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빈센트 반 고흐의 "아몬드 나무"에 대한 이야기다. 고흐가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가장 힘든 시기에 그린 이 작품은 역설적으로 그 어느 작품보다 평온하고 희망적이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한 가지들이 뻗어 있다. 작가는 이를 혼신을 다해 선물한 기적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종종 힘들 때 더 어두운 것에 끌리곤 한다. 슬플 때 슬픈 노래를 듣고, 우울할 때 우울한 영화를 본다. 감정에 공명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고흐의 아몬드 나무는 다른 길을 제시한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피어날 수 있는 희망,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창조해낼 수 있는 인간의 능력. 이 그림은 "힘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증명한다. 나도 할 수 있다고, 이 어둠도 지나갈 것이라고. 로버트 던칸슨의"골짜기 초원"은 의대생들에게 인기가 높은 그림이라고 한다. 고요한 풍경, 한적한 시골길, 평화로운 자연.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한 이들에게 이 그림은 시각적 피난처가 된다. 실제로 혼자 있을 수 없다면, 적어도 그림 속에서라도 고요함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림의 마법이다. 물리적으로 그곳에 가지 않아도, 그 공간이 주는 정서적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점은 색채와 구도가 우리 심리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에 대한 설명이다. 김보희 작가의 "Towards"는 녹색과 파란색으로 이루어진 바다 풍경인데, 파란색은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초록색은 눈의 피로를 덜어준다. 이스트먼 존슨의 "내 뒤에 남기고 온 소녀"는 바람 부는 언덕 위에 당당히 서 있는 소녀를 그린다. 앞을 응시하는 시선, 곧게 선 자세.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어깨가 펴지는 느낌이다. 자신감이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이렇게 구체적인 이미지로 체화될 수 있다. 중요한 면접이나 발표를 앞두고 이 그림을 본다면, 소녀의 당당함이 나에게로 전이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앙리 마티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창조란 곧 용기다"라는 그의 말은 예술가뿐 아니라 자기 삶의 창조자인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 다. 남들과 다르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용기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마티스의 강렬 한 색채와 과감한 구도는 보는 이에게도 용기를 전염시킨다. 그림을 보며 "나도 내 방식대로 살아도 괜찮구나" 하는 허락을 받는 느낌이 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