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밀을 눈치채고 은행을 퇴사했다 - ‘부’와 ‘자유’를 누리는 마인드셋
이보은(선한건물주) 지음 / 노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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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난주 동료와 점심을 먹다가 불현듯 이런 말을 들었다. "너는 왜 그렇게 열심히 사니? 어차피 월급은 똑같은데." 그 순간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웃고 말았다. 하지만 그날 밤, 잠들기 전까지 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뿐인 걸까. <나는 비밀을 눈치채고 은행을 퇴사했다>를 읽으 면서 나는 비로소 그 질문의 본질을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가 던진 화두는 직장을 그만두는 용기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방향성에 대한, 더 정확히는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아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우리는 흔히 안정을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불안을 회피하려는 것에 가깝다. 저자가 국책은행이라는 탄탄한 울타리 안에서도 끊임없는 공허함을 느꼈다는 고백은 이를 정확히 짚어낸다. 안정된 월급, 괜찮은 복지, 주변의 부러움 등 이 모든 것이 있어도 삶이 충만하지 않다면 그것은 정말 안정일까. 어쩌면 우리가 안정이라 부르는 것은 단지 익숙함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변화가 두려워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을 안정이라 착각하고, 새로운 시도를 포기하는 것을 현실적이라 정당화하는 건 아닐까. 저자가 강조하는 '끌어당김의 법칙'에 대해서는 솔직히 처음엔 회의적이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 다는 식의 이야기는 자칫 노력 없는 환상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깨달은 것은, 저자가 말하는 끌어당김이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명확한 목표 설정과 일관된 행동의 결과라는 점이다. 다가구 주택을 공부하며 전국을 임장하고, 1년 반 동안 주말마다 발품을 판 과정은 그 자체로 치열한 실천이었다. 상상이 현실이 된 것이 아니라,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구체적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잠재의식'이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생각과 감정이 쌓여 훗날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저자의 말은 깊은 울림이 있다. 아침에 출근하며 무의식적으로 "오늘도 피곤하겠네"라고 생각하는 것과 "오늘은 어떤 좋은 일이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장은 별 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작은 사고의 패턴이 수백 번, 수천 번 반복되면 그것은 결국 삶의 태도를 결정짓는 토대가 된다. 저자가 실천한 아침 필사, 감사 일기, 명상 같은 루틴들은 그래서 자기관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잠재의식을 의도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이며, 부정적 사고의 자동 재생을 멈추고 긍정적 방향으로 마음의 기본값을 설정하는 과정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자가 친정의 경제적 몰락이라는 시련 앞에서 취한 태도였다. "얼마나 더 잘되려고 이런 일이 올까"라는 질문은 언뜻 낙관론처럼 들리지만, 실은 고통에 대한 해석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관점이다. 같은 상황을 '불운'으로 받아들이느냐,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후의 선택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는 비현실적인 긍정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능동적 태도다. 우리는 종종 고통 앞에서 무기력해지지만, 저자는 그 고통을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로 삼았다. 부정적 인연조차 나를 완성시키는 퍼즐 조각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돈에 대한 관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돈을 물질이나 숫자가 아닌 '에너지'로 본다. 돈은 행복의 본질이 아니지만, 행복을 가능하게 만드는 도구이며, '해야 하는 삶에서 '하고 싶은 삶'으로 이동할 수 있는 레버리지라는 설명은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한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폄하하거나 반대로 과도하게 집착하는 양극단을 오가는데, 저자는 그 중간 지점에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보여준다. 특히 부자들의 소비 패턴을 관찰한 부분 즉, 작은 돈을 지키고, 좋은 물건을 오래 쓰며, 배움에 투자하는 것은 사치와 절약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한다. 진짜 부자는 돈을 과시하지 않으며, 시간을 돈만큼 귀하게 여긴다는 통찰은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의 밑바탕에는 결국 '자기 사랑'이 있다. 저자는 자기 사랑을 감상적인 위로가 아니라 감정을 관찰하고, 비교를 줄이며, 적절한 경계를 설정하는 실천 의 영역으로 설명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타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며, 건강한 거리두기에 실패한다. 진정한 자기 사랑은 자신에게 관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이 원하는 방향을 신뢰하고 따라가는 용기다. 저자가 은행을 퇴사한 결정은 그래서 무모함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행위였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계속해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매일 반복하는 생각과 행동은 내가 원하는 미래와 연결되어 있는가.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포기한 것들은 무엇인가. 저자의 이야기는 거창한 성공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재구성해가는 과정이기에 더욱 진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과정은 특별한 재능이나 행운이 아니라, 작은 루틴의 반복과 일관된 태도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책이 말하는 '비밀'이란 어떤 거창한 공식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알고, 그것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며, 과정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변화는 결단의 순간이 아니라 일상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아침에 어떤 생각으로 눈을 뜨는지, 어떤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지, 어떤 감정을 선택하는지 이 모든 작은 결정들이 모여 결국 삶 의 방향을 만든다. 그러니 퇴사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이 현재의 삶과 다르다면, 용기 내어 한 걸음 내딛는 것이다. 저자의 조언은 결국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삶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설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설계의 시작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선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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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척학전집 : 훔친 철학 편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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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철학이라는 단어 앞에서 우리는 왜 주눅이 드는가. 아마도 그것은 두꺼운 책, 난해한 용어, 그리고 '이해했다'고 말하기 두려운 추상적 개념들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철학을 알아야 할 교양 쯤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세계척학전집: 훔친 철학 편>은 그 벽을 허물어뜨린다. 책은 철학을 박제된 지식이 아닌, 지금 이 순간 내 삶을 비추는 거울로 만들어준다. '척학‘ 이라는 제목이 재미있다. 알고 있으면 척하기 좋은 지식이라니. 저자는 자신이 천재들의 사유를 '훔쳐왔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이 겸손한 표현 뒤에는 철학을 독점물이 아닌 공유재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2500년간 축적된 인류의 지혜를 압축하여 우리 앞에 내놓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식의 나눔이 아닐까...

책은 세 개의 거대한 질문을 축으로 구성된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이 물음들은 인류가 역사 내내 붙들고 씨름해온 근본적인 질문이다. 그리고 각 질문 앞에 동서양의 철학 자 18명이 자신만의 답을 제시한다. 데카르트는 우리에게 의심하라고 말한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모든 것을 의심의 도마 위에 올릴 때, 우리는 비로소 '생각하는 나'라는 확실한 존재를 발견한다. 플라톤의 동굴 비유는 우리가 보는 현실이 진짜가 아닐 수 있다는 불편한 가능성을 제기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라고 말하며,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얼마나 우리의 사고를 제약하는지 보여준다. 이 대목에서 나는 멈춰 섰다.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 예를 들어 '성공'이나 '행복'의 정의는 누가 만들어준 것일까? 나는 내 언어로 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 만들 어놓은 틀 안에서 살고 있는가? 데카르트의 회의는 단순한 철학적 방법론이 아니라,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한 필수적 태도였던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을 말한다.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적절함.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더 잘 안다. 일과 휴식 사이, 욕망과 절제 사이, 관계에서의 거리 조절. 우리는 매일이 균형점을 찾기 위해 애쓴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흔히 오해받는 개념이다. 그가 말한 쾌락은 방탕함이 아니라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 즉 '아타락시아'였다. 행복의 공식을 “성취/욕망"으로 제시한 그의 통찰은 현대 소비사회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우리는 분자를 늘리는 데만 급급하지만, 분모를 줄이는 것이야말로 더 쉽고 확실한 행복의 길일 수 있다. 칸트의 정언명령 앞에서는 숙연해진다. "내 행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내가 지금 하려는 선택을 모든 사람이 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이 질문 하나로 우리는 수많은 자기합리화를 걷어낼 수 있다. 동양 철학에서 공자의 '인'과 노자의 '무위자연'은 대조를 이룬다. 관계 속에서 인간다움을 찾는 공자와, 억지로 애쓰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노자. 이 둘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 삶의 다른 국면에서 필요한 지혜들이다. 때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의무를 다해야 하고, 때로는 흐름에 맡기는 여유가 필요하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 앞에서 사르트르는 냉정하게 말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우리에게는 미리 정해진 운명도, 타고난 본질도 없다. 우리는 그저 세상에 던져졌고, 이후의 모든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이 자유는 축복이자 저주다. "인간은 자유라는 형벌에 처해 있다"는 사르트르의 말은 역설적이지만 진실하다.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곧 그 선택의 결과를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핑계 뒤에 숨을 수 없다. 매 순간, 나는 나를 새롭 게 만들어가고 있다. 하이데거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암울하게 들리지만, 오히려 현재를 살아있게 만드는 명제다. 죽음을 직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미루고 싶었던 것들, 중요하지 않다고 치부했던 관계들이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은 우리가 스스로를 얼마나 모르는지 일깨운다. 내가 의식적으로 내린 결 정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무의식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이 깨달음은 불편하지만, 동시에 자기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철학은 읽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 말이 책의 핵심을 관통한다. 책에 담긴 철학자들의 사유는 정답이 아니라 질문의 시작점이다. 데카르트의 의심, 니체의 관점주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읽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사유방식을 빌려 내 삶을 돌아보고, 스스로 질문하고,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책은 난해한 철학 용어를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고,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 사례와 연결한다. 유튜브 채널' 이클립스 '의 특성이 그대로 살아있 다. 한 학기 수업을 한 편의 영상으로 압축하듯, 이 책은 2500년의 철학사를 한 권에 담아냈다. 저자는 철학자들의 핵심 사상을 소개하면서도,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끊임없이 묻는다. 에피쿠로스의 행복론이 미니멀리즘과 연결되고, 칸트의 정언명령이 일상의 윤리적 선택과 만난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라는 핑계를 버리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용기를 준다.

책을 읽으며 여러 번 멈춰 섰다. 저자가 권했듯이,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 위해서였다. 칸트의 정언명령 앞에 서는 최근 내가 한 선택들을 돌아보았다. 에피쿠로스의 욕망론 앞에서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앞에서는 내가 나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성찰했다. 이 멈춤과 되새김이야말로 책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우리는 너무 빨리 읽고, 너무 많이 소비하며,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진정한 앎은 정보의 축적이 아 니라 사유의 깊이에서 나온다. 이 책은 독자에게 속도를 늦추고,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갈 것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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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자본주의
김창익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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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어쩌면 처음부터 환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시장은 스스로 균형을 찾는 자연스러운 생태계가 아니라, 언제나 누군가에 의해 설계되고 조정되어 온 인공적 시스템이었다. 다만 그 설계자가 누구인지, 어떤 방 식으로 작동하는지가 시대에 따라 달라졌을 뿐이다. 20세기 후반, 레이건의 자유시장 경제학은 표면적으로는 정부의 개 입을 줄이고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월스트리트라는 새로운 권력 중심을 만들어냈다. 금융자본이 세계를 지배하는 구조가 완성되었고, 달러는 단순한 통화를 넘어 패권의 도구가 되었다. IMF 외환위기부터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우리가 겪은 수많은 경제적 혼란의 중심에는 항상 월가가 있었다. 그들은 위기를 만들고, 위기에서 이익을 얻고, 위기의 책임에서는 자유로웠다. 하지만 지금, 자본주의의 권력 구조에 근본적인 균열이 생기고 있다. 새로운 설계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금융이 아닌 기술을 무기로 삼고, 은행이 아닌 플랫폼을 통해 사람들의 삶 속으로 침투했다. 빅테크 기업들은 더 이상 기술 회사가 아니다. 그들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소비를 유도하며, 결제를 대행하고, 심지어 화폐를 발행하려 한다. 애플, 구글, 아마존, 메타, 테슬라로 대표되는 이 거대한 플랫폼 제국은 40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월가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자본주의 그 자체가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패권 전쟁이다. 금융자본과 기술자본의 충돌, 그 전선에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마주하게 될 것인가. <빅테크 자본주의>를 통해 그 이면을 들여다 본다.

역사를 돌아보면, 화폐를 장악한 자가 권력을 쥐었다. 과거에는 국가가, 그다음에는 중앙은행이, 그리고 현대에는 월가가 화폐의 흐름을 통제했다. 달러는 미국의 통화만이 아니라 전 세계 경제 시스템의 기반이었고, 미국은 이를 통해 막대한 특권을 누려왔다. 전 세계가 달러를 원하고, 미국채를 사고, 결국 자본은 다시 월가로 흘러 들어갔다. 이것이 지난 수십 년간 작동해온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빅테크는 이 판을 뒤집으려 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리브라(현 디엠) 프로젝트는 실패했지만, 그 시도 자체가 중요한 신호탄이었다. 빅테크 기업들은 결제 수단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화폐의 발행과 유통까지 통제하려는 야망을 숨기지 않는다. 스테이블코인이 그 실험의 연장선에 있고, AI 기반의 개인화 금융시스템이 그 미래를 예고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암호화폐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 세계화를 외치며 등장한 트럼프는 월가의 부채 전략이 미국 경제를 망가뜨렸다고 비판했고, 그 대안으로 제조업 복귀와 빅테크 중심의 새로운 경제 구조를 제시했다. 머스크와의 브로맨스는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라, 권력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월가를 견제하고 달러 패권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은 스스로 화폐의 개념을 재정의 하려는 모험을 시작한 것이다.이 과정에서 비트코인은 투기 자산을 넘어,'전기의 달러'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고 있다.

중앙은행이 통제할 수 없고, 국경을 초월하며, 알고리즘에 의해 발행량이 정해지는 화폐. 비트코인이 과연 기존 통화 체계 를 대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그것이 기존 권력 구조에 균열을 내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중국 역시 디지털 위안화(CBDC)를 통해 화폐 주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중국에게 CBDC는 결제 수단만이 아니라,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도구이자 달러 패권에 맞서는 전략적 무기다. 미중 패권 전쟁의 본질은 기술 전쟁이며, 그 핵심에는 누가 화폐의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다. 화폐의 주인이 바뀌면, 권력의 구조가 바뀌고, 사회의 작동 방식이 바뀐다. 우리는 지금 그 전환점의 한가운데 서 있다.

빅테크와 월가의 전쟁, 미국과 중국의 기술 냉전, 규제와 혁신의 줄다리기. 이 모든 갈등의 배후에는 하나의 질문이 놓여 있다. 누가 미래의 자본주의를 설계할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한국은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는 여전히 수출 의존형 경제 구조를 유지하고 있고, 원화는 달러에 종속되어 있으며, 기술 주권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삼성과 현대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플랫폼, 반도체 설계 도구, 클라우드 인프라는 대부분 외국 기업의 것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국내에서는 강력하지만, 국제 무대에서는 여전히 약소하다. 더 큰 문제는 화폐 주권이다. 디지털 화폐의 시대가 도래하면, 원화의 위상은 더욱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가 동아시아 결제 시스템을 장악하고, 미국의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기축통화 역할을 하게 되면, 원화는 그 사이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도입은 시급한 과제지만, 속도와 방향성에서 명확한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개인의 차원에 서도 선택은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플랫폼 경제의 일부가 되었다. 아마존에서 물건을 사고, 구글로 검색하고, 유튜브로 정보를 소비하며, 카카오페이로 결제한다. 이 모든 행위는 데이터로 기록되고, 알고리즘에 의해 분석되며, 다시 우리에게 맞춤형 광고와 콘텐츠로 되돌아온다. 우리는 소비자인 동시에 상품이다.

가장 냉혹한 자본주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빅테크가 월가를 넘어서고, AI가 민주주의를 시험하며, 디지털 화폐가 국경을 지우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그 세상에서 우리는 더 자유로울 수도, 더 통제받을 수도 있다. 결정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다만, 시간은 많지 않다. 책을 통해 빅테크 자본주의의 속성을 알고 우리 나름대로의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흥미로운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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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질서 - 의도를 벗어난 모든 현상에 관한 우주적 대답
뤼디거 달케 지음, 송소민 옮김 / 터닝페이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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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마음이 무겁다. 정치인들은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고, SNS에서는 같은 사안을 두고 사람들이 극렬하게 대립한다. 누군가는 "저들이 잘못됐다"고 외치고, 다른 누군가는 우리가 옳다"고 맞선다. 그런 광경을 지켜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혹시 싸움이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뤼디거 달케의 <보이지 않는 질서>는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싸움으로 세상의 문제를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이 테러를 다섯 배 증가시켰듯이, 우리가 맞서 싸우는 대상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된다. 이것이 바로 대립의 법칙이다. 우리는 양극의 세계에 산다. 빛과 어둠, 선과 악, 큰 것과 작은 것이 짝을 이루는 세계. 이 세계에서는 한쪽을 선택하는 순간 반대편이 자동으로 생성된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진다. 그런데 우리는 이 단순한 진리를 자꾸 잊는다. 빛만 키우려 하고, 그림자는 없 앨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억압될수록, 부정될수록 더 깊고 거칠게 모습을 바꿔 돌아올 뿐이다. 우리가 “저 사람이 문제야"라고 손가락질할 때, 사실은 우리 안의 그림자가 건드려진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못마땅한 것이 많을수록, 우리 안에 아직 마주하지 않은 그림자가 많다는 신호다.

대립의 법칙이 우리에게 경고한다면, 공명의 법칙은 희망을 준다. 공명이란 무엇인가? 온갖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이 진동하는 것이다. 주인을 닮아가는 반려동물처럼,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와 공명하는 것을 끌어당긴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와 관련된 책, 사람, 기회가 '우연히' 찾아온다. 아름다움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아름다운 것들에 둘러싸인다. 이것은 마법이 아니다. 공명의 법칙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명에는 양면이 있다. 긍정적인 것과도 공명할 수 있지만, 부정적인 것과도 공명할 수 있다. 우리가 분노에 사로잡혀 있으면 분노를 불러들이고, 두려움에 빠져 있으면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자기계발서들이 침묵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공명의 법칙은 우리가 원하는 것만 가져다주지 않는다. 우리 내면에 있는 것, 특히 우리가 외면하려는 그림자와도 공명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자신의 그림자를 인정해야 한다. 내가 싫어하는 것, 거슬리는 것이 사실은 나 자신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림자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대신 타인에게 투사하고 세상과 싸우는 쪽을 택한다. 하지만 그림자가 부정적인 측면만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우리가 외면해 온 힘과 가능성, 아직 사용하지 않은 에너지가 함께 잠들어 있다. 우리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우리의 부족함이 아니라, 우리가 도를 넘은 권력을 가졌다는 사실이라고 메리앤윌리엄슨은 말했다. 그림자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바로 이 숨겨진 힘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씨앗 속에 이미 나무 전체가 들어 있듯이, 시작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첫 만남에서 느껴지는 직감,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의 분위기, 결혼식 날의 작은 징조들. 우리는 종종 이런 신호들을 무시하지만, 시작의 법칙은 냉정하게 작동한다. 어떤 관계가 불안한 시작을 가졌다면, 그 불안은 관계 내내 다른 모습으로 반복된다. 거짓말로 시작한 사업은 언젠가 그 거짓이 드러나며 무너진다. 운명을 속이려는 시도는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탁을 거스르려던 시도가 모두 비극으로 끝났듯이. 그렇다고 우리가 운명의 노예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시작의 중요성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힘을 준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충분히 성숙해 있다면, 우주는 그것을 지지한다. 준비된 사람에게는 필요한 것들이 '우연히' 찾아온다. 동종요법을 배운 의사가 기차에서 그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만나듯이. 문제는 우리가 준비되지 않았는데도 억지로 무언가를 시작하려 할 때다. 내면의 그림자를 외면한 채 빛만 좇으려 할 때, 대립의 법칙이 공명의 법칙을 압도한다. 그러면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간절히 원해도 원하는 것이 오지 않는다. 자기계발서 저자들이 침묵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모든 법칙은 하나를 향한다. 대립성을 넘어선 단일성. 그것은 종교가 약속하는 깨달음이고, 명상이 추구하는 경지다. 빛도 그림자도 아닌, 그 둘을 아우르는 전체다. 이것은 추상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도 우리는 순간순간 단일성을 경험한다. 아름다운 음악에 몰입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깊이 교감할 때, 자연 속에서 평화를 느낄 때. 그럴 때 우리는 대립을 잊는다. 나와 너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옳고 그름의 판단이 멈춘다. 문제는 우리가 그 순간을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곧 다시 대립의 세계로 돌아온다. 누군가를 판단하고, 무언가와 싸우고, 자신의 그림자를 타인에게 투사한다. 그래서 수행이 필요하다. 명상이든, 예술이든, 깊은 대화든, 우리를 단일성으로 이끄는 것들을 반복해야 한다. 동시에 대립의 법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완벽한 빛만 추구하면 그만큼 짙은 그림자가 생긴다. 지나치게 선해지려 하면 억압된 악이 튀어나온다. 중요한 것은 균형 다. 빛과 그림자를 모두 인정하고, 선과 악이 우리 안에 공존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달케가 말했듯이, 우리는 자발적으로 배우거나 억지로 배우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운명이 조용히 문을 두드릴 때 귀 기울이면 쉽게 배울 수 있다. 하지만 계속 외면하면 운명은 더 세게 문을 두드리고, 결국 문을 부수고 들어온다. 갈등과 발전은 삶의 다른 단면일 뿐이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어려움, 모든 대립, 모든 그림자는 사실 우리를 성장시키려는 삶의 초대장이다. 그것을 싸워야 할 적으로 볼 것인가, 배움의 기회로 볼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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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역전 - AI를 설득하라 - AI 에이전트 시대의 마케팅 생존 매뉴얼
정허로 지음 / 박영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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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케팅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우리는 언제나 '누구를 설득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었다. 20세기 초반 라디오와 신문이 주류였던 시절에는 대중을 향한 일방적 메시지 전달이 전부였다. 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시각적 이미지가 더해졌고, 인터넷 시대에는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설득의 대상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정허로님의<설득의 역전>이 던지는 핵심 화두는 명료하다. 이제 브랜드가 설득해야 할 1차 대상은 소비자가 아니라 인공지능이라는 것. 트렌드 변화가 아니라 마케팅 생태계 전체의 구조적 전환을 의미한다. 마치 생물학적 진화에서 환경이 바뀌면 생존 전략 자체를 재설계해야 하듯, 마케팅 역시 근본부터 다시 써야 하는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변화가 이미 우리 일상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 스피커에 게 날씨를 물어보고, 출근길에 AI 비서가 추천한 팟캐스트를 듣고, 점심 메뉴를 검색 엔진의 제안으로 결정한다. 저녁에는 OTT 플랫폼이 골라준 영화를 보고, 쇼핑 앱에서 AI가 큐레이션한 상품을 구매한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Al라는 필터를 통해 세상과 만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보이지 않는 문지기는 어떤 기준으로 브랜드를 판단할까? 저자가 제시하는 통찰은 명확하다. AI는 감정이 없다. 브랜드 충성도도, 향수도, 동경도 느끼지 않는다. 오직 데이터와 논리, 패턴과 효율성 만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30년간 공들여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가 AI에게는 그저 분석 가능한 숫자의 집합일 뿐이다.


마케터의 정체성에 관한 논의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다. 저자는 전통적 마케터를 '시인'에 비유한다. 아름다운 언어로 이야기를 엮고, 감성적 메시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존재. 코카콜라의 '행복을 여세요, 나이키의 ‘Just Do It' 같은 슬로건들이 그 대표적 산물이다. 이들은 제품의 기능을 넘어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을 판매했고, 소비자들은 그 이야기에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AI 시대의 마케터에게는 '건축가'의 역할이 요구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건축가는 미학과 공학을 동시에 다룬다. 건물의 외관이 아름다워야 하지만, 구조적 안정성과 기능적 효율성 또한 담보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마케터는 감성적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되, 동시에 AI가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는 데이터 구조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역할 전환은 기술적 스킬의 추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고방식 자체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한다. 예를 들어 '프리미엄 샴푸'라는 브랜드 포지셔닝을 생각해 본다. 과거에는 고급스러운 패키지, 유명 모델을 기용한 광고, 감각적인 향기 묘사로 충분했다. 하지만 AI에게 이를 전달하려면 ' pH 5.5 약산성' , ' 실리콘 프리 ' , ' 모발 단백질 89% 개선 ' 처럼 측정 가능하고 구조화된 속성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감성을 버리라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듯, 이는 '감성의 종말'이 아니라 '설득의 순서' 변화다. 여전히 최종 구매 결정을 내 리는 것은 사람이며, 사람은 여전히 감정으로 움직인다. 다만 그 감성에 도달하는 경로가 바뀌었을 뿐이다. Al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브랜드 스토리도 소비자에게 닿을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중 언어 전략이라는 개념도 흥미롭다. 한쪽 귀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적 언어를 구사하고, 다른 한쪽 귀로는 AI가 이해할 수 있는 구조 적 언어를 말해야 한다. 마치 바이링구얼이 상황에 따라 언어를 자유자재로 전환하듯, 마케터도 대상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능숙하게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죽음을 선언하는 이들도 있다. 데이터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에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관점은 다르다. 스토리텔링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진화한다는 것. 그는 ' 데이터 내러티브 '라는 개념 을 제시한다. 데이터 내러티브란 무엇인가? 단순히 숫자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데이터를 통해 의미 있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좋은 예다. 그들은 작품을 76,897개의 세부 장르로 분류하고, 각각에 로맨스 수준, 줄거리 완성 도, 배경 설정 같은 태그를 부여한다. 이는 단순한 분류가 아니라 데이터를 통한 스토리텔링이다. AI는 이 구조화된 정보를 바탕으로 각 사용자에게 맞춤형 이야기를 전달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5가지 데이터 서사 구조는 실무적으로 유용한 프레임워크다. 성과 데이터는 객관적 증거를 제공하고, 경험 데이터는 사용자의 실제 목소리를 담으며, 가치 데이터는 브랜드의 철학을 구체화한다. 신뢰 데이터는 투명성을 보장하고, 영향력 데이터는 사회적 기여를 입증한다. 이 다섯 가지 층위 가 조화를 이룰 때, 브랜드는 AI와 사람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설득력을 갖추게 된다. 테슬라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전통적 자동차 회사들이 TV 광고에 수백억을 쏟아붓는 동안, 테슬라는 한 푼의 광고비도 쓰지 않았다. 대신 가속 성능 데이터, 배터리 효율 수치, 자율주행 안전 통계, 실제 사용자 리뷰를 투명하게 공개했다. 이 데이터들이 AI를 통해 관심있는 소비자에게 정확히 전달되었고, 결과적으로 광고 없이도 강력한 팬덤을 형성할 수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구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조건 많은 정보를 쏟아붓는다고 AI가 우호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AI가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의미있는 관계망을 구축하여 제공해야 한다. 마치 좋은 도서관이 책을 무작위로 쌓아두지 않고 체계적으로 분류하듯, 브랜드 데이터도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마케팅 예산 배분의 변화는 책이 제시하는 가장 실질적인 제언 중 하나다. 저자는 '광고비에서 추천비로'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단순한 예산 항목의 변경이 아니라 사고방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전통적 광고는 브랜드가 원하는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구조였다. 프라임 타임 TV 광고, 전면 신문 광고, 대형 옥외 광고판. 모두 브랜드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소비자에게 '노출'시키는 방식이었다. 효과는 도달률, 노출 빈도, 브랜드 인지도 같은 지표로 측정되었다. 하지만 Al 시대의 '추천'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순간, 그들이 묻는 질문에 답하는 형태로 브랜드가 제시된다. 이는 '푸시'가 아니라 '풀'의 논리다. 브랜드가 소비자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소비자의 니즈가 브랜드를 불러오는 구조다. 따라서 투자의 방향도 '얼마나 많이 노출시킬 것인가'에서 '어떻게 AI의 신뢰를 얻을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Purpose 경제'는 CSR을 넘어선다. 브랜드의 존재 이유, 추구하는 가치,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이 선택적 미덕이 아니라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되는 시대를 말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변화에 AI가 촉매 역할을 한다. AI는 브랜드의 주장과 실제 행동 사이의 간극을 감지한다. 홈페이지에 '환경 친화적'이라고 써놓았지만 실제 탄소 배출 데이터가 없다면, AI는 이를 빈 주장으로 판단한다.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지만 공급망 투명성 정보가 부재하다면, 신뢰도는 떨어진 다. 반대로 구체적 데이터로 뒷받침되는 가치 주장은 강력한 차별화 요소가 된다. 파타고니아의 사례는 시사점이 크다.


'우리는 고향인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라는 선언은 마케팅 슬로건이 아니다. 제품별 환경 발자국 데이터 공개, 수선 프로그램 운영 실적, 환경 단체 기부 내역 등 모든 것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측정 가능한 형태로 제시된다. AI는 이러한 일관성과 진정성을 높이 평가하고, 관련 질문을 받았을 때 우선적으로 추천한다. 여기서 중요한 통찰은 '무엇을 팔 것인가'를 넘어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의 중요성이다. 제품과 서비스는 결국 수단이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 변화시키고자 하는 세상의 모습이 명확할 때, 그것이 AI를 통해서도 명료하게 전달될 수 있다. MZ 세대를 중심으로 한 소비자들은 이미 구매를 통해 가치를 표현한다. 좋은 제품만을 사는 게 아니라, 동의하는 가치관을 지닌 브랜드를 선택한다. AI는 이러한 매칭을 더욱 정밀하게 만든다.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를 하고 싶어요"라는 사용자의 질문에, AI는 '친환경'을 표방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실제 데이터로 입증된 브랜드를 추천할 것이다. AI 시대의 마케터는 더 이상 시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건축가가 되어야 한다. 감성과 논리, 예술과 과학, 이야기와 데이터를 동시에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전환이 아니다. 하지만 생존을 넘어 번영을 꿈꾼다면, 피할 수 없는 진화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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