좋고, 함께 마셔도 좋다. 급하게 마셔도 되고, 천천히 음미해도 된다. 정답이 없고, 각자의 방식이 있을 뿐이다. 오늘 저녁에는 친구와 카페에서 만날 예정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소중한 사람과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쌓인 이야기들을 나눌 생각이다. 어떤 커피를 주문할지, 어떤 이야기를 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 커피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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