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을 빌려드립니다 : 영국 - 인류 역사와 문화의 새로운 발견 박물관을 빌려드립니다
손봉기 지음 / 더블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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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박물관은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대영박물관의 그레이트 코트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그 투명한 천장 아래에서 수천 년의 시간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듯한 감각을 경험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경험하고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몰라 입구를 서성이다가, 결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을 따라 걷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것이 많은 이들이 박물관에서 겪는 솔직한 경험이 아닐까. 이번에 읽은 <박물관을 빌려드립니다 : 영국>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대영박물관과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은 인류가 걸어온 길의 흔적들이 모여 있는 곳이며, 동시에 제국주의 시대 영국이 세계 곳곳에서 가져온 기억들이 뒤섞인 복잡한 장소이기도 하다. 800만 점, 280만 점이라는 숫자는 그 자체로 압도적이다. 하지만 이 책이 제공하는 것은 숫자의 압도가 아니라, 그 속에서 꼭 만나야 할 이야기들을 골라내는 섬세한 손길이다. 박물관을 '힙플레이스'라고 부르는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정작 그 안에 들어서면 우리는 여전히 길을 잃는다. SNS에 올릴 만한 사진을 찍기 위해 유명한 유물 앞에 줄을 서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 채 지나친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에게 말을 건다. 유물을 보는 것과 유물을 읽는 것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으며,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결국 이야기라고 말이다.


대영박물관의 이집트관에서 람세스 2세의 석상을 마주할 때, 우리는 거대한 돌덩어리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럽인들의 오만한 확신이 무너지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양 문명의 뿌리가 그리스에 있다고 믿었던 그들에게, 그리스보다 훨씬 앞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찬란한 문명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인들도 이집트 문명 앞에서 비슷한 열등감을 느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피라미드를 지키는 수호신에게 자신들의 신화 속 괴물 이름인 '스핑크스'를 갖다 붙였다. 용맹과 지혜를 상징하는 '지평선의 호루스'라는 웅장한 이름 대신에 말이다. 문명과 문명이 만날 때, 우리는 때로 상대의 위대함을 인정하기보다 폄하하는 방식으로 자존심을 지키려 한다. 이런 문화적 열등감과 우월감의 역학은 박물관 곳곳에서 발견된다.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의 '티푸의 호랑이'는 그 극명한 예다. 영국에 저항하던 인도 술탄 티푸가 두 아들을 인질로 빼앗긴 분노로 만든 이 작품은, 영국군 병사를 공격하는 호랑이의 모습을 담고 있다. 술탄은 이것을 궁전 음악실에 두고 손님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에서 패한 후, 이 작품은 런던으로 옮겨져 영국인들이 대영제국의 위대함을 확인하는 전리품이 되었다. 박물관은 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승자의 공간이며, 때로는 약탈의 역사가 '보존'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곳이기도 하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낸 '엘긴 마블'을 보면서, 우리는 예술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함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집트관을 걷다 보면, 고대 이집트인들이 얼마나 죽음에 집착했는지 실감하게 된다. 미라, 사자의 서, 카노푸스 단지, 샤브티 인형 등 거의 모든 유물이 죽음과 사후세계에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저자가 지적하듯, 이집트인들이 꿈꾼 내세는 천국이 아니라 현세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세케트 이아르', 즉 갈대의 들은 물과 곡식이 풍부한 낙원이었다. 그들은 죽어서 완전히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았던 순간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네바문의 벽화에서 보이는 연회 장면을 떠올려본다. 왜 그들은 인물의 얼굴을 측면으로, 눈과 가슴은 정면으로, 발은 다시 측면으로 그렸을까? 그것은 단순히 미적 선택이 아니라, 부활했을 때 자신의 몸을 정확히 찾기 위한 실용적 이유였다. 죽음 이후에도 자신으로 남고 싶었던 그들의 간절함이 느껴진다. 반면 그리스인들은 죽음을 다르게 바라봤다. 펜테실레이아와 아킬레우스의 이야기에서 보듯, 그들은 죽음의 순간에도 인간적 감정을 놓지 않았다. 적을 죽이는 바로 그 순간에 사랑에 빠지는 아킬레우스의 모습은, 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다. 그리고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임종 직전에 이렇게 물었다. "내 연기가 볼 만했습니까?" 삶을 연극으로, 자신을 배우로 본 그의 태도에서 우리는 또 다른 죽음의 철학을 본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친구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그에게 삶은 견뎌내야 할 무대였고, 죽음은 그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이었다.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의 카스트 코트를 생각하면 묘한 감정이 든다. 그곳은 복제품들을 모아놓은 전시실이다. 산업혁명으로 부유해졌지만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변방이었던 영국이, 그랜드 투어를 갈 수 없는 젊은이들을 위해 만든 공간. 트라야누스 승전비의 복제품, 미켈란젤로 다비드상의 복제품들이 그곳에 서 있다. 재미있는 것은, 진품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복제를 통해서라도 배우려 했던 그 열망이 더 인상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복제품을 모으던 박물관이 이제는 전 세계에서 가져온 진품들로 가득 차 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가시 성물함'의 이야기다. 예수가 쓴 가시관의 일부를 보관했다는 이 성물함은 합스부르크 왕가를 거쳐 복원을 위해 골동품 상인에게 맡겨졌다. 그런데 상인은 진품을 가지고 가짜를 만들어 돌려보냈고, 진품은 결국 대영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신성함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물함이, 금과 보석 때문에 세속화되고, 결국 진품과 가짜가 뒤바뀌는 과정을 겪은 것이다.


박물관을 걷는다는 것은 인류의 욕망과 두려움, 자부심과 열등감, 사랑과 증오, 신성함과 세속성이 뒤엉킨 공간을 통과하는 일이다. 로제타스톤 앞에서 우리는 해독되지 않던 문자가 풀리는 순간의 흥분을 상상하고,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의 점토판 앞에서는 기록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생각한다. 니네베 궁전의 사자 사냥 부조를 보면서, 사자의 근육과 분노가 너무나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숨이 막힌다. 성난 눈빛과 피가 솟구치는 상처까지, 동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이 3000년 전에 이미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리고 동시에, 왜 그들은 사자를 죽이는 장면을 이토록 정교하게 남겨야 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그날의 꿈>에서 인동덩굴을 든 제인 모리스를 보면서, 우리는 빅토리아 시대의 은밀한 사랑을 떠올린다. 그녀는 화가의 친구 아내였고, 화가와 불륜 관계였다. 예술 작품 속에 담긴 것은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금기를 넘는 욕망이기도 하다. 저자가 26년간 도슨트로 일하며 선택한 100여 점의 유물들은, 결국 인간이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기억하고 싶어 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우리는 박물관에서 과거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지금의 우리 자신을 본다.


박물관에서 길을 잃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수천 년의 시간과 수백만 점의 유물 사이에서, 우리가 명확한 방향을 가지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길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었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목소리다. "여기를 보세요. 이것은 단순한 돌이 아니라, 왕이 사후세계에서도 자신으로 남고 싶어 했던 간절함이 담긴 조각입니다." "저 항아리에 그려진 것은 단순한 전투 장면이 아니라, 적을 죽이는 순간 사랑에 빠진 영웅의 비극입니다." "이 복제품은 문화적 열등감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배움에 대한 열망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26년간 같은 박물관을 안내하면서도 여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는 저자의 시선이 귀하다. 박물관은 고정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시선에 따라 계속 새롭게 읽히는 텍스트다. 우리가 어떤 질문을 가지고 가느냐에 따라, 같은 유물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영박물관과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은 제국주의의 산물이자, 인류 문명의 보고이며, 약탈의 증거이자 보존의 노력이 공존하는 모순된 공간이다. 그 모순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유물 하나하나에 담긴 인간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박물관을 제대로 걷는 방법일 것이다. 언젠가 런던을 방문하게 된다면, 나는 이 책을 들고 대영박물관의 입구에 설 것이다. 그리고 800만 점의 유물 사이에서 길을 잃을 준비를 하되, 동시에 저자가 건네는 이야기의 실을 따라 걸을 것이다. 박물관은 이제 더 이상 두려운 미로가 아니라, 걸을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이는 시간의 정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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