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3부작 - 그래픽노블
데이비드 마추켈리 외 그림, 황보석 외 옮김, 폴 오스터 원작, 폴 카라식 각색 / 미메시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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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폴 오스터의 1주기를 맞아 그의 대표작 <뉴욕 3부작>,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 있는 방> 이 그래픽노블로 재탄생했다. 1985년부터 1986년까지 개별적으로 출간된 후 1987년 하나의 삼부작으로 묶인 이 작품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픽노블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다시 만나게 된 「뉴욕 3부작」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글과 이미지의 결합이 주는 새로운 감각으로 오스터의 미로 같은 이야기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라 기대된다. ^.^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은 탐정소설의 외형을 빌려 존재의 본질과 정체성, 작가와 작품의 관계,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세 편의 독립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심층에는 공통된 주제와 모티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형성한다. 그래픽노블로 소설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작품에 빠져들 수 있었다. ~~

<뉴욕 3부작>의 세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별개의 서사처럼 보이지만, 그 심층에는 여러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가장 명확한 공통점은 세 주인공(퀸, 블루, 화자)이 모두 타인을 관찰하거나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유리의 도시>에서 퀸과 피터 스틸먼, <유령들>에서 블루와 블랙, <잠겨 있는 방> 에서 나와 팬쇼...오스터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패턴이다. 이를 통해 그는 관찰자와 대상, 작가와 독자, 자아와 타자의 경계가 얼마나 취약하고 유동적인지를 보여준다. 세 작품 모두에서 쫓는 사람과 쫓기는 사람의 경계는 점차 모호해지고, 결국에는 완전히 붕괴된다. 또한 세 작품에는 모두 글쓰기나 기록행위가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한다. 퀸의 빨간 공책, 블루의 보고서, 팬쇼의 원고와 화자가 쓰는 전기는 모두 현실을 재구성하고 해석하는 시도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항상 한계에 부딪히고, 결국 현실의 복잡성과 모호함을 완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이는 언어와 현실 사이의 간극, 그리고 그 간극을 메우려는 인간의 끝없는 노력을 상징한다.

뉴욕이라는 도시 역시 세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배경이다. 오스터에게 뉴욕은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모호함을 반영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규칙적인 구조를 가진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혼돈과 불확실성이 가득한 뉴욕은 인간 정신의 미로 같은 특성을 반영한다. 작가는 이를 "네온사인 같은 도시... 언듯 보기엔 반짝반짝 화려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먼지와 거미줄이 덕지덕지 붙은..." 공간으로 묘사한다. 세 작품을 순서대로 읽으며 주목할 만한 패턴은 주인공들이 경험하는 정체성 혼란의 정도가 점점 심화된다는 점이다. <유리의 도시>의 퀸이 경험하는 혼란보다 <유령들>의 블루가 경험하는 혼란이 더 깊고, <잠겨 있는 방>의 화자가 경험하는 혼란은 더욱 극심하다. 퀸의 경우, 그는 자발적으로 폴 오스터라는 가짜 정체성을 취했고, 스틸먼 시니어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지만, 그와 스틸먼 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블루의 경우, 그는 의뢰를 받아 블랙을 감시하지만, 결국 블랙도 그를 감시하고 있었음이 밝혀지며 관찰자와 대상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진다. 화자의 경우, 그는 팬쇼의 아내와 결혼하고 아들을 입양함으로써 물리적으로도 팬쇼의 자리를 대체하며, 가장 극단적인 정체성 혼란을 경험한다. 이렇게 점차 심화되는 정체성 혼란은 오스터가 정체성이라는 미로가 얼마나 복잡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미로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길을 잃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뉴욕 3부작>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메타픽션적 요소다. 오스터는 세 작품 모두에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흐리며, 소설 속에 소설을 내포시키는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낸다. <유리의 도시>에서는 소설가 퀸이 탐정 오스터로 위장하고, 실제 작가 폴 오스터가 등장인물로 나온다. <유령들>에서는 블루의 보고서와 블랙이 쓰는 글이 동일한 현실을 다르게 해석한 결과물로 제시된다. <잠겨 있는 방>에서는 화자가 팬쇼의 전기를 쓰는 과정이 곧 소설 쓰기의 과정과 유사하게 그려진다. 이러한 메타픽션적 요소는 오스터가 소설이라는 형식 자체에 대해 자의식적으로 성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소설이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현실을 재구성하고 해석하는 창조적 행위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작가, 작품, 독자 사이의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의존적이라는 점도 시사한다. <뉴욕 3부작>의 매력은 그 해석의 다양성에 있다. 오스터는 명확한 답이나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도록 유도한다. 그런 측면에서 책을 읽으면서 깊은 사고가 필요한 책인 것 같다.....

<뉴욕 3부작>은 미로와 같은 작품이다. 그 미로 속에서 퀸, 블루, 화자는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결국 사라지거나(퀸, 블루), 간신히 빠져나온다(화자). 그러나 그들의 방황과 고뇌는 헛된 것이 아니다. 미로를 헤매는 과정에서 그들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측면들을 마주하게 된다. 오스터가 <뉴욕 3부작>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정체성이라는 미로가 얼마나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지, 그리고 그 미로를 탐험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렵운 것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우리는 모두 퀸, 블루, 화자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고민하면서 살아간다. <잠겨 있는 방>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팬쇼의 공책을 찢어버림으로써 상징적으로 그의 영향에서 벗어난다. 이는 타인의 이야기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나가겠다는 결단을 의미한다. 우리 모두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지점일지도 모른다. 그림체가 참 좋은 작품이었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다시한번 읽어 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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