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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팬덤과 극단의 시대에 꼭 필요한 정치 교양
이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철희님의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그것은 정치인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그동안 나는 정치가 망가진 것을 한탄하면서도, 정작 그 망가짐에 내가 어떻게 기여했는지는 돌아보지 않았다, SNS에서 상대 진영을 조롱하고,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의 모든 행동을 옹호하며, ' 우리 편' 이 아닌 사람들의 말은 귀담아듣지 않았던 순간들. 그것이 팬덤 정치였고, 정서적 양극화였으며, 결국 나라를 망하게 만들 수도 있는 위험한 행위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저자가 말하는 '정치 때문에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경고는 과장이 아니었다. 12•3 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그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극우 카르텔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다. 60대 이상에서 6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보이는 국민의힘의 현실은, 한 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세대별로, 지역별로, 이념별로 얼마나 깊게 분열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징후다.
책을 읽으며 가장 불편했던 부분은 팬덤 정치에 대한 분석이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정치인의 모든 결정을 무조건 지지하고, 그에 대한 비판은 '적의 공작'으로 치부했던 순간들이다. 이견을 내는 사람들을 '내부 총질'하는 배신자로 낙인찍고, 정치를 '죽고 사는 전쟁'으로 만들었던 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저자는 "사랑은 말이 되고 혐오가 본이 된다"고 말한다. 정확한 지적이다. 처음에는 정말로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느새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상대편을 증오하는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인격을 모독하고, 그들의 모든 행위를 악의로 해석하며, 심지어 그들이 잘되는 것 자체를 견디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안티 팬덤이 팬덤 정치의 숨겨진 속성이라는 저자의 통찰이 날카롭게 다가오는 이유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가 증오하는 것으로 더 강하게 결속된다.
이재명 대통령의 "민주주의가 밥 먹여 준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말은 핵심을 찌른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 자체에만 몰두하면서, 정작 그 민주주의가 누구의 삶을 어떻게 나아지게 하는지는 소홀히 했다. 미국 민주당의 패배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자신들 이 대표하고 대변하겠다고 했던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진보적 가치를 외치면서도, 정작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 고통에는 둔감했다. 물가가 오르고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는 현실 앞에서, 추상적인 가치만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한국의 진보 진영도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민주주의를 지켰다는 자부심, 계엄을 막아냈다는 성취감에 취해, 정작 청년들의 주거 문제,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 자영업자들의 생존 위기 같은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을 외면한다면, 결국 사람들은 등을 돌릴 것이다. 정치가 '밥 먹여 주는' 데 실패하면, 극우와 내란 세력은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책을 읽으며 깨달은 또 하나의 진실은, 결국 정치의 질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물론 제도도 중요하다. 저자가 지적 하듯이 총리에게 법적 권한을 더 부여하고, 검찰의 정치 개입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권력욕에 취하고 당파적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무용지물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본질적으로 위험하다. 전체 국민이 선출한 유일한 공직자라는 정통성, 막강한 법적 권력, 여론에 대한 호소력, 여당의 협력. 이 네 가지 수단을 가진 대통령은 '선출된 왕'이 되기 쉽다. 그리고 권력이 산술급수적으로 강해질수록, 오판의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권력을 가진 사람의 자기 절제와, 권력을 감시하는 사람들의 끈질긴 경계심이다. 여당 의원 8명만 뭉쳐도 대통령을 제어할 수 있다는 저자의 지적은 중요하다.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제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제어하지 않은 것이라는 진실. 탄핵 트라우마와 선거 패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명백한 잘못 앞에서도 침묵을 선택한 것. 이것이 바로 정치가 망가지는 메커니즘이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것 중 하나가 검찰의 문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적폐 수사, 그리고 다시 윤석열 정부의 사법 탄압. 이 모든 것이 '피해-복수의 내러티브'를 만들어냈고, 정서적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검찰이 정치 권력의 도구로 사용될 때, 정치는 더 이상 정책 경쟁의 장이 아니라 생존 투쟁의 전장이 된다.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라 죽고 사는 전쟁이 되는 것이다. 승자는 패자를 물리적으로 경기장 밖으로 밀어내려 하고, 패자는 억울한 피해자 서사를 만들어 복수를 다짐한다. 이 악순환 속에서 절제와 관용은 사라지고, 극단과 증오만 남는다. 저자가 "정치 검찰은 언제든지 총구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경고하는 이유다. 지금은 내 편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권력의 향방이 바뀌면 언제든 나를 겨눌 수 있다. 검찰 개혁은 진보나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의 문제다. 정치가 검찰에 휘둘리는 한, 좋은 정치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자는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투표다. "투표권은 최고의 시정 권력"이라는 말은 진부해 보이지만, 가장 강력한 진실이다. 6•3 대선을 정초 선거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 극우 카르텔을 확실하게 제압해야 한다는 요구는 절박하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정 정당을 찍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던지는 '종이 짱돌'은 정치인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세력에게는 단호한 응징을, 하지만 동시에 집권 세력에게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라는 책임을. 방심도 온정도 사치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복수와 절멸만을 외쳐서도 안 된다. 정치적 대타협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저자의 시각도 주목할 만하다. 탄핵을 밀어붙이되 여당에도 운신의 폭을 열어 줘야 한다는 것, 수적 우위로 서둘러 밀어붙이면 오히려 탄핵이 왜곡된다는 지적은 우리가 놓치기 쉬운 지혜다. 승리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승리를 통해 무엇을 이룰 것인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팬덤 정치를 무조건 악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주장은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준다. 팬덤 정치는 정치 실패와 정치 무능이 불러온 현상이며, 동시에 참여 의지를 가진 시민들의 주체적 시도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오롯이 정치인에게 있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팬덤의 혐오를 부추기고 그 대가로 권한을 얻는 '거래의 코트십'이 아니라, 비전과 소신으로 팬덤을 이끄는 '책임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당이 게토화되고 행태가 일베화되는 것을 막는 것은 정치 지도자의 의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시민들도 성찰해야 한다. 나는 정말로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 아니면 단지 상대편이 망하는 것을 보고 싶은가.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의 잘못도 비판할 용기가 있는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말에도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정직하게 답할 때, 팬덤 정치는 건강한 시민 정치로 진화할 수 있다. 결국 이 책의 제목이자 핵심 질문으로 돌아온다.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저자는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대신 우리가 피해야 할 함정들을 낱낱이 보여준다.
정치적 양극화, 팬덤 정치의 흑화, 검찰의 정치 개입, 권력욕에 취한 대통령, 굴종하는 여당, 복수에 집착하는 야당. 이 모든 것들이 정치 를 망가뜨리는 요인들이다. 좋은 정치는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보통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개선하는 정치. 이기고 지되, 패자를 절멸시키지 않는 정치. 권력을 가져도 교만하지 않고, 권력을 잃어도 존엄을 잃지 않는 정치.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뉘되, 서로를 적이 아니라 경쟁자로 대하는 정치.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지키되, 그것이 실제로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정치. 그리고 그런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노력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 시민들이 투표로, 감시로, 비판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행동으로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지위 위협'을 느끼는 60대 이상 노년층의 두려움도 이해하고, 미래가 불안한 청년들의 분노도 헤아리며, 좌와 우 사이 어딘가에서 길을 잃은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도 듣는 정치를 갈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