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금시대 : 오늘을 비추는 이야기 - 출간 150주년 기념 국내 최초 간행본 구텐베르크 클래식 시리즈
마크 트웨인.찰스 더들리 워너 지음, 김현정 옮김 / 구텐베르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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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하면 대부분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나 『톰 소여의 모험』을 떠올리지만, 그의 유일한 공동 작품인 『The Gilded Age: A Tale of Today』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이다. 찰스 더들리 워너(Charles Dudley Warner)와 함께 쓴 이 소설은 미국 역사의 한 시대를 정의하는 이름을 남긴 작품이기도 하다. 재건 시대(Reconstruction) 이후부터 1900년대까지의 시기가 바로 이 소설의 제목을 따서 '도금 시대(Gilded Age)'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두 작가의 아내들이 "평소에 읽던 소설보다 더 나은 소설을 써보라"고 도전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물은 도전의 산물을 넘어서, 급속한 산업화와 물질주의가 지배하던 시대의 모순과 인간 군상을 예리하게 포착한 사회 풍자 소설이 되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도금 시대는 "미국 경제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 시기였다. 이러한 급속한 성장은 산업화를 가속화했고, 갑작스럽게 부를 축적한 초부유층을 탄생시켰다. 동시에 이 시기는 "사회 개혁 운동, 기계 정치의 창조, 그리고 지속적인 대규모 이민"으로도 특징지어졌다. 트웨인과 워너는 이러한 시대의 특징들을 날카롭게 풍자했다. 특히 정치적 부패에 대한 그들의 시각은 신랄했다. 소설 속에서 "진실하고 부패하지 않은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은 없다"고 묘사하며, "사람이 지금 국회에 들어가려면 그곳에 가기에 부적합하게 만드는 기술과 수단에 의존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비판한다. 이는 당시 정치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것이다.

소설의 중심에는 호킨스(Hawkins) 가족이 있다. 테네시 주 오베즈타운에 사는 가난하지만 품위 있는 이 가족의 가장 사이는 7만 5천 에이커의 테네시 땅을 소유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별 가치가 없지만, 철도 확장과 석탄 발견이라는 미래의 변화를 기대하며 언젠가는 이 땅을 팔아 자녀들에게 유산을 남겨주려 한다. 사이의 오랜 친구 에스콜 셀러스(Eschol Sellers)는 이들에게 미주리로 와서 기회를 잡으라고 권한다. 셀러스는 선량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항상 거대한 계획을 세우는 인물로, 그의 계획들은 기대했던 대로 결과를 내지 못한다. 이러한 캐릭터는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했던 투기 열풍과 '일확천금'에 대한 환상을 상징한다. 한편, 해리(Harry)와 필립(Phillip)이라는 두 친구는 철도 토목 기사가 되어 성공하려 한다. 해리는 셀러스의 세련된 버전 같은 인물이지만, 필립은 진지하고 성실하게 일을 배우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들의 대조는 당시 젊은이들이 택할 수 있는 두 가지 길을 보여준다.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양녀 로라 호킨스(Laura Hawkins)이다. 매혹적인 미녀로 성장한 로라는 처음에는 순수했지만, 이미 결혼한 남자에게 속아 가짜 결혼을 하고 버림받는 아픈 경험을 겪는다. 이후 그녀는 계산적이고 무자비한 인물로 변하게 된다. 로라의 변화는 순수함이 현실의 벽에 부딪혔을 때 일어나는 인간적 타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는 상당한 자전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트웨인의 전기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테네시 땅을 소유했던 경험이 있었고, 그의 형은 로라를 고아로 만든 것과 유사한 증기선 사고로 사망했다. 또한 필립을 묘사한 한 부분에는 그의 삶이 워너의 삶과 일치한다는 각주가 달려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에스콜 셀러스라는 인물이 트웨인의 사촌을 모델로 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책이 처음 출간된 후 실존 인물인 에스콜 셀러스가 항의하여, 일부 판본에서는 이 캐릭터의 이름이 바뀌기도 했다. 이는 작품의 현실성과 풍자의 날카로움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트웨인과 워너는 풍자라는 기법을 통해 당시 사회의 모순을 폭로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인간의 본성과 욕망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보여준다. 특히 "다음 번의 위대하고 파악하기 어려운 것"을 추구하는 대신 "정착하여 목표와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의 중요성을 암시한다. 작품에서 여성 인물들의 묘사는 특별한 주목을 받을 만하다. 동시에 이 작품은 시대적 한계도 보여준다. 흑인에 대한 묘사는 "당시로서는 정확했을지 모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거만하고 무감각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는 진보적 사상가였던 트웨인조차도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던 시대적 편견을 보여준다.

<도금시대 : The Gilded Age: A Tale of Today>는 19세기 후반 미국의 특정 시대를 다룬 작품이지만, 그 주제 의식은 현재에도 새겨볼 만하다. 급속한 경제 성장과 물질주의, 정치적 부패, 투기 열풍, 그리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심리는 오늘날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들이다. 특히 "진짜보다는 겉모습에 치중하는" 도금 시대의 특성은 현대 사회의 여러 측면과 맞닿아 있다. SNS 시대의 과시 문화, 스타트업 열풍, 암호화폐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투기 등은 모두 소설 속 인물들의 행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작품이 제시하는 교훈도 여전히 의미 있다. 허황된 꿈을 좇기보다는 "정착하여 목표와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의 가치, 그리고 겉만 번지르르한 것보다는 진정한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을 가진다. 이 소설은 트웨인의 다른 유명작들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미국 문학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단순히 한 시대의 이름을 남겼다는 것을 넘어서, 인간 본성의 보편적 측면과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통찰력 있게 포착했다는 점에서 재평가받을 만한 작품이다. 풍자와 인간애, 비판과 동정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이 작품은 오늘날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감미롭고 가슴 아픈 순간들"이 풍자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복합적 정서는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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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된 전쟁 - 새로운 세계 질서를 결정할 미중 패권 전쟁의 본질과 미래
이철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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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트럼프의 재집권은 미국 정치적 변화의 의미 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 내부의 구조적 전환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해석해야 한다. 30여 년간 글로벌화의 혜택을 누리던 미국 내에서 소외된 계층들의 반발이 정치적 힘으로 결집된 결과가 바로 트럼프 2.0 시대의 시작점이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와 메인 스트리트의 반란은 미국 경제의 이중구조를 반영한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전 세계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지역 공동체에는 실질적 기여를 하지 못했다. 동네 상점들이 글로벌 프랜차이즈에 밀려 사라지고, 일자리는 줄어들며, 남은 일자리마저 저임금으로 채워지는 현실에서 평범한 미국인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이 시점에 트럼프는 중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높은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트럼프 2.0 정부의 정책을 가시화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중국과 미국의 다시 시작된 전쟁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내포되어 있는 숨겨진 의미를 알아보고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 인가에 대해 알아보는 책을 읽었다. 이철님의 <다시 시작된 전쟁>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트럼프 2.0 정부가 시작된 후, 100일 만에 50회가 넘는 관세 조치를 발표하며 전 세계에 충격파를 보내고 있다. 주목할 점은 관세 정책이 동맹국과 적성국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캐나다와 멕시코 같은 혈맹국부터 EU, 일본, 한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가가 관세 폭탄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은 25%, 일본은 24%, EU는 20%의 관세를 부과받았다. 심지어 가장 높은 관세를 받은 국가는 중국이 아니라 캄보디아였다는 사실은 이 정책이 지정학적 고려보다는 순전히 미국 시장 접근권의 가치에 따라 결정되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네 가지 명확한 전략적 목표를 향해 설계되었다. 첫째, 상품 무역적자 축소를 통한 미국 경제의 균형 회복이다. 오랫동안 누적된 무역적자는 미국 내 제조업 공동화와 직결된 문제로 인식되었다. 둘째, 리쇼어링을 통한 생산 기지의 미국 회귀이다. 해외로 이전된 제조업을 다시 미국으로 불러들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산업 기반을 복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셋째, 국가 안보 핵심 인프라에서의 중국 의존도 탈피이다. 식량, 에너지, 항만 등 국가 생존과 직결된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겠다는 전략적 판단이다. 넷째, 반도체, 인공지능 등 미래 핵심 기술 분야에서의 구조적 디커플링이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경쟁을 넘어 장기적 패권 경쟁을 염두에 둔 조치로 해석된다. 이러한 네 가지 축은 동맹 여부와 무관하게 상호주의, 품목별 맞대응, 비관세 장벽 상계라는 원리에 따라 집행되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평균 수입 관세율은 17%까지 상승했고, 수입 규모는 11% 감소했으며, 실질 GDP는 0.8% 하락하는 직접적 비용이 발생했다.


중국의 대응은 단순한 맞대응을 넘어서는 전략적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트럼프의 관세 발효와 정확히 동시에 보복 관세를 부과한 것은 중국의 계산된 대응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특히 에너지 분야를 보복 관세 대상으로 삼은 것은 자신들의 약점으로 여겨지던 영역을 오히려 무기화한 것으로, 해상 봉쇄나 전쟁까지도 준비되었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중국의 진정한 전략은 시간을 벌어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대미 수출 비중을 2017년 21.6%에서 2024년 13.4%로 줄이며 경제구조의 다변화를 추진했다. 식량과 사료 같은 전략 물자를 1-3년치 비축하고, 비상시 배급 계획까지 마련하는 등 내순환 체계를 강화했다. 자본시장에서는 보험사 주식투자 한도 확대, 중앙은행 유동성 지원 등 안정화 조치를 동원했다. 대외적으로는 WTO 제소를 통해 규칙 기반 질서를 강조하며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려 했다. 기술 분야에서는 화웨이 칩 수출 제한에 맞서 자체 기술 역량과 소재·장비 자립도를 높이는 전략을 병행했다. 중국이 지향하는 것은 "원칙을 지키며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이는 디커플링이 현실화될 경우 "미국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내순환 경제 체제 구축, 신질생산력과 희토류라는 강력한 카드 준비, 장기적 경쟁력 확보가 이러한 전략의 핵심 요소들이다.


미중 관세 전쟁은 양국 간 갈등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전체의 재편을 촉발했다. 세계는 이제 글로벌 단일 시장에서 미국이 이탈한 시장 체계로, 또는 복수의 지역 블록화된 시장 체계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원가 우위의 영향이 감소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따라서 집중화 전략 또는 차별화 우위가 중요해지는 새로운 경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중국은 EU, RCEP, CPTPP, 한중일 FTA 등 다자간 협력 체제를 추진하며 동시에 러시아, BRICS, SCO, 북한, 일대일로 연안 국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강경한 관세 집행은 한중일 간 공급망 대화와 수출 통제 협의의 동력을 키웠다. 미중 분리가 심화될수록 동북아 내부에서는 위험을 줄이기 위한 재결합 시도가 나타나는 이중 구조가 진행되고 있다. 분리와 결합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과도기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서 매우 복잡한 전략적 위치에 놓여 있다.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있으면서 동시에 중국과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구조적 현실은 단순한 선택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은 다층적이고 유연해야 한다. 우선 산업과 기술 측면에서 자원과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를 다변화하며, 유럽, 일본, 대만, 독일, 네덜란드 등 경쟁력 있는 산업 국가들과 연대와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글로벌 경제 질서가 힘 중심으로 재편되는 시점에서도 외교적·경제적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다. CPTPP 가입과 같은 다자 경제 협력 참여는 한국의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고, 미중 양국에 대한 협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CPTPP와 EU, 그리고 한국이 힘을 합친다면 전 세계 GDP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글로벌 최대 단일 시장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전망은 매우 흥미롭다.


한국이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핵심 전략은 제3의 진영 구축이다. 이는 미중 어느 쪽에도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 기술력과 외교적 균형을 바탕으로 자국의 생존력과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기술 기업 차원에서 한국은 하이테크 분야에서 핵심 기술과 주변 기술을 적절히 개발해 미중 양국 모두에 필요한 기술 제공자가 될 수 있다. 생산형 서비스, AI 지능 제조 서비스 등 글로벌 서비스 시장 진출은 이러한 전략의 구체적 사례가 된다. 상품에 고관세를 부과하는 시대에 가장 유리한 기업은 하이테크를 서비스 형태로 제공하는 기업이다. 한국은 IT 강국의 이미지가 있고, 서비스와 유연적인 생산형 서비스는 성격상 글로벌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생산형 서비스를 선점한 미국과 대척점에 있는 중국은 미국을 대신할 파트너가 필요하며, 이 지점에서 한국의 기회가 창출될 수 있다.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와의 협력 가능성을 활용해 산업단지를 조성하거나, 북한을 우회하는 운하 프로젝트 등을 통해 전략적 자원을 확보하고 공급망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안보를 과장하는 시각도 있지만, 손해 불계산을 일삼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중국의 북한 지지를 받아 동해로 진출하는 움직임을 미연에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러시아와 북한은 자연스럽게 무산물에 관심을 집중하려 하는데, 이를 활용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한국의 산업 경쟁력은 상당하지만, 이 산업 경쟁력의 절대 부분이 타국의 자원과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서는 자원, 특히 전략 물자를 의존해야 하는 타국과의 협력 유지 발전이 절대적이다. 동시에 이들 국가에 필요한 전략 자원을 공급해줄 능력이 있어야 이들과의 교환이 가능하거나 유리해질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미중 갈등을 보면서 양안 전쟁까지 바로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미국과 중국, 그리고 당사자인 대만과 인접국 일본, 러시아, 북한이 모두 군사적 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 한국은 지금까지 미국과의 전략적 연합을 국가 정책의 핵심으로 삼아왔지만, 미중 대립이 한중 관계에 영향을 미치더라도 전략적 자율성을 유지하며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트럼프의 정치 일정상 2026년 11월 중간선거가 최종 목표가 될 것이다. 관세 정책으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1년 이상 지속되면 공화당은 중간선거에서 패배하기 쉽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2026년 11월까지 현재의 태세를 유지할 수 있으면 트럼프의 세력을 무산시키고 그 이후 대미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우리의 일상과 산업,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 국제 관계는 눈에 보이는 힘의 대결보다 훨씬 복합적이며, 그 속에서 기회를 찾는 방법이 존재한다. 핵심은 한국이 자국의 기술과 산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전략적 연대와 협력을 통해 유연하게 움직이면서 장기적 기회를 확보하는 것이다. 한국은 선택을 강요받는 위치가 아니라, 기술과 산업 경쟁력을 활용해 제3의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도 한국 산업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전략적 사고와 실행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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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시크 이코노미 - 중국 AI가 만드는 새로운 질서
유한나 지음 / 광문각출판미디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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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 기술이 글로벌 경제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중국 항저우의 AI 기업 딥시크(DeepSeek)가 있다. 2025년 초 딥시크의 혁신적인 AI 모델 공개는 미국 주도의 AI 패권 구조에 균열을 가하며 새로운 경제 생태계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848조 원 증발한 사건은 기술 패권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딥시크 현상은 하나의 기업이 성공한 사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중국이 추진해온 '과학기술 자립자강' 전략의 결실이자, 미래 경제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 구조에서 중국이 내놓은 전략적 답안이다. 더 나아가 딥시크 이코노미는 기존의 서구 중심적 기술 발전 모델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며, 개발도상국들에게 새로운 발전 경로를 제시하는 대안적 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딥스크에 대해 깊게 알아본다. 유한나님의 <딥시크 이코노미>였다.

딥시크가 가져온 혁신의 핵심은 '초저비용 고성능' 모델의 실현에 있다. 기존 AI 대형언어모델(LLM) 개발에 수백억 달러의 투자가 필요했던 상식을 깨뜨리고,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OpenAI의 GPT와 경쟁할 만한 성능을 구현해낸 것이다. 이러한 성취의 배경에는 량원펑(梁文峰) CEO의 독특한 경영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량원펑이 추구한 '극단적 카오스 전략'은 전통적 기업 경영 방식과는 정반대의 접근법이다. 고정된 팀 구조 없음, 상하 보고 관계 없음, 연간 계획 없음이라는 '3불(三不) 정책'과 KPI 없는 조직 운영은 표면적으로는 무질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창의성과 혁신성을 극대화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냈다. 이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문화와도 차별화되는 중국만의 독특한 혁신 생태계를 보여준다. 딥시크의 오픈소스 전략 또한 주목할 만하다. 자사의 핵심 기술을 공개하여 전 세계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기술 독점을 통한 수익 창출이라는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이러한 개방형 생태계 구축 전략은 중국이 글로벌 AI 표준을 주도하려는 장기적 비전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딥시크의 등장은 중국 사회 전반에 걸쳐 AI 중심의 구조적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의 일상생활부터 국가 정책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도시 차원에서는 스마트시티 구축이 가속화되고 있다. 광저우, 선전, 상하이 등 주요 도시들이 딥시크 기술을 활용한 지능형 도시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며, 교통, 치안, 환경 관리 등 제반 영역에서 AI 기반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알리바바의 '시티 브레인' 프로젝트와 딥시크 기술의 융합은 도시 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는 AI 기반 맞춤형 학습 시스템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의 Z세대는 이미 AI를 학습 도구로 활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는 미래 인재 양성 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전통적인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AI와의 상호작용을 통한 창의적 학습 모델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기업 생태계에서는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등 중국의 주요 플랫폼 기업들이 딥시크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자사 서비스에 AI 기능을 통합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비즈니스 모델 자체의 AI 네이티브 전환을 의미한다. 특히 헬스케어, 자동차, 금융 등 전통 산업 영역에서 AI 기반 혁신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딥시크 현상을 단순한 민간 기업의 성공으로 보지 않고, 국가 차원의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중국몽(中國夢)' 실현을 위한 핵심 동력으로 AI 기술을 활용하려는 국가적 의지의 표현이다. 디지털 정부 구축이 가속화되고 있다. 각 지방정부들이 딥시크 기술을 활용한 민원 처리, 정책 수립, 행정 효율성 개선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전통적인 관료제 시스템의 AI 기반 혁신을 의미한다. 특히 12345 정부 핫라인과 같은 민원 서비스에 AI 어시스턴트를 도입하여 24시간 실시간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국유기업들의 AI 도입도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중국 경제의 핵심 축인 국유기업 부문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우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통신, 에너지, 금융 등 핵심 인프라 산업에서 AI 기반 혁신이 국가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 더 나아가 중국은 AI 반도체, 클라우드 인프라, 데이터 센터 등 AI 생태계의 하드웨어적 기반 구축에도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에 대응한 기술 자립 전략의 일환이면서, 동시에 글로벌 AI 공급망에서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장기적 포석이다.

딥시크 이코노미의 파급 효과는 중국 내부를 넘어 글로벌 경제 질서 전반에 구조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전망한 2,000억 달러 규모의 자금 유입과 2026-2030년 중국 GDP 0.3%포인트 상승은 이러한 변화의 정량적 지표에 불과하다. 미국 중심의 기술 패권 구조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독점해온 AI 기술 시장에 중국이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함으로써, 기존의 기술 생태계가 재편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경쟁 구도를 넘어, 기술 표준, 데이터 거버넌스, AI 윤리 등 글로벌 AI 질서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출해(出海)' 전략을 통한 중국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테무, 쉬인, 샤오홍슈 등 C-커머스 플랫폼들이 AI 기술을 무기로 전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으며, 중국식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 생태계의 글로벌 확산을 의미한다.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딥시크의 오픈소스 전략과 저비용 AI 모델은 기술 접근 장벽을 낮춤으로써, 기존에 미국 기업들의 고가 솔루션에 의존해야 했던 국가들에게 대안적 선택지를 제공한다.


딥시크 이코노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상징한다.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에서 미중 양극 체제로의 전환, 폐쇄적 기술 독점에서 개방적 생태계로의 이동,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중국의 딥시크 현상은 '따라잡기'에서 '추월하기'로의 전략적 전환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이는 후발 주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동시에, 기존 선도국들에게는 안주할 수 없다는 경고 메시지를 전달한다. 기술 패권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각국은 자국의 장점을 최대화하면서도 글로벌 협력을 통한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능동적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위협을 기회로 전환하고, 중국의 AI 혁신 사례를 벤치마킹하면서도 한국만의 독창적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딥시크 이코노미가 제시한 새로운 가능성을 한국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지혜와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결국 딥시크 이코노미는 기술이 경제를 넘어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시대적 흐름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고 나아가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국가와 기업만이 미래의 승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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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브 센스 - 소진된 일상에서 행복을 되찾는 마음 회복법
그레첸 루빈 지음, 김잔디 옮김 / 북플레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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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레첸 루빈(Gretchen Rubin)은 『The Happiness Project』와 『Better Than Before』를 통해 습관과 행복에 대한 실용적이고 개인적인 접근법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작가이다. 그녀의 최신작 <파이브 센스>는 이러한 그녀만의 방법론을 오감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적용한 작품으로, 지나치게 머리 속에서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감각을 통한 현실 세계와의 재연결을 제안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루빈 특유의 '방법론적 회고록(methodical memoir)' 스타일에 있다. 그녀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체계적인 자기 연구와 실험을 통해 독자들이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책은 시각(Seeing)부터 촉각(Touching)까지 다섯 가지 감각을 순서대로 다루며, 각 장은 해당 감각과 관련된 다양한 실험과 활동들로 세분화되어 있다. 루빈은 각 감각에 대해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는데, 예를 들어 시각 장에서는 '간과되는 것들을 찾기', 청각 장에서는 '콘서트 참석과 침묵에 집중하기'와 같은 상반된 활동들을 통해 감각의 다면성을 설명한다.

책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가장 인상적인 실험은 루빈이 매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MET)을 방문하기로 한 결정이다. 이는 단순한 문화 활동을 넘어서, 그녀가 머리에서 벗어나 주변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상적인 경험을 만들기 위한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이 실험을 통해 그녀는 각 감각이 어떻게 다르게 활성화되는지를 관찰하고 기록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접근법은 독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한 독자는 루빈에게 영감을 받아 자신의 대학 도서관을 매일 탐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결과 링컨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황소 멍에, 그레고어 멘델의 시계, 그리고 한 마리의 박쥐까지 발견하게 되었다는 흥미로운 일화는 루빈의 제안이 얼마나 실질적이고 적용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루빈이 제시하는 또 다른 흥미로운 개념은 '소외된 감각(neglected sense)'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다른 감각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의를 기울이는 감각이 있다는 것이다. 루빈 자신의 소외된 감각은 미각으로, 실제로 책에서 미각을 다룬 장이 다른 장들에 비해 덜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독자의 지적은 이 개념의 설득력을 높인다. 루빈은 독자들이 자신의 소외된 감각을 찾을 수 있는 퀴즈도 제공하는데, 이는 개인화된 접근법을 통해 각자의 감각적 경험을 향상시킬 수 있는 실용적인 도구가 된다. 한 독자가 자신의 소외된 감각이 촉각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이것이 매우 타당하다고 느꼈다는 경험담은 이 도구의 유용성을 입증한다.

루빈의 이전 저서인 『The Four Tendencies』에서 제시된 네 가지 성향 이론(준수자, 의문자, 의무자, 반항자)이 이 책에서도 감각적 경험을 이해하는 렌즈로 활용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준수자(Upholders)들은 내적, 외적 기대를 모두 충족시키려는 성향으로,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감각적 경험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의문자(Questioners)들은 논리와 이성에 의해 움직이므로 감각 뒤에 숨은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 의무자(Obligers)들은 타인과의 연결을 중시하므로 공유된 감각적 경험을 통해 즐거움을 찾을 것이고, 반항자(Rebels)들은 관습에 도전하는 비전통적인 감각적 탐험을 선호할 것이다. 이러한 성향별 접근법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만의 방식으로 감각적 경험을 개발할 수 있게 해주며, 획일적인 조언이 아닌 개인화된 전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루빈이 제안하는 '특정 시기의 감각 프로필 작성'은 독자들이 자신의 감각적 경험을 의식적으로 기록하고 성찰할 수 있는 실용적인 도구이다. 책의 가장 큰 의의는 지나치게 디지털화되고 추상적인 현대 사회에서 우리를 다시 물리적 현실로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루빈이 지적하듯이, 많은 사람들이 '머리 속에서만 살아가고 있으며 현실 세계에서는 충분히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현상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또한 루빈의 접근법은 감각적 경험을 통한 마음챙김(mindfulness)의 실천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동양적 명상이나 영성과는 다른, 서구적이고 실용적인 접근법이라는 점에서 더 많은 독자들에게 접근하기 쉬울 것이다.

그레첸 루빈의 <파이브 센스>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오감을 통해 삶을 더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뛰어난 작품이다. 그녀 특유의 방법론적이면서도 개인적인 접근법은 실제로 우리 자신의 감각적 경험을 의식적으로 탐구해보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현대인들이 점점 더 가상적이고 추상적인 세계에서 살아가는 상황에서, 이 책은 우리를 다시 물리적 현실로 끌어내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루빈이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의 감각은 정보를 수집만을 하는 도구가 아니라 삶을 더 풍부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통로이다. 비록 일부 제안들이 모든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적용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책이 제시하는 기본적인 철학과 접근법은 누구나 자신의 상황에 맞게 응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매일의 작은 순간들에서 의식적으로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를 통해 현재 순간을 더 충실하게 경험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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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의 심리 처방전
김은미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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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문득 거울 앞에 선 나는 언제부턴가 낯설어진 얼굴과 마주한다. 주름이 깊어지고 머리카락이 성글어진 모습이 아니라, 그 안에서 번뜩이는 눈빛이 예전과 달라진 것을 발견한다. 젊은 날의 날카로운 야심 대신 깊은 바다처럼 잔잔하면서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시선이 있다. 이것이 바로 오십의 얼굴이구나.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돌아간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젊은 세대들이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로 소통하며,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가팔라진다. 그 속에서 나는 가끔 뒤처지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가 갑자기 국도로 빠져나온 듯한 기분이랄까. 주변의 모든 것이 쌩쌩 지나가는데 나만 느릿하게 움직이는 것 같은 묘한 소외감. 하지만 이제야 깨닫는다. 서두르지 않는 것도 하나의 용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젊은 날에는 무조건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성공하고, 인정받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오십을 맞이한 지금, 그 모든 경주에서 잠시 발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발견한다. 정말 아름다운 것들은 서두르는 발걸음 사이로는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침 창문을 열어 들어오는 바람 한 점, 커피 한 잔이 주는 따스함, 가족의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 이런 것들이 실은 내 삶을 구성하는 가장 단단한 기둥들이었구나. 젊을 때는 이런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더 크고 화려한 것들만 쫓았는데, 이제는 이 소소함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김은미님의 <오십의 심리 처방전>을 읽으며 오십의 나이에 나 자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융이 말한 '에너지의 방향 전환'이라는 개념이 처음에는 추상적으로 느껴졌다. 외적인 세계에서 내적인 세계로? 그게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 의미가 점점 선명해진다. 이십대와 삼십대를 지나며 나는 끊임없이 밖을 향해 달렸다.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직장, 더 많은 연봉, 더 넓은 집, 더 좋은 차. 사회가 제시하는 성공의 기준에 맞춰 나 자신을 끼워 맞추려 애썼다. 그 과정에서 정작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들을 겨를이 없었다. 오십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소음들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남들의 시선이 예전만큼 신경 쓰이지 않고, 사회적 성취에 대한 강박도 서서히 누그러진다. 그러자 오랫동안 묻혀있던 내 본연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한다. 어릴 때 좋아했던 그림 그리기, 시 한 편을 읽으며 느끼던 전율, 자연 속을 걸으며 맞는 바람의 기분 좋음. 이런 것들이 다시 내 마음을 두드린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것들에 시간을 투자할 때 느끼는 충만함은 어떤 외적 성취보다도 깊고 지속적이다. 내면으로 향한다는 것은 결코 세상과 단절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짜 나 자신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 연결이 단단해질수록, 세상과의 관계도 더욱 진정성 있게 변해간다. 타인의 기대에 맞추려 애쓰는 대신 내 진심을 바탕으로 관계를 맺게 되고, 그렇게 맺어진 관계는 훨씬 깊고 의미 있다.

평생을 살아오며 나는 완벽주의라는 견고한 감옥을 스스로 쌓아 올렸다. 실수하면 안 되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고, 항상 최선의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자책하고, 남들에게 실망을 안겨줄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오십을 넘어서며 문득 깨달았다. 완벽한 인생이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실수와 좌절을 안고 살아가며, 그것이 바로 인간다움의 증거라는 것을 알게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좋은 아버지, 좋은 어머니가 되기 위해 육아서를 탐독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따라가려 애썼다. 아이가 조금만 잘못된 길로 가는 것 같으면 내 탓인 것 같아 밤잠을 설쳤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프로젝트에서 완벽한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작은 실수라도 하면 며칠씩 자책에 빠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알게 되었다. 이제는 실수를 해도 '아, 이것도 인생이지' 하며 웃어넘길 수 있다. 예전 같으면 며칠씩 끌고 갔을 일들을 하루 이틀 정도 속상해하다가 금세 털어낸다. 이런 여유가 생기니까 오히려 더 많은 도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새로운 시도를 할 용기가 생긴 것이다.

...

오십이라는 나이는 인생의 중간 지점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갈 길을 가늠해보는 시간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재정의되고, 새로운 가치관이 형성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변화는 성장의 신호이고,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이다. 젊은 날의 열정과 패기는 없을지 몰라도, 대신 깊이와 여유가 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가 있고, 진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안목이 있다. <오십의 처방전>은 복잡하지 않다. 자신에게 솔직하고, 타인에게 너그럽고, 현재에 충실하며, 새로운 가능성에 열려있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아직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진짜 시작일지도 모른다. 외적인 성취에 매달렸던 전반전이 끝나고,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후반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 후반전이야말로 내 인생의 진짜 하이라이트가 될 수 있다. 오십의 마음에 새로운 지도를 그려본다. 그 지도 위에는 두려움의 산맥도 있고 희망의 강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은 바로 '괜찮다'는 따뜻한 위로의 바람이다. 그 바람을 등에 업고 나는 오늘도 한 걸음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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