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쿠사가미 전쟁의 신 1 : 天(천)
이마무라 쇼고 지음, 이형진 옮김, 이시다 스이 일러스트 / 하빌리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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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새벽녘 텐류지 경내는 고요했을 것이다. 1878년 어느 가을날, 10만 엔이라는 광고 한 줄에 이끌려 모인 292명의 발걸음은 저마다 다른 무게를 지녔을 것이다. 어떤 이는 병든 가족을 떠올리며, 어떤 이는 빗쟁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또 어떤 이는 그저 내일의 끼니를 생각하며 그 문턱을 넘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 몰랐다. 자신들이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 될 <이쿠사가미: 전쟁의 신>의 원작을 읽었다. 한 장의 나무패를 손에 쥔 채,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패를 빼앗아야 하는 잔혹한 게임. < 오징어 게임>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겠지만, 작품이 품고 있는 정서는 사뭇 다르다. 오징어 게임의 K-드라마가 자본주의 시스템 속 인간 소외를 다뤘다면, 이 일본 시대극은 메이지 유신 이후 급격히 붕괴된 사무라이 계급의 존엄과 생존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 군상을 그려낸다.

메이지 11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허리춤에 찬 칼이 신분의 상징이었고, 명예의 증표였던 시대. 그러나 총이 칼을 대체하고, 서양식 군대가 조직되고, 사무라이라는 존재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유물로 전락해버린 시점. 이 소설에 등장하는 292명은 자신의 정체성이 부정당한 시대의 난민들이다. 주인공 사가 슈지로가 칼을 드는 이유는 명료하다. 병든 아내 와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그의 손에 쥐어진 칼날은 더 이상 무사의 영혼이 아니라, 생계의 도구일 뿐이다. 이 전락의 서사는 슬프지만 동시에 지극히 인간적이다. 명예보다 생존을, 자존심보다 가족을 선택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슈지로는 아마도 이 게임에서 가장 '정상적인' 인물일 것이다. 그에게는 명확한 목적이 있고, 돌아가야 할 곳이 있으며,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 하지만 정상성이란 때로 생존 게임에서 가장 큰 약점이 되기도 한다. 게임에서의 그의 선택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관문마다 요구되는 패찰의 수가 늘어난다면, 자비는 사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칸지야부코츠가 서 있다. 292명 중 유일하게 돈을 위해 이곳에 오지 않은 남자. 그는 무진 전쟁에서 총을 거부하고 오직 백병전만을 고집했던 인물이다. "총은 사람을 죽이는 맛이 나질 않아" 오싹하다. 그에게 전투는 생존 수단도, 의무도 아니다. 순수한 쾌락이다.

부코츠라는 캐릭터는 시대의 괴물이다. 전쟁이 일상이던 시대가 끝나자, 그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잃어버렸다. 하코다테 전투에서 "어차피 마지막이니 상관없으려나"라며 아군 대장의 목을 베어버린 일화는 그의 광기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전쟁이 끝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평화가 오는 것이 두려운 인간. 칼을 휘두를 수 없는 세상에서 자신이 무엇인지 모르는 존재다. 이런 부코츠에게 이 죽음의 게임은 천국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합법적으로, 제약없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며 강자들과 겨룰 수 있는 장. 그는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흥분한다. 부코츠와슈지로의 대결은 필연적일 것이다. 죽음을 즐기는 자와 살리기 위해 죽이는 자. 광기와 절박함.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이야기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할 것이다.

생존 게임물의 매력은 결국 '인간 탐구'에 있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 누구는 배신하고, 누구는 연대하며, 누구는 광기에 빠지고, 누구는 끝까지 인간성을 지키려 한다. 292명이라는 숫자는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292가지의 서로 다른 절망이며, 292개의 평행한 비극이다. 어떤 이는 칼을 들어본 적 없는 평민일 것이고, 어떤 이는 한때 이름을 떨친 검객일 것이다. 여자도 있고 노인도 있다. 그들 각자에게는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다. 그 사연들이 하나씩 펼쳐질 때마다, '누가 이길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의 절망이 더 깊은가'를 저울질하게 될 것이다. 특히 여성 캐릭터들의 존재는 주목할 만하다. 메이지 시대 여성에게 칼을 들 기회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 게임에 참여했다는 것은, 그들이 짊어진 절망이 성별이라는 제약마저 뛰어넘을 만큼 무거웠다는 뜻이다. 이들의 싸움은 시대와 성차별에 대한 저항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

도쿄까지의 여정. 교토에서 도쿄로 향하는 길은 상징적으로 옛 수도에서 새 수도로,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는 여정이다. 사무라이의 시대가 저물고 근대 일본이 열리는 그 경계선 위를, 시대에 버려진 자들이 피를 흘리며 걸어간다. 관문마다 요구되는 패찰의 수가 늘어난 다는 설정은 잔인하지만 효과적이다. 초반에는 운이나 기습으로 패찰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갈수록 더 많은 패찰이 필요해 진다면, 결국 직접적인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약자는 도태되고, 강자마저 더 강한 자에게 무릎 꿇게 될 것이다. 슈지로의 살려두겠다는 결심은 아름답지만 위태롭다. 그가 살려준 자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감사하며 물러날까, 아니면 약점을 간파하고 다시 덤벼들까. 생존 게임에서 자비는 때로 가장 위험한 선택이다. 하지만 바로 그 위험한 선택을 하는 인물이 있기에, 우리는 그를 응원하게 된다. 292명의 사무라이를 모아 죽음의 게임을 벌이게 하는 이유. 혹시 메이지 정부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쓸모없어진 사무라이들을 정리 하려는 의도는 아닐까. 기권을 허용하지 않고, 탈출을 시도하는 자를 죽이는 것은 이 게임이 철저히 계획된 무언가임을 생각하게 한다.

292명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다. 누가 누구인지, 누구와 누구의 관계는 어떤지, 각자의 목적은 무엇인지. 하지 만 바로 그 복잡함 속에서 이야기의 깊이가 생겨난다. 선악 구도가 아니라, 모두가 자신만의 정당성을 가진 채 충돌하는 회색 지대의 드라마다. 오랜만의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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