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유라는 말은 매력적으로 들린다.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삶,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상태. 많은 이들이 이를 목표로 저축하고 투자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 상태에 도달한 이들이 모두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돈이 많아지면 새로운 종류의 불안이 생긴다.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 관리해야 할 자산의 무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까지.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에서 깨달았듯이, 소유가 늘어날수록 우리는 오히려 그 소유에 종속된다. 집이 커지면 관리할 공간이 늘어나고, 차가 늘면 주차 걱정이 생기며, 재산이 많아지면 세금과 운용에 대한 고민이 커진다. 진정한 자유는 통장 잔고가 아니라 선택의 주도권에서 나온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쓸 수 있는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거절할 수 있는가, 두려움 없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자유에 가까운 상태다. 그리고 이는 반드시 많은 돈을 전제하지 않는다. 적은 돈으로도 자유로운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며, 자신만의 기준으로 삶을 설계한다. 반면 큰 부를 가졌어도 불안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며,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결국 자유는 외적 조건보다 내적 태도의 문제다.
우리는 언제부터 부유함을 성공으로, 가난을 실패로 여기게 되었을까. 이 단순한 등식은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지만, 실은 역사적으로 구성된 가치관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성과는 곧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증명하는 지표로 간주되었고, 이는 점차 한 사람의 전체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 등식은 위험하다. 부를 성공의 유일한 척도로 삼는 순간, 우리는 다른 모든 가치를 경시하게 된다. 예술적 성취, 인간적 따뜻함, 윤리적 실천, 공동체에 대한 기여 같은 것들은 돈으로 환산되기 어렵기에 낮게 평가된다. 심지어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뭐 하시는 분이세요?"라는 질문을 통해 먼저 그의 직업과 경제적 지위를 확인한다. 칸트가 강조했던 인간 존엄의 개념을 떠올려보자.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며, 어떤 수단으로도 환원될 수 없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인간을 끊임없이 경제적 가치로 측정하려 한다. 연봉이 얼마인지, 어떤 집에 사는지, 무슨 차를 타는지가 그 사람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이런 왜곡된 시선은 개인에게 엄청난 압박을 가한다. 충분히 잘 살고 있어도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초라함을 느끼고,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게 된다. 더 나아가 가난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무의식적 낙인이 담긴다. 가난은 개인의 나태함이나 무능력의 결과로 치부되고, 구조적 불평등은 간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