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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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996년 한국 문학의 발전을 위해 제정된 한겨레문학상이 30주년을 맞았다. 이 특별한 해를 기념하여 출간된 <서른 번의 힌트>를 읽으며, 나는 한국 문학사에서 이 상이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와 그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겨레문학상은 상만올 주고받는 의례적 행사가 아니었다. 심윤경, 박민규, 윤고은, 최진영, 장강명 등 현재 한국 문학을 이끌고 있는 작가들의 이름을 보면, 이 상이 얼마나 예리한 안목으로 재능 있는 작가들을 찾아내고 키워왔는지 알 수 있다.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축적된 이러한 성과는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문학상이 지닌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발굴이다.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뛰어난 작가를 찾아내어 문학계와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것. 한겨레문학상은 이 역할을 충실히 해왔고, 그 결과 한국 문학의 지형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이번 앤솔러지의 기획은 매우 흥미롭다. 역대 수상 작가들이 자신의 당선작을 모티프로 새로운 작품을 쓴다는 것. 작가에게 있어 당선작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자신이 작가로서 세상에 첫발을 내딛게 해준 작품이자, 동시에 평생 쓸 이야기의 원형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박서련의 <옥이>를 읽으며 나는 이러한 연속성의 아름다움을 절감했다. <채공녀강주룡>의 옥이가 강주룡을 그리워하며 쓴 편지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거 작품을 재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미처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새로운 시선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수록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한국 문학이 지난 30년간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발전해왔는지가 보인다. 소수자 문제, 성차별, 가정폭력, 사회적 불평등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뤄온 것이다. 특히 최진영의 <무명>이나 서수진의 <정말 괜찮으세요?> 같은 작품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과 폭력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문학이 사회적 성찰의 도구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믿음이 이러한 작품들에서 드러난다.

이 앤솔러지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각 작가의 독특한 문체와 시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20명의 작가가 모두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언어로 그것을 표현한다. 이러한 다양성이야 말로 한국 문학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증거다. 하승민의 SF적 상상력, 김희재의 무거운 현실 인식, 강성봉의 판타지적 요소, 김유원의 일상적 서사 등이 한 권의 책 안에서 어우러지면서도 각자의 색깔을 잃지 않는다. 이는 한겨레 문학상이 특정한 경향이나 유파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문학적 시도를 포용해왔음을 의미한다. 한창훈의 〈홍합, 이시죠?>에서 작가는 문학상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토성이 양자리에 들어간다는 점성술적 해석을 통해서 라도 희망을 찾으려는 모습이 애정스럽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책이 몹시 안 팔리는 시절"이라는 현실 인식도 정확하다.

현재 한국 문학은 독자들의 관심 부족과 출판 시장의 어려움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웹소설과 웹툰 등 새로운 매체가 부상하면서 전통적인 문학의 위치는 더욱 위태로워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문학이 가진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존재한다. <서른 번의 힌트> 같은 기획이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존 독자들에게는 친숙한 작가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새로운 독자들에게는 한국 문학의 풍부함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각 작품에 30'이라는 키워드를 숨겨놓아 찾는 재미를 더한 것도 소통을 위한 세심한 배려인 것 같다. 30년이라는 시간은 한 세대가 지나는 시간이다. 1996년에 한겨레문학상이 제정될 때의 문학 환경과 현재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인터넷의 보급, 소셜미디어의 등장, 디지털 출판의 확산 등 문학을 둘러싼 모든 조건이 바뀌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 도 있다. 인간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문학의 본질적 욕구는 여전하다. <서른 번의 힌트>에 수록된 작품 들이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이런 불변의 가치다. 시대가 바뀌어도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 꿈과 좌절, 희망과 절망이라는 인간 존재의 근 본적 조건들은 변하지 않는다.

한겨레문학상 30주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지속성이라고 본다. 30년 동안 일관되게 좋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해온 것, 한국 문학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해온 것, 그리고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온 것이 오늘의 성과를 만들어냈다. 앞으로의 30년은 어떨까.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문학의 형태와 유통 방식은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AI가 소설을 쓰는 시대도 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인간이 쓰는 문학의 가치는 더욱 소중해질 것이다.

<서른 번의 힌트>를 읽으며 나는 한국 문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게 되었다. 좋은 작가들이 계속 나오고 있고, 그들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출판 시장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의미있는 기획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런 조건들이 유지되는 한, 한국 문학의 미래는 밝다고 본다. 30년을 돌아보며 다음 30년을 준비하는 한겨레문학상의 여정에 한국 문학 전체가 함께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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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 - 나를 활자에 옮기는 가장 사적인 글방
양다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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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무용한 일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을. 빈 화면 위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한 글자씩 눌러가며 문장을 만들어내는 이 행위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문해본다. 밥을 주지도, 평화를 가져다주지도 않는 이 일이 왜 이렇 게 간절한가. 그런데 이상하다. 이 무의미해 보이는 시간들이 쌓이면서 내 삶의 모든 순간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카페에서 들리는 대화의 조각, 비 내리는 창밖 풍경까지도 모든 것이 잠재적인 이야기의 씨앗처럼 느껴진다. 마치 세상 전체가 거대한 원고지가 된 것 같다. 양다솔의 편지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쓰는 사람은 정말 다르게 산다. 조금 더 살금살금 걷고, 시선이 더 오래 머물고, 나지막이 혼잣말을 한다. 나 역시 언제부턴가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도, 마트에서도, 잠들기 전에도 항 상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만 보이는 풍경이 있다. 그것은 다른 누구도 대신 말해줄 수 없는 것들이다. 내가 겪은 실패의 맛, 내가 느낀 상실의 무게, 내가 스쳐간 순간들의 온도까지도 모두 나만의 것이다. 어제 오래된 친구와 통화를 했다. 같은 학교를 다니고, 같은 시절을 보냈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그 시간은 전혀 달랐다. 그녀에게는 찬란했던 고등학교 시절이 나에게는 외로움으로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같은 교실, 같은 선생님, 같은 급식이었는데 말이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느꼈던 그 외로움도, 복도 끝에서 혼자 점심을 먹었던 그 시간도,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 써내지 않으면 영영 사라져버릴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실패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삶에서의 실패는 여전히 아프고 견디기 힘들지만, 글 속의 실패는 왜 이렇게 아름다운가.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의 좌절처럼, 소설 속 인물의 넘어짐처럼, 거리감이 생기면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지난해 준비했던 일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을 때, 나는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몇 달 후 그 경험을 글로 쓰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절망적이었던 순간들이 하나하나 선명해지면서, 동시에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실패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낸 나 자신, 포기하지 않았던 작은 희망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배운 것 들이다. 글을 쓰는 것은 실패를 가지고 노는 것 같다. 조물주가 점토를 빚듯이, 나의 좌절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펴보고, 다른 각도에 서 조명을 비춰보고, 때로는 유머로 포장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가 된다.

가장 쓰기 어려운 것이 상실에 관한 이야기다. 떠나간 사람들, 잃어버린 시간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들. 그런 것들에 대해 쓰려고 하면 먼저 내 마음이 먹먹해진다. 정말 이런 사적인 아픔을 남들이 읽어도 되는 걸까, 하는 주저함도 든다. 하지만 써보면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거대했던 상실이 글자 수만큼 작아진다. 마치 어둠 속의 괴물이 불을 켜면 작은 그림자에 불과했던 것처럼. 글로 쓰인 상실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쉼터가 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몇 년 동안 그 이야기를 쓸 수 없었다. 너무 가까워서, 너무 아파서.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할머니의 손등에 있던 검은 점을 떠올리며 글을 써 내려갔다. 그 작은 점에서 시작해서 할머니의 일생으로, 그리고 나와의 추억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그렇게 쓰고 나니 할머니가 떠나신 게 아니라 글 속에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빈 문서 앞에 앉으면 막막하다. 하얀 화면과 깜빡이는 커서가 주는 압박감은 언제나 똑같다. '오늘은 뭘 써야 하지?',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혹시 쓸 만한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닐 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 때, 양다솔의 말이 떠오른다. 막막한 만큼 좋은 이야기가 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 이야기를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고. 그러니 도망치지 말고 다시 돌아오라고. 정말 그런 것 같다. 가장 쓰기 싫은 날에 쓴 글이 의외 로 좋을 때가 있다. 아무 영감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키보드에 손을 올리면 어디선가 문장들이 흘러나온다. 마치 지하수처럼, 보이 지 않는 곳에서 계속 흐르고 있던 이야기들이 말이다.

양다솔님이 상상하는 그 도서관을 나도 그려본다. 우리가 쓴 이야기들로 가득 찬 공간. 거기서는 결코 귀를 막지 않을 것이라는 그 말이 가슴 깊이 와닿는다. 누구의 이야기든 환영받는 곳, 어떤 목소리든 들을 수 있는 곳. 내가 쓴 글들도 언젠가 그 도서관의 한 권이 될 수 있을까. 누군가 내 이야기를 읽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고 위로받을 수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하면 지금 이 순간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이 조금 더 경건해진다. 글쓰기는 끝이 있으면서도 없다. 하나의 글을 완성하면 끝이지만, 동시에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기도 하다. 삶이 계속되는 한 쓸 이야기도 계속 생겨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 빈 문서 앞에 앉아있을 것이다. 나처럼 막막해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첫 문장을 쓰려고 하는 사람이. 그 사람에게 양다솔의 편지가 닿기를, 그리고 내 이야기도 작은 응원이 되기를 바란다. 빈 문서의 깜빡임이 더 이상 무섭지 않다. 그것은 곧 시작될 이야기의 신호등이다. 초록이 켜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오늘도 그 깜 빡임을 바라보며 첫 문장을 준비한다. 양다솔님께 받은 정말 좋은 편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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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오해받지 않는 말투의 기술 - 제안, 부탁, 거절, 사과까지 손해는 줄이고 호감은 높이는 상황별 솔루션
후지타 다쿠야 지음, 송해영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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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무실의 형광등 불빛 아래, 나는 또 한 번 내 말투 때문에 어색해진 분위기를 마주했다. "이 부분은 다시 검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라 고 말했을 뿐인데, 동료의 표정이 순간 굳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전달하려던 건 업무적 피드백이었지만, 상대방이 받아들인 건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이었다는 것이다. 말이란 참 신기한 존재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같은 선물이라도 포장지에 따라 받는 사람의 기분이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는 매일 수많은 말을 주고받 으며 살아가지만, 정작 그 말들이 상대방의 마음에 어떤 파문을 일으키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해보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사회 생활 속에서 오해 받지 않는 말투를 잘 쓸 수 있을 까 고민해 본다. 이번에 읽은 신간 <더 이상 오해받지 않는 말투의 기술>은 짧지만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들을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것 좀 해주세요"와 "당신의 힘을 빌리고 싶어요"는 요청하는 내용은 같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에 전해지는 무게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업무 지시처럼 느껴지지만, 후자는 나의 능력을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준다. 어느 날 후배가 나에게 "선배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을 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심플하게 " 도와주세요 " 라고 했다면 의무감으로 도왔을 텐데, 그 한마디는 내 안의 선배로서의 자존감을 깨워주었다. 나도 모르게 더 정성스럽게, 더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부탁을 할 때는 상대방의 마음속에 있는 여려 허들을 하나씩 넘어서야 한다. 시간 부족이라는 현실적 제약,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자기 의심까지. 이 모든 장벽을 넘어서려면 상대방에게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자신 감은 진심 어린 신뢰의 표현에서 시작된다.

회의실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할 때의 그 미묘한 공기를 기억한다. 나는 열정적으로 설명했지만, 듣는 사람들의 표정은 차가웠다. 그때 깨달았다. 설득이란 일방적으로 내 생각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과 내 마음 사이의 온도차를 줄여나가는 과정이다. "이 아이디어 어떠세요?"보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주 동안 고민한 결과인데요"라고 말하는 순간, 상대방의 눈빛이 달라진다. 보이지 않는 노력을 보이게 만드는 것, 그것이 설득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될 수 있다. 상대방은 그 시간과 정성을 느끼고, 비로소 진지하게 내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안 됩니다"라는 말만큼 관계를 어색하게 만드는 말도 드물다. 하지만 모든 요청을 들어줄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거절하되 상처주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금은 다른 일로 손이 꽉 차 있어서 충분히 신경 쓰기 어려울 것 같아요." 대신 "다음 주라면 시간을 내 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이렇게 말하면 거절이 아니라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된다. 상대방도 나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고, 오히려 나를 더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거절 또한 하나의 예술이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내 상황을 이해시키는 섬세한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인 것이다.

말투의 기술이란 상대방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내 감정을 잘 다스리며, 함께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가짐에서 출발한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그 사람의 인품과 배려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고, 상황을 고려하여 적절한 표현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숙한 어른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이 아닐까. 이런 깨달음들을 일상에 적용해보니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났다. 동료들과의 관계가 더 편안해졌고, 회의 시간도 더 효율적이 되었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면서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이거 언제까지 해주실 수 있나요?"를 "혹시 일정상 무리가 없으시다면 언제쯤 가능하실까요?"로 바꿔 말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반응이 달라진다. 작은 변화지만 그 파급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결국 우리가 나누는 모든 대화는 감정의 교류다.

내가 던진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하루를 밝게 만들 수도, 어둡게 만들 수도 있다. 그 책임감을 느끼며 더욱 신중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말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좋은 말투란 상대방을 나와 함께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힘이 있다. 서로 다른 온도의 마음들이 만나 따뜻한 조화를 이루어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진정한 소통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오늘도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에서, 내 말 한마디가 그 사람에게 작은 힘이 되고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욱 정성스럽게 말을 고른다. 말이 가진 힘을 믿으며, 그 힘으로 더 나은 관계 를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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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한국사
김재완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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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언제나 무겁고 딱딱한 학문이라고 생각해왔다. 연도를 외우고, 왕조의 순서를 암기하며, 중요한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파악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과목,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내게 <기묘한 한국사>는 완전히 새로운 역사와의 만남을 선사했다.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의 느낌은 마치 오래된 보물상자를 열어보는 것 같았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정형화된 역사 서술과는 전혀 다른,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사의 '비주류' 이야기들을 통해 역사가 암기 과목이 아닌, 살아 숨쉬는 인간들의 드라마임을 보여준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명작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긴 여정은 미술품의 이동사만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문화재에 대한 애정, 민족적 자존심, 그리고 한 서예가의 절절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1944년, 조선 최고의 서예가 손재형이 일본에 건너가 후지츠카를 설득하는 장면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동감있게 그려져 있다. "돈은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드리겠소이다. 세한도만이라도 돌려주십시오." 이 간절한 외침 속에서 우리는 민족의 혼이 담긴 문화유산을 되찾으려는 한 사람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이 이야기가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 기증으로 완결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순간, 역사가 옛날이야기가 아닌 현재진행형임을 실감하게 된다.

또 다른 충격적인 이야기는 광개토대왕릉비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 민족의 자긍심이라 여겨온 이 비석이 현재 중국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고, 오히려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가슴 아픈 현실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역사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층적인지를 깨달았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도 사실은 여러 해석과 관점이 존재하며, 현재의 정치적 상황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의 산송 이야기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였다. 고려시대 재상 윤관 장군의 잃어버린 묘를 찾는 과정에서 벌어진 이 갈등은 가문의 명예, 조상에 대한 예의, 그리고 조선시대 사회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보여준다. "우리 문중을 대표하는 윤관 장군의 묘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는 건 가문의 수치다." 이런 절실함이 결국 살인 사건까지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은 현대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동시에 그 시대 사람들에게 조상과 가문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였는지를 보여준다.

​경종의 갑작스러운 죽 음을 둘러싼 의혹은 조선왕조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였다. 곶감과 게장을 먹은 후 몸이 아픈 경종에게 어의는 인삼 복용을 금했지만, 연양군(훗날 영조)은 강력하게 인삼을 권했다. 결국 인삼을 복용한 다음 날 경종은 승하한다. "교묘한 독살인가, 무지에 의한 사고사인가, 게장이나 인삼과 상관없이 경종에게 주어진 운명이었을까." 저자의 이런 질문은 독자로 하여금 역사 속 진실을 추리하게 만든다. 정답이 없는 역사의 미궁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상상력을 동원해 진실에 다가가려 노력하게 된다. 조선시대 내내 금서로 분류되었던 정감록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진인 정도령이 나타나 조선을 멸망시키고, 새 나라를 세울 것이다"라는 예언서가 조선 사회에 미친 영향은 상상 이상이었다. 특히 '정씨'라는 성씨 자체가 정몽주, 정도전, 정여립 등 조선에서 금기시된 인물들의 성씨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 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심리와 당시 사회의 불안감을 엿볼 수 있다. 한 권의 책이 나라 전체를 뒤흔들 수 있었던 시대, 글의 힘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역사 속 인물들을 완벽한 성인이나 절대악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그들을 우리와 같은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그려낸다. 욕심도 있고, 실수도 하고, 때로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하는 평범한 인간들 말이다. 특히 친일파 최린이 재판장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나를 여기서 재판하는 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광화문 사거리로 끌고가 황소 네 마리로 나의 사지를 찢어 죽이시오"라고 말하는 장면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독립운동가에서 친일파로 변절한 인물의 마지막 순간에서 우리는 선악구도를 넘어선 인간의 복잡함을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과거의 이야기들이 현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저자의 시각이었다. 옛날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들이 현재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묘지 소송 이야기에서 우리는 현재의 부동산 분쟁과 비슷한 양상을 발견할 수 있고, 정감록 같은 예언서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서는 현대의 가짜뉴스나 음모론의 확산과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역사가 암기해야 할 딱딱한 사실들의 나열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들의 이야기이며, 현재 우리 삶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저자가 제시하는 '비주류' 이야기들은 오히려 그 시대의 진짜 모습을 더 생생하게 보여준다. 왕조의 흥망성쇠나 큰 전쟁보다도, 개인들의 작은 선택과 갈등, 욕망과 좌절이 역사 의 진짜 동력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덮으면서 든 생각은 역사가 결코 지루하고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가장 흥미진진한 인간 드라마가 가득한 보물창고라는 확신이 들었다. <기묘한 한국사>는 그런 보물들을 하나씩 꺼내어 우리에게 보여주는 훌륭한 안내서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책에서 다룬 이야기들 외에도 우리 역사 속에는 얼마나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숨어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궁금증이야말로 진정한 역사 공부의 시작점이 아닐까. 이제 역사책을 펼칠 때마다 시험을 위한 암기가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만나러 가는 설렘을 느끼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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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딸, 조용히 서재로 숨다 - 책 읽고 글쓰기에 빠진 부녀의 ‘180일 작가 프로젝트’
김기훈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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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 읽고 글쓰기에 빠진 부녀의 '180일 작가 프로젝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삶에는 때때로 의도하지 않은 멈춤이 찾아 온다. 육아휴직이라는 이름의 긴 쉼표 속에서, 한 아버지는 자신의 시간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회사라는 궤도를 벗어나 집이 라는 작은 우주 안에서, 그는 딸과 함께 새로운 리듬을 찾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 바로 서재였다. 서재는 책들이 꽂힌 공간 만의 의미가 아니었다. 그곳은 아버지와 딸이 각자의 언어로 세상을 탐험하는 실험실이었고,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관측소이자, 무엇보다 함께 성장하는 온실이었다. 180일이라는 시간 동안, 이 부녀는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통해 특별한 대화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키보드 위에서 문장을 직조했고, 딸은 크레용으로 상상의 세계를 펼쳤다. 서로 다른 매체였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본질은 같았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글쓰기는 거창한 문학적 야망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하루 10분이라는 소박한 약속에서 출발했다. 블로그라는 디지털 공간에 매일 조금 씩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작은 시작이 때로는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이들은 몸소 경험했다. 블로그 포스팅은 육아의 일상, 딸과의 대화,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들이 글의 재료가 되었다. 특히 딸의 순수한 질문들은 아버지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다. "아빠, 왜 어른들은 항상 바쁘다고 해?"라는 한 마디가 현대 사회의 속도감에 대한 에세이로 발전하기도 했고, "구름은 왜 떨어지지 않아?"라는 호기심이 과학과 상상력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지기도 했다. 매일 쓰는 습관이 정착되면서, 글쓰기는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렌즈가 되었다. 평범했던 일상 속에서도 글감을 발견하는 눈이 생겼고, 감정의 미묘한 변화도 문장으로 포착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글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버지로서의 정체성도 더욱 명확해졌다.

진정한 변화는 혼자가 아닌 함께할 때 일어났다. 딸이 그린 그림을 보며 아버지가 이야기를 만들고, 아버지의 글을 듣고 딸이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선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창작의 협업이었다. 딸의 그림 속에는 어른이 잃어버린 자유로움이 있었다. 하늘을 나는 고양이, 무지개색 나무, 웃는 해와 달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세계. 아버지는 이런 그림들을 보며 자신의 상상력이 얼마나 경직되어 있었는지 깨달았다. 동시에 딸의 그림은 새로운 이야기의 씨앗이 되었다. 이들의 협업은 동화책 제작으로 이어졌다. 딸의 그림과 아버지의 글이 만나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전문적인 출판사의 도움 없이도 창작자로서의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가족이 함께 만든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은 큰 의미였다.

​블로그 포스팅에서 시작된 글쓰기는 전자책 출간이라는 더 큰 목표로 발전했다. 꼭지 20개로 구성된 전자책을 15일 만에 완성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매일의 글쓰기 습관이 쌓인 덕분에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전자책 제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일관된 주제 의식이었다. 180일 동안 써온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자연스럽게 몇 개의 큰 주제로 분류할 수 있었다. 육아에 대한 생각, 독서의 즐거움, 딸과의 대화에서 얻은 깨달음, 일상 속에서 발견한 소소한 행복들. 이런 주제 들이 전자책의 골격을 이루었다. 편집과 교정, 표지 디자인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경험하면서,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무엇보다 자신의 글이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는 순간의 성취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출간된 전자책은 비록 베스트셀러는 되지 않았지만, 몇몇 독자들로부터 따뜻한 피드백을 받았다. 특히 같은 육아 휴직 중인 아버지들이나 글쓰기를 시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영감을 준다는 댓글들을 읽을 때마다 뿌듯함을 느꼈다. 글쓰기가 개인적인 성장을 넘어 타인과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180일 동안의 기록을 돌아보면, 가장 큰 깨달음은 일상 자체가 무궁무진한 글감의 보고라는 것이었다. 특별한 경험이나 극적인 사건이 아니어도, 평범한 하루하루 속에서 충분히 의미있는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아침에 딸과 함께 만든 샌드위치, 공원에서 만난 길고양이, 잠들기 전 읽어준 동화책 한 권. 이런 소소한 순간들이 모여 하나의 삶을 이루고, 그 삶이 곧 글의 재료가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순간들을 의식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습관이었다. 특히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은 글쓰기에 새로운 차원을 더했다. 어른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 아이가 던지는 질문들, 기발한 상상력, 순수한 감정 표현 등은 글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원동력이었다. 육아라는 일상적 경험이 창작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셈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이 모든 과정이 아버지 혼자만의 성장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딸 역시 아버지의 글쓰기 여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했다. 창작의 과정, 끈기의 중요성, 실패와 도전의 의미 등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더 나아가 이들의 관계 자체도 변화했다. 서로의 창작 활동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동반자가 되었다. 아버지는 딸의 첫 번째 독자가 되었고, 딸은 아버지의 가장 열정적인 팬이 되었다. 이런 관계의 변화는 가족 전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저녁 식사 시간에는 그날 쓴 글이나 그린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갔고, 주말에는 함께 서점을 방문해 새로운 책을 고르는 것이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책과 글이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끈 역할을 한 것이다. 180일의 기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 이후로도 아버지와 딸의 창작 여행은 계속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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