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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질서 - 의도를 벗어난 모든 현상에 관한 우주적 대답
뤼디거 달케 지음, 송소민 옮김 / 터닝페이지 / 2025년 1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마음이 무겁다. 정치인들은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고, SNS에서는 같은 사안을 두고 사람들이 극렬하게 대립한다. 누군가는 "저들이 잘못됐다"고 외치고, 다른 누군가는 우리가 옳다"고 맞선다. 그런 광경을 지켜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혹시 싸움이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뤼디거 달케의 <보이지 않는 질서>는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싸움으로 세상의 문제를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이 테러를 다섯 배 증가시켰듯이, 우리가 맞서 싸우는 대상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된다. 이것이 바로 대립의 법칙이다. 우리는 양극의 세계에 산다. 빛과 어둠, 선과 악, 큰 것과 작은 것이 짝을 이루는 세계. 이 세계에서는 한쪽을 선택하는 순간 반대편이 자동으로 생성된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진다. 그런데 우리는 이 단순한 진리를 자꾸 잊는다. 빛만 키우려 하고, 그림자는 없 앨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억압될수록, 부정될수록 더 깊고 거칠게 모습을 바꿔 돌아올 뿐이다. 우리가 “저 사람이 문제야"라고 손가락질할 때, 사실은 우리 안의 그림자가 건드려진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못마땅한 것이 많을수록, 우리 안에 아직 마주하지 않은 그림자가 많다는 신호다.
대립의 법칙이 우리에게 경고한다면, 공명의 법칙은 희망을 준다. 공명이란 무엇인가? 온갖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이 진동하는 것이다. 주인을 닮아가는 반려동물처럼,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와 공명하는 것을 끌어당긴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와 관련된 책, 사람, 기회가 '우연히' 찾아온다. 아름다움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아름다운 것들에 둘러싸인다. 이것은 마법이 아니다. 공명의 법칙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명에는 양면이 있다. 긍정적인 것과도 공명할 수 있지만, 부정적인 것과도 공명할 수 있다. 우리가 분노에 사로잡혀 있으면 분노를 불러들이고, 두려움에 빠져 있으면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자기계발서들이 침묵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공명의 법칙은 우리가 원하는 것만 가져다주지 않는다. 우리 내면에 있는 것, 특히 우리가 외면하려는 그림자와도 공명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자신의 그림자를 인정해야 한다. 내가 싫어하는 것, 거슬리는 것이 사실은 나 자신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림자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대신 타인에게 투사하고 세상과 싸우는 쪽을 택한다. 하지만 그림자가 부정적인 측면만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우리가 외면해 온 힘과 가능성, 아직 사용하지 않은 에너지가 함께 잠들어 있다. 우리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우리의 부족함이 아니라, 우리가 도를 넘은 권력을 가졌다는 사실이라고 메리앤윌리엄슨은 말했다. 그림자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바로 이 숨겨진 힘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씨앗 속에 이미 나무 전체가 들어 있듯이, 시작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첫 만남에서 느껴지는 직감,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의 분위기, 결혼식 날의 작은 징조들. 우리는 종종 이런 신호들을 무시하지만, 시작의 법칙은 냉정하게 작동한다. 어떤 관계가 불안한 시작을 가졌다면, 그 불안은 관계 내내 다른 모습으로 반복된다. 거짓말로 시작한 사업은 언젠가 그 거짓이 드러나며 무너진다. 운명을 속이려는 시도는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탁을 거스르려던 시도가 모두 비극으로 끝났듯이. 그렇다고 우리가 운명의 노예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시작의 중요성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힘을 준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충분히 성숙해 있다면, 우주는 그것을 지지한다. 준비된 사람에게는 필요한 것들이 '우연히' 찾아온다. 동종요법을 배운 의사가 기차에서 그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만나듯이. 문제는 우리가 준비되지 않았는데도 억지로 무언가를 시작하려 할 때다. 내면의 그림자를 외면한 채 빛만 좇으려 할 때, 대립의 법칙이 공명의 법칙을 압도한다. 그러면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간절히 원해도 원하는 것이 오지 않는다. 자기계발서 저자들이 침묵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모든 법칙은 하나를 향한다. 대립성을 넘어선 단일성. 그것은 종교가 약속하는 깨달음이고, 명상이 추구하는 경지다. 빛도 그림자도 아닌, 그 둘을 아우르는 전체다. 이것은 추상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도 우리는 순간순간 단일성을 경험한다. 아름다운 음악에 몰입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깊이 교감할 때, 자연 속에서 평화를 느낄 때. 그럴 때 우리는 대립을 잊는다. 나와 너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옳고 그름의 판단이 멈춘다. 문제는 우리가 그 순간을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곧 다시 대립의 세계로 돌아온다. 누군가를 판단하고, 무언가와 싸우고, 자신의 그림자를 타인에게 투사한다. 그래서 수행이 필요하다. 명상이든, 예술이든, 깊은 대화든, 우리를 단일성으로 이끄는 것들을 반복해야 한다. 동시에 대립의 법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완벽한 빛만 추구하면 그만큼 짙은 그림자가 생긴다. 지나치게 선해지려 하면 억압된 악이 튀어나온다. 중요한 것은 균형 다. 빛과 그림자를 모두 인정하고, 선과 악이 우리 안에 공존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달케가 말했듯이, 우리는 자발적으로 배우거나 억지로 배우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운명이 조용히 문을 두드릴 때 귀 기울이면 쉽게 배울 수 있다. 하지만 계속 외면하면 운명은 더 세게 문을 두드리고, 결국 문을 부수고 들어온다. 갈등과 발전은 삶의 다른 단면일 뿐이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어려움, 모든 대립, 모든 그림자는 사실 우리를 성장시키려는 삶의 초대장이다. 그것을 싸워야 할 적으로 볼 것인가, 배움의 기회로 볼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