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당신에게 숲을 처방합니다 - 질병 없는 삶을 위한 6주 숲건강 프로젝트
서정아 지음 / 청림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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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시의 콘크리트 정글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숲은 점점 먼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의학계에서는 숲이 휴식 공간을 넘어 강력한 치유의 장소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15년간 가정의학과 의사로 근무하며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온 저자가 제시한 '포레스트 코드' 이론은 우리가 잃어버린 자연 치유력의 비밀을 밝혀준다. 현대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치료는 자연이 한다. 의사는 돌볼 뿐이다"라고 말했듯이, 인간 본연의 치유력은 자연과의 연결에서 시작된다. 철학적 담론이 아니라,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과학적 사실이기도 하다.


우리 몸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는데, 이를 알로스테시스라고 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의식적으로 수행하는 대부분의 활동은 집중력을 요구하며, 이로 인해 알로스테시스 과부하 상태가 일상화되었다. 기상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의식적 활동들 - 출근 준비, 업무 처리, 인간관계 관리, 각종 결정들 - 은 모두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이러한 과부하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 몸과 마음은 만성 피로에 시달리게 되고, 결국 번아웃이나 우울증, 공황장애와 같은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한 간호사가 겪었던 사례를 보면, 오랜 기간 약물 치료로도 해결되지 않던 공황장애와 가면 우울증이 제주도 한라산과 오름을 매일 오르내리면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는 숲이 가진 치유력이 기분 전환 차원을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이다.

숲이 제공하는 가장 직접적인 치유 효과는 '오감 디톡스'이다. 도시 생활에서 우리의 감각기관은 지속적으로 과도한 자극에 노출된다. 예상치 못한 소음, 원색적인 디지털 화면, 매연과 각종 화학적 냄새, 인공적인 맛과 거친 질감들이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이런 환경에서는 점점 더 강한 자극만을 느낄 수 있게 되고, 전두엽은 피로해지며 집중 시간은 단축된다. 반면 숲에서는 완전히 다른 감각 경험이 펼쳐진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고요함이다. 도시의 소음에 익숙한 귀가 적막에 적응하면서, 그제서야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가 들려온다. 이러한 자연음은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며 청각을 정화시킨다. 시각적으로는 숲의 푸른색이 디지털 화면에 지친 눈을 편안하게 해준다. 근거리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이 먼 곳으로 향하면서 시력 회복의 기회를 얻는다. 후각은 피톤치드와 맑은 공기를 통해 도시의 오염된 냄새로부터 해방되고, 촉각은 나무의 거친 껍질, 부드러운 이끼, 시원한 바람을 통해 자연스러운 감각을 되찾는다. 이러한 오감 디톡스 과정은 '과부하와 각성 이론'으로 설명된다. 과도한 자극에 둔감해진 감각기관들이 자연 환경에서 본래의 민감도를 회복하면서, 뇌는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다.


숲 경험이 뇌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한 휴식을 넘어선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경험은 뇌의 신경가소성을 활성화시킨다. 뇌가 새로운 순서와 패턴, 조합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마음가짐 자체가 변화한다. 만성 스트레스로 인해 높아진 코르티솔 수치와 과도하게 항진된 자율신경계가 피톤치드, 충분한 산소, 자연광 등의 치유 요소들을 통해 안정을 되찾는다. 특히 중요한 것은 전두엽의 피로도가 낮아지면서 '생존 모드'에서 '창의적 모드'로의 전환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일상에서 불안과 잡념에 휘둘리던 의식이 현재 순간의 감각과 생각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뇌의 작동 방식이 바뀌면서 창의성과 문제해결 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철학자 니체는 건강 악화로 교수직을 그만둔 후 알프스 고지대에서 매일 8시간씩 숲을 걸으며 깊은 명상 상태에 도달했고, 이것이 그의 위대한 철학적 통찰의 원천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숲이 인체에 미치는 생리적 영향은 매우 구체적이다. 숲길을 걸으면 천연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 분비가 증가한다. 세로토닌은 우울감을 해소하고 질 좋은 수면을 유도하는 핵심 호르몬이다. 또한 주기적으로 햇빛을 받으며 걷는 것만으로도 우울과 불안을 해소하는 다양한 호르몬들의 분비가 촉진된다. 노화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미토콘드리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에 존재하는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내 발전소 역할을 하는데, 활성산소에 의해 손상되면 노화가 가속화된다. 숲에서 생성되는 항산화물질들은 이러한 활성산소의 생성과 축적을 줄여 노화 속도를 늦춘다. 이는 단순히 외모상의 노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암, 심혈관계질환, 당뇨, 관절염 등 각종 퇴행성 질환의 예방과도 직결된다.

현대 사회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거대한 힘으로 우리의 집중력을 끊임없이 훔쳐간다. 실시간 알림, 인터넷 정보 홍수, 소셜미디어의 '좋아요' 확인 충동, 만성 스트레스, 수면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우리의 고유한 사고와 몰입 능력을 마비시킨다. 이러한 집중력 도둑들은 업무 효율성만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다.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 우울, 불안, 충동적 성향, 공허감을 조장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만든다. 현대인들이 겪는 많은 정신건강 문제의 근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숲은 이러한 집중력 도둑들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강력한 해독제 역할을 한다. 휴대폰 전원을 끄고 숲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자동적으로 해독 작업이 시작된다. 우리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혼탁해진 전전두엽의 사고능력이 회복되기 시작한다.


가끔 숲을 찾는 것을 넘어서, 체계적인 '포레스트 코드' 프로그램을 통해 숲의 치유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6주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숲과의 연결을 깊어가는 과정이다. 포레스트 코드란 인간의 DNA 코드에 작용하여 후성유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숲의 치유 능력을 의미한다. 마치 바코드가 리더기를 통해 해석되듯이, 숲이 가진 치유의 암호가 오감을 통해 우리의 유전 암호와 연결될 때 놀라운 치유가 일어난다. 이 프로그램은 피톤치드 흡입법, 바른 자세로 걷기, 자연 친화적 식습관 개선 등을 포함하고 있다. 각 주차별로 다른 목표와 활동이 설정되어 있어, 참가자들이 점진적으로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의 '프릴루프트슬리브(Friluftsliv)' 문화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자유로운 공기를 만끽하는 삶'이라는 뜻의 이 개념은 자연을 행복한 삶의 필수 조건으로 여기는 삶의 철학이다. 오슬로 시민의 75%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숲을 찾으며, 공유지든 사유지든 관계없이 숲과 산, 호수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는 자연을 개인의 소유물이 아닌 모든 시민의 공동 자산으로 인식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의 결과이다. 우리나라도 도시 계획에서 녹지 공간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연 공간을 확보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병원에서도 해결하지 못했던 질병이 숲을 걸으며 호전되는 사례들이 계속해서 보고되고 있다. 이는 현대 의학의 한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자연이 가진 치유력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만병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다루어주는 숲의 가치를 이제 우리는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숲에서의 경험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인 생활 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주 1회 정도의 규칙적인 숲 방문만으로도 저속노화, 면역력 강화, 정신건강 개선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현대인이 잃어버린 따뜻함, 다정함, 열정 같은 인간적 감정들이 숲에서 되살아날 수 있다. 일상에 치여 얼어붙은 마음이 자연 속에서 다시 녹아내리면서,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더 따뜻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결국 더 의미 있고 활력 넘치는 삶으로 이어진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가까운 공원이나 작은 산을 찾아 자연과의 연결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현대인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처방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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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면 지혜가 보인다 - 마음이 길을 잃었을 때, 170편의 지혜와 마주하다
Harry Kim 지음 / 더메이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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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책은 머리로 읽히고, 어떤 책은 가슴으로 스며든다. 그런데 정작 깊은 울림을 주는 책들은 손끝으로 읽히는 것 같다. 마치 점자를 더듬듯, 한 글자 한 글자를 만져가며 그 속에 숨어있는 온기를 찾아내는 독서.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고개를 들면 지혜가 보인다> 책은 읽기 참 편하게 정리되어 있다. 한 페이지의 문장을 읽고 그 문장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 ^.^

"지혜란, 서로 손잡고 춤추면서도 상대의 발을 밟지 않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발가락을 밟으며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내 리듬에만 취해 휘젓던 팔다리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겼을까. 상대방이 아파하는 표정도 보지 못한 채, 나만의 무대에서 홀로 열연하던 날들이 스쳐간다. 진정한 지혜는 나 혼자만의 완벽한 댄스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하모니였던 것이다. 상대방의 발끝을 예민하게 감지하면서도, 내 움직임을 잃지 않는 그 절묘한 균형감. 이것이야말로 관계에서 필요한 가장 고급한 기술이 아닐까.

"지혜자는 미래를 보여주는 예언자가 아니라 새알에서 새의 노래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다." 문득 내 책상 위의 화분이 떠올랐다. 몇 주 전 심은 씨앗에서 이제 막 파란 새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매일 물을 주며 "언제 꽃이 필까" 궁금해했는데, 정작 지금 이 순간의 생명력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있었나 싶다. 우리는 늘 결과를 알고 싶어한다. 이 일이 어떻게 될지, 이 사람과의 관계가 어디로 향할지, 내 노력이 언제 보상받을지. 하지만 진짜 지혜로운 사람은 아직 열리지 않은 꽃봉오리에서도 향기를 맡고, 아직 부르지 않은 새에게서도 노랫소리를 듣는다. 가능성 그 자체에서 이미 완성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 나는 지금까지 너무 성급했다. 오늘 심은 씨앗에서 내일 당장 열매를 따려 했고, 어제 시작한 일에서 오늘 바로 성과를 보려 했다. 하지만 새알이 새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기다림 자체가 또 다른 의미였다는 걸 이제야 안다.

"가장 먼저 박수치는 사람은 리더십이 있다." 회사에서 누군가 발표를 마쳤을 때, 모든 사람이 서로를 눈치보며 박수를 망설이던 그 어색한 정적. 그때 가장 먼저 박수를 쳤다면 어땠을까. 박수는 인정의 언어이고, 격려의 몸짓이며, 연결의 신호다. 가장 먼저 박수친다는 것은 가장 먼저 상대방을 인정한다는 뜻이고, 가장 먼저 분위기를 바꿀 용기를 낸다는 의미다. 나는 그동안 남들이 박수치기를 기다렸다. 남들이 먼저 웃어주기를, 먼저 말을 걸어주기를, 먼저 인정해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리더십은 먼저 시작하는 데서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먼저 웃고, 먼저 격려하고, 먼저 박수치는 것. 그 작은 용기가 모든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성공은 80%의 자신감, 10%의 전문성, 10%의 운으로 달성된다." 이 공식을 처음 봤을 때는 의아했다. 전문성이 고작 10%라니?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수긍이 갔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자신감이 없으면 그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반대로 실력이 부족해도 자신감이 넘치면 어떻게든 길을 찾게 된다. 자존심과 자부심의 차이에 대한 설명도 깊이 와닿았다. 자존심은 모든 기회를 고비용 저효율화하고, 자부심은 저비용 고효율화한다는 것. 자존심은 남과의 비교에서 나오지만, 자부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 자존심은 상처받기 쉽지만, 자부심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자존심과 자부심을 구분하지 못했다. 누군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으면 화가 났고, 인정받지 못하면 좌절했다. 하지만 진정한 자부심은 타인의 평가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 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순수한 믿음, 그것이 모든 자신감의 근원이다.

책을 덮으며 생각해본다. 내일은 정말 어느 방향에서 올까? 나는 지금까지 내일이 오기만을 기다렸지, 내일이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내일의 방향을 아는 것이야말로 오늘을 제대로 사는 방법이다. 이 책의 170편의 지혜들은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혜는 특별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깨달음들 속에 숨어있다는 것. 상대방의 발을 밟지 않으려는 세심함, 가장 먼저 박수치는 용기, 새알에서 새소리를 듣는 상상력, 모든 바람을 즐기는 여유로움이다. 지혜란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고통도 지혜가 되고, 실패도 성장이 되며, 기다림도 축복이 될 수 있다. 고개를 들어 지혜를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일이다. 땅만 보고 걷던 시선을 들어 하늘을 보고, 문제만 보던 시선을 돌려 가능성을 보는 것. 그 작은 변화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제 나도 누군가와 춤을 출 때 상대의 발을 밟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가장 먼저 박수치는 용기를 낼 것이고, 새알에서 새소리를 들으려 귀 기울일 것이다. 야자수처럼 모든 바람을 즐기며, 쉬워지기 전까지의 어려움을 견뎌낼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밤 고개를 들어 내 안의 지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오늘 하루 내가 누구의 발을 밟지는 않았는지, 누구에게 먼저 박수쳐줬는지, 어떤 새소리를 들었는지 돌아보면서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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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호르몬 - 나를 움직이는 신경전달물질의 진실
데이비드 JP 필립스 지음, 권예리 옮김 / 윌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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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느끼는 컨디션, 업무에 대한 의욕,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의 변화. 이 모든 것이 단순히 우리의 의지나 성격만의 문제일까? 현대 신경과학은 우리의 감정과 행동이 뇌에서 분비되는 특정 화학물질들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러한 화학적 메신저들을 이해하고 적절히 조절할 수 있다면, 우리는 보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감정과 삶의 질을 관리할 수 있게 된다. 필립스는 이 화학적 메신저인 호르몬을 상세 설명해 준다. 인간의 뇌는 복잡한 화학 공장과도 같다. 그 중에서도 여섯 가지 핵심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이 우리의 일상을 좌우한다. 바로 도파민, 옥시토신, 세로토닌, 코르티솔, 엔도르핀, 테스토스테론이다. 이들은 각각 고유한 역할을 하면서도 서로 복잡하게 상호작용하여 우리의 기분, 동기, 스트레스 반응, 그리고 전반적인 웰빙을 결정한다.

도파민을 '행복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것은 오해다. 도파민은 실제로는 '원하는 것'에 대한 갈망과 그것을 얻기 위한 행동을 촉진하는 동기부여의 화학물질이다. 흥미롭게도 도파민은 실제 보상을 받을 때보다 보상을 기대할 때 더 많이 분비된다. 이는 진화적으로 인간이 끊임없이 탐색하고 발전하도록 설계된 메커니즘이다. 현대 사회에서 도파민의 작용을 이해하는 것은 특히 중요하다. 스마트폰, 소셜미디어, 게임 등은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빠른 도파민'을 제공한다. 이런 자극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뇌의 보상 시스템이 둔감해져서 일상의 작은 기쁨들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반면 독서, 학습, 운동 같은 활동은 '느린 도파민'을 분비시키며, 이는 장기적으로 더 깊은 만족감을 준다. 도파민 시스템을 건강하게 관리하려면 빠른 도파민과 느린 도파민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이상적인 비율은 2:8 정도로, 즉각적인 쾌락보다는 장기적 가치가 있는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좋다. 또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보는 습관을 피하고, 작은 목표들을 설정하여 하나씩 달성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파민을 분비시킬 수 있다.

​옥시토신은 '사랑 호르몬' 또는 '유대감 호르몬'으로 불린다. 이 물질은 신뢰, 공감,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포옹, 스킨십, 친밀한 대화, 심지어 반려동물과의 교감 시에도 분비되어 우리에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제공한다. 옥시토신의 효과는 단순히 기분 좋은 감정을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옥시토신 수치가 높은 사람들은 면역력이 강하고,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도 높다. 포옹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감기에 덜 걸리고, 걸리더라도 증상이 가벼웠다는 실험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옥시토신을 자연스럽게 증가시키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타인에게 조건 없는 친절을 베풀며,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기르는 것이다. 또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경외감을 느끼거나, 음악을 들으며 감동을 받는 것도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한다. 다만 옥시토신에는 어두운 면도 있다. 과도한 집단 소속 욕구는 배타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고, 험담이나 가십을 통해서도 일시적인 유대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옥시토신은 열린 마음으로 타인을 포용하는 데서 나온다.

세로토닌은 기분 안정화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충분한 세로토닌은 마음의 평온함과 만족감을 가져다주며, 부족하면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경험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세로토닌은 사회적 지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신이 안전하고 존중받는다고 느낄 때 세로토닌 수치가 높아진다. 현대 사회에서 세로토닌 부족은 흔한 문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타인의 '완벽한' 삶을 보며 비교하게 되고, 이는 세로토닌 수치를 떨어뜨린다. 특히 뇌의 전전두엽 피질이 완성되기 전인 25세 이하의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위험할 수 있다. 세로토닌을 자연스럽게 증가시키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햇빛 쐬기다. 자연광은 항우울제와 비슷한 의학적 효과를 나타낸다. 겨울철에는 비타민 D 보충이 도움이 된다. 또한 자신과 타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고, 실수했을 때 자책하지 않으며, 이미 가진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가짐도 세로토닌 증가에 기여한다. 식습관도 중요하다. 정제된 탄수화물이나 과도한 당분 섭취는 세로토닌 균형을 해친다. 대신 복합탄수화물과 트립토판이 풍부한 음식들을 섭취하면 세로토닌 생성에 도움이 된다.

...

이 여섯 가지 화학적 메신저들은 독립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복잡한 네트워크를 이루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예를 들어, 도파민과 세로토닌은 서로 균형을 이뤄야 한다. 도파민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을, 세로토닌은 '이미 가진 것'에 대한 만족을 가져다준다. 둘 중 하나가 과도하면 문제가 생긴다. 마찬가지로 옥시토신과 테스토스테론, 코르티솔과 엔도르핀도 서로 상호작용한다. 건강한 호르몬 균형을 위해서는 어느 하나를 극대화하려 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의 감정과 행동이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복잡한 화학적 과정의 결과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해방적이다. 이는 자신을 탓하는 대신 과학적 근거에 바탕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물론 호르몬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선택의 여지가 있고,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호르몬 균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핵심은 이러한 생화학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여 보다 주체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매일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이 복잡하고 정교한 화학적 춤을 이해할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 자신의 리더가 될 수 있다. 감정을 선택하고, 상태를 조절하며,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호르몬 과학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가장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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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모른다면 인생을 논할 수 없다
김태환 지음 / 새벽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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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아침에 일어나 무엇을 먹을지부터 시작해서, 어떤 직업을 가질지, 누구와 함께 살아갈지, 어떤 가치관을 추구할지까지. 이 모든 선택들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깊은 철학적 질문들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들 말이다. 철학이 없는 인생이란, 나침반 없이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목적지도, 방향도 모른 채 떠다니는 삶. 겉보기에는 움직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표류 상태다. 반면 철학적 사유를 동반한 삶은 비록 때로는 더디고 험난할 수 있지만, 적어도 자신이 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명확히 안다. 이번에 책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철학을 모른다면 인생을 논할 수 없다>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논리적 명제만이 아니다. 이는 모든 인간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는 철학적 선언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말이 주는 의미는 더욱 깊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자주 자신을 잃어버린다. SNS의 완벽해 보이는 타인의 삶과 비교하며 자존감을 잃고, 성과 중심의 사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의심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철학적 성찰이다. 나의 존재 자체가 이미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기준으로 삶을 평가해야 한다는 깨달음 말이다. 철학은 우리에게 존재론적 확신을 준다. 아무리 세상이 나를 평가절하해도, 내가 사유하고 성찰하는 한,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런 철학적 토대 없이는 외부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며 흔들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선택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그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에리히 프롬이 지적했듯이, 진정한 자유는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함께 그 결과를 감당하는 책임을 포함한다. 철학이 없는 삶에서는 선택을 타인에게 의존하거나, 환경 탓으로 돌리기 쉽다. "부모가 시켜서", "상황이 어쩔 수 없어서",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하니까". 이런 식의 선택은 진정한 선택이 아니다. 철학적 사유가 동반된 선택만이 진정으로 나의 것이 될 수 있다. 철학은 우리에게 선택의 기준을 제시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가치를 우선해야 하는지, 어떤 삶이 후회 없는 삶인지에 대한 나름의 원칙을 세우게 한다. 이런 원칙 없이는 매번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타인과의 관계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 중 하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감정의 차원에서만 이해하고, 관계의 어려움을 단순히 상대방의 문제로 치부한다. 프롬의 통찰처럼,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능동적 행위다. 일시적인 감정의 고조가 아니라, 지속적인 노력과 실천이 필요한 기술이다. 이런 철학적 이해 없이는 감정이 식으면 관계도 끝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철학은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상대방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는 자신이 먼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갈등이 생겼을 때도 관계 자체를 포기하기보다는 더 나은 관계를 위한 성장의 기회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인생에는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의심이 따른다. 철학이 없는 사람은 이런 부정적 경험을 단순히 불행으로만 받아들인다. 하지만 철학적 사유를 통해 바라보면, 고통과 의심조차 성장과 깨달음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데카르트는 의심을 지혜의 시작이라고 했다. 확신 없는 의심이 불안을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그것이 우리를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한다. 맹목적인 확신보다는 건전한 의심이 우리를 성숙하게 만든다. 고통 역시 마찬가지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보여주듯이,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어떻게 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철학은 우리에게 역경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기술 발전으로 우리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풍요로운 물질적 삶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많은 현대인들이 공허함과 불안감을 호소한다. 왜 그럴까? 이는 외적인 풍요로움에 비해 내적인 충실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지만, 왜 그것을 원하는지는 모르는 상태. 목표는 있지만 그 목표가 진정 나의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 이런 혼란 속에서 철학적 성찰만이 진정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철학은 우리에게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을 제공한다.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는 삶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게 한다.

철학은 책상 위의 이론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실천되어야 하는 삶의 지혜다. 매일매일의 작은 선택부터 인생의 큰 결정까지, 모든 순간에 철학적 사유가 개입되어야 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이 선택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것인가?",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정말 나의 것인가?" 이런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철학적 삶이다. 철학 없는 인생은 표면적으로는 문제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방향성을 잃은 삶,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삶, 진정성이 결여된 삶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 철학적 성찰을 동반한 삶은 비록 때로는 어렵고 복잡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 삶이 진정으로 나의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철학이 없다면 인생을 논할 수 없다는 것은, 성찰 없는 삶은 진정한 삶이 아니라는 의미다. 사유하지 않는 삶은 단지 시간을 소비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철학적 깊이가 있는 삶은 시간을 의미 있게 창조해나가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창조적 삶을 살아갈 책임과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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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기회로 바꾸는 대화법 - 뱉고 나서 후회한 말 다시 주워 담는 기술
야마모토 에나코 지음, 박현아 옮김 / 영림카디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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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흔히 소통의 달인을 '절대 말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으로 상상한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진정한 대화의 고수는 실수를 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했을 때 그 상황을 되돌리고 더 나은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야마모토 에니코의 <오해를 기회로 바꾸는 대화법>의 통찰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완벽한 화술이 아니라, 실패 후의 회복력이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특히 이런 회복력이 절실한 환경이다. SNS의 짧은 글, 메신저의 간단한 문장들은 오해의 여지를 더욱 넓혔다. 감정을 담기 어려운 텍스트 속에서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소통의 실패를 경험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실수를 두려워하는 완벽주의가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관계를 복원하는 용기다.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며 체념하는 순간, 모든 가능성은 사라진다. 반대로 '아직 늦지 않았다'는 믿음을 가질 때, 비로소 해결책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는 단순한 긍정 사고가 아니다. 인간관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 지혜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한 번의 실수로 완전히 파괴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실수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관계의 깊이가 결정된다. 표면적인 예의만 주고받던 사이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와 개선 의지를 보여주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실수의 순간인 것이다.

관계 회복은 거창한 제스처가 아닌 작은 접촉에서 시작된다. 엘리베이터에서의 짧은 인사, 복도에서의 가벼운 목례, 업무상 필요한 작은 부탁들. 이런 일상적 상호작용이 쌓여서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 특히 부탁의 심리적 효과는 주목할 만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받으면, 우리는 그 사람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고 느낀다. 그리고 도움을 준 후에는 '내가 이 사람을 도운 이유는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무의식적으로 해석한다. 이는 인지적 불협화 이론이 설명하는 현상으로, 우리의 행동이 감정을 변화시키는 역설적 과정이다. 거리감이 생긴 관계를 회복할 때, 이런 작은 접촉점들을 의도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의 대화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꾸준히 긍정적 경험을 축적해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말습관들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도', '그렇지만', '그야 말이지'와 같은 G워드들은 단순히 문장을 시작하는 접속사가 아니다. 이들은 대화에 부정적 뉘앙스를 자동으로 삽입하는 장치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말들이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고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부정적 언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하다 보면, 실제로 사고 패턴도 부정적으로 변해간다. 언어가 단순히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을 만들어내는 도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에도 말했잖아"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이 말 속에는 '내가 제대로 전달했으니 문제는 네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책임 전가가 숨어있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이런 말이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을 위축시키고 관계를 경직시킬 뿐이다.

대화에서 일어나는 많은 갈등은 감정과 사실을 구분하지 못해서 발생한다. 누군가의 행동에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종종 그 행동 자체가 아닌 그 사람의 인격을 공격하게 된다.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구체적 행동 문제를 제기하려다가, "그 사람은 원래 그래"라는 인격 비판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의식적인 전환이다. '내가 지금 화가 났구나'라고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그 감정을 걷어낸 채로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분리수거가 잘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라고 협력적 문제 해결의 프레임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는 말하기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타인을 대하는 근본적 태도의 변화를 요구한다. 다른 사람의 가치관과 감정, 상황을 판단의 대상이 아닌 존중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환경은 오해를 증폭시키는 구조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표정과 목소리, 몸짓 등의 비언어적 신호가 사라진 텍스트 소통에서는 뉘앙스를 전달하기 어렵다. 같은 문장이라도 읽는 사람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더욱 의도적인 소통 전략이 필요하다. 문자나 메일로는 팩트 전달에 집중하고, 감정이나 뉘앙스가 중요한 대화는 직접 만나거나 통화를 하는 것이다. 또한 오해가 생겼을 때 즉시 해명하기보다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한 후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여유도 필요하다.

역설적이게도, 실수가 전혀 없는 관계보다는 실수를 함께 겪고 극복한 관계가 더 깊고 견고하다. 완벽한 예의만 주고받는 표면적 관계에서는 서로의 진짜 모습을 알기 어렵다. 반면 실수와 실망, 오해와 화해를 거친 관계는 서로의 인간적 면모를 이해하게 되고, 그만큼 더 깊은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이는 개인적 성장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수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개선해나가는 과정에서 진정한 소통 능력이 길러진다. 처음부터 완벽했던 사람보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워온 사람이 더 유연하고 포용적인 대화 파트너가 되는 이유다.

야마모토 에니코가 제시하는 대화법의 핵심은 '완벽주의에서 회복력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실수를 두려워하며 위축되기보다는, 실수를 인정하고 관계를 복원해나가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 관계에 대한 철학, 소통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종합된 삶의 지혜다. 디지털 시대에 더욱 중요해진 이 통찰은, 우리의 일상적 대화를 변화시키고 더 나은 인간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실질적 도구가 될 것이다. 대화는 완성품이 아니라 과정이다. 서로 다른 배경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이해의 지점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 여정에서 실수와 오해는 장애물이 아니라, 더 깊은 이해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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