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의 심리 처방전
김은미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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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문득 거울 앞에 선 나는 언제부턴가 낯설어진 얼굴과 마주한다. 주름이 깊어지고 머리카락이 성글어진 모습이 아니라, 그 안에서 번뜩이는 눈빛이 예전과 달라진 것을 발견한다. 젊은 날의 날카로운 야심 대신 깊은 바다처럼 잔잔하면서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시선이 있다. 이것이 바로 오십의 얼굴이구나.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돌아간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젊은 세대들이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로 소통하며,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가팔라진다. 그 속에서 나는 가끔 뒤처지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가 갑자기 국도로 빠져나온 듯한 기분이랄까. 주변의 모든 것이 쌩쌩 지나가는데 나만 느릿하게 움직이는 것 같은 묘한 소외감. 하지만 이제야 깨닫는다. 서두르지 않는 것도 하나의 용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젊은 날에는 무조건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성공하고, 인정받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오십을 맞이한 지금, 그 모든 경주에서 잠시 발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발견한다. 정말 아름다운 것들은 서두르는 발걸음 사이로는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침 창문을 열어 들어오는 바람 한 점, 커피 한 잔이 주는 따스함, 가족의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 이런 것들이 실은 내 삶을 구성하는 가장 단단한 기둥들이었구나. 젊을 때는 이런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더 크고 화려한 것들만 쫓았는데, 이제는 이 소소함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김은미님의 <오십의 심리 처방전>을 읽으며 오십의 나이에 나 자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융이 말한 '에너지의 방향 전환'이라는 개념이 처음에는 추상적으로 느껴졌다. 외적인 세계에서 내적인 세계로? 그게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 의미가 점점 선명해진다. 이십대와 삼십대를 지나며 나는 끊임없이 밖을 향해 달렸다.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직장, 더 많은 연봉, 더 넓은 집, 더 좋은 차. 사회가 제시하는 성공의 기준에 맞춰 나 자신을 끼워 맞추려 애썼다. 그 과정에서 정작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들을 겨를이 없었다. 오십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소음들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남들의 시선이 예전만큼 신경 쓰이지 않고, 사회적 성취에 대한 강박도 서서히 누그러진다. 그러자 오랫동안 묻혀있던 내 본연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한다. 어릴 때 좋아했던 그림 그리기, 시 한 편을 읽으며 느끼던 전율, 자연 속을 걸으며 맞는 바람의 기분 좋음. 이런 것들이 다시 내 마음을 두드린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것들에 시간을 투자할 때 느끼는 충만함은 어떤 외적 성취보다도 깊고 지속적이다. 내면으로 향한다는 것은 결코 세상과 단절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짜 나 자신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 연결이 단단해질수록, 세상과의 관계도 더욱 진정성 있게 변해간다. 타인의 기대에 맞추려 애쓰는 대신 내 진심을 바탕으로 관계를 맺게 되고, 그렇게 맺어진 관계는 훨씬 깊고 의미 있다.

평생을 살아오며 나는 완벽주의라는 견고한 감옥을 스스로 쌓아 올렸다. 실수하면 안 되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고, 항상 최선의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자책하고, 남들에게 실망을 안겨줄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오십을 넘어서며 문득 깨달았다. 완벽한 인생이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실수와 좌절을 안고 살아가며, 그것이 바로 인간다움의 증거라는 것을 알게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좋은 아버지, 좋은 어머니가 되기 위해 육아서를 탐독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따라가려 애썼다. 아이가 조금만 잘못된 길로 가는 것 같으면 내 탓인 것 같아 밤잠을 설쳤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프로젝트에서 완벽한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작은 실수라도 하면 며칠씩 자책에 빠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알게 되었다. 이제는 실수를 해도 '아, 이것도 인생이지' 하며 웃어넘길 수 있다. 예전 같으면 며칠씩 끌고 갔을 일들을 하루 이틀 정도 속상해하다가 금세 털어낸다. 이런 여유가 생기니까 오히려 더 많은 도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새로운 시도를 할 용기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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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이라는 나이는 인생의 중간 지점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갈 길을 가늠해보는 시간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재정의되고, 새로운 가치관이 형성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변화는 성장의 신호이고,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이다. 젊은 날의 열정과 패기는 없을지 몰라도, 대신 깊이와 여유가 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가 있고, 진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안목이 있다. <오십의 처방전>은 복잡하지 않다. 자신에게 솔직하고, 타인에게 너그럽고, 현재에 충실하며, 새로운 가능성에 열려있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아직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진짜 시작일지도 모른다. 외적인 성취에 매달렸던 전반전이 끝나고,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후반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 후반전이야말로 내 인생의 진짜 하이라이트가 될 수 있다. 오십의 마음에 새로운 지도를 그려본다. 그 지도 위에는 두려움의 산맥도 있고 희망의 강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은 바로 '괜찮다'는 따뜻한 위로의 바람이다. 그 바람을 등에 업고 나는 오늘도 한 걸음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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