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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 - 인권의 길, 박래군의 45년
박래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곁'을 명사로 안다. 누군가의 옆자리, 가까운 거리, 물리적 위치. 하지만 박래군의45년은 '곁'을 동사로 바꾼 시간이었다. 곁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곁을 '지킨다'는 것.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고, 감정이 아니라 실천이며,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이다. 어떤 사람들은 뉴스를 본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뉴스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전자가 '알게 되는 것'이라면, 후자는 '견디게 되는 것'이다. 박래군은 후자였다. 그는 의문사 현장에서, 고문 피해자의 증언 옆에서, 철거민의 마지막 저항 속에서, 세월호 유가족의 긴 침묵 곁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쌓여 하나의 질문을 만들었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어떻게 여기 남을 것인가?“ 책을 읽으며 깨닫는 것은, 인권운동이란 거창한 구호나 이론적 체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그 약속을 10년, 20년, 30년 동안 지키는 일이다. 세상이 다음 이슈로 넘어가도, 언론이 카메라를 거둬도, 정치가 외면해도, 그 자리에 남아 이름을 부르고 진실을 기록하는 일. 그것이 곁을 지킨다는 동사의 의미다.
박래군은 자신을 운동가라고 소개하지만, 그를 '슬픔의 번역자'라고 부르고 싶다. 그는 유가족의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시설 수용자의 침묵당한 비명을, 국가폭력 피해자의 억눌린 증언을 사회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옮긴 사람이다. 동생 박래전의 죽음은 그에게 개인적 비극이었지만, 동시에 다른 모든 억울한 죽음과 연결되는 통로가 되었다. 슬픔은 원래 닫혀 있다. 자기만의 방에 갇혀 바깥과 단절된다. 하지만 박래군은 자신의 슬픔을 닫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열쇠 삼아 다른 슬픔의 문을 두드렸다. "저도 형제를 잃었습니다." 그 한마디가 유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였을까. 번역이란 원문의 의미를 다른 언어로 옮기되, 그 감정의 온도까지 전달하는 일이다. 박래군은 고문 피해자의 떨리는 목소리를, 세월호 부모의 무너진 일상을, 대추리 주민의 마지막 저항을 단순히 '보도'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과 함께 울었고, 그 눈물의 온도를 기억했으며, 그것을 사회적 언어로 풀어냈다. 고통은 공감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아픔도 사회가 외면하면 '개인의 불행'으로 축소된다. 하지만 누군가 그 고통을 증언하고, 기록하고, 연결하면, 그것은 '구조적 폭력'으로 가시화된다. 박래군의45년은 바로 이 번역의 시간이었다.
책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승리'가 아니라 '패배'를 다루는 방식이다. 대추리는 결국 미군기지가 되었고, 용산은 재개발되었으며, 많은 진상규명은 여전히 미완이다. 일반적인 성공 서사라면 이런 이야기는 지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박래군은 패배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패배 속에서 무엇을 지켰는지를 보여준다. 대추리 농민들은 땅을 잃었지만, 마지막까지 스스로 결정하는 존엄을 지켰다. 용산 철거민들은 건물을 빼앗겼지만, 국가폭력의 실체를 온 사회에 각인시켰다. 세월호 유가족은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었지만,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게"라는 약속으로 슬픔을 연대로 바꾸었다. 현대 사회는 '결과'로만 평가한다. 이겼는가, 졌는가.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하지만 인권의 역사는 다른 척도를 요구한다. 얼마나 오래 버텼는가. 누구를 끝까지 배신하지 않았는가. 어떤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는가. 박래군의 기록은 바로 이 '과정의 존엄'을 증명한다. 패배는 끝이 아니라 다음 싸움의 시작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많은 권리들, 고문 금지, 의문사 진상규명, 장애인 인권, 재난 피해자 지원 등은 모두 누군가의 '패배'가 쌓여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들이 포기하지 않았기에, 패배를 기록했기에,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사회에서 산다.
박래군의 45년은 바로 이 '기억이라는 저항'의 실천이었다. 그는 죽은 자의 이름을 불렀고, 사라진 증거를 찾았으며, 잊혀질 뻔한 사건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을 엮어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다. 단편적인 비극이 아니라, 구조적인 폭력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역사. 개별 사건이 아니라, 국가와 자본과 권력이 반복해온 패턴을 드러내는 역사였다. 기억의 힘은 과거를 바꾸는 데 있지 않다. 미래를 바꾸는 데 있다.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은 침몰한 배를 되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시는 그런 배를 띄우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가 의문사를 기록하는 것은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시는 그런 죽음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박래군의 책을 덮으며 남는 것은 질문이다. 나는 누구의 곁에 서 있는가. 나는 무엇을 외면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어떤 고통 앞에서 눈을 돌리는가. 인권은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 내 옆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누군가의 억울함, 누군가의 차별, 누군가의 슬픔.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곁을 지키고, 기억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지만 가장 중요한 일이다. 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 하지만 그 온기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누군가 그 눈물 옆에 앉아, 함께 울어주고, 손을 잡아주고,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해줄 때, 비로소 온기가 생긴다. 박래군은45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