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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척학전집 : 훔친 철학 편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5년 1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철학이라는 단어 앞에서 우리는 왜 주눅이 드는가. 아마도 그것은 두꺼운 책, 난해한 용어, 그리고 '이해했다'고 말하기 두려운 추상적 개념들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철학을 알아야 할 교양 쯤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세계척학전집: 훔친 철학 편>은 그 벽을 허물어뜨린다. 책은 철학을 박제된 지식이 아닌, 지금 이 순간 내 삶을 비추는 거울로 만들어준다. '척학‘ 이라는 제목이 재미있다. 알고 있으면 척하기 좋은 지식이라니. 저자는 자신이 천재들의 사유를 '훔쳐왔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이 겸손한 표현 뒤에는 철학을 독점물이 아닌 공유재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2500년간 축적된 인류의 지혜를 압축하여 우리 앞에 내놓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식의 나눔이 아닐까...
책은 세 개의 거대한 질문을 축으로 구성된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이 물음들은 인류가 역사 내내 붙들고 씨름해온 근본적인 질문이다. 그리고 각 질문 앞에 동서양의 철학 자 18명이 자신만의 답을 제시한다. 데카르트는 우리에게 의심하라고 말한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모든 것을 의심의 도마 위에 올릴 때, 우리는 비로소 '생각하는 나'라는 확실한 존재를 발견한다. 플라톤의 동굴 비유는 우리가 보는 현실이 진짜가 아닐 수 있다는 불편한 가능성을 제기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라고 말하며,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얼마나 우리의 사고를 제약하는지 보여준다. 이 대목에서 나는 멈춰 섰다.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 예를 들어 '성공'이나 '행복'의 정의는 누가 만들어준 것일까? 나는 내 언어로 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 만들 어놓은 틀 안에서 살고 있는가? 데카르트의 회의는 단순한 철학적 방법론이 아니라,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한 필수적 태도였던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을 말한다.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적절함.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더 잘 안다. 일과 휴식 사이, 욕망과 절제 사이, 관계에서의 거리 조절. 우리는 매일이 균형점을 찾기 위해 애쓴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흔히 오해받는 개념이다. 그가 말한 쾌락은 방탕함이 아니라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 즉 '아타락시아'였다. 행복의 공식을 “성취/욕망"으로 제시한 그의 통찰은 현대 소비사회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우리는 분자를 늘리는 데만 급급하지만, 분모를 줄이는 것이야말로 더 쉽고 확실한 행복의 길일 수 있다. 칸트의 정언명령 앞에서는 숙연해진다. "내 행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내가 지금 하려는 선택을 모든 사람이 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이 질문 하나로 우리는 수많은 자기합리화를 걷어낼 수 있다. 동양 철학에서 공자의 '인'과 노자의 '무위자연'은 대조를 이룬다. 관계 속에서 인간다움을 찾는 공자와, 억지로 애쓰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노자. 이 둘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 삶의 다른 국면에서 필요한 지혜들이다. 때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의무를 다해야 하고, 때로는 흐름에 맡기는 여유가 필요하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 앞에서 사르트르는 냉정하게 말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우리에게는 미리 정해진 운명도, 타고난 본질도 없다. 우리는 그저 세상에 던져졌고, 이후의 모든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이 자유는 축복이자 저주다. "인간은 자유라는 형벌에 처해 있다"는 사르트르의 말은 역설적이지만 진실하다.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곧 그 선택의 결과를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핑계 뒤에 숨을 수 없다. 매 순간, 나는 나를 새롭 게 만들어가고 있다. 하이데거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암울하게 들리지만, 오히려 현재를 살아있게 만드는 명제다. 죽음을 직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미루고 싶었던 것들, 중요하지 않다고 치부했던 관계들이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은 우리가 스스로를 얼마나 모르는지 일깨운다. 내가 의식적으로 내린 결 정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무의식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이 깨달음은 불편하지만, 동시에 자기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철학은 읽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 말이 책의 핵심을 관통한다. 책에 담긴 철학자들의 사유는 정답이 아니라 질문의 시작점이다. 데카르트의 의심, 니체의 관점주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읽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사유방식을 빌려 내 삶을 돌아보고, 스스로 질문하고,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책은 난해한 철학 용어를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고,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 사례와 연결한다. 유튜브 채널' 이클립스 '의 특성이 그대로 살아있 다. 한 학기 수업을 한 편의 영상으로 압축하듯, 이 책은 2500년의 철학사를 한 권에 담아냈다. 저자는 철학자들의 핵심 사상을 소개하면서도,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끊임없이 묻는다. 에피쿠로스의 행복론이 미니멀리즘과 연결되고, 칸트의 정언명령이 일상의 윤리적 선택과 만난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라는 핑계를 버리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용기를 준다.
책을 읽으며 여러 번 멈춰 섰다. 저자가 권했듯이,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 위해서였다. 칸트의 정언명령 앞에 서는 최근 내가 한 선택들을 돌아보았다. 에피쿠로스의 욕망론 앞에서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앞에서는 내가 나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성찰했다. 이 멈춤과 되새김이야말로 책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우리는 너무 빨리 읽고, 너무 많이 소비하며,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진정한 앎은 정보의 축적이 아 니라 사유의 깊이에서 나온다. 이 책은 독자에게 속도를 늦추고,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갈 것을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