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 프로젝트 - 15주 운동 프로그램으로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김민철 외 지음 / 성안당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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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으레 다이어리 첫 페이지에 '운동하기'라는 목표를 적어 넣는다. 헬스장 등록증을 끊고, 운동화 끈을 조이며, 이번에 야말로 달라질 것이라 다짐한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시 소파에 앉아 과자 봉지를 뜯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것은 의지의 문제일까, 아니면 방법의 문제일까? 건강한 몸을 갖기 위한 수많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유튜브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운동 영상이 있고, 인스타그램에는 완벽한 몸매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정보가 많을수록 우리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떤 운동이 나에게 맞는지, 이 자세가 정확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압도당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

이번에 읽은 <단단 프로젝트>가 특별한 이유는 운동 동작을 알려주기 전에 마음을 다스리는 법부터 가르친다는 점이다. 이것은 매우 현명한 접근이다. 아무리 완벽한 운동 프로그램이 있어도 그것을 지속할 내면의 힘이 없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실패를 두려워한 나머지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어차피 또 포기할 텐데'라는 자기 예언이 실제 행동을 막아버린다. 하지만 작심삼일도 열 번 반복하면 한 달이다. 중요한 것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 후에도 다시 시작하는 용기다. 완벽함이라는 환상을 내려놓고, 불완전하지만 지속 가능한 노력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변화의 시작이다. To Do List를 작성하는 것도 강력한 도구다. 막연한 '운동 해야지'라는 생각을 '오늘 저녁 7시에 플랭크1분 하기'라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꾸는 순간, 실천 가능성은 급격히 높아진다. 이러한 작은 성공 경험들이 쌓여 자신감이 되고, 자신감은 또 다른 도전의 발판이 된다.

운동을 할 때 '왜'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다. 누군가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것과, 이 동작이 내 몸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이해하면서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근육이 어떻게 생성되는지, 체중 관리의 원리는 무엇인지, 올바른 자세가 왜 중요한지를 아는 것은 운동에 대한 동기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이다. 프랭크 자세를 유지하며 온몸이 떨릴 때, 이것이 코어 근육을 강화하여 허리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조금 더 버틸 수 있다. 땀을 흘리며 힘들어할 때, 이 순간 내 몸속에서 근섬유가 재생되고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 고통도 의미 있게 느껴진다. OX 퀴즈 형식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라 흥미롭게 배울 수 있고, 잘못 알고 있던 상식을 바로잡을 수도 있다. 건강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정확한 지식을 갖추는 것은 스스로를 지키는 힘이 된다. 이론을 아무리 많이 안다 해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많은 사람이 좌절한다.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60가지의 운동 프로그램을 15주에 걸쳐 체계적으로 배치한 것은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준다. 초보자도 무리없이 시작할 수 있는 쉬운 동작부터 점진적으로 난이도를 높여가는 구성은 몸이 적응할 시간을 준다. 갑자기 고강도 운동을 하다가 다치거나 지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내 몸의 한계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QR 코드를 통한 영상 제공은 특히 유용하다. 사진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동작의 흐름, 호흡법, 시선 처리 같은 디테일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마치 개인 트레이너가 옆에서 시범을 보여주는 것 같은 효과다. 잘못된 자세로 운동하면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부상 위험도 있기에, 정확한 자세를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준비운동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다. 많은 사람이 귀찮다는 이유로 준비운동을 생략하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선택이다. 차가운 근육을 갑자기 사용하면 부상 위험 이 높아진다. 몇 분의 준비운동이 한 달의 회복 기간을 막아준다고 생각하면, 이를 생략할 이유가 없다.

운동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자신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체크리스트는 강력한 동기부여 도구 다. 매일 체크 표시를 하나씩 채워가는 것만으로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일주일, 한 달, 석 달이 지나 체크 표시로 가득 찬 페이지를 보면, 내가 정말 해냈구나'라는 자부심이 생긴다. 복잡한 운동 일지를 작성하라고 하면 그것 자체가 부담이 되어 지속하기 어렵다. 하지만 간단한 체크 표시만으로 기록을 남길 수 있다면, 심리적 장벽이 훨씬 낮아진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기록이 아니라, 꾸준한 실천과 그 흔적을 남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는 때로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천천히 일어난다. 매일 거울을 보는 우리는 자신의 변화를 잘 인지 하지 못한다. 하지만 기록을 돌아보면 분명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처음에는 30초도 버티기 힘들었던 플랭크를 이제 1분 넘게 할 수 있다는 것, 처음에는 5개도 힘들었던 스쿼트를 이제 20개씩 한다는 것. 이런 작은 진보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든다.

운동을 하다 보면 몸뿐 아니라 마음도 변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힘든 운동을 해내는 과정에서 인내심을 배우고, 어제의 나보다 나 아진 오늘의 나를 발견하며 자존감이 높아진다. 규칙적인 운동은 생활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찍 일어나게 되고, 식습관이 개선되고, 시간 관리 능력이 향상된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은 진리다. 몸이 건강해지면 마음도 건강해진다. 반대로 마음이 건강해지면 몸을 돌볼 여유와 의지가 생긴다. 이 둘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선순환 고리를 이룬다. 15주는 약 100일이다. 습관이 형성되는 데 필요한 시간으로 흔히 21일을 이야기하지만, 진정으로 몸에 배어 자동화되려면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 15주는 운동이 특별한 노력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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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 심서 21세기 시선으로 읽는 동양고전
박찬근 지음 / 청년정신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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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장을 덮으며 문득 생각했다. 2천년 전 난세를 살았던 한 전략가의 통찰이 왜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가. 인공지능이 일상을 바꾸고, 조직의 형태가 급변하며,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이 시대에, 삼국시대 촉한의 승상이 남긴 글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리더가 맞닥뜨리는 본질적 고민인 신뢰를 어떻게 쌓을 것인가, 위기 앞에서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화두다. 제갈량은 이 질문들 앞에서 흔들리지 않았던 사람이었고, 그가 남긴 기록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나침반이 된다.


"제갈량 심서"를 관통하는 첫 번째 화두는 '위엄'이다. 그러나 이 위엄은 권위적 카리스마나 무력적 통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제갈량이 말하는 위엄은 덕에서 비롯된다. 도덕적 품성 없이 세운 권위는 공허하고, 내면의 단단함 없이 휘두르는 권력은 곧 무너진다는 것이다. 현대 조직에서도 이 원리는 그대로 작동한다. 직급과 직책으로만 사람을 움직이려는 리더는 결국 형식적 복종만 얻을 뿐이다. 반면 자신의 원칙을 일관되게 지키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며, 팀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리더는 자연스럽게 존경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덕에서 우러나오는 위엄이다. 흥미로운 점은 제갈량이 강함과 부드러움의 조화를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부드럽기만 하면 조직의 기강이 무너지고, 강하기만 하면 사람의 마음이 떠난다. 이 둘 사이의 줄타기가 리더십의 핵심이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태도를 바꾸되, 중심은 잃지 않는 것. 이것이 진정한 힘이다.

리더십을 '그릇'에 비유한 대목은 특히 인상적이다. 소규모 조직을 이끄는 리더에게 필요한 역량과 대규모 조직의 수장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다르다. 문제는 많은 리더들이 자신의 그릇 크기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면 무모한 결정을 내리고, 과소평가하면 기회를 놓친다. 제갈량이 제시한 해법은 철저한 자기 성찰이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어디까지 할 수 있으며, 어떤 한계를 가졌는지 정직하게 직시하는 것. 이 자기 인식이 모든 전략의 출발점이다. 현대 경영학에서 말하는 '메타인지'와 정확히 일치하는 개념이다. 자신의 사고 과정을 관찰하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있어야 성정도 가능하다. 제갈량은 이미 2천 년 전에 이 원리를 꿰뚫고 있었다.


조직이 무너지는 이유는 대부분 외부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 내부의 부패 때문이다. 파벌 형성, 유언비어 유포, 사적 이익 추구, 아첨과 배신, 이런 해악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직의 뿌리를 갉아먹는다. 제갈량이 제시한 '아홉 가지 해충' 목록을 읽으며 소름이 돋았다. 정보 왜곡, 독단적 행동, 권력 남용, 규율 무시... 이것들은 현대 조직에서도 여전히 가장 큰 문제다. 특히 성과주의와 경쟁 문화가 팽배한 환경에서 이런 병리 현상은 더욱 쉽게 발생한다. 진정한 리더는 외부 경쟁자를 경계하기 전에 내부의 병을 먼저 진단해야 한다. 조직 문화가 건강한지, 신뢰가 살아있는지, 공정한 시스템이 작동하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내부가 단단할 때 외부의 어떤 위기도 이겨낼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불진지' 사상이다. 최고의 전략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라는 명제다. 회피나 도피가 아니다. 갈등이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고, 충돌이 불가피할 때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해결하며, 궁극적으로는 상대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현대 비즈니스에서도 이 원리는 유효하다. 가격 전쟁으로 출혈 경쟁을 하기보다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것, 소송보다는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직원을 통제하기보다 자율과 신뢰를 주는 것. 모두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의 현대적 응용이다. 이를 위해서는 고도의 통찰력이 필요하다. 상황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상대의 심리를 읽으며, 흐름을 미리 예측하는 능력. 표면만 보지 말고 이면을 보라. 현상에 속지 말고 본질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제갈량은 위기 대응 능력에 따라 리더를 세 등급으로 나눈다. 최고의 리더는 위기가 오기 전에 예방하고, 중간 수준의 리더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탁월하게 대처하며, 최하의 리더는 위기 한가운데서 허우적거린다. 이것은 준비의 문제다. 위기는 예고 없이 오지만 대비는 언제든 할 수 있다. 시나리오를 그려보고, 대응 매뉴얼을 만들며, 평소 훈련을 통해 근육을 만들어두는 것. 이것이 진정한 리더의 자세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이 원리를 절감했다. 같은 위기 앞에서 어떤 조직은 빠르게 적응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았지만, 어떤 조직은 무너졌다. 차이는 평소의 준비와 리더의 결단력에 있었다.

조직의 성패는 결국 사람이 결정한다. 제갈량이 인재 활용에 할애한 분량이 많은 이유다. 그는 사람의 본성을 파악하는 구체적 방법부터 적재적소 배치, 핵심 참모 활용까지 세밀하게 다룬다. 특히 '복심‘개념이 흥미롭다. 리더의 배와 심장처럼 가까이에서 함께 호흡하는 참모. 지혜로운 조언자, 신중한 분석가, 용감한 실행자가 모두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명령만을 따르는 부하가 아니라, 리더의 뜻을 깊이 이해하고 함께 고민하는 동반자라는 점이다. 현대 조직에서는 이것을 '코어 팀' 또는 '싱크 탱크'라고 부른다. 리더 혼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없다. 다양한 관점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들의 조언을 경청하고, 그들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며, 그들과 신뢰를 쌓는 것. 이것이 리더의 핵심 역량이다.


제갈량의 사상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미덕은 원칙과 유연함의 조화다. 그는 일관된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상황에 따라 전략을 바꾸는 유연함을 역설한다.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변증법이다. 중심은 흔들리지 않되, 방법은 유연하게. 목표는 명확하되, 경로는 상황에 맞게. 이것이 진정한 지혜다. 고집과 원칙을 혼동해서도 안 되고, 유연함과 무원칙을 동일시해서도 안 된다. 현대의 애자일 경영이나 적응적 리더십도 같은 맥락이다.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 경직된 계획을 고집하면 실패한다. 그렇다고 방향 없이 표류해서도 안 된다. 비전은 선명하게 유지하되, 실행 방식은 끊임없이 조정하는 것. 이것이 21세기 리더가 갖춰야 할 자세다.

책을 덮으며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왜 2천 년 전의 글이 지금도 유효한가. 답은 명확하다. 제갈량이 다룬 것은 기술이 아니라 본질이기 때문이다. 도구와 환경은 바뀌어도 사람의 마음을 읽는 법, 신뢰를 쌓는 법, 위기를 헤쳐나가는 법,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법, 이런 본질적 역량은 변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복잡해진 세상일수록 더욱 중요해진다. 제갈량 심서는 리더를 위한 매뉴얼이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모든 이에게 유효한 지침서다. 누구나 자기 삶의 리더이기 때문이다. 내면의 흔들림을 다스리고, 중심을 잡으며, 현명하게 판단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쌓는 것, 이것은 직급과 무관하게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역량이다. 제갈량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특정한 전략이나 기술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지되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자신을 냉정하게 성찰하되 타인에게는 따뜻하며, 원칙을 지키되 고집스럽지 않은 태도다. 이것이 난세를 헤쳐나간 전략가가 우리에게 건네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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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1-14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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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쿠사가미 전쟁의 신 1 : 天(천)
이마무라 쇼고 지음, 이형진 옮김, 이시다 스이 일러스트 / 하빌리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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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새벽녘 텐류지 경내는 고요했을 것이다. 1878년 어느 가을날, 10만 엔이라는 광고 한 줄에 이끌려 모인 292명의 발걸음은 저마다 다른 무게를 지녔을 것이다. 어떤 이는 병든 가족을 떠올리며, 어떤 이는 빗쟁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또 어떤 이는 그저 내일의 끼니를 생각하며 그 문턱을 넘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 몰랐다. 자신들이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 될 <이쿠사가미: 전쟁의 신>의 원작을 읽었다. 한 장의 나무패를 손에 쥔 채,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패를 빼앗아야 하는 잔혹한 게임. < 오징어 게임>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겠지만, 작품이 품고 있는 정서는 사뭇 다르다. 오징어 게임의 K-드라마가 자본주의 시스템 속 인간 소외를 다뤘다면, 이 일본 시대극은 메이지 유신 이후 급격히 붕괴된 사무라이 계급의 존엄과 생존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 군상을 그려낸다.

메이지 11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허리춤에 찬 칼이 신분의 상징이었고, 명예의 증표였던 시대. 그러나 총이 칼을 대체하고, 서양식 군대가 조직되고, 사무라이라는 존재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유물로 전락해버린 시점. 이 소설에 등장하는 292명은 자신의 정체성이 부정당한 시대의 난민들이다. 주인공 사가 슈지로가 칼을 드는 이유는 명료하다. 병든 아내 와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그의 손에 쥐어진 칼날은 더 이상 무사의 영혼이 아니라, 생계의 도구일 뿐이다. 이 전락의 서사는 슬프지만 동시에 지극히 인간적이다. 명예보다 생존을, 자존심보다 가족을 선택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슈지로는 아마도 이 게임에서 가장 '정상적인' 인물일 것이다. 그에게는 명확한 목적이 있고, 돌아가야 할 곳이 있으며,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 하지만 정상성이란 때로 생존 게임에서 가장 큰 약점이 되기도 한다. 게임에서의 그의 선택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관문마다 요구되는 패찰의 수가 늘어난다면, 자비는 사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칸지야부코츠가 서 있다. 292명 중 유일하게 돈을 위해 이곳에 오지 않은 남자. 그는 무진 전쟁에서 총을 거부하고 오직 백병전만을 고집했던 인물이다. "총은 사람을 죽이는 맛이 나질 않아" 오싹하다. 그에게 전투는 생존 수단도, 의무도 아니다. 순수한 쾌락이다.

부코츠라는 캐릭터는 시대의 괴물이다. 전쟁이 일상이던 시대가 끝나자, 그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잃어버렸다. 하코다테 전투에서 "어차피 마지막이니 상관없으려나"라며 아군 대장의 목을 베어버린 일화는 그의 광기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전쟁이 끝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평화가 오는 것이 두려운 인간. 칼을 휘두를 수 없는 세상에서 자신이 무엇인지 모르는 존재다. 이런 부코츠에게 이 죽음의 게임은 천국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합법적으로, 제약없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며 강자들과 겨룰 수 있는 장. 그는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흥분한다. 부코츠와슈지로의 대결은 필연적일 것이다. 죽음을 즐기는 자와 살리기 위해 죽이는 자. 광기와 절박함.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이야기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할 것이다.

생존 게임물의 매력은 결국 '인간 탐구'에 있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 누구는 배신하고, 누구는 연대하며, 누구는 광기에 빠지고, 누구는 끝까지 인간성을 지키려 한다. 292명이라는 숫자는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292가지의 서로 다른 절망이며, 292개의 평행한 비극이다. 어떤 이는 칼을 들어본 적 없는 평민일 것이고, 어떤 이는 한때 이름을 떨친 검객일 것이다. 여자도 있고 노인도 있다. 그들 각자에게는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다. 그 사연들이 하나씩 펼쳐질 때마다, '누가 이길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의 절망이 더 깊은가'를 저울질하게 될 것이다. 특히 여성 캐릭터들의 존재는 주목할 만하다. 메이지 시대 여성에게 칼을 들 기회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 게임에 참여했다는 것은, 그들이 짊어진 절망이 성별이라는 제약마저 뛰어넘을 만큼 무거웠다는 뜻이다. 이들의 싸움은 시대와 성차별에 대한 저항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

도쿄까지의 여정. 교토에서 도쿄로 향하는 길은 상징적으로 옛 수도에서 새 수도로,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는 여정이다. 사무라이의 시대가 저물고 근대 일본이 열리는 그 경계선 위를, 시대에 버려진 자들이 피를 흘리며 걸어간다. 관문마다 요구되는 패찰의 수가 늘어난 다는 설정은 잔인하지만 효과적이다. 초반에는 운이나 기습으로 패찰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갈수록 더 많은 패찰이 필요해 진다면, 결국 직접적인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약자는 도태되고, 강자마저 더 강한 자에게 무릎 꿇게 될 것이다. 슈지로의 살려두겠다는 결심은 아름답지만 위태롭다. 그가 살려준 자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감사하며 물러날까, 아니면 약점을 간파하고 다시 덤벼들까. 생존 게임에서 자비는 때로 가장 위험한 선택이다. 하지만 바로 그 위험한 선택을 하는 인물이 있기에, 우리는 그를 응원하게 된다. 292명의 사무라이를 모아 죽음의 게임을 벌이게 하는 이유. 혹시 메이지 정부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쓸모없어진 사무라이들을 정리 하려는 의도는 아닐까. 기권을 허용하지 않고, 탈출을 시도하는 자를 죽이는 것은 이 게임이 철저히 계획된 무언가임을 생각하게 한다.

292명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다. 누가 누구인지, 누구와 누구의 관계는 어떤지, 각자의 목적은 무엇인지. 하지 만 바로 그 복잡함 속에서 이야기의 깊이가 생겨난다. 선악 구도가 아니라, 모두가 자신만의 정당성을 가진 채 충돌하는 회색 지대의 드라마다. 오랜만의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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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 2 (10주년 기념 김창열 특별판) - 최고의 나를 만드는 62장의 그림 습관 그림의 힘 시리즈 2
김선현 지음 / 세계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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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그림을 '감상'이 아닌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을까. 미술관에 가도 작품 앞에서 충분히 머물지 못한 채 다음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기고, SNS에 올릴 인증샷을 찍느라 정작 그림과 눈을 맞추지 못한다. 그림은 그저 교양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체크리스트의 일부이거나, 인테리어를 위한 장식품 정도로 전락해버렸다. 그런데 김선현 작가의 <그림의 힘 2>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림이 정말 보는 것에 그치는가? 한 폭의 그림이 무너져가는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지친 하루에 온기를 불어넣으며, 앞으로 나아 갈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어떨까? 20여 년간 미술치료 현장에서 사람들의 변화를 목격한 작가는 그림이 우리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을 가졌다고 말한다.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이 개정판 10주년 기념 표지를 장식한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물방울은 생명이고, 정화이며, 반복이다. 매일 똑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매번 다른 물방울들. 우리의 일상도 그렇다. 반복되는 것 같지만 매일이 새롭다. 그리고 그 매일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변화하고 성장한다.


책은 총 62점의 그림을 통해 우리 삶의 다양한 순간에 필요한 에너지를 제안한다. 유명한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에게 낯선 작가들의 그림이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이 책의 강점이다. 유명세나 미술사적 가치가 아닌, 순수하게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필요한 힘'을 기준으로 선별된 그림들이기 때문이다. 오거스터스 레오폴드 에그의 "여행 친구"는 기차 안에서 마주 앉은 두 소녀를 그린다. 대칭을 이루며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두 소녀의 모습은 틀린 그림 찾기처럼 우리의 집중력을 자극한다. 정신이 산만할 때, 이 그림을 들여 다보며 하나하나 차이점을 찾다 보면 어느새 흐트러진 마음이 한 곳으로 모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누가 언니이고 누가 동생일까, 이들은 어디로 가는 중일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시간이 된다. 피에트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화는 어떤가... 빨강, 파랑, 노랑, 검정, 회색으로 이루어진 마름모꼴 구성은 언뜻 차갑고 무미건조해 보인다. 그러나 이 그림에는 우리 전통의 오방색이 모두 담겨 있다. 작가는 이 그림이 "보기만 해도 머리가 좋아지는 그림"이라고 말한다. 색채가 주는 자극과 균형 잡힌 구도가 두뇌 활동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이다. 시험을 앞둔 학생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직장인들에게 이 그림은 실질적인 도구가 될 수 있 다. 팔 시네이메르세의"양귀비가 있는 목초지"는 강렬한 빨강 양귀비꽃이 들판을 가득 채운 풍경이다. 호선으로 구성된 역동적인 구도 는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긴장되고 불안할 때, 이 그림의 빨강은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입한다. 색채심리학에서 빨강은 활력과 열정을 상징한다. 그런데 빨간색을 보는 것과 예술작품 속 빨강을 마주하는 것은 다르다. 예술가의 손을 거친 색은 정서적 울림을 준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빈센트 반 고흐의 "아몬드 나무"에 대한 이야기다. 고흐가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가장 힘든 시기에 그린 이 작품은 역설적으로 그 어느 작품보다 평온하고 희망적이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한 가지들이 뻗어 있다. 작가는 이를 혼신을 다해 선물한 기적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종종 힘들 때 더 어두운 것에 끌리곤 한다. 슬플 때 슬픈 노래를 듣고, 우울할 때 우울한 영화를 본다. 감정에 공명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고흐의 아몬드 나무는 다른 길을 제시한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피어날 수 있는 희망,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창조해낼 수 있는 인간의 능력. 이 그림은 "힘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증명한다. 나도 할 수 있다고, 이 어둠도 지나갈 것이라고. 로버트 던칸슨의"골짜기 초원"은 의대생들에게 인기가 높은 그림이라고 한다. 고요한 풍경, 한적한 시골길, 평화로운 자연.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한 이들에게 이 그림은 시각적 피난처가 된다. 실제로 혼자 있을 수 없다면, 적어도 그림 속에서라도 고요함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림의 마법이다. 물리적으로 그곳에 가지 않아도, 그 공간이 주는 정서적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점은 색채와 구도가 우리 심리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에 대한 설명이다. 김보희 작가의 "Towards"는 녹색과 파란색으로 이루어진 바다 풍경인데, 파란색은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초록색은 눈의 피로를 덜어준다. 이스트먼 존슨의 "내 뒤에 남기고 온 소녀"는 바람 부는 언덕 위에 당당히 서 있는 소녀를 그린다. 앞을 응시하는 시선, 곧게 선 자세.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어깨가 펴지는 느낌이다. 자신감이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이렇게 구체적인 이미지로 체화될 수 있다. 중요한 면접이나 발표를 앞두고 이 그림을 본다면, 소녀의 당당함이 나에게로 전이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앙리 마티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창조란 곧 용기다"라는 그의 말은 예술가뿐 아니라 자기 삶의 창조자인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 다. 남들과 다르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용기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마티스의 강렬 한 색채와 과감한 구도는 보는 이에게도 용기를 전염시킨다. 그림을 보며 "나도 내 방식대로 살아도 괜찮구나" 하는 허락을 받는 느낌이 랄까 생각해 본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매일'이라는 단위다. 하루하루 작은 목표를 달성하고 매듭을 짓는 것. 이것이 결국 큰 성공으로 이어 진다는 메시지다. 거창한 목표만 세우고 실천하지 못해 좌절하는 대신,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해내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 "매일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작은 목표들을 달성하면 적어도 오늘 하루의 나는 성공한 사람". 위안이 된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한 번 크게 감동받는 것보다, 매일 조금씩 그림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더 큰 변화를 만든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기 전, 로버트 던칸슨의 고요한 풍경을 보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점심 식사 후 졸음이 올 때, 활기찬 색채의 그림으로 정신을 깨운다. 밤에 잠들기 전, 평화로운 그림을 보며 하루의 긴장을 풀어낸다. 이런 작은 습관들이 쌓여 우리의 정서적 풍경을 바꾼다. 코코 샤넬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고아원과 수도원을 전전하며 접한 색이 흰색과 검은색뿐이었던 그녀는, 이를 우울함이 아닌 세련됨의 상징으로 재해석했다. 주어진 환경은 바꿀 수 없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은 내가 어디를 갈 수 있는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시작할지를 결정할 뿐이다.


비눗방울을 부는 과정에 대한 비유도 좋았다. 처음에는 힘을 꾹 줘야 하고, 얼굴이 빨개지고 숨이 가빠진다. 하지만 그 안간힘이 커다란 비눗방울을 만들고, 그다음부터는 예쁜 비눗방울들이 계속 나온다. 시작의 어려움을 견디면 흐름이 생긴다는 것. 끈기와 인내의 중요성을 그림을 통해 시각화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과일 정물화를 보며 공감각적 자극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새로웠다. 그림 속 사과와 포도를 보며 새콤달콤한 맛을 상상하고, 침샘이 자극받는다. 시각이 미각을 깨우는 것이다. 이처럼 그림은 우리의 오감을 종합적으로 자극하며, 총체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달 항아리 그림 앞에서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운 형태. 이 낮달이 나와 같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 그리고 때를 만나 빛날 자신을 상상하는 것. 자존감이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이런 작은 자기 긍정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술은 특별한 날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미술관에 가야만, 비싼 도록을 사야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책 한 권, 스마트폰 하나면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그림 앞에서 멈추는 시간, 그리고 그 그림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귀 기울이는 태도다. 모리스 위트릴로의 길 그림 앞에서 작가는 말한다. "뒤를 돌아보고 걸어온 발자국이 예쁜지 확인하는 대신, 저 모퉁이를 돌면 어떤 세계가 펼쳐져 있을까 설레는 게 더 좋다"고. 과거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두려움보다 기대가 더 큰 마음, 그림 한 점이 이런 마음의 전환을 도울 수 있다. 저자는 그림을 ' 보라 '고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제안한다.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에 맞는 그림을 찾아보라고. 집중력이 필요한가? 자신감이 필요한가? 위로가 필요한가? 에너지가 필요한가? 각자의 필요에 따라 다가갈 그림이 다르다. 같은 그림이라도 보는 시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어제는 그냥 지나쳤던 그림이 오늘은 유난히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와닿는다. 그것은 내가 변했기 때문이고,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림은 고정되어 있지만, 그림을 보는 나는 계속 변한다. 그래서 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봐도 매번 새로운 발견이 있을 수 있 다. 유명한 그림이든 생소한 그림이든, 작가가 누구든, 중요한 것은 그 그림이 나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가다. 미술사적 가치나 시장 가격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을 움직이는가가 기준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명화 컬렉션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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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팬덤과 극단의 시대에 꼭 필요한 정치 교양
이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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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철희님의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그것은 정치인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그동안 나는 정치가 망가진 것을 한탄하면서도, 정작 그 망가짐에 내가 어떻게 기여했는지는 돌아보지 않았다, SNS에서 상대 진영을 조롱하고,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의 모든 행동을 옹호하며, ' 우리 편' 이 아닌 사람들의 말은 귀담아듣지 않았던 순간들. 그것이 팬덤 정치였고, 정서적 양극화였으며, 결국 나라를 망하게 만들 수도 있는 위험한 행위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저자가 말하는 '정치 때문에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경고는 과장이 아니었다. 12•3 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그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극우 카르텔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다. 60대 이상에서 6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보이는 국민의힘의 현실은, 한 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세대별로, 지역별로, 이념별로 얼마나 깊게 분열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징후다.


책을 읽으며 가장 불편했던 부분은 팬덤 정치에 대한 분석이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정치인의 모든 결정을 무조건 지지하고, 그에 대한 비판은 '적의 공작'으로 치부했던 순간들이다. 이견을 내는 사람들을 '내부 총질'하는 배신자로 낙인찍고, 정치를 '죽고 사는 전쟁'으로 만들었던 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저자는 "사랑은 말이 되고 혐오가 본이 된다"고 말한다. 정확한 지적이다. 처음에는 정말로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느새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상대편을 증오하는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인격을 모독하고, 그들의 모든 행위를 악의로 해석하며, 심지어 그들이 잘되는 것 자체를 견디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안티 팬덤이 팬덤 정치의 숨겨진 속성이라는 저자의 통찰이 날카롭게 다가오는 이유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가 증오하는 것으로 더 강하게 결속된다.


이재명 대통령의 "민주주의가 밥 먹여 준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말은 핵심을 찌른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 자체에만 몰두하면서, 정작 그 민주주의가 누구의 삶을 어떻게 나아지게 하는지는 소홀히 했다. 미국 민주당의 패배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자신들 이 대표하고 대변하겠다고 했던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진보적 가치를 외치면서도, 정작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 고통에는 둔감했다. 물가가 오르고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는 현실 앞에서, 추상적인 가치만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한국의 진보 진영도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민주주의를 지켰다는 자부심, 계엄을 막아냈다는 성취감에 취해, 정작 청년들의 주거 문제,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 자영업자들의 생존 위기 같은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을 외면한다면, 결국 사람들은 등을 돌릴 것이다. 정치가 '밥 먹여 주는' 데 실패하면, 극우와 내란 세력은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책을 읽으며 깨달은 또 하나의 진실은, 결국 정치의 질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물론 제도도 중요하다. 저자가 지적 하듯이 총리에게 법적 권한을 더 부여하고, 검찰의 정치 개입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권력욕에 취하고 당파적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무용지물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본질적으로 위험하다. 전체 국민이 선출한 유일한 공직자라는 정통성, 막강한 법적 권력, 여론에 대한 호소력, 여당의 협력. 이 네 가지 수단을 가진 대통령은 '선출된 왕'이 되기 쉽다. 그리고 권력이 산술급수적으로 강해질수록, 오판의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권력을 가진 사람의 자기 절제와, 권력을 감시하는 사람들의 끈질긴 경계심이다. 여당 의원 8명만 뭉쳐도 대통령을 제어할 수 있다는 저자의 지적은 중요하다.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제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제어하지 않은 것이라는 진실. 탄핵 트라우마와 선거 패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명백한 잘못 앞에서도 침묵을 선택한 것. 이것이 바로 정치가 망가지는 메커니즘이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것 중 하나가 검찰의 문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적폐 수사, 그리고 다시 윤석열 정부의 사법 탄압. 이 모든 것이 '피해-복수의 내러티브'를 만들어냈고, 정서적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검찰이 정치 권력의 도구로 사용될 때, 정치는 더 이상 정책 경쟁의 장이 아니라 생존 투쟁의 전장이 된다.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라 죽고 사는 전쟁이 되는 것이다. 승자는 패자를 물리적으로 경기장 밖으로 밀어내려 하고, 패자는 억울한 피해자 서사를 만들어 복수를 다짐한다. 이 악순환 속에서 절제와 관용은 사라지고, 극단과 증오만 남는다. 저자가 "정치 검찰은 언제든지 총구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경고하는 이유다. 지금은 내 편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권력의 향방이 바뀌면 언제든 나를 겨눌 수 있다. 검찰 개혁은 진보나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의 문제다. 정치가 검찰에 휘둘리는 한, 좋은 정치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자는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투표다. "투표권은 최고의 시정 권력"이라는 말은 진부해 보이지만, 가장 강력한 진실이다. 6•3 대선을 정초 선거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 극우 카르텔을 확실하게 제압해야 한다는 요구는 절박하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정 정당을 찍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던지는 '종이 짱돌'은 정치인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세력에게는 단호한 응징을, 하지만 동시에 집권 세력에게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라는 책임을. 방심도 온정도 사치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복수와 절멸만을 외쳐서도 안 된다. 정치적 대타협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저자의 시각도 주목할 만하다. 탄핵을 밀어붙이되 여당에도 운신의 폭을 열어 줘야 한다는 것, 수적 우위로 서둘러 밀어붙이면 오히려 탄핵이 왜곡된다는 지적은 우리가 놓치기 쉬운 지혜다. 승리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승리를 통해 무엇을 이룰 것인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팬덤 정치를 무조건 악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주장은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준다. 팬덤 정치는 정치 실패와 정치 무능이 불러온 현상이며, 동시에 참여 의지를 가진 시민들의 주체적 시도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오롯이 정치인에게 있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팬덤의 혐오를 부추기고 그 대가로 권한을 얻는 '거래의 코트십'이 아니라, 비전과 소신으로 팬덤을 이끄는 '책임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당이 게토화되고 행태가 일베화되는 것을 막는 것은 정치 지도자의 의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시민들도 성찰해야 한다. 나는 정말로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 아니면 단지 상대편이 망하는 것을 보고 싶은가.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의 잘못도 비판할 용기가 있는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말에도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정직하게 답할 때, 팬덤 정치는 건강한 시민 정치로 진화할 수 있다. 결국 이 책의 제목이자 핵심 질문으로 돌아온다.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저자는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대신 우리가 피해야 할 함정들을 낱낱이 보여준다.


정치적 양극화, 팬덤 정치의 흑화, 검찰의 정치 개입, 권력욕에 취한 대통령, 굴종하는 여당, 복수에 집착하는 야당. 이 모든 것들이 정치 를 망가뜨리는 요인들이다. 좋은 정치는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보통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개선하는 정치. 이기고 지되, 패자를 절멸시키지 않는 정치. 권력을 가져도 교만하지 않고, 권력을 잃어도 존엄을 잃지 않는 정치.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뉘되, 서로를 적이 아니라 경쟁자로 대하는 정치.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지키되, 그것이 실제로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정치. 그리고 그런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노력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 시민들이 투표로, 감시로, 비판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행동으로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지위 위협'을 느끼는 60대 이상 노년층의 두려움도 이해하고, 미래가 불안한 청년들의 분노도 헤아리며, 좌와 우 사이 어딘가에서 길을 잃은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도 듣는 정치를 갈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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