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러 나가다 - 개정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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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책들은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깨운다. 조지 오웰의 <숨 쉬러 나가다>가 바로 그런 책이었다. 제목 자체가 주는 그 간절함, 마치 오랫동안 물속에 잠겨 있던 바다거북처럼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한숨 크게 쉬고 싶다는 그 절박함이 첫 페이지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소설은 단순하다. 마흔다섯 살의 평범한 보험 세일즈맨이 아내 몰래 작은 돈을 가지고 떠나는 일탈의 여행.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깊은 한숨이 담겨 있다. 우리는 모두 조지 볼링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매몰되어 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언젠가 '숨 쉬러 나가야' 한다는 막연한 갈망을 품고 있는 존재들 말이다.

오웰이 그려낸 불안의 풍경은 놀랍도록 현재적이다. 실직에 대한 공포, 전쟁에 대한 두려움, 정체성의 혼란... 이것들은 1930년대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이다. 특히 “우리를 끊임없이 이런저런 백치 같은 짓만 하도록 내모는 악마가 우리 안에 있다"는 가슴을 찌른다. 우리는 정말 원하는 일을 하며 살지 못한다. 아니,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현대인의 삶은 '무언가를 팔기 위한 끊임없고 광적인 발버둥'의 연속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파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로 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나는 조지 볼링의 모습을 본다. 피곤해 보이고, 무기력해 보이고, 어딘가 체념한 듯한 표정들. 그들 모두가 숨을 쉬러 나가고 싶어한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들이었다. 냄새 하나, 소리 하나로 갑자기 과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그 순간들. 오웰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기억의 힘을 보여준다. 하지 만 프루스트의 달콤한 마들렌과 달리, 볼링의 기억은 쓰라리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 영원히 잃어버린 순수함에 대한 애도가 그 안에 담겨 있다. 어린 시절의 낚시터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결국 실패로 끝난다. 그 아름답던 연못은 주택단지가 되어 있고, 평화로웠던 시골 마을은 소음과 매연으로 가득하다. 이것은 개인의 상실이 아니라 문명 전체의 상실이다. "나만의 유년시절이 아니라, 내가 자랐고 이제는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 듯한 문명"에 대한 애도인 것이다. 낚시는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평화, 잃어버린 여유에 대한 은유다. 한적한 연못가 버드나무 아래 온종일 앉아 있다는 생각 자체가 이미 현대 세계에는 속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에게는 그런 시간도, 그런 공간도, 그런 마음의 여유도 없다. 낚시를 하며 보내는 시간은 생산적이지 않다.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도 않고, 성과를 측정할 수도 없다. 바로 그 때문에 더욱 소중하다.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이런 '무용한' 시간들이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시간들 말이다.

오웰이 던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은 무엇이 진정한 삶이고 무엇이 죽음인가 하는 것이다. 심장이 뛰고 있다고 해서 살아있는 것일까? "새로운 관념을 받아들일 힘을 잃어버릴 때" 인간은 이미 죽은 것이 아닐까? 주변을 둘러보면 "정신적으로, 내면적으로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은 같은 말, 같은 생각만 되풀이하며 "짧은 한 노선을 계속 왔다 갔다"할 뿐이다. 이것은 현대 사회의 가장 무서운 모습이다. 육체는 살아있지만 정신은 죽어있는 사람들. 호기심을 잃고, 꿈을 포기하고, 변화를 거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는 모두 그런 죽음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무감각 해지고, 조금씩 체념하게 되고, 결국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간다. 1차 대전을 겪은 볼링의 경험담은 문명의 파괴에 대한 증언이다. 전쟁 이전의 세계와 전쟁 이후의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사회를 피라미드처럼 영원하고 의심할 나위 없는 무엇으로 여기는 건 불가능해졌다." 모든 것이 흔들렸고, 모든 가치가 무너졌다. 그리고 그 폐허 위에 세워진 새로운 세계는 불안과 공포로 가득하다. 히틀러의 등장, 파시즘의 위협, 공산주의의 확산... 이런 거대한 역사적 사건들 앞에서 개 인은 무력하다. 하지만 오웰의 통찰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 무력한 개인들도 결국은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버지이며, 뒤뜰에서 오이를 기르고 카나리아를 기르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이런 인식은 <1984>나 <동물농장>의 전조를 보여준다.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움의 중요성이 아닐까. 비록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라 하더라도, 비록 다시 찾을 수 없는 장소라 하더라도, 그것을 그리워하는 마음 자체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근원적인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느끼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마음속의 추억과 그리움은 "되풀이되고 되새김하여 영원한 상상 속 유토피아로 남아 가꾸어지고 가다듬어져"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된다. 이것은 도피가 아니라 저항이다. 메마른 현실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책을 덮고 나서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다. 나에게도 '낚시'가 있을까? 나만의 버드나무 그늘이 있을까? 언젠가 꼭 해보고 싶었지만 번번이 미뤄둔 일들이 있을까? 그리고 그것들을 가로막는 우리 안의 악마"는 무엇일까? 현대인의 삶은 점점 더 빨라지고 복잡해진다. SNS와 스마트폰으로 인해 진정한 고독을 누릴 시간조차 사라졌다. 모든 것이 효율성과 생산성으로 평가받는 세상에서 쓸모없는 시간들은 사치가 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시간들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오웰의 소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살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인가? 당신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꿈이 남아있는가? 당신에게는 '숨 쉬러 나갈' 곳이 있는가? 소설을 읽으며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무엇보다 '숨 쉬러 나가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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