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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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996년 한국 문학의 발전을 위해 제정된 한겨레문학상이 30주년을 맞았다. 이 특별한 해를 기념하여 출간된 <서른 번의 힌트>를 읽으며, 나는 한국 문학사에서 이 상이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와 그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겨레문학상은 상만올 주고받는 의례적 행사가 아니었다. 심윤경, 박민규, 윤고은, 최진영, 장강명 등 현재 한국 문학을 이끌고 있는 작가들의 이름을 보면, 이 상이 얼마나 예리한 안목으로 재능 있는 작가들을 찾아내고 키워왔는지 알 수 있다.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축적된 이러한 성과는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문학상이 지닌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발굴이다.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뛰어난 작가를 찾아내어 문학계와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것. 한겨레문학상은 이 역할을 충실히 해왔고, 그 결과 한국 문학의 지형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이번 앤솔러지의 기획은 매우 흥미롭다. 역대 수상 작가들이 자신의 당선작을 모티프로 새로운 작품을 쓴다는 것. 작가에게 있어 당선작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자신이 작가로서 세상에 첫발을 내딛게 해준 작품이자, 동시에 평생 쓸 이야기의 원형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박서련의 <옥이>를 읽으며 나는 이러한 연속성의 아름다움을 절감했다. <채공녀강주룡>의 옥이가 강주룡을 그리워하며 쓴 편지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거 작품을 재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미처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새로운 시선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수록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한국 문학이 지난 30년간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발전해왔는지가 보인다. 소수자 문제, 성차별, 가정폭력, 사회적 불평등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뤄온 것이다. 특히 최진영의 <무명>이나 서수진의 <정말 괜찮으세요?> 같은 작품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과 폭력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문학이 사회적 성찰의 도구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믿음이 이러한 작품들에서 드러난다.

이 앤솔러지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각 작가의 독특한 문체와 시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20명의 작가가 모두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언어로 그것을 표현한다. 이러한 다양성이야 말로 한국 문학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증거다. 하승민의 SF적 상상력, 김희재의 무거운 현실 인식, 강성봉의 판타지적 요소, 김유원의 일상적 서사 등이 한 권의 책 안에서 어우러지면서도 각자의 색깔을 잃지 않는다. 이는 한겨레 문학상이 특정한 경향이나 유파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문학적 시도를 포용해왔음을 의미한다. 한창훈의 〈홍합, 이시죠?>에서 작가는 문학상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토성이 양자리에 들어간다는 점성술적 해석을 통해서 라도 희망을 찾으려는 모습이 애정스럽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책이 몹시 안 팔리는 시절"이라는 현실 인식도 정확하다.

현재 한국 문학은 독자들의 관심 부족과 출판 시장의 어려움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웹소설과 웹툰 등 새로운 매체가 부상하면서 전통적인 문학의 위치는 더욱 위태로워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문학이 가진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존재한다. <서른 번의 힌트> 같은 기획이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존 독자들에게는 친숙한 작가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새로운 독자들에게는 한국 문학의 풍부함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각 작품에 30'이라는 키워드를 숨겨놓아 찾는 재미를 더한 것도 소통을 위한 세심한 배려인 것 같다. 30년이라는 시간은 한 세대가 지나는 시간이다. 1996년에 한겨레문학상이 제정될 때의 문학 환경과 현재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인터넷의 보급, 소셜미디어의 등장, 디지털 출판의 확산 등 문학을 둘러싼 모든 조건이 바뀌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 도 있다. 인간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문학의 본질적 욕구는 여전하다. <서른 번의 힌트>에 수록된 작품 들이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이런 불변의 가치다. 시대가 바뀌어도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 꿈과 좌절, 희망과 절망이라는 인간 존재의 근 본적 조건들은 변하지 않는다.

한겨레문학상 30주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지속성이라고 본다. 30년 동안 일관되게 좋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해온 것, 한국 문학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해온 것, 그리고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온 것이 오늘의 성과를 만들어냈다. 앞으로의 30년은 어떨까.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문학의 형태와 유통 방식은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AI가 소설을 쓰는 시대도 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인간이 쓰는 문학의 가치는 더욱 소중해질 것이다.

<서른 번의 힌트>를 읽으며 나는 한국 문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게 되었다. 좋은 작가들이 계속 나오고 있고, 그들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출판 시장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의미있는 기획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런 조건들이 유지되는 한, 한국 문학의 미래는 밝다고 본다. 30년을 돌아보며 다음 30년을 준비하는 한겨레문학상의 여정에 한국 문학 전체가 함께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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