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금융 에세이 - 돈의 흐름을 읽고 미래를 설계하는 금융 습관 기르기 해냄 청소년 에세이 시리즈
한진수 지음 / 해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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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투자한 한 시간이 미래의 수천만 원을 만들 수 있다. 청소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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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금융 에세이 - 돈의 흐름을 읽고 미래를 설계하는 금융 습관 기르기 해냄 청소년 에세이 시리즈
한진수 지음 / 해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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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학창시절, 나는 수많은 공식을 외웠다. 이차방정식의 근의 공식, 화학 원소 주기율표, 삼각함수의 덧셈정리까지. 시험이 끝나면 대부분 잊어버릴 것들을 밤새워 암기했다. 그런데 정작 사회에 나와 매일같이 마주하게 될 돈 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었다. 은행 창구에서 처음 적금 상품을 가입할 때의 어색함을 아직도 기억한다. 단리와 복리가 무엇인지, 세전 금리와 세후 금리가 어떻게 다른지 물어보는 직원의 질문에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마치 외국어를 듣는 것 같았다. 우리는 돈을 좋아하고,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돈과 친해지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청소년기의 나에게 누군가 물었다. "너는 미래에 어떤 삶을 살고 싶니?" 나는 막연하게 대답했을 것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 삶을 위해 얼마의 돈이 필요한 지,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꿈을 그리되, 그 꿈의 설계도는 그려본 적이 없는 셈이다. 돈 이야기를 하면 속물적이라고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다. 돈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천박해 보일까 봐, 재테크에 관심 있다고 하면 물질만능주의자로 보일까봐, 우리는 돈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침묵하는 사이, 우리는 돈에 대해 무지해졌고, 그 무지는 결국 사회초년생이 된 우리를 빚더미에 앉히곤 했다. 이번에 우리 청소년들에게 미래의 금융 습관에 대해 쉬게 설명하는 신간을 읽었다. <청소년을 위한 금융 에세이> 어렵게 느껴지는 금융 주제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잘 꾸며져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실물 화폐를 만질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용돈도 계좌로 받고, 물건도 카드나 스마트폰으로 산다. 클릭 한 번으로 수만 원이 결제되는 세상. 돈이 손에서 빠져나가는 감각이 무뎌지면서, 지출에 대한 경각심 도 함께 사라진다. 편의점에서 카드를 긁을 때, 우리는 과연 그 돈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내가 쓴 돈은 편의점으로, 편의점은 그 돈으로 물건을 공급한 회사에게, 그 회사는 다시 직원들의 월급으로, 그 직원들은 또 다른 소비로. 돈은 멈추지 않고 세상을 돈다. 금융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 보이지 않는 돈의 흐름을 읽는 눈을 갖는 것이다. 왜 은행은 내 돈을 맡으면서 이자를 주는지, 왜 대출을 받으면 갚아야 할 돈이 빌린 돈보다 많은지, 왜 주식 가격은 매일 오르락내리락하는지. 이런 질문들에 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금융 생태계의 일원으로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한 청년이 영(영혼까지 끌어모아)과 빚투(빚내서 투자)로 수천만 원의 빚을 졌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안타깝다. 그들이 욕심이 많아서가 아니다. 어쩌면 그들은 그저 더 나은 삶을 꿈꿨을 뿐이다. 문제는 그 꿈을 이루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방에 인생역전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자산을 쌓아가는 법을 알았다면, 그들의 현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100만 원을 연 5% 복리로 예금하면 50년 후 1,147만 원이 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추가로 한 푼도 넣지 않았는데 돈이 스스로 11배나 불어난다니. 이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이 "복리는 인류 최대의 발명"이라고 말한 이유일 것이다. 청소년기에 이 복리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20대에 시작하는 것과 40대에 시작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복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마치 눈덩이가 굴러가며 점점 커지는 것처럼 말이 다. 하지만 많은 청소년들은 "난 아직 어려서 돈이 없는걸"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지금은 돈이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작하는 작은 습관이 미래를 바꾼다. 한 달에 5만 원이라도 꾸준히 저축하는 습관, 충동구매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 용돈 기입장을 쓰며 내 소비 패턴을 파악하는 습관. 이런 작은 습관들이 쌓이면, 나중에 큰 돈을 다룰 때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기초가 된다. 부자가 되는 비결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꾸준함이다. 매주 복권을 사는 대신 그 돈을 저축했다면, 커피값을 아껴 투자했다면, 10년 후 20년 후의 내 모습 은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시간은 복리의 친구다. 그리고 청소년인 여러분에게는 그 시간이 충분히 있다.


주변에서 주식으로 대박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솔깃해진다.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대박 이야기 뒤에는 수많은 쪽박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언론은 성공 사례만 조명하지, 실패한 사 람들의 이야기는 잘 다루지 않는다. 투자는 도박이 아니다. 공부다. 주식에 투자한다는 것은 그 회사와 동업한다 는 뜻이다. 동업할 회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돈을 맡기는 것은 무모함이다. 그 회사가 무엇을 만드는지,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 재무제표는 건전한지. 이런 것들을 공부하고 분석해야 한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는 투자 격언이 있다. 분산 투자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투자처라도 모든 돈을 거기에 몰빵하면 위험하다. 토끼도 굴을 세 개 판다.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다. 우리도 토끼처럼 현명해야 한다. 코인 열풍이 불 때, 많은 청소년들이 "친구가 코인으로 돈 벌었대"라며 뛰어들었다. 하지만 코인이 무엇인지, 블록체인 기술이 뭔지도 모른 채 투자하는 것은 눈 감고 벼랑 끝을 걷는 것과 같다. 투자는 이해할 수 있는 것에 해야 한다. 워런 버핏도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는 투자하지 않는다고 했다. 투자의 세계에서 홈런을 기대해선 안 된다. 꾸준한 안타를 치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는 것은 환상이다. 천천히, 꾸준히, 공부하며 자산을 늘려가는 것. 그것이 진짜 투자다.


"내일 갚을게"라고 말하고 정말 내일 갚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내일 갚을게"라고 해놓고 일주일이 지나도 안 갚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신용이 쌓이고, 후자는 신용이 깎인다. 신용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신용카드를 처음 만들었을 때의 설렘을 기억한다. 마치 무한한 돈이 생긴 것 같은 착각. 하지만 곧 청구서를 받고 현실을 깨달았다. 카드는 미래의 내 돈을 미리 쓰는 것이다. 오늘 긁은 카드는 내일의 빚이다. 특히 현금서비스나 리볼빙(회전신용)은 조심해야 한다. 급한 불을 끄려다가 더 큰 불이 날 수 있다. 높은 이자율 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당장 급하다는 이유로 쉽게 손대면, 나중에 감당하기 힘든 빚더미에 앉을 수 있다. 신용점수는 한 번 떨어지면 회복하기 어렵다. 대출을 받을 때, 집을 구할 때, 심지어 취업할 때도 신용은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다. 젊을 때 쌓은 신용은 평생의 자산이다. 반대로 젊을 때 망친 신용은 평생의 짐이 된다. "오늘 하루쯤이야"라는 생각으로 연체하면 안 된다. 신용은 쌓는 데는 오래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 빌린 돈을 제때 갚는 것, 카드값을 밀리지 않는 것. 이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 신용이라 는 든든한 자산을 만든다.

현대는 100세 시대다. 은퇴 후 생활이 현역 시절보다 더 길 수도 있다.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위험이 될 수도 있는 시대. 장수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이른바 '3층 연금'이라고 부르는 노후 준비 시스템이 있다. 아파트의 경우, 1층만 있는 것보다 3층까지 있는 게 더 안정적이다. 연금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만 의존하는 것보다 여러 층으로 쌓는 게 안전하다. 젊을 때는 연금이 멀게만 느껴진다. "난 아직 젊은데 무슨 연금"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연금은 빨리 시작할수록 유리하다.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넣으 면 복리의 마법으로 나중에 큰 금액이 된다. 더구나 세금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 보험도 마찬가지다. 젊고 건강할 때 가입하면 보험료가 저렴하다. 나이 들어서 가입하려면 보험료도 비싸고, 건강 검진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위험 관리는 위험이 닥치기 전에 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젊으니까 괜찮아"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예상치 못한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아프면 치료비가 들고, 일을 못하면 수입이 끊긴다.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보험은 바로 이런 위험을 대비하는 안전망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하지만 정작 돈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한다. 졸업 후 사회에 나가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이 돈 문제인데도 말이다.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불릴 것인지. 이보다 실용적이고 중요한 지식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금융 공부는 투자다. 그것도 가장 수익률 좋은 투자다. 한 시간 공부해서 평생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복리 계산법을 알면 저축 상품을 고를 때 손해 보지 않는다. 신용카드 약관을 제대로 읽을 줄 알면 불필요한 수수료를 내지 않는다. 주식 투자의 원리를 이해하면 사기에 넘어 가지 않는다. 금융 사기는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원금 보장, 고수의"이라는 달콤한 말로 유혹한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높은 수익에는 반드시 높은 위험이 따른다. 금융을 공부하면 이런 사기를 구별하는 안목이 생긴다. 재테크는 대박을 터뜨리는 요령이 아니다. 주어진 소득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일반 예금보다 조금 더 많은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화려한 성공 스토리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꾸준하고 지루해 보이는 방법이 결국 가장 확실한 길이다. 책을 통해 매주 한 시간씩만 금융 공부를 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 될 것이다. SNS 하는 시간, 게임 하는 시간을 줄여야 할 것이다. 그 시간에 금융 뉴스를 읽고, 경제 유튜브를 보고, 재테크 책을 읽어야 한다. 지금 투자한 한 시간이 미래의 수천만 원을 만들 수 있다. 청소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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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MBTI 성격 사전 - 명리로 살펴보는 나의 성격과 기질
허은경 지음 / 현암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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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모두 어느 순간의 증거다. 2025년 어느 겨울날 새벽, 그 시각의 하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 찰나의 우주적 배열이 각인되었다는 명제 앞에서, 현대인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과학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것은 미신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책에서 저자는 20만 년 인류가 축적한 관찰의 결정체임을 차근차근 설득한다. 저자 허은경이 MBTI를 '보급형 명리학'이라 부른 순간, 나는 묘한 전율을 느꼈다. 외향과 내향, 직관과 감각, 사고와 감정, 이 이분법적 구조가 음 양의 사유와 닮아있다는 통찰은 새로웠다. 동서양의 지혜가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진실을 말해왔다는 것. 인간은 세상을 '나'와 '외부'로 나누고, 그 관계의 방식으로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 MBTI가 현대 심리학의 언어로 포장한 이 구조를, 명리 학은 이미 수천 년 전 하늘의 언어로 기록해두었다. 흥미로운 건 두 체계 모두 인간을 고정된 범주에 가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MBTI가 16가지 유형을 제시하면서도 스펙트럼을 강조하듯, 명리학의 120가지 성격 유형 역시. 경계가 흐릿하다.

인월에 태어났다고 인의 정서만 갖는 게 아니라, 직전과 직후 월지의 특성도 함께 품는다. 이 유연함이야말로 고대 학문이 살아남은 비결이 아닐까. 인간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 기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그런데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일지 모른다. "나는 누구로 태어났는가?" 환경이 우리를 빚어내지만, 그 빚어짐의 방식은 이미 타고난 기질에 의해 결정된다. 소나무는 어떤 환경에서도 소나무다. 바람에 휘어질 수는 있어도 참나무가 되지는 않는다. 저자가 들려주는 딸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사주상 위와 장이 약하게 태어난 아이. 유치원에서 정해진 양의 급식을 시간 내에 먹어야 한다는 규칙 앞에서 아이는 무너졌다. 타고난 체질을 인정 하고 식사량을 조절하자 아이는 다시 웃었다.

명리학의 실용적 가치를 보여준다. 약한 위장을 강하게 만들려 애쓰는 대신, 약한 위장을 인정하고 그에 맞춰 살아가는 지혜. 이것이 바로 타고난 본성을 아는 것의 의미다. MBTI 열풍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INFP인지 ENFJ인지 알고 싶어한다. 그것이 자기이해의 지름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MBTI는 4가지 지표, 16가지 조합에 그친다. 명리학은 10개의 천간과 12개의 지지로 120가지 조합을 만든다. 더 세밀한 지도다. 나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일간이 어떤 정서의 계절인 월지에 놓였는가에 따라, 나의 고유한 기질 이 드러난다. 여름에 태어난 사람은 활기를, 겨울에 태어난 사람은 고요를 부여받는다는 발상이 비과학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계절이 생명에 미치는 영향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면, 왜 계절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문제는 과학적 증명이 아니라 실용적 타당성이다. 이 120가지 성격 지도가 실제로 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생각해 본다...

전통 지식에는 '왜'가 없는 경우가 많다. 수천 년의 시행착오 끝에 '무엇'과 '어떻게'만 남았기 때문이다. 명리학도 마찬가지다. 왜 갑일간 인월생이 INTP 의 흐름과 비슷한지, 그 인과관계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수천 년간 검증되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 60진법 시간이 10진법으로 바뀌지 않은 이유도 같다. 프랑스 혁명 정부는 시간을 10진법으로 바꾸려 했지만 12년 만에 포기했다. 1시간 60분, 1분 60초가 인간의 본성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늘의 움직임, 즉 황도 12궁과 360도 를 60으로 나눈 천문학적 질서와 일치한다. 수메르 문명 이전부터 전해져온 이 60진법을 우리는 유전자에 새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명리학은 검증 불가능하지만 반증 불가능하기도 하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지혜의 영역이다. 중요한 건 이것이 작동하느냐는 것.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관계를 맺고, 선택을 내리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다.

MBTI가 유행하는 이유는 재미 때문만은 아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좌표를 찾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사주×MBTI 성격 사전>은 이 물음에 대해 더 오래되고 더 섬세한 답을 제시한다. 120 가지 성격 지도는 나만의 별자리를 찾게 해준다. 융은 말했다. "진정한 치유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되 려면 먼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타고난 정서와 기질을 알고,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관리하는 것. 이것이 명리학과 MBTI가 우리에게 건네는 공통의 메시지일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내 사주를 찾아봤다. 일간과 월지를 확인하고, 해당하는 페이지를 펼쳤다. 거기 적힌 문장들은 나를 설명하고 있었다. 우연일 수도 있다. 바넘 효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인공지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AI 만능의 시대에 나를 조금은 다른 접근 방법으로 이해해 본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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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 (양장) - 살아 있음의 슬픔, 고독을 건너는 문장들 Memory of Sentences Series 4
다자이 오사무 원작, 박예진 편역 / 리텍콘텐츠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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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다자이 오사무를 읽는다는 것은 어떤 경험일까. 그것은 마치 깊은 밤 홀로 거울 앞에 서는 일과 닮아 있다. 거울 속 자신의 눈을 똑바로 마주할 때, 우리는 낮 동안 애써 외면했던 내면의 균열들을 발견한다. 다자이의 문장은 바로 그런 거울이다. 화려하게 포장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인간 존재를 비추는 것이다. 1948년 6월, 서른여덟의 나이로 타마강에 몸을 던 진 작가. 그의 마지막은 많은 이들에게 문학적 파멸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가 남긴 문장들을 천천히 읽다 보면, 역설적이게도 그 안에서 삶을 향한 처절한 갈망을 발견하게 된다. "부끄러움 많은 생애를 보냈다"고 고백하면서도, 끝까 지 펜을 놓지 않았던 사람. 죽음을 선택하면서도 동시에 살기를 갈구했던 모순적 존재.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는 바로 그 틈새에 존재한다.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자신은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사회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에 지쳐, 자신을 인간 자격 상실자로 규정하는 그의 고백은 충격적이다. 하지만 이 극단적 자기부정 속에는 오히려 가장 인간다운 무언가가 숨어 있다. 바로 '진실이다. 우리 시대는 긍정의 언어로 가득하다. SNS는 성공 서사와 행복 인증으로 넘쳐나고, 자기계발서 는 "할 수 있다"는 주문을 되뇐다. 그런 세계에서 다자이의 문장은 불온하다. "나는 약하다", "나는 두렵다", "나는 살 자격 이 없다"-이런 고백들은 현대의 긍정 강박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러나 바로 그 충돌 지점에서 우리는 해방을 경험한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강해야 한다는 폭력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책은 필사를 권한다. 읽는 것만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문장을 옮겨 쓰는 행위. 디지털 시대에 이것은 얼마나 아날로그적이고 비효율적인 방법인가. 하지만 바로 그 비효율성 속에 의미가 있다. 문장을 필사할 때, 우리는 작가의 호흡을 따라간다.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쓰면서 그가 선택한 단어, 문장의 리듬, 쉼표의 위치까지 온몸으로 경험한다. "악당은 오래 살고, 예쁜 사람은 빨리 죽는다"는 문장을 읽을 때와 쓸 때는 다르다. 읽을 때는 지나칠 수 있는 문장이, 쓸 때는 손끝에서 멈칫 거린다. '예쁜 사람'이라는 표현 뒤에 숨은 작가의 애틋함이, 빨리 죽는다'는 예언적 선언 속 불길함이 손을 통해 가슴으로 전해진다. 특히 다자이의 문장은 필사하기에 적합하다. 그의 언어는 장식적이지 않고 직접적이다. 화려한 수사 대신 뼈만 남은 문장들. 그래서 한 줄 한 줄이 무겁다. "나에게는 인간의 생활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이 문장을 손으로 쓰는 순간, 우리는 잠시 다자이가 된다. 그의 고독을 빌려 입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다자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음식 장면들이다. <사양>에서 가즈코가 우동을 먹으며 살아 있는 것의 쓸쓸함을 극한까지 맛본다"고 말하는 장면. 뜨거운 김 속에서 면을 후루룩 들이키는 그 순간, 그녀는 역설적으로 살아 있음을 가장 강렬하게 느낀다. 쓸쓸함으로서가 아니라, 쓸쓸함을 통해서다. 이것이 다자이 문학의 핵심이다. 그는 절망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망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그것을 온전히 경험한다. 그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비로소 발견하는 것이 있다. "행복감이라는 것은 슬픔의 강바닥에 가라앉아 희미하게 빛나는 사금 알갱이 같은 것" 문장이 말하는 진실은 명료하다. 행복은 슬픔의 반대편에 있지 않다. 슬픔 속에, 슬픔 아래에 존재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다자이를 "자기 파괴를 통해 끝내 인간을 긍정한 작가"라고 평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다자이는 자신을 파괴하면서 동시에 구원했다.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그의 작품들은 일종의 '기록'이다. 무너져 내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 그 솔직함이 오히려 보편성이 된다. 왜 2024년을 사는 우리가 1948년에 죽은 일본 작가의 문장에 공명하는가. 그것은 그가 다룬 주제들 즉,고독, 소외, 위선, 자기혐오 등 이 시대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오늘 날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연결되어 있으나 고립된 현대인들, 성공을 강요받으나 의미를 상실한 세대들에게 다자이의 문장은 위로가 된다. 네가 느끼는 그 슬픔은 정당하다고, 네가 무너지는 것은 인간적이라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다자이의 문장을 읽고, 쓰고, 음미하며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각 장마다 제공되는 필사 공간은 사유의 장으로 초대한다. 빈 페이지 앞에서 우리는 질문한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나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가. 나는 정말 살고 싶은가라고 묻는다. 무겁고 어두운 질문들이다. 하지만 다자이가 증명했듯, 이런 질문들을 회피하지 않을 때 비로소 진짜 삶이 시작된다. 가면을 벗고 연기를 멈출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것이 설령 고통스럽더라도 말이다. 다자이가 그랬듯이, 무너지면서도 끝내 일어서기를. 그의 문장이 어둠 속 작은 등불이 되어, 우리 각자의 밤을 비추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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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 - 인권의 길, 박래군의 45년
박래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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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곁'을 명사로 안다. 누군가의 옆자리, 가까운 거리, 물리적 위치. 하지만 박래군의45년은 '곁'을 동사로 바꾼 시간이었다. 곁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곁을 '지킨다'는 것.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고, 감정이 아니라 실천이며,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이다. 어떤 사람들은 뉴스를 본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뉴스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전자가 '알게 되는 것'이라면, 후자는 '견디게 되는 것'이다. 박래군은 후자였다. 그는 의문사 현장에서, 고문 피해자의 증언 옆에서, 철거민의 마지막 저항 속에서, 세월호 유가족의 긴 침묵 곁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쌓여 하나의 질문을 만들었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어떻게 여기 남을 것인가?“ 책을 읽으며 깨닫는 것은, 인권운동이란 거창한 구호나 이론적 체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그 약속을 10년, 20년, 30년 동안 지키는 일이다. 세상이 다음 이슈로 넘어가도, 언론이 카메라를 거둬도, 정치가 외면해도, 그 자리에 남아 이름을 부르고 진실을 기록하는 일. 그것이 곁을 지킨다는 동사의 의미다.

박래군은 자신을 운동가라고 소개하지만, 그를 '슬픔의 번역자'라고 부르고 싶다. 그는 유가족의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시설 수용자의 침묵당한 비명을, 국가폭력 피해자의 억눌린 증언을 사회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옮긴 사람이다. 동생 박래전의 죽음은 그에게 개인적 비극이었지만, 동시에 다른 모든 억울한 죽음과 연결되는 통로가 되었다. 슬픔은 원래 닫혀 있다. 자기만의 방에 갇혀 바깥과 단절된다. 하지만 박래군은 자신의 슬픔을 닫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열쇠 삼아 다른 슬픔의 문을 두드렸다. "저도 형제를 잃었습니다." 그 한마디가 유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였을까. 번역이란 원문의 의미를 다른 언어로 옮기되, 그 감정의 온도까지 전달하는 일이다. 박래군은 고문 피해자의 떨리는 목소리를, 세월호 부모의 무너진 일상을, 대추리 주민의 마지막 저항을 단순히 '보도'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과 함께 울었고, 그 눈물의 온도를 기억했으며, 그것을 사회적 언어로 풀어냈다. 고통은 공감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아픔도 사회가 외면하면 '개인의 불행'으로 축소된다. 하지만 누군가 그 고통을 증언하고, 기록하고, 연결하면, 그것은 '구조적 폭력'으로 가시화된다. 박래군의45년은 바로 이 번역의 시간이었다.

책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승리'가 아니라 '패배'를 다루는 방식이다. 대추리는 결국 미군기지가 되었고, 용산은 재개발되었으며, 많은 진상규명은 여전히 미완이다. 일반적인 성공 서사라면 이런 이야기는 지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박래군은 패배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패배 속에서 무엇을 지켰는지를 보여준다. 대추리 농민들은 땅을 잃었지만, 마지막까지 스스로 결정하는 존엄을 지켰다. 용산 철거민들은 건물을 빼앗겼지만, 국가폭력의 실체를 온 사회에 각인시켰다. 세월호 유가족은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었지만,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게"라는 약속으로 슬픔을 연대로 바꾸었다. 현대 사회는 '결과'로만 평가한다. 이겼는가, 졌는가.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하지만 인권의 역사는 다른 척도를 요구한다. 얼마나 오래 버텼는가. 누구를 끝까지 배신하지 않았는가. 어떤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는가. 박래군의 기록은 바로 이 '과정의 존엄'을 증명한다. 패배는 끝이 아니라 다음 싸움의 시작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많은 권리들, 고문 금지, 의문사 진상규명, 장애인 인권, 재난 피해자 지원 등은 모두 누군가의 '패배'가 쌓여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들이 포기하지 않았기에, 패배를 기록했기에,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사회에서 산다.

박래군의 45년은 바로 이 '기억이라는 저항'의 실천이었다. 그는 죽은 자의 이름을 불렀고, 사라진 증거를 찾았으며, 잊혀질 뻔한 사건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을 엮어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다. 단편적인 비극이 아니라, 구조적인 폭력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역사. 개별 사건이 아니라, 국가와 자본과 권력이 반복해온 패턴을 드러내는 역사였다. 기억의 힘은 과거를 바꾸는 데 있지 않다. 미래를 바꾸는 데 있다.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은 침몰한 배를 되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시는 그런 배를 띄우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가 의문사를 기록하는 것은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시는 그런 죽음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박래군의 책을 덮으며 남는 것은 질문이다. 나는 누구의 곁에 서 있는가. 나는 무엇을 외면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어떤 고통 앞에서 눈을 돌리는가. 인권은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 내 옆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누군가의 억울함, 누군가의 차별, 누군가의 슬픔.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곁을 지키고, 기억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지만 가장 중요한 일이다. 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 하지만 그 온기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누군가 그 눈물 옆에 앉아, 함께 울어주고, 손을 잡아주고,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해줄 때, 비로소 온기가 생긴다. 박래군은45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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