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 붕괴
해도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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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목이 흥미롭다. <진공 붕괴>... 학부때 잠시 배웠던 양자역학에서 나왔던 용어인 것 같은데.... 가짜 진공과 진짜 진공.... 우주의 파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현상으로 제기되었던 이론.... 저녁 하늘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우주... 내게 우주는 거대한 고요와 침묵의 세계인 것 같다. 그 침묵은 단지 소리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들으려 하지 않아 묻힌 목소리, 익숙한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깊은 질문들, 존재의 근본을 되묻는 정적이다. 해도연 작가는 천문학자이자 소설가다. 과학자의 시선ㅇ으로 SF 소설을 쓴다면 어떤 작품이 탄생할까? 궁금해 진다.

'진공 붕괴'라는 개념은 과학적으로는 무에서 유가 발생하는 격변의 순간을 뜻하지만, 이 책에서는 내면의 질서가 무너지는 순간, 감정의 무중력 상태를 의미하는 듯했다. 인간은 고요 속에서도 무언가에 의해 계속 흔들리는 존재다. 완벽한 침묵은 없다. 언제나 파동은 존재하며, 그 파동은 때로 존재 자체를 뒤흔든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그런 진공의 경계에 서 있다. 우주선 밖에서 갑작스레 단절된 라미는 더 이상 안으로도, 밖으로도 나아가지 못하는 공간에 갇힌 채로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가 돌아가야 할 '지구'는 과연 그가 알던 그 지구일까, 아니면 상실된 기억처럼 덧없고 허상처럼 사라진 고향일까. 멸망이 예정된 유토피아 속에서 조슈는 자식을 낳고 미래를 꿈꾸는 일이 진정한 희망인지, 기만인지 묻는다. 그에게 있어서 '유토피아'란 슬픔을 잊고 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탈출선을 선택했고, 상미는 그 선택 앞에서 말문을 잃는다.

타인의 뇌로 지각하는 마리는 끊임없이 묻는다. "나는 나인가?" "사랑하는 이의 기억으로 사랑을 말하는 나는 과연 온전한 주체인가?" 그녀의 혼란은 단순히 기계와 인간의 구분에 있지 않다. 그건 사랑과 기억, 그리고 정체성에 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이다. 또 콜러스 신드롬을 앓는 윤하를 잃고, 되찾기 위해 시간을 반복하는 재호는 끝없이 같은 경로를 달린다. 하지만 삶은 똑같은 궤도를 돌지 않는다. 모든 반복에는 미세한 어긋남이 생긴다. 그 어긋남 속에서 사랑은 점점 달라지고, 결국 그는 자신이 찾고자 했던 '같은 아이'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유슬은 그런 남편에게서 자신의 삶과 아이의 존재가 몇 번이고 지워졌다는 사실을 알고, 복수를 결심한다. 이토록 인간적인 슬픔과 분노의 복합체 속에서 독자는 무력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에일-르의 마지막 손님'에서는 먹는 행위조차 공포와 존재론적 위협으로 연결된다. 지구에 도착한 외계 생명체는 인간을 지배하려 하며, 인간은 무의식 속에서 이미 그것의 일부가 되어간다. 이 소설은 인간이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것과 실제 존재 사이의 거리를 날카롭게 짚는다. 인간이 느끼는 안락함조차 실은 통제되고 조작된 것일 수 있다는 의심은, 현대 사회에 대한 풍자로도 읽힌다. 그리고 '안녕, 아킬레우스'에서 피터는 사랑과 윤리 사이에서 갈등한다. 타임루프라는 SF적 장치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수렴된다. 오늘과 똑같은 내일을 계속 살아가는 일이 진정한 사랑인지, 아니면 마침내 떠나보내는 일이 사랑인지. 이 질문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다. 책은 결국 인간이 자기 삶 속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결정적 순간들을 과학적 상상력 속에 녹여내어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은 결코 현실에서 멀지 않다. 그 세계는 오히려 우리가 사는 이곳, 지금 이 순간의 복사판처럼 느껴진다.

이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삶을 조금 더 천천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반복되는 일상이 루프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려운 감정에 휘말릴 때도 있다. 문득 멈춰 서서 내 마음의 진공을 들여다보게 된다. 공허는 때로 너무 깊어 그 안에서 방향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그 진공 속에서도 무언가는 움트고 있다.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 삶은 매 순간 생성 중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책 속 인물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결국 살아가기를 선택했다. 진실이 보이지 않아도, 내일이 무의미해 보여도,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을 때조차도. 살아간다는 것은 완벽한 공허 속에서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의 진공 속에서 흔들리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흔들림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진실한 진동이다. 그 진동을 통해 우리는 다시 삶의 리듬을 되찾고, 다시 사랑을 꿈꾸며, 다시 자신을 이해하려 한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진공 붕괴'를 겪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하면서. 흥미로운 SF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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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3부작 - 그래픽노블
데이비드 마추켈리 외 그림, 황보석 외 옮김, 폴 오스터 원작, 폴 카라식 각색 / 미메시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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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폴 오스터의 1주기를 맞아 그의 대표작 <뉴욕 3부작>,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 있는 방> 이 그래픽노블로 재탄생했다. 1985년부터 1986년까지 개별적으로 출간된 후 1987년 하나의 삼부작으로 묶인 이 작품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픽노블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다시 만나게 된 「뉴욕 3부작」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글과 이미지의 결합이 주는 새로운 감각으로 오스터의 미로 같은 이야기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라 기대된다. ^.^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은 탐정소설의 외형을 빌려 존재의 본질과 정체성, 작가와 작품의 관계,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세 편의 독립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심층에는 공통된 주제와 모티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형성한다. 그래픽노블로 소설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작품에 빠져들 수 있었다. ~~

<뉴욕 3부작>의 세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별개의 서사처럼 보이지만, 그 심층에는 여러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가장 명확한 공통점은 세 주인공(퀸, 블루, 화자)이 모두 타인을 관찰하거나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유리의 도시>에서 퀸과 피터 스틸먼, <유령들>에서 블루와 블랙, <잠겨 있는 방> 에서 나와 팬쇼...오스터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패턴이다. 이를 통해 그는 관찰자와 대상, 작가와 독자, 자아와 타자의 경계가 얼마나 취약하고 유동적인지를 보여준다. 세 작품 모두에서 쫓는 사람과 쫓기는 사람의 경계는 점차 모호해지고, 결국에는 완전히 붕괴된다. 또한 세 작품에는 모두 글쓰기나 기록행위가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한다. 퀸의 빨간 공책, 블루의 보고서, 팬쇼의 원고와 화자가 쓰는 전기는 모두 현실을 재구성하고 해석하는 시도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항상 한계에 부딪히고, 결국 현실의 복잡성과 모호함을 완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이는 언어와 현실 사이의 간극, 그리고 그 간극을 메우려는 인간의 끝없는 노력을 상징한다.

뉴욕이라는 도시 역시 세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배경이다. 오스터에게 뉴욕은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모호함을 반영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규칙적인 구조를 가진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혼돈과 불확실성이 가득한 뉴욕은 인간 정신의 미로 같은 특성을 반영한다. 작가는 이를 "네온사인 같은 도시... 언듯 보기엔 반짝반짝 화려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먼지와 거미줄이 덕지덕지 붙은..." 공간으로 묘사한다. 세 작품을 순서대로 읽으며 주목할 만한 패턴은 주인공들이 경험하는 정체성 혼란의 정도가 점점 심화된다는 점이다. <유리의 도시>의 퀸이 경험하는 혼란보다 <유령들>의 블루가 경험하는 혼란이 더 깊고, <잠겨 있는 방>의 화자가 경험하는 혼란은 더욱 극심하다. 퀸의 경우, 그는 자발적으로 폴 오스터라는 가짜 정체성을 취했고, 스틸먼 시니어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지만, 그와 스틸먼 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블루의 경우, 그는 의뢰를 받아 블랙을 감시하지만, 결국 블랙도 그를 감시하고 있었음이 밝혀지며 관찰자와 대상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진다. 화자의 경우, 그는 팬쇼의 아내와 결혼하고 아들을 입양함으로써 물리적으로도 팬쇼의 자리를 대체하며, 가장 극단적인 정체성 혼란을 경험한다. 이렇게 점차 심화되는 정체성 혼란은 오스터가 정체성이라는 미로가 얼마나 복잡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미로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길을 잃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뉴욕 3부작>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메타픽션적 요소다. 오스터는 세 작품 모두에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흐리며, 소설 속에 소설을 내포시키는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낸다. <유리의 도시>에서는 소설가 퀸이 탐정 오스터로 위장하고, 실제 작가 폴 오스터가 등장인물로 나온다. <유령들>에서는 블루의 보고서와 블랙이 쓰는 글이 동일한 현실을 다르게 해석한 결과물로 제시된다. <잠겨 있는 방>에서는 화자가 팬쇼의 전기를 쓰는 과정이 곧 소설 쓰기의 과정과 유사하게 그려진다. 이러한 메타픽션적 요소는 오스터가 소설이라는 형식 자체에 대해 자의식적으로 성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소설이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현실을 재구성하고 해석하는 창조적 행위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작가, 작품, 독자 사이의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의존적이라는 점도 시사한다. <뉴욕 3부작>의 매력은 그 해석의 다양성에 있다. 오스터는 명확한 답이나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도록 유도한다. 그런 측면에서 책을 읽으면서 깊은 사고가 필요한 책인 것 같다.....

<뉴욕 3부작>은 미로와 같은 작품이다. 그 미로 속에서 퀸, 블루, 화자는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결국 사라지거나(퀸, 블루), 간신히 빠져나온다(화자). 그러나 그들의 방황과 고뇌는 헛된 것이 아니다. 미로를 헤매는 과정에서 그들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측면들을 마주하게 된다. 오스터가 <뉴욕 3부작>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정체성이라는 미로가 얼마나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지, 그리고 그 미로를 탐험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렵운 것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우리는 모두 퀸, 블루, 화자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고민하면서 살아간다. <잠겨 있는 방>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팬쇼의 공책을 찢어버림으로써 상징적으로 그의 영향에서 벗어난다. 이는 타인의 이야기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나가겠다는 결단을 의미한다. 우리 모두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지점일지도 모른다. 그림체가 참 좋은 작품이었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다시한번 읽어 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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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퍼스트 - 돈과 시간을 장악하는 1% 부의 법칙
유나바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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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무실 창밖으로 햇살이 스며드는 어느 오후, 책상 위에 놓인 <더 퍼스트>라는 책 한 권이 나를 멈춰 세웠다.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지나갔지만, 이 책은 달랐다. 화려한 성공담이나 추상적인 조언이 아닌, 지금 내가 딛고 선 자본주의의 구조를 명료하게 그려주었다. 우리는 매일 시간과 노동을 들여 월급이라는 수확을 얻는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시작일 뿐이다. 자본주의라는 게임 안에서 나만의 전략을 만들고, 결국에는 돈과 시간을 장악하는 1%의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사고가 필요하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하나의 게임으로 정의한다. 규칙은 간단하다. 근로소득을 자생소득으로 전환하라. 자생소득이란 부동산, 주식, 채권, 사업, 지식, 기타 수익 등, 내가 시간을 직접 투여하지 않아도 흐르는 소득이다. 즉, "잠자는 동안에도 돈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책에서는 '자본주의 테크트리 맵'이라는 도식을 제시한다. 처음엔 근로소득을 통해 '머니탱크'를 채우고, 이 자산을 점차 자생소득으로 전환해나가는 것이다. 마치 게임에서 레벨을 올리듯, 각 단계마다 전략을 세워야 한다. 자본주의는 불공정하지만, 그 구조를 이해하고 접근하면 결코 기울어진 운동장만은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확립한 원칙들을 여러가지 사례와 함께 쉽게 설명해 준다. 누구나 경제적 자유를 원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저자의 조언은 나의 경제적 자유를 위한 계획에 좋은 가이드가 될 것 같다.

가장 인상 깊었던 개념은 '단독자'라는 표현이었다. 다수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시선과 철학으로 삶을 설계하는 사람. 단독자는 피라미드의 아래에서 머물기보다, 피라미드 바깥에 자기만의 구조를 만든다. 회사라는 피라미드는 여전히 굳건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 안에서 위로 올라가길 바란다. 하지만 그 구조는 이미 포화 상태이며, 상위로 올라갈수록 경쟁은 치열하고 자율성은 줄어든다. 이 책은 그런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나는 현재 회사의 구조 안에서 상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다. 다양한 부서와의 협업, 문제 해결 능력, 커뮤니케이션은 모두 내 자산이 된다. 이 자산을 가지고 나는 언젠가 내 이름을 건 구조를 만들고 싶다.

​우리는 하루 24시간이라는 동일한 시간을 갖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시간 속에서 돈을 벌고, 어떤 이는 시간을 돈으로 바꾼다. 더 나아가 어떤 이는 돈을 시간으로 산다. 젊은 세대는 명품 소비에 몰두하지만, 실상 진짜 명품은 '자유로운 시간'이다. 명품 가방을 사기 위해 한 달을 일하는 삶이 아니라, 그 가방값을 저축해 한 달을 자유롭게 쓰는 삶이 진짜 부자다. 『더 퍼스트』는 이 단순한 진실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지금 시간을 벌고 있는가, 잃고 있는가?"

돈에 대한 철학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부자들이 따르는 네 가지 돈 관리 원칙을 이야기한다. 그중 하나가 "가족의 ATM이 되지 말라"는 조언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돈을 쓰고, 빌려주고, 지원하면 결국 경제적 자립을 방해하고, 관계마저 파탄날 수 있다.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경제관념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가난을 물려줘야 한다. 물론 이 말은 무정한 것이 아니다. 경제적 자립과 독립을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진짜 사랑이라는 의미다.

​직장을 다니며 동시에 사업 아이템을 탐색하라는 조언은 현실적인 동시에 도전적이다. 나만의 이름을 걸 수 있는 콘텐츠, 서비스, 제품을 고민하고 탐구해야 한다. 회사에서 하는 일을 확장하거나, 전혀 새로운 분야로 눈을 돌려도 좋다. 핵심은 '소득의 상방'을 여는 것이다. 월급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사업은 무한하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단독자가 된다는 것은 그런 실패조차 감내할 수 있는 철학을 가진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다. 나는 아직 명확한 아이템은 없지만, 분명 분석하고 탐구하는 일을 좋아하고, 잘한다. 그것이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지식 콘텐츠든 결국엔 나만의 구조를 만들 것이다.

우리는 피라미드 안에서 살아가도록 교육받아왔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안정된 삶. 그러나 이 구조는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저자는 피라미드 밖으로 나와 자기만의 구조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는 질문이 필요하다. 나는 왜 이 구조 안에 들어왔는가?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어떻게 나만의 속도로 성공의 역사를 써갈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바로, 단독자의 여정이다. 책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나를 지킬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나만의 구조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구조적 안내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 책을 덮은 후에도, 그 안의 문장들은 내 안에서 계속해서 작동한다. 나 역시 이제 나만의 테크트리를 만들고 싶다. 게임의 룰을 이해했고, 도구도 준비됐다. 남은 건 단 하나, 나만의 게임을 시작하는 것뿐이다.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특히 자본주의라는 야생에서 살아남아 자기만의 피라미드를 세우고 싶은 이들에게, 단단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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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양자역학 때문이야
제레미 해리스 지음, 박병철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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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 물리학의 가장 성공적이면서도 가장 수수께끼 같은 이론인 양자역학은 20세기 초에 태동한 이래로 과학계와 일반 대중 모두에게 끊임없는 호기심과 혼란을 불러일으켜 왔다. 보통의 직관과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이 이론은 미시 세계의 기본 법칙을 설명하지만, 그 의미를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첨예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섞으면 예상치 못한 거품이 일어나듯이, 양자역학 역시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를 보여준다. 하지만 양자 세계의 신비는 우리가 익숙한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물질과 에너지의 본질, 우주의 작동 방식, 심지어 의식의 역할까지도 재고하게 만든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거시 세계에서는 사물들이 명확한 위치를 가지고, 한 번에 한 장소에만 존재하며, 한 가지 상태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양자 세계에서는 이런 제약들이 사라진다. 입자들은 동시에 여러 장소에 존재할 수 있고('중첩 상태'),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으로 동시에 자전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상호 모순되는 특성들을 동시에 가질 수도 있다. 누군가가 "왼쪽으로 돌면서 동시에 오른쪽으로 돈다고?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냐?"고 따진다면, 양자역학은 "양자 세계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수시로 일어나는 세계다. 그리고 양자 세계가 상식에서 벗어난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토머스 영의 이중 슬릿 실험은 양자역학의 기이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이 실험에서는 빛(또는 전자)을 두 개의 슬릿이 있는 장벽을 향해 쏜다. 만약 빛이 순수하게 입자의 성질만 가진다면, 우리는 두 개의 밝은 줄무늬가 나타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개의 밝고 어두운 줄무늬가 교차하는 간섭무늬가 형성된다. 이는 빛이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 번에 하나의 입자만 쏘아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같은 간섭무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단일 입자가 두 슬릿을 '동시에' 통과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의 일상적 경험에 완전히 배치되는 현상이다.

양자역학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개념 중 하나는 '관측'의 역할이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관측되기 전까지 입자는 여러 가능한 상태들의 '중첩' 상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관측이 일어나는 순간, 이 중첩 상태는 '붕괴'되어 하나의 확정된 상태가 된다. 이 개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에르빈 슈뢰딩거가 1935년에 제안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이다. 밀폐된 상자 안에 고양이와 독약 장치가 있고, 독약이 방출될지 여부는 방사성 원자의 붕괴라는 양자적 사건에 좌우된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우리가 상자를 열어 관측하기 전까지 방사성 원자는 붕괴된 상태와 붕괴되지 않은 상태의 중첩 상태에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고양이도 살아있는 상태와 죽은 상태가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고양이 역설은 양자역학의 핵심 질문으로 이어진다: 왜 우리는 일상에서 '양자적 좀비 고양이'를 볼 수 없는 걸까? 왜 거시 세계에서는 물체가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고,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양자역학 해석이 제시되었다.

책에서는 거의 빌런으로 생각되는 보어의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로는 양자역학의 기초를 확립한 위대한 과학이이긴 하지만.... 보어의 붕괴이론 (코펜하겐 해석)은 재미있다. 닐스 보어와 그의 코펜하겐 학파가 제시한 이 해석은 오랫동안 '정통적 해석'으로 통용되었으며,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표준적인 해석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관측자가 물리계를 바라보는 순간 여러 개의 중첩된 상태가 붕괴되고 단 하나의 상태만이 최종 결과로 선택된다. 그러나 이 해석은 관측자의 역할에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하고, "관측이 정확히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또한 우주가 관측되기 전에는 어떤 상태였는지, 그리고 의식을 가진 관측자의 출현 이전에는 어떻게 붕괴가 일어났는지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저자는 이외에도 양자역학의 여러 이론을 기호와 재미있는 사례를 통해 설명해 준다. 다중이론, 그냥붕괴 이론 (GRW 이론), 유도 파동이론 등등... 수학을 통해 이해하려면 정말 어려운 이론을 쉽게 접근하게 한다. ^.^

양자역학이 이토록 철학적 해석에 열려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학적 예측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다. 예를 들어, 전자의 자기모멘트 값을 양자역학으로 계산한 값과 실험실에서 관측된 값은 거의 일치한다. 그 차이를 지구 둘레(4,000만 미터)에 비유하면 0.1밀리미터에 불과하다! 인류가 개발한 이론 중 가장 정확한 이론으로 평가받으며, 지금까지 실행된 수많은 실험 중 양자역학의 예측에서 어긋난 결과가 얻어진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이런 놀라운 성공은 양자역학이 물리적 실재를 최소한 현상학적 수준에서는 매우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음을 말한다.저자는 양자역학의 이론적 예측이 실험 결과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은 물리학자들이 철학적 해석보다 계산과 응용에 집중하는 이유가 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양자역학의 심오한 철학적 함의를 간과하게 만들었다. 현역 물리학자가 파동함수의 붕괴 원리를 파고들기 시작하면 교수직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는 현실은, 과학 공동체 내에서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들이 얼마나 불편한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양자역학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물리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끊임없는 도전과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우리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층위에서 작동하는 법칙을 설명하면서도, 그 의미에 대해서는 여전히 열린 질문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관측할 때만 실재가 결정되는 것인지, 무한한 평행 우주가 존재하는지, 우주 전체가 의식 안에 있는지, 또는 다른 어떤 설명이 옳은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수학 용어와 수학 공식, 편미분 방정식이 없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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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의 의식 - 스페인 최고의 소설가와 고생물학자의 뇌 탐구 여행
후안 호세 미야스.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지음, 남진희 옮김 / 틈새책방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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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의식의 세계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 의식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는 많지 않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뇌의 활동인가, 아니면 뇌를 넘어서는 어떤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철학자들만의 추상적 사유가 아니라, 현대 신경과학과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점점 더 현실적인 질문이 되고 있다. 이번에 대담을 통해서 우리의 의식에 관해 분석하고 깊은 고민을 하는 화두를 던져주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후안 호세 미야스와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공저의 <사피엔스의 의식>이었다. 지극히 복잡하고 심오한 인간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본다. ^.^

우리의 두개골 안에 위치한 뇌는 실로 놀라운 기관이다. 그것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을 처리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아 개념, 기억, 감정, 그리고 자유의지라고 느끼는 것까지 생성한다. 그러나 뇌 자체는 세상을 직접 경험하지 않는다. 신경과학자들이 종종 언급하듯, 뇌는 '검은 상자' 속에 갇혀 있다. 외부 세계와의 직접적인 접촉이 없이, 오직 감각 기관을 통해 전달되는 신호만을 해석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의식은 정확히 무엇인가? 그것은 뉴런만의 활동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어떤 것인가? 저자는 소설가와 진화고생물학자의 독특한 대화를 통해 인간 의식의 본질을 이야기 하고 있다.

"빌어먹을, 마술적 사고라니! 한번 살펴보죠, 아르수아가. 내가 성적인 환상을 가지고 있을 때, 내 마음속에서는 물질적이지 않은 이미지가 떠올라요. 그건 원자로 이뤄진 게 아니니까요." 이 격정적인 대화는 소설가와 과학자 사이의 근본적인 철학적 충돌을 보여준다. 데카르트 이래로 서양 철학에서 지속되어 온 심신이원론과 물리주의의 대립이다. 소설가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물질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원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만질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과학자는 이러한 생각을 "마술적 사고"라고 반박한다. 이 논쟁은 의식의 본질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경험하는 정신적 현상들—기억, 감정, 사고, 꿈—은 단순히 뇌의 신경 활동인가, 아니면 그것을 초월하는 어떤 것인가? 철학적 관점에서, 이 문제는 '퀄리아(qualia)'라고 불리는 주관적 경험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붉은색을 볼 때의 그 '붉음'의 감각, 통증의 '아픔', 사랑의 '느낌'과 같은 주관적 경험들은 과학적으로 완전히 설명될 수 있는가? 뇌의 활동을 아무리 정밀하게 측정하고 분석한다 해도, 그것이 어떻게 주관적 경험으로 변환되는지는 여전히 '설명적 간극'으로 남아 있다.

아르수아가는 컴퓨터 비유를 통해 정신과 뇌의 관계를 설명하려 한다. 그의 관점에서 정보는 항상 물질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 컴퓨터의 소프트웨어가 하드디스크나 메모리 칩과 같은 물리적 매체에 저장되는 것처럼, 인간의 생각과 기억도 뇌의 신경 회로에 물리적으로 저장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유에는 한계가 있다. 컴퓨터와 달리, 인간의 뇌에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뇌는 정보를 저장하면서 동시에 그 구조 자체가 변화한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 불리는 이 특성은 뇌가 경험에 따라 물리적으로 재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의 사고와 기억이 단순히 정적인 저장소에 기록되는 데이터가 아니라, 뇌의 구조와 기능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동적인 과정임을 시사한다. 더욱이, 정보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해석자가 필요하다. 컴퓨터의 데이터는 그것을 읽고 해석하는 시스템 없이는 의미가 없다. 마찬가지로, 뇌에 저장된 정보도 그것을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누군가' 없이는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정확히 무엇인가? 이 질문은 우리를 의식의 수수께끼로 다시 이끈다.

​아르수아가는 기억과 감정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면서 뇌의 진화적 측면을 강조한다. 편도체는 감정, 특히 공포와 같은 원시적 반응을 처리하는 뇌의 일부로, 인간의 기억과 행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경험을 오래 기억하는 것은 이러한 뇌 구조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은 인간의 의식이 단순히 합리적 사고의 산물이 아니라, 복잡한 진화의 역사를 가진 다층적 시스템임을 시사한다. 우리의 뇌는 파충류의 뇌, 포유류의 뇌, 그리고 인간 고유의 발달된 대뇌 피질이라는 세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파충류의 뇌에 해당하는 부분은 생존과 직결된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고차원적 의식은 원시적 생존 메커니즘 위에 구축된 발전된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 설명이 의식의 주관적 측면을 완전히 포괄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어렵지만, 의식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과학과 철학, 종교와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현대 신경과학은 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놀라운 통찰을 제공하지만, 주관적 경험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여전히 답하기 어렵다. 어쩌면 의식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의식은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 자체이기 때문에, 그것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모순될 수 있다. 마치 눈이 자신을 볼 수 없고, 칼날이 자신을 자를 수 없는 것처럼. 오히려 의식의 미스터리는 우리를 더 깊은 질문으로 이끈다. "나는 누구인가?", "내 경험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인간다움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쩌면 의식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고 탐구하며 경이로워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소설가와 과학자의 대화가 최종적인 답변보다는 더 많은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의식의 탐구는 끝없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 자체가 인간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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