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엑시트 - 불평등의 미래, 케이지에서 빠져나오기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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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오늘도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출근한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칸, 똑같은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모두 어디론가 향하고 있지만, 정작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저 관성에 이끌려 움직일 뿐이다. 이철승 교수가 말하는 '소셜 케이지'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느끼던 답답함과 갇힌듯한 감각에 드디어 이름이 붙여진 것 같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적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한다. 연공제라는 투명한 벽, 학벌이라는 보이지 않는 천장,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는 칸막이들 사이에서 우리는 숨을 쉬고 있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이 케이지가 우리를 보호해주기도 한다는 점이다. 평생고용의 달콤한 환상, 나이가 들면 자동으로 오르는 임금의 확실함, 같은 회사 동기들과 함께 늙어가는 동질감. 이 모든 것들이 불안한 현대사회에서 우리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해 왔다. 그래서 우리는 탈출을 꿈꾸면서도 케이지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스물아홉 살의 내 후배는 얼마 전 이런 말을 했다. "선배, 저는 이제 꿈이 없어요. 그냥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서 조용히 살고 싶어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가슴이 아팠다. 언제부터 우리 청년들의 꿈이 이렇게 작아졌을까? 2024년 한국의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은 참으로 냉혹하다. 비정규직 비율은 윗세대보다10퍼센트나 높고, 능력있는 인재들은 미국으로 떠나고 있다. 그들이 떠나는 이유를 돈 때문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들은 기회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곳, 나이나 학벌이 아닌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그들의 이상인 것이다. 하지만 모든 청년이 실리콘밸리로 갈 수는 없다. 대부분의 우리는 여전히 이곳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도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이것이 바로 이철승 교수가 제안하는 '오픈 엑시트'의 핵심이다.

우리가 물려받은 벼농사 문화는 참으로 복합적인 유산이다. 협업의 정신, 집단의 조화, 위계질서에 대한 존중 - 이 모든 것들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원동력이었다. 동시에 이것들이 지금 우리를 옥죄는 족쇄가 되기도 했다.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면 이 문화의 이중성을 실감한다. 팀 프로젝트를 할 때 보여주는 놀라운 협력과 조율 능력, 위기 상황에서 발휘되는 집단 결속력은 분명 우리의 강점이다. 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창의성을 억누르는 분위기, 나이 순서를 따지는 경직된 소통 방식, 평가보다는 연차를 중시하는 관행들도 존재한다.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 모순은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스물다섯 살의 신입사원이 AI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며 업무 효율을 높이는 모습을 보면서, 오십 대 부장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지식의 위계가 나이의 위계와 역전되는 순간, 우리의 전통적인 조직 문화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이철승 교수는 여기서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벼농사 문화의 협업 정신이 오히려 AI 시대에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계와 인간이 협력해야 하는 새로운 시대에, 상호 감시와 조율에 익숙한 우리 문화가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족쇄가 날개로 변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시나리오다.

나의 여자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의 고민이 얼마나 복잡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결혼을 하면 내 커리어는 어떻게 될까?""아이를 낳으면 정말 직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출산휴가를 쓰면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이런 고민들이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청년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은, 현재의 사회 시스템이 일과 가정의 양립을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사회의 협업 문화가 역설적으로 출산 기피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은 충격적이다. 한 사람이 빠지면 다른 팀원들이 그 몫을 나누어 져야 하는 구조에서,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은민폐가 되어버린다. 동료들의 눈치를 보며 제대로 된 휴가도 쓰지 못하는 현실이, 젊은 여성들로 하여금 아예 출산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일까? 이철승 교수가 제안하는 '보편 안식휴가' 제도는 흥미로운 대안이다. 출산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직장인이 일정 기간 휴가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사회보험으로 뒷받침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출산휴가가 더 이상 '특별한 혜택'이 아니라 '보편적 권리'가 될 수 있다.

'오픈 엑시트'가 추구하는 것은 기존의 '오징어 게임' 같은 승자독식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한 번의 실패가 평생을 좌우하는 사회가 아니라,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의 의식과 문화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정말 내가 원하는 방향인지, 현재의 선택지 말고 다른 가능성은 없는지, 나는 지금 케이지 안에 있는 건 아닌지.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도 조금씩 변화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가능성을 탐험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연목구어의 심정으로 계속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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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들어가 과학으로 나오기 - 사고 습관을 길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
리용러 지음, 정우석 옮김 / 하이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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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우리는 이미 수학과 과학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스마트폰 알람이 울리는 순간부터 전자파의 원리가, 커피를 끓일 때 물의 끓는점이, 출근길 교통신호의 확률적 패턴이 우리 삶을 감싸고 있다. 하지만 왜 우리는 '수학'이나 '물리'라는 단어만 들어도 본능적으로 움츠러들까?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이 학문들을 삶과 분리된 채 만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칠판 위의 복잡한 공식들, 문제집 속의 추상적인 숫자들은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동떨어져 보였다. 하지만 진실은 정반대다. 수학과 과학은 우리가 숨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우리가 걷는 처럼 견고하며,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처럼 광활하다. 책은 그 진실을 향한 여행의 초대장이다. 딱딱한 교과서를 덮고, 일상의 작은 궁금증부터 시작해보고 싶다. 왜 주사위 게임에서는 항상 카지노가 이길까?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는 정말 어디서 오는 걸까? 이런 소박한 질문들이 우리를 놀라운 진리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기원전 500년,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그리스 어느 학당에서 한 젊은이가 스승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정말 모든 것 을 숫자로 설명할 수 있나요?" 그 젊은이의 이름은 히파소스였고, 그의 스승은 '만물의 근원은 수'라고 믿었던 피타고라스였다. 피타고라스는 우주의 모든 것이 정수와 그 비율로 설명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에게 수학은 학문만이 아니라 종교였고, 철학이었으며, 삶의 전부였다. 하지만 히파소스의 순수한 궁금증은 스승의 완벽해 보이던 세계관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직각삼각형의 두 변이 모두 1일 때, 빗변의 길이를 두 정수의 비로 나타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였지만, 그 속에는 수학사를 뒤흔들 폭탄이 숨어있었다. 빗변의 길이는 루트2 였고, 이 수는 어떤 두 정수의 비로도 나타낼 수 없는 '무리수'였다. 피타고라스의 완벽한 세계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스승은 제자를 바다에 빠뜨려 죽였다고 전해진다. 진리를 탐구하다 목숨을 잃은 히파소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때로는 작은 질문 하나가 거대한 패러다임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진리는 때로 불편하고 위험하지만 결국 승리한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 우리를 깨우는 스마트폰의 전기는 어디서 왔을까?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탐정 소설 같다. 전기는 발전소에서 만들어진다. 발전소의 터빈을 돌리기 위해서는 석탄이나 석유를 태운다. 그 석탄과 석유는 수억 년 전 식물들이 변화한 것이다. 그 식물들은 태양빛으로 광합성을 했다. 태양은 수소 원자들이 융합하면서 에너지를 낸다. 결국 우리 스마트폰을 충전하는 전기의 근원은 태양 속에서 일어나는 핵융합반응이다. 46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태양은 매초 6억 톤의 수소를 헬륨으로 바꾸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우주로 방출하고 있다. 그 에너지의 극히 일부가 지구에 도달해 생명을 키우고, 문명을 발전시키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일상을 움직이고 있다. 에너지는 창조되지도, 소멸되지도 않는다. 다만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환될 뿐이다. 이 간단한 법칙 속에는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깊은 진리가 담겨있다. 석탄의 화학에너지가 열에너지로, 열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운동에너지가 전기에너지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각 변환 과정에서 일부는 열의 형태로 흩어져 다시 회수하기 어려워진다. 이것이 바로 엔트로피의 증가, 즉 무질서도의 증가다. 이는 우리 삶에도 적용되는 철학이다. 우리가 쏟는 노력과 열정도 에너지의 한 형태다. 때로는 가시적인 성과로, 때로는 경험과 지혜로,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는 영감으로 변환된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형태를 바꿔가며 세상을 순환한다. 저자는 이 과학적 원리를 정말 쉽게 설명하고 있다. 흥미로운 주제에 대한 설명을 2-3 페이지의 함축적은 설명과 그림은 우리가 과학에 더 쉽게 다가가게 인도해 준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수학으로 들어가 과학으로 나오는 여행을 마치게 된다. 우리는 어디에 도착했을까? 복잡한 공식들과 어려운 이론 들을 마스터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소중한 것을 얻었다.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과, 질문하는 용기와, 탐구하는 즐거움이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실 때, 우리는 이제 물의 끓는점과 압력의 관계를 생각할 수 있다. 하늘을 올려다볼 때는 파란색이 만들어지는 빛의 산란 원리를 떠올릴 수 있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는 그 작은 기계 안에 담긴 수많은 과학 원리들을 감사히 여길 수 있다.

​과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호흡 속에, 걸음걸이 속에, 생각 속에 과학이 있다. 우리 자신이 바로 40억 년 진화의 산물이자, 138 억 년 우주 역사의 결정체다. 우리 몸을 이루는 탄소와 산소, 질소와 인은 모두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우리는 말 그대로 '별의 먼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상의 모든 순간이 기적이다. 심장이 뛰는 것도, 뇌가 생각하는 것도, 눈이 보는 것도 모두 정교한 물리 화학적 과정들의 결과다. 과학을 안다고 해서 이런 기적들이 덜 신비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욱 경이롭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수학에서 시작해서 과학으로 이어지는 책을 따라 하는 여행은 새로운 접근방법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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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사고를 일으키는 의사들
대니엘 오프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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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 의학은 기술적 진보를 통해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지만, 여전히 환자 안전과 의료 서비스 질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30년간 현장에서 활동한 내과 의사이자 뉴욕대 의과대학 교수인 대니엘 오프리는 그의 책 <의료 사고를 일으키는 의사들>에서 이러한 의료계의 어두운 면을 정면으로 다루며, 의료 사고의 원인을 개인의 실수가 아닌 시스템의 실패로 규정한다. 그의 분석은 만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현 의료계의 기술적 해결책을 넘어 의료계 전반의 문화적, 구조적 변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나라와는 또다른 문제점을 많이 지니고 있는 외국의 사례이지만 많은 시사점을 이야기 해 주고 있어, 재미있게 읽었다.

오프리가 지적하는 현재 의료 시스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엄격한 위계질서와 이로 인한 소통의 단절이다. 프로노보스트가 언급한 "모든 병원에서 환자들이 서열 때문에 죽는다" 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의료진 간의 수직적 관계는 하급자가 상급자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잠재적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위계 문화는 여러 층위에서 문제를 야기한다. 경험이 풍부한 간호사나 다른 의료진이 의사의 결정에서 오류를 발견하더라도 이를 직접적으로 지적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의사들 사이에서도 전문 분야나 경력에 따른 암묵적 서열이 존재하여 자유로운 의견 교환을 저해한다. 또한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권력 불균형으로 인해 환자가 자신의 증상이나 우려사항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의료 실수의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은 의료진의 인지적 편견이다. 오프리는 인종적 편견과 성차별적 이중 잣대가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이러한 편견은 의료진이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환자 평가에 영향을 미치며, 특정 집단의 환자들이 부적절한 치료를 받을 위험을 높인다. 특히 응급실이나 외래 진료에서 시간 압박 상황에서는 이러한 편견이 더욱 강화된다. 의료진은 제한된 시간 내에 빠른 판단을 내려야 하는 압박감 속에서 첫인상이나 기존의 고정관념에 의존하게 되고, 이는 오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또한 의료진의 과도한 자신감과 불확실성에 대한 거부감은 추가적인 검토나 다른 의견을 구하는 것을 방해한다.

현대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는 의료진의 극심한 업무 과부하로도 나타난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과도한 환자 부담은 의료진이 각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과 주의를 기울이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진은 생존 모드로 일하게 되며, 협업이나 심층적 사고보다는 당면한 업무 처리에만 집중하게 된다.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의 도입은 표면적으로는 효율성을 높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료진이 환자와의 직접적인 소통보다 컴퓨터 화면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만드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 의사들은 진료 시간의 상당 부분을 서류 작업과 데이터 입력에 소비하며, 이는 환자와의 관계 형성과 정확한 진단에 필수적인 대화 시간을 단축시킨다. 여기에 현재의 의료 수가 체계는 의료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저해하는 구조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오프리가 지적하듯이, 동료와의 상담, 추가적인 환자 추적 관찰, 심층적인 진단 검토 등 환자 안전에 필수적인 활동들은 별도의 보상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경제적 구조는 의료진이 양적 진료에 집중하게 만들고, 질적 개선을 위한 시간 투자를 어렵게 한다. 특히 미국식 의료 시스템에서는 진료량과 수익이 직결되는 구조로 인해 의료진이 더 많은 환자를 더 빠르게 진료하도록 압박받는다. 이는 환자 한 명당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을 제한하고, 결과적으로 진단의 정확성과 환자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만든다.

오프리가 제시하는 해결책의 핵심은 의료계 문화의 근본적 변화이다. 그가 강조하는 "지적 겸손"은 의료진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는 기존의 의사 중심적, 권위주의적 문화와는 정반대되는 접근법이다. 진정한 협업 문화 구축을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먼저 다양한 직급과 전문 분야의 의료진이 동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복이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없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안전한 소통 채널이 필요하다. 또한 실수나 오류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대신 시스템의 문제로 접근하는 관점의 전환이 요구된다. 의료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환자와 의료진 간의 소통 방식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오프리는 환자와의 대화를 "가장 중요한 진단 도구"로 규정하며, 이를 위한 충분한 시간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의 진료 환경에서는 의료진이 전자의무기록 작성에 치중하느라 환자와의 직접적인 소통이 소홀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의료진의 온전한 관심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의료진은 기계적인 체크리스트 작성을 넘어 환자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오프리가 제시하는 비전은 모든 참여자가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하는 인간 중심의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지만, 의료계의 모든 구성원이 각자의 위치에서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의료 시스템의 진정한 성공은 최첨단 기술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배려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오프리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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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의 과학적 원리와 구조 - 한 권으로 끝내는 항공우주과학
데이비드 베이커 지음, 엄성수 옮김 / 하이픈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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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류는 언제나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새들의 자유로운 비행을 부러워하고, 밤하늘의 별들에게 소망을 빌며, 달과 태양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가늠했다. 그리고 마침내 20세기에 이르러, 인간은 지구라는 거대한 중력우물에서 벗어나 우주로 향하는 길을 열었다. 그 열쇠가 바로 로켓이었다. 데이비드 베이커의 <로켓의 과학적 원리와 구조>를 통해 접하게 되는 로켓의 세계는 인간의 끝없는 도전 정신과 과학적 사고의 승리를 보여주는 파노라마며, 동시에 우리나라가 걸어가야 할 미래의 길을 제시하는 나침반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책의 크기에 놀랐고, 그 내용의 명확함과 풍부한 자료와 사진들에 두번 놀라게 된다. 어린시절 물 로켓을 만들어 날리곤 했던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책이었다.

로켓의 작동 원리는 놀랍도록 단순하다. 뉴턴의 제3법칙인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그 핵심이다. 연료를 연소시켜 고온고압의 가스를 분사하면, 그 반작용으로 로켓이 반대 방향으로 추진력을 얻는다. 이토록 기본적인 물리 법칙이 인류를 우주로 이끌었다는 사실은 과학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원리는 단순해도 실현은 결코 쉽지 않았다.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초속 11.2 킬로미터라는 엄청난 속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추진력과 정교한 제어 시스템, 극한의 환경을 견딜 수 있는 소재와 구조 가 필요했다. 로켓 과학은 이 모든 요소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종합 예술이었다. 치올콥스키의 로켓 방정식은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고, 고다드의 액체 연료 로켓은 실용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폰 브라운의 V-2는 비극적 맥락에서 탄생했지만, 현대 로켓 기술의 출발점이 되었다. 과학사는 종종 이런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전쟁의 도구로 개발된 기술이 평화로운 탐험의 수단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은 20세기 후반 인류 문명의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가 지구 궤도를 돌기 시작했을 때,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미국은 서둘러 8K72 모델을 개발했지만 9회 발사 중 6회가 실패하며 굴욕을 맛보았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였다. 미국은 아틀라스 로켓 시리즈를 통해 점진적으로 기술을 발전시켰고, 마침내 새턴 V라는 걸작을 탄생시켰다. 3500톤에 가까운 추력을 자랑하는 이 거대한 로켓은 1969년 아폴로 11호를 달에 안착시키는 쾌거를 이루었다.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새턴V를 능가하는 로켓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당시의 기술적 성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많은 폭발과 추락 사고가 있었지만,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실패할 때 마다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책을 찾아 다음 시도에 반영했다. 이런 반복적 개선 과정이야말로 과학 기술 발전의 핵심이다.

2021년 10월 21일, 전라남도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누리호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비록 위성모사체를 목표 궤도에 정확히 안착시키지는 못했지만, 이는 한국 우주 기술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역사적 순간이었다. 12년간의 연구 개발 끝에 이룬 성과였고, 한국을 세계 7번째 독자 위성 발사 능력 보유국 대열에 올려놓는 성취였다. 누리호의 의미는 기술적 성공을 넘어, 한국이 우주 선진국으로 도약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위성 발사 서비스, 우주 탐사, 우주 자원 개발 등 미래 우주 산업의 핵심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선진국들은 이미 재사용 로켓 기술을 상용화하고 있고, 화성 탐사와 달 기지 건설을 현실적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한국이 이런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21세기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다. 과거 국가 주도의 우주 개발에서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상업적 우주 산업으로 패러다임 이 변화하고 있다. 스페이스X의 팰컨9과 스타심, 블루 오리진의 뉴 글렌, 버진 갤럭틱의 우주 관광 등은 이런 변화를 상징한다. 위성 인터넷, 지구 관측, 우주 제조업, 소행성 채굴 등 새로운 우주 사업 모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우주 경제 규모가 2040년 까지 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반도체 시장보다 큰 규모다. 한국이 이런 거대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로켓 기술 뿐만 아니라 위성 제조, 우주 전자 부품, 우주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역량을 키워야 한다. 다행히 한국은 이미 강력한 IT 기술과 제조업 기반을 갖추고 있어 우주 산업과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로켓은 인류의 꿈과 희망을 담은 상징이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도구다. 치올콥스키가 "지구는 인류의 요람이지만, 인류는 영원히 요람에 머물 수는 없다"고 말했듯이, 우주로의 진출은 인류 문명 발전의 필연적 단계다. 한국은 이제 그 여정의 출발선에 서 있다. 누리호의 성공은 우리가 우주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진정한 성공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 개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 그리고 장기적 비전을 바탕으로 한 일관된 정책이 뒷받침될 때, 한국은 우주 경제 시대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자세히 설명해 주는 로켓의 원리와 로켓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인간의 꿈은 언제나 현실을 뛰어넘었다. 오늘의 불가능이 내일의 당연함이 되는 것이 과학 기술의 힘이다. 한국의 우주 산업도 이런 믿음과 노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것이다. 하늘을 향한 인류의 꿈은 계속되고, 그 꿈의 실현을 위한 우리의 도전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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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 개정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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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책들은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깨운다. 조지 오웰의 <숨 쉬러 나가다>가 바로 그런 책이었다. 제목 자체가 주는 그 간절함, 마치 오랫동안 물속에 잠겨 있던 바다거북처럼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한숨 크게 쉬고 싶다는 그 절박함이 첫 페이지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소설은 단순하다. 마흔다섯 살의 평범한 보험 세일즈맨이 아내 몰래 작은 돈을 가지고 떠나는 일탈의 여행.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깊은 한숨이 담겨 있다. 우리는 모두 조지 볼링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매몰되어 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언젠가 '숨 쉬러 나가야' 한다는 막연한 갈망을 품고 있는 존재들 말이다.

오웰이 그려낸 불안의 풍경은 놀랍도록 현재적이다. 실직에 대한 공포, 전쟁에 대한 두려움, 정체성의 혼란... 이것들은 1930년대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이다. 특히 “우리를 끊임없이 이런저런 백치 같은 짓만 하도록 내모는 악마가 우리 안에 있다"는 가슴을 찌른다. 우리는 정말 원하는 일을 하며 살지 못한다. 아니,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현대인의 삶은 '무언가를 팔기 위한 끊임없고 광적인 발버둥'의 연속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파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로 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나는 조지 볼링의 모습을 본다. 피곤해 보이고, 무기력해 보이고, 어딘가 체념한 듯한 표정들. 그들 모두가 숨을 쉬러 나가고 싶어한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들이었다. 냄새 하나, 소리 하나로 갑자기 과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그 순간들. 오웰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기억의 힘을 보여준다. 하지 만 프루스트의 달콤한 마들렌과 달리, 볼링의 기억은 쓰라리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 영원히 잃어버린 순수함에 대한 애도가 그 안에 담겨 있다. 어린 시절의 낚시터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결국 실패로 끝난다. 그 아름답던 연못은 주택단지가 되어 있고, 평화로웠던 시골 마을은 소음과 매연으로 가득하다. 이것은 개인의 상실이 아니라 문명 전체의 상실이다. "나만의 유년시절이 아니라, 내가 자랐고 이제는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 듯한 문명"에 대한 애도인 것이다. 낚시는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평화, 잃어버린 여유에 대한 은유다. 한적한 연못가 버드나무 아래 온종일 앉아 있다는 생각 자체가 이미 현대 세계에는 속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에게는 그런 시간도, 그런 공간도, 그런 마음의 여유도 없다. 낚시를 하며 보내는 시간은 생산적이지 않다.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도 않고, 성과를 측정할 수도 없다. 바로 그 때문에 더욱 소중하다.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이런 '무용한' 시간들이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시간들 말이다.

오웰이 던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은 무엇이 진정한 삶이고 무엇이 죽음인가 하는 것이다. 심장이 뛰고 있다고 해서 살아있는 것일까? "새로운 관념을 받아들일 힘을 잃어버릴 때" 인간은 이미 죽은 것이 아닐까? 주변을 둘러보면 "정신적으로, 내면적으로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은 같은 말, 같은 생각만 되풀이하며 "짧은 한 노선을 계속 왔다 갔다"할 뿐이다. 이것은 현대 사회의 가장 무서운 모습이다. 육체는 살아있지만 정신은 죽어있는 사람들. 호기심을 잃고, 꿈을 포기하고, 변화를 거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는 모두 그런 죽음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무감각 해지고, 조금씩 체념하게 되고, 결국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간다. 1차 대전을 겪은 볼링의 경험담은 문명의 파괴에 대한 증언이다. 전쟁 이전의 세계와 전쟁 이후의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사회를 피라미드처럼 영원하고 의심할 나위 없는 무엇으로 여기는 건 불가능해졌다." 모든 것이 흔들렸고, 모든 가치가 무너졌다. 그리고 그 폐허 위에 세워진 새로운 세계는 불안과 공포로 가득하다. 히틀러의 등장, 파시즘의 위협, 공산주의의 확산... 이런 거대한 역사적 사건들 앞에서 개 인은 무력하다. 하지만 오웰의 통찰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 무력한 개인들도 결국은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버지이며, 뒤뜰에서 오이를 기르고 카나리아를 기르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이런 인식은 <1984>나 <동물농장>의 전조를 보여준다.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움의 중요성이 아닐까. 비록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라 하더라도, 비록 다시 찾을 수 없는 장소라 하더라도, 그것을 그리워하는 마음 자체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근원적인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느끼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마음속의 추억과 그리움은 "되풀이되고 되새김하여 영원한 상상 속 유토피아로 남아 가꾸어지고 가다듬어져"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된다. 이것은 도피가 아니라 저항이다. 메마른 현실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책을 덮고 나서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다. 나에게도 '낚시'가 있을까? 나만의 버드나무 그늘이 있을까? 언젠가 꼭 해보고 싶었지만 번번이 미뤄둔 일들이 있을까? 그리고 그것들을 가로막는 우리 안의 악마"는 무엇일까? 현대인의 삶은 점점 더 빨라지고 복잡해진다. SNS와 스마트폰으로 인해 진정한 고독을 누릴 시간조차 사라졌다. 모든 것이 효율성과 생산성으로 평가받는 세상에서 쓸모없는 시간들은 사치가 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시간들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오웰의 소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살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인가? 당신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꿈이 남아있는가? 당신에게는 '숨 쉬러 나갈' 곳이 있는가? 소설을 읽으며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무엇보다 '숨 쉬러 나가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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