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박물관의 이집트관에서 람세스 2세의 석상을 마주할 때, 우리는 거대한 돌덩어리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럽인들의 오만한 확신이 무너지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양 문명의 뿌리가 그리스에 있다고 믿었던 그들에게, 그리스보다 훨씬 앞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찬란한 문명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인들도 이집트 문명 앞에서 비슷한 열등감을 느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피라미드를 지키는 수호신에게 자신들의 신화 속 괴물 이름인 '스핑크스'를 갖다 붙였다. 용맹과 지혜를 상징하는 '지평선의 호루스'라는 웅장한 이름 대신에 말이다. 문명과 문명이 만날 때, 우리는 때로 상대의 위대함을 인정하기보다 폄하하는 방식으로 자존심을 지키려 한다. 이런 문화적 열등감과 우월감의 역학은 박물관 곳곳에서 발견된다.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의 '티푸의 호랑이'는 그 극명한 예다. 영국에 저항하던 인도 술탄 티푸가 두 아들을 인질로 빼앗긴 분노로 만든 이 작품은, 영국군 병사를 공격하는 호랑이의 모습을 담고 있다. 술탄은 이것을 궁전 음악실에 두고 손님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에서 패한 후, 이 작품은 런던으로 옮겨져 영국인들이 대영제국의 위대함을 확인하는 전리품이 되었다. 박물관은 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승자의 공간이며, 때로는 약탈의 역사가 '보존'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곳이기도 하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낸 '엘긴 마블'을 보면서, 우리는 예술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함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집트관을 걷다 보면, 고대 이집트인들이 얼마나 죽음에 집착했는지 실감하게 된다. 미라, 사자의 서, 카노푸스 단지, 샤브티 인형 등 거의 모든 유물이 죽음과 사후세계에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저자가 지적하듯, 이집트인들이 꿈꾼 내세는 천국이 아니라 현세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세케트 이아르', 즉 갈대의 들은 물과 곡식이 풍부한 낙원이었다. 그들은 죽어서 완전히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았던 순간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네바문의 벽화에서 보이는 연회 장면을 떠올려본다. 왜 그들은 인물의 얼굴을 측면으로, 눈과 가슴은 정면으로, 발은 다시 측면으로 그렸을까? 그것은 단순히 미적 선택이 아니라, 부활했을 때 자신의 몸을 정확히 찾기 위한 실용적 이유였다. 죽음 이후에도 자신으로 남고 싶었던 그들의 간절함이 느껴진다. 반면 그리스인들은 죽음을 다르게 바라봤다. 펜테실레이아와 아킬레우스의 이야기에서 보듯, 그들은 죽음의 순간에도 인간적 감정을 놓지 않았다. 적을 죽이는 바로 그 순간에 사랑에 빠지는 아킬레우스의 모습은, 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다. 그리고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임종 직전에 이렇게 물었다. "내 연기가 볼 만했습니까?" 삶을 연극으로, 자신을 배우로 본 그의 태도에서 우리는 또 다른 죽음의 철학을 본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친구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그에게 삶은 견뎌내야 할 무대였고, 죽음은 그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