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의 역전 - AI를 설득하라 - AI 에이전트 시대의 마케팅 생존 매뉴얼
정허로 지음 / 박영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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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케팅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우리는 언제나 '누구를 설득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었다. 20세기 초반 라디오와 신문이 주류였던 시절에는 대중을 향한 일방적 메시지 전달이 전부였다. 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시각적 이미지가 더해졌고, 인터넷 시대에는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설득의 대상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정허로님의<설득의 역전>이 던지는 핵심 화두는 명료하다. 이제 브랜드가 설득해야 할 1차 대상은 소비자가 아니라 인공지능이라는 것. 트렌드 변화가 아니라 마케팅 생태계 전체의 구조적 전환을 의미한다. 마치 생물학적 진화에서 환경이 바뀌면 생존 전략 자체를 재설계해야 하듯, 마케팅 역시 근본부터 다시 써야 하는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변화가 이미 우리 일상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 스피커에 게 날씨를 물어보고, 출근길에 AI 비서가 추천한 팟캐스트를 듣고, 점심 메뉴를 검색 엔진의 제안으로 결정한다. 저녁에는 OTT 플랫폼이 골라준 영화를 보고, 쇼핑 앱에서 AI가 큐레이션한 상품을 구매한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Al라는 필터를 통해 세상과 만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보이지 않는 문지기는 어떤 기준으로 브랜드를 판단할까? 저자가 제시하는 통찰은 명확하다. AI는 감정이 없다. 브랜드 충성도도, 향수도, 동경도 느끼지 않는다. 오직 데이터와 논리, 패턴과 효율성 만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30년간 공들여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가 AI에게는 그저 분석 가능한 숫자의 집합일 뿐이다.


마케터의 정체성에 관한 논의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다. 저자는 전통적 마케터를 '시인'에 비유한다. 아름다운 언어로 이야기를 엮고, 감성적 메시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존재. 코카콜라의 '행복을 여세요, 나이키의 ‘Just Do It' 같은 슬로건들이 그 대표적 산물이다. 이들은 제품의 기능을 넘어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을 판매했고, 소비자들은 그 이야기에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AI 시대의 마케터에게는 '건축가'의 역할이 요구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건축가는 미학과 공학을 동시에 다룬다. 건물의 외관이 아름다워야 하지만, 구조적 안정성과 기능적 효율성 또한 담보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마케터는 감성적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되, 동시에 AI가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는 데이터 구조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역할 전환은 기술적 스킬의 추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고방식 자체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한다. 예를 들어 '프리미엄 샴푸'라는 브랜드 포지셔닝을 생각해 본다. 과거에는 고급스러운 패키지, 유명 모델을 기용한 광고, 감각적인 향기 묘사로 충분했다. 하지만 AI에게 이를 전달하려면 ' pH 5.5 약산성' , ' 실리콘 프리 ' , ' 모발 단백질 89% 개선 ' 처럼 측정 가능하고 구조화된 속성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감성을 버리라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듯, 이는 '감성의 종말'이 아니라 '설득의 순서' 변화다. 여전히 최종 구매 결정을 내 리는 것은 사람이며, 사람은 여전히 감정으로 움직인다. 다만 그 감성에 도달하는 경로가 바뀌었을 뿐이다. Al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브랜드 스토리도 소비자에게 닿을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중 언어 전략이라는 개념도 흥미롭다. 한쪽 귀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적 언어를 구사하고, 다른 한쪽 귀로는 AI가 이해할 수 있는 구조 적 언어를 말해야 한다. 마치 바이링구얼이 상황에 따라 언어를 자유자재로 전환하듯, 마케터도 대상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능숙하게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죽음을 선언하는 이들도 있다. 데이터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에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관점은 다르다. 스토리텔링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진화한다는 것. 그는 ' 데이터 내러티브 '라는 개념 을 제시한다. 데이터 내러티브란 무엇인가? 단순히 숫자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데이터를 통해 의미 있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좋은 예다. 그들은 작품을 76,897개의 세부 장르로 분류하고, 각각에 로맨스 수준, 줄거리 완성 도, 배경 설정 같은 태그를 부여한다. 이는 단순한 분류가 아니라 데이터를 통한 스토리텔링이다. AI는 이 구조화된 정보를 바탕으로 각 사용자에게 맞춤형 이야기를 전달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5가지 데이터 서사 구조는 실무적으로 유용한 프레임워크다. 성과 데이터는 객관적 증거를 제공하고, 경험 데이터는 사용자의 실제 목소리를 담으며, 가치 데이터는 브랜드의 철학을 구체화한다. 신뢰 데이터는 투명성을 보장하고, 영향력 데이터는 사회적 기여를 입증한다. 이 다섯 가지 층위 가 조화를 이룰 때, 브랜드는 AI와 사람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설득력을 갖추게 된다. 테슬라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전통적 자동차 회사들이 TV 광고에 수백억을 쏟아붓는 동안, 테슬라는 한 푼의 광고비도 쓰지 않았다. 대신 가속 성능 데이터, 배터리 효율 수치, 자율주행 안전 통계, 실제 사용자 리뷰를 투명하게 공개했다. 이 데이터들이 AI를 통해 관심있는 소비자에게 정확히 전달되었고, 결과적으로 광고 없이도 강력한 팬덤을 형성할 수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구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조건 많은 정보를 쏟아붓는다고 AI가 우호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AI가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의미있는 관계망을 구축하여 제공해야 한다. 마치 좋은 도서관이 책을 무작위로 쌓아두지 않고 체계적으로 분류하듯, 브랜드 데이터도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마케팅 예산 배분의 변화는 책이 제시하는 가장 실질적인 제언 중 하나다. 저자는 '광고비에서 추천비로'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단순한 예산 항목의 변경이 아니라 사고방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전통적 광고는 브랜드가 원하는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구조였다. 프라임 타임 TV 광고, 전면 신문 광고, 대형 옥외 광고판. 모두 브랜드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소비자에게 '노출'시키는 방식이었다. 효과는 도달률, 노출 빈도, 브랜드 인지도 같은 지표로 측정되었다. 하지만 Al 시대의 '추천'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순간, 그들이 묻는 질문에 답하는 형태로 브랜드가 제시된다. 이는 '푸시'가 아니라 '풀'의 논리다. 브랜드가 소비자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소비자의 니즈가 브랜드를 불러오는 구조다. 따라서 투자의 방향도 '얼마나 많이 노출시킬 것인가'에서 '어떻게 AI의 신뢰를 얻을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Purpose 경제'는 CSR을 넘어선다. 브랜드의 존재 이유, 추구하는 가치,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이 선택적 미덕이 아니라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되는 시대를 말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변화에 AI가 촉매 역할을 한다. AI는 브랜드의 주장과 실제 행동 사이의 간극을 감지한다. 홈페이지에 '환경 친화적'이라고 써놓았지만 실제 탄소 배출 데이터가 없다면, AI는 이를 빈 주장으로 판단한다.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지만 공급망 투명성 정보가 부재하다면, 신뢰도는 떨어진 다. 반대로 구체적 데이터로 뒷받침되는 가치 주장은 강력한 차별화 요소가 된다. 파타고니아의 사례는 시사점이 크다.


'우리는 고향인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라는 선언은 마케팅 슬로건이 아니다. 제품별 환경 발자국 데이터 공개, 수선 프로그램 운영 실적, 환경 단체 기부 내역 등 모든 것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측정 가능한 형태로 제시된다. AI는 이러한 일관성과 진정성을 높이 평가하고, 관련 질문을 받았을 때 우선적으로 추천한다. 여기서 중요한 통찰은 '무엇을 팔 것인가'를 넘어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의 중요성이다. 제품과 서비스는 결국 수단이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 변화시키고자 하는 세상의 모습이 명확할 때, 그것이 AI를 통해서도 명료하게 전달될 수 있다. MZ 세대를 중심으로 한 소비자들은 이미 구매를 통해 가치를 표현한다. 좋은 제품만을 사는 게 아니라, 동의하는 가치관을 지닌 브랜드를 선택한다. AI는 이러한 매칭을 더욱 정밀하게 만든다.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를 하고 싶어요"라는 사용자의 질문에, AI는 '친환경'을 표방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실제 데이터로 입증된 브랜드를 추천할 것이다. AI 시대의 마케터는 더 이상 시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건축가가 되어야 한다. 감성과 논리, 예술과 과학, 이야기와 데이터를 동시에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전환이 아니다. 하지만 생존을 넘어 번영을 꿈꾼다면, 피할 수 없는 진화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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