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 (양장) - 살아 있음의 슬픔, 고독을 건너는 문장들 Memory of Sentences Series 4
다자이 오사무 원작, 박예진 편역 / 리텍콘텐츠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다자이 오사무를 읽는다는 것은 어떤 경험일까. 그것은 마치 깊은 밤 홀로 거울 앞에 서는 일과 닮아 있다. 거울 속 자신의 눈을 똑바로 마주할 때, 우리는 낮 동안 애써 외면했던 내면의 균열들을 발견한다. 다자이의 문장은 바로 그런 거울이다. 화려하게 포장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인간 존재를 비추는 것이다. 1948년 6월, 서른여덟의 나이로 타마강에 몸을 던 진 작가. 그의 마지막은 많은 이들에게 문학적 파멸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가 남긴 문장들을 천천히 읽다 보면, 역설적이게도 그 안에서 삶을 향한 처절한 갈망을 발견하게 된다. "부끄러움 많은 생애를 보냈다"고 고백하면서도, 끝까 지 펜을 놓지 않았던 사람. 죽음을 선택하면서도 동시에 살기를 갈구했던 모순적 존재.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는 바로 그 틈새에 존재한다.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자신은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사회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에 지쳐, 자신을 인간 자격 상실자로 규정하는 그의 고백은 충격적이다. 하지만 이 극단적 자기부정 속에는 오히려 가장 인간다운 무언가가 숨어 있다. 바로 '진실이다. 우리 시대는 긍정의 언어로 가득하다. SNS는 성공 서사와 행복 인증으로 넘쳐나고, 자기계발서 는 "할 수 있다"는 주문을 되뇐다. 그런 세계에서 다자이의 문장은 불온하다. "나는 약하다", "나는 두렵다", "나는 살 자격 이 없다"-이런 고백들은 현대의 긍정 강박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러나 바로 그 충돌 지점에서 우리는 해방을 경험한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강해야 한다는 폭력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책은 필사를 권한다. 읽는 것만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문장을 옮겨 쓰는 행위. 디지털 시대에 이것은 얼마나 아날로그적이고 비효율적인 방법인가. 하지만 바로 그 비효율성 속에 의미가 있다. 문장을 필사할 때, 우리는 작가의 호흡을 따라간다.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쓰면서 그가 선택한 단어, 문장의 리듬, 쉼표의 위치까지 온몸으로 경험한다. "악당은 오래 살고, 예쁜 사람은 빨리 죽는다"는 문장을 읽을 때와 쓸 때는 다르다. 읽을 때는 지나칠 수 있는 문장이, 쓸 때는 손끝에서 멈칫 거린다. '예쁜 사람'이라는 표현 뒤에 숨은 작가의 애틋함이, 빨리 죽는다'는 예언적 선언 속 불길함이 손을 통해 가슴으로 전해진다. 특히 다자이의 문장은 필사하기에 적합하다. 그의 언어는 장식적이지 않고 직접적이다. 화려한 수사 대신 뼈만 남은 문장들. 그래서 한 줄 한 줄이 무겁다. "나에게는 인간의 생활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이 문장을 손으로 쓰는 순간, 우리는 잠시 다자이가 된다. 그의 고독을 빌려 입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다자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음식 장면들이다. <사양>에서 가즈코가 우동을 먹으며 살아 있는 것의 쓸쓸함을 극한까지 맛본다"고 말하는 장면. 뜨거운 김 속에서 면을 후루룩 들이키는 그 순간, 그녀는 역설적으로 살아 있음을 가장 강렬하게 느낀다. 쓸쓸함으로서가 아니라, 쓸쓸함을 통해서다. 이것이 다자이 문학의 핵심이다. 그는 절망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망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그것을 온전히 경험한다. 그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비로소 발견하는 것이 있다. "행복감이라는 것은 슬픔의 강바닥에 가라앉아 희미하게 빛나는 사금 알갱이 같은 것" 문장이 말하는 진실은 명료하다. 행복은 슬픔의 반대편에 있지 않다. 슬픔 속에, 슬픔 아래에 존재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다자이를 "자기 파괴를 통해 끝내 인간을 긍정한 작가"라고 평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다자이는 자신을 파괴하면서 동시에 구원했다.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그의 작품들은 일종의 '기록'이다. 무너져 내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 그 솔직함이 오히려 보편성이 된다. 왜 2024년을 사는 우리가 1948년에 죽은 일본 작가의 문장에 공명하는가. 그것은 그가 다룬 주제들 즉,고독, 소외, 위선, 자기혐오 등 이 시대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오늘 날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연결되어 있으나 고립된 현대인들, 성공을 강요받으나 의미를 상실한 세대들에게 다자이의 문장은 위로가 된다. 네가 느끼는 그 슬픔은 정당하다고, 네가 무너지는 것은 인간적이라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다자이의 문장을 읽고, 쓰고, 음미하며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각 장마다 제공되는 필사 공간은 사유의 장으로 초대한다. 빈 페이지 앞에서 우리는 질문한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나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가. 나는 정말 살고 싶은가라고 묻는다. 무겁고 어두운 질문들이다. 하지만 다자이가 증명했듯, 이런 질문들을 회피하지 않을 때 비로소 진짜 삶이 시작된다. 가면을 벗고 연기를 멈출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것이 설령 고통스럽더라도 말이다. 다자이가 그랬듯이, 무너지면서도 끝내 일어서기를. 그의 문장이 어둠 속 작은 등불이 되어, 우리 각자의 밤을 비추기를 바래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