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힘 2 (10주년 기념 김창열 특별판) - 최고의 나를 만드는 62장의 그림 습관 그림의 힘 시리즈 2
김선현 지음 / 세계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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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그림을 '감상'이 아닌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을까. 미술관에 가도 작품 앞에서 충분히 머물지 못한 채 다음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기고, SNS에 올릴 인증샷을 찍느라 정작 그림과 눈을 맞추지 못한다. 그림은 그저 교양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체크리스트의 일부이거나, 인테리어를 위한 장식품 정도로 전락해버렸다. 그런데 김선현 작가의 <그림의 힘 2>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림이 정말 보는 것에 그치는가? 한 폭의 그림이 무너져가는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지친 하루에 온기를 불어넣으며, 앞으로 나아 갈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어떨까? 20여 년간 미술치료 현장에서 사람들의 변화를 목격한 작가는 그림이 우리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을 가졌다고 말한다.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이 개정판 10주년 기념 표지를 장식한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물방울은 생명이고, 정화이며, 반복이다. 매일 똑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매번 다른 물방울들. 우리의 일상도 그렇다. 반복되는 것 같지만 매일이 새롭다. 그리고 그 매일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변화하고 성장한다.


책은 총 62점의 그림을 통해 우리 삶의 다양한 순간에 필요한 에너지를 제안한다. 유명한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에게 낯선 작가들의 그림이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이 책의 강점이다. 유명세나 미술사적 가치가 아닌, 순수하게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필요한 힘'을 기준으로 선별된 그림들이기 때문이다. 오거스터스 레오폴드 에그의 "여행 친구"는 기차 안에서 마주 앉은 두 소녀를 그린다. 대칭을 이루며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두 소녀의 모습은 틀린 그림 찾기처럼 우리의 집중력을 자극한다. 정신이 산만할 때, 이 그림을 들여 다보며 하나하나 차이점을 찾다 보면 어느새 흐트러진 마음이 한 곳으로 모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누가 언니이고 누가 동생일까, 이들은 어디로 가는 중일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시간이 된다. 피에트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화는 어떤가... 빨강, 파랑, 노랑, 검정, 회색으로 이루어진 마름모꼴 구성은 언뜻 차갑고 무미건조해 보인다. 그러나 이 그림에는 우리 전통의 오방색이 모두 담겨 있다. 작가는 이 그림이 "보기만 해도 머리가 좋아지는 그림"이라고 말한다. 색채가 주는 자극과 균형 잡힌 구도가 두뇌 활동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이다. 시험을 앞둔 학생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직장인들에게 이 그림은 실질적인 도구가 될 수 있 다. 팔 시네이메르세의"양귀비가 있는 목초지"는 강렬한 빨강 양귀비꽃이 들판을 가득 채운 풍경이다. 호선으로 구성된 역동적인 구도 는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긴장되고 불안할 때, 이 그림의 빨강은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입한다. 색채심리학에서 빨강은 활력과 열정을 상징한다. 그런데 빨간색을 보는 것과 예술작품 속 빨강을 마주하는 것은 다르다. 예술가의 손을 거친 색은 정서적 울림을 준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빈센트 반 고흐의 "아몬드 나무"에 대한 이야기다. 고흐가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가장 힘든 시기에 그린 이 작품은 역설적으로 그 어느 작품보다 평온하고 희망적이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한 가지들이 뻗어 있다. 작가는 이를 혼신을 다해 선물한 기적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종종 힘들 때 더 어두운 것에 끌리곤 한다. 슬플 때 슬픈 노래를 듣고, 우울할 때 우울한 영화를 본다. 감정에 공명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고흐의 아몬드 나무는 다른 길을 제시한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피어날 수 있는 희망,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창조해낼 수 있는 인간의 능력. 이 그림은 "힘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증명한다. 나도 할 수 있다고, 이 어둠도 지나갈 것이라고. 로버트 던칸슨의"골짜기 초원"은 의대생들에게 인기가 높은 그림이라고 한다. 고요한 풍경, 한적한 시골길, 평화로운 자연.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한 이들에게 이 그림은 시각적 피난처가 된다. 실제로 혼자 있을 수 없다면, 적어도 그림 속에서라도 고요함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림의 마법이다. 물리적으로 그곳에 가지 않아도, 그 공간이 주는 정서적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점은 색채와 구도가 우리 심리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에 대한 설명이다. 김보희 작가의 "Towards"는 녹색과 파란색으로 이루어진 바다 풍경인데, 파란색은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초록색은 눈의 피로를 덜어준다. 이스트먼 존슨의 "내 뒤에 남기고 온 소녀"는 바람 부는 언덕 위에 당당히 서 있는 소녀를 그린다. 앞을 응시하는 시선, 곧게 선 자세.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어깨가 펴지는 느낌이다. 자신감이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이렇게 구체적인 이미지로 체화될 수 있다. 중요한 면접이나 발표를 앞두고 이 그림을 본다면, 소녀의 당당함이 나에게로 전이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앙리 마티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창조란 곧 용기다"라는 그의 말은 예술가뿐 아니라 자기 삶의 창조자인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 다. 남들과 다르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용기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마티스의 강렬 한 색채와 과감한 구도는 보는 이에게도 용기를 전염시킨다. 그림을 보며 "나도 내 방식대로 살아도 괜찮구나" 하는 허락을 받는 느낌이 랄까 생각해 본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매일'이라는 단위다. 하루하루 작은 목표를 달성하고 매듭을 짓는 것. 이것이 결국 큰 성공으로 이어 진다는 메시지다. 거창한 목표만 세우고 실천하지 못해 좌절하는 대신,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해내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 "매일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작은 목표들을 달성하면 적어도 오늘 하루의 나는 성공한 사람". 위안이 된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한 번 크게 감동받는 것보다, 매일 조금씩 그림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더 큰 변화를 만든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기 전, 로버트 던칸슨의 고요한 풍경을 보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점심 식사 후 졸음이 올 때, 활기찬 색채의 그림으로 정신을 깨운다. 밤에 잠들기 전, 평화로운 그림을 보며 하루의 긴장을 풀어낸다. 이런 작은 습관들이 쌓여 우리의 정서적 풍경을 바꾼다. 코코 샤넬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고아원과 수도원을 전전하며 접한 색이 흰색과 검은색뿐이었던 그녀는, 이를 우울함이 아닌 세련됨의 상징으로 재해석했다. 주어진 환경은 바꿀 수 없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은 내가 어디를 갈 수 있는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시작할지를 결정할 뿐이다.


비눗방울을 부는 과정에 대한 비유도 좋았다. 처음에는 힘을 꾹 줘야 하고, 얼굴이 빨개지고 숨이 가빠진다. 하지만 그 안간힘이 커다란 비눗방울을 만들고, 그다음부터는 예쁜 비눗방울들이 계속 나온다. 시작의 어려움을 견디면 흐름이 생긴다는 것. 끈기와 인내의 중요성을 그림을 통해 시각화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과일 정물화를 보며 공감각적 자극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새로웠다. 그림 속 사과와 포도를 보며 새콤달콤한 맛을 상상하고, 침샘이 자극받는다. 시각이 미각을 깨우는 것이다. 이처럼 그림은 우리의 오감을 종합적으로 자극하며, 총체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달 항아리 그림 앞에서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운 형태. 이 낮달이 나와 같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 그리고 때를 만나 빛날 자신을 상상하는 것. 자존감이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이런 작은 자기 긍정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술은 특별한 날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미술관에 가야만, 비싼 도록을 사야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책 한 권, 스마트폰 하나면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그림 앞에서 멈추는 시간, 그리고 그 그림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귀 기울이는 태도다. 모리스 위트릴로의 길 그림 앞에서 작가는 말한다. "뒤를 돌아보고 걸어온 발자국이 예쁜지 확인하는 대신, 저 모퉁이를 돌면 어떤 세계가 펼쳐져 있을까 설레는 게 더 좋다"고. 과거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두려움보다 기대가 더 큰 마음, 그림 한 점이 이런 마음의 전환을 도울 수 있다. 저자는 그림을 ' 보라 '고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제안한다.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에 맞는 그림을 찾아보라고. 집중력이 필요한가? 자신감이 필요한가? 위로가 필요한가? 에너지가 필요한가? 각자의 필요에 따라 다가갈 그림이 다르다. 같은 그림이라도 보는 시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어제는 그냥 지나쳤던 그림이 오늘은 유난히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와닿는다. 그것은 내가 변했기 때문이고,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림은 고정되어 있지만, 그림을 보는 나는 계속 변한다. 그래서 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봐도 매번 새로운 발견이 있을 수 있 다. 유명한 그림이든 생소한 그림이든, 작가가 누구든, 중요한 것은 그 그림이 나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가다. 미술사적 가치나 시장 가격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을 움직이는가가 기준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명화 컬렉션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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