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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사회 - 휴머니티는 커피로 흐른다
이명신 지음 / 마음연결 / 2025년 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장마 시작이다. 창밖으로 비가 내린다.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마치 더치커피머신에서 떨어지는 커피 방울과 닮아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머그컵의 따스함을 느끼며, 나는 문득 생각한다. 언제부터 커피가 이렇게 내 삶 깊숙이 들어왔을까. 아침 7시, 알람과 함께 시작되는 하루의 첫 번째 의식은 커피를 내리는 것이다. 원두를 갈아내는 소리, 뜨거운 물이 커피 가루를 적시며 피어오르는 향기, 그리고 첫 모금을 마실 때 입안 가득 퍼지는 쌉싸름한 맛. 이 모든 과정이 하루를 시작하는 나만의 성스러운 의식이 되었다. 커피에 대한 흥미로운 책을 읽었다… 커피 사회…
커피는 각성제다. 카페인이라는 화학적 작용으로 우리의 뇌를 깨운다. 하지만 커피가 깨우는 것은 비단 잠든 뇌세포만이 아니다. 커피는 우리의 감각을, 추억을, 그리고 관계를 깨운다. 첫 직장에서 마신 자판기 커피의 맛을 아직도 기억한다. 플라스틱 컵에 담긴 뜨겁고 달달한 액체는 분명 커피라고 부르기엔 부족했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어른이 되었음을 알려주는 상징이었다. 선배들과 함께 복도 끝 자판기 앞에서 마시던 그 커피는,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떼는 긴장감과 설렘을 함께 녹여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커피의 맛이 특별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지금 마시는 스페셜티 커피에서 느끼는 복합적인 풍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 순간의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로의 입문서였고, 어른들의 언어를 배우는 교재였으며, 무엇보다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요즘 아침마다 내리는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며, 나는 그때의 그 자판기 커피를 떠올린다. 원두의 품질이나 추출 방식의 차이를 떠나, 그 순간순간 커피와 함께한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각성이란 단순히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향유의 행위다. 단순히 목마름을 해결하거나 잠을 쫓기 위함이 아니라, 그 순간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행위다. 주말 오후, 좋아하는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손 안의 따뜻한 컵에서 피어오르는 향을 맡는다. 이때의 커피는 음료가 아니라 시간 그 자체가 된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멈춰 서서,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여유를 선사한다. 카페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도 흥미롭다. 노트북을 펼쳐놓고 집중하는 직장인, 친구와 수다를 떨며 웃는 대학생들, 혼자 책을 읽으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중년의 여성. 각자 다른 이유로 이 공간에 모였지만, 모두가 커피라는 공통분모로 연결되어 있다. 특히 혼자 카페에 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그들은 외롭지 않다. 오히려 자신만의 시간을 적극적으로 향유하고 있다.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자신과 대화하거나, 책 속 문장들과 교감하거나,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마음을 비운다. 이런 모습들을 보며, 커피가 제공하는 것은 공간이나 음료가 아니라 '나 자신과 함께 할 수 있는 용기'라는 생각이 든다.
커피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다. "커피 한 잔 할까?"라는 말만큼 자연스럽고 친근한 만남의 제안이 또 있을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카페에 앉는다. 주문을 하고, 커피가 나올 때까지의 그 짧은 기다림조차 설렌다. 각자 좋아하는 커피를 주문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달콤한 캐러멜 마키아토를 좋아하는 친구, 쓴 아메리카노만 고집하는 동료, 계절마다 다른 음료를 시도해보는 후배. 커피 취향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현재 상태를 엿볼 수 있는 작은 창구가 되기도 한다. 커피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들은 특별하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깊은 고민까지,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말들은 다른 상황에서보다 더 솔직하고 진솔하다. 커피가 주는 약간의 각성 효과와 카페라는 중립적 공간이 만들어내는 편안함이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열게 만드는 것일까. 가끔 혼자 카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면, 각각의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관계의 스펙트럼을 볼 수 있다. 첫 데이트로 보이는 어색한 커플, 진지한 표정으로 업무 얘기를 나누는 동료들, 아이와 함께 온 젊은 엄마, 오랜 친구들의 편안한 수다. 모두 다른 관계, 다른 나이, 다른 상황이지만 커피라는 공통점으로 같은 공간에 모여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커피가 만들어내는 '사회'에 대해 생각해본다. 커피는 계층이나 나이, 직업을 초월해서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다. 대기업 임원도, 알바생도, 학생도, 은퇴한 어르신도 같은 카페에서 같은 커피를 마신다. 커피 앞에서만큼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실감한다.
커피 문화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스페셜티 커피의 등장으로 커피의 품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홈카페 문화의 확산으로 집에서도 전문점 수준의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공정무역 커피, 친환경 포장재 사용 등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도 커피 산업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커피 한 잔이 주는 위안, 커피를 매개로 한 만남의 소중함, 그리고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게 해주는 커피만의 마법. 이런 본질적인 가치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커피는 우리 삶의 일부로 남아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든, 어떤 맛이든, 커피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위로하고, 각성시키는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여정에 함께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옆에는 커피 한 잔이 있다. 아직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원두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오늘 아침에 갓 로스팅한 원두로 내린 커피다. 첫 모금을 마시며, 오늘 하루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상상해본다. 누구를 만날지, 어떤 대화를 나눌지,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지. 그 모든 순간들 속에 아마도 커피가 함께할 것이다. 커피는 결국 삶 그 자체와 닮아있다. 때로는 쓰고, 때로는 달고, 때로는 향긋하다. 혼자 마셔도 좋고, 함께 마셔도 좋다. 급하게 마셔도 되고, 천천히 음미해도 된다. 정답이 없고, 각자의 방식이 있을 뿐이다. 오늘 저녁에는 친구와 카페에서 만날 예정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소중한 사람과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쌓인 이야기들을 나눌 생각이다. 어떤 커피를 주문할지, 어떤 이야기를 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 커피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