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
허나영 지음 / 비에이블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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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음에도 날씨가 있다는 걸, 어떤 날은 몸으로 먼저 안다. 잠에서 깨어나 커튼을 걷기도 전에, 이미 가슴속 어딘가가 무겁다. 이유를 찾으려 해도 뚜렷한 까닭이 없다. 그냥, 오늘은 흐린 날이다. 안개가 낀 날이거나, 바람이 쏴하게 부는 날이거나, 폭풍이 치는 날이다. 하나영님의 에세이 <바람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는 바로 그런 날들을 위해 쓰인 책이다. 저자는 공황장애를 겪으며, 육아와 일 사이에서 자신을 잃어버리며, 남들과 비교하며 작아지는 순간들을 통과했다. 그 시간 속에서 그가 찾아간 곳은 미술관이었다. 말없이 걸려 있는 그림들 앞에서, 저자는 위로를 받았다. 치유의 처방전을 들고 간 것도, 해답을 구하러 간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누군가가 자신의 고통을 물감으로 눌러 담은 캔버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조용히 숨을 쉴 수 있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기억이 있다. 화면 속 인물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창밖을 바라보거나, 커피잔을 앞에 두고 멍하니 앉아 있거나, 혼자 텅 빈 공간 속에 놓여 있다. 그들은 관객을 쳐다보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도 건네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고독한 화면 앞에 서면 무언가가 가슴 속에서 조용히 울린다. 마치 오랫동안 혼자였지만 비로소 누군가가 내 곁에 앉아준 것 같은 기분이랄까. 저자는 호퍼의 그림이 스마트폰으로 거리를 무심히 찍을 때의 구도와 닮았다고 말한다. 의도 없이 포착된 한 순간처럼, 그림 속 풍경은 그들만의 시간 속에 존재한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게 된다고.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힘들었던 날들에 나 역시 호퍼의 그림처럼 살았던 것 같다. 누군가를 바라보지도, 말을 건네지도 않고, 그저 나만의 무거운 시간 속에 갇혀 있었다. 피카소의 '청색 시기'를 소개하는 대목도 깊이 남는다. 친구의 죽음 이후, 그는 세상을 파란 색조로만 바라보았다. 그 시절의 그림들은 후대의 입체주의만큼 혁명적이진 않을지 모르지만, 훨씬 더 인간적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그 시기가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가장 세게 흔드는 이유는, 거기에 완성된 천재가 아닌 슬픔을 견디고 있는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성취보다 고통의 흔적이 때로 더 진한 울림을 남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화가들의 삶은 하나같이 순탄하지 않다. 프리다 칼로는 버스 사고로 평생 몸의 고통을 안고 살았고,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 렘브란트는 빛나는 정점 이후 파산과 상실을 겪었고, 이중섭은 가족과 떨어져 가난과 그리움 속에서 마흔을 넘기지 못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고통이 예술가들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시련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고통은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내린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견디느냐가 다를 뿐이다. 젠틸레스키의 이야기는 특히 강렬하게 남는다. 그가 그린 유디트는 수동적인 영웅이 아니다. 두 손으로 단호하게 칼을 쥔 여인은 무언가를 단죄하고 있다. 저자는 그 그림 속 홀로페르네스가 실제 가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현실에서 징벌할 수 없었던 것을 캔버스 위에서 완성했다는 해석. 그것이 예술이 가진 힘이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것을 형태로 만들어내는 힘. 저자 역시 자신의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과정에서 글쓰기를 선택했다. 칼로가 그림으로 고통을 풀어냈듯, 그는 문장으로 묵은 감정을 비워낸다. 베르트 모리조의 챕터를 읽으며 나는 오래된 분노 같은 것을 느꼈다. 재능이 있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벽에 부딪혔던 그의 삶이, 먼 옛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가 그어놓은 선 안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모리조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자신을 있는 그대로 지지해주는 사람 곁에서 예술을 이어갔다. 저자는 그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지지하는 관계의 소중함을 조용히 이야기한다.


앙리 루소의 이야기는 이 책에서 가장 따뜻한 챕터처럼 느껴진다. 세관원으로 일하며 주말에만 그림을 그렸던 사람. 마흔이 넘어 미술관 모사 허가증을 받고, 마흔아홉에 은퇴하고서야 전업 작가가 된 사람. 그는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았고, 어떤 단체도 결성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속도로 그림을 그렸다. 루소의 그림은 투박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그 투박함 속에 진정성이 있었다. 남들의 시선에 기죽지 않고 자신이 보는 세계를 그대로 그려낸 용기가 있었다. 저자 역시 마흔을 이야기하며 묘한 안도감을 고백한다. 이제는 요절이라는 단어를 붙일 나이도 아니고, 뭔가를 이루기에 놀라울 만큼 이른 나이도 아닌 마흔.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조금 천천히 가도 된다는 위로가 된다고. 그 고백이 웃음과 함께 가슴에 닿았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나만 뒤처진 것 같다'는 불안을 느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느냐일지도 모른다. 마네가 주류의 인정을 갈망하면서도 끝내 자신의 시선을 포기하지 않았듯, 우리도 세상의 속도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만의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

이 책이 다른 미술 에세이들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저자가 그림 앞에서 해설자가 아닌 동행자로 서 있기 때문이다.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자신의 내밀한 아픔을 먼저 꺼내놓고, 그 옆에 화가의 이야기를 나란히 세운다. 그래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타인의 고통이 낯설지 않고, 오히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샤갈의 태양이 떠오르는 그림 이야기는 오래 마음에 남는다. 모든 트라우마가 시간이 흐른다고 흐려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언젠가 나의 삶에도 밝은 빛이 비추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것. 작은 새싹 하나, 작은 불씨 하나를 마음에 품고 살다 보면, 아픈 기억도 언젠가 지나간 이야기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 저자는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대신, 그 고통과 나란히 앉아 있는 법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이 책이 주는 가장 진실한 위로다. 조선 왕실의 십장생도 병풍 이야기로 끝을 향해 나아가는 마지막 장에는 오래 살기를,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가득 담겨 있다. 학, 사슴, 소나무, 대나무, 복숭아. 그 소박하고도 애틋한 소망들 앞에서, 나 역시 비슷한 것을 원하고 있음을 느낀다. 특별하거나 화려한 삶이 아니라, 그저 하루하루를 안녕하게 보내고 싶다는 것이다.


책은 '따뜻한 커피 한 잔'에 비유한다. 카페인을 채우기 위해 급히 들이키는 것이 아니라, 향을 음미하고 온기를 느끼며 식기를 기다릴 수 있는 여유. 책을 덮고 나서도 그 온기가 손바닥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미술 지식이 없어도 괜찮다. 그림을 잘 몰라도 상관없다. 그냥 오늘 마음이 흐리다면, 이 책을 들고 조용한 곳에 앉으면 된다. 거기에 나과 비슷한 날씨를 통과했던 사람들이, 그림 속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바람이 불어도 괜찮다. 비가 와도 괜찮다. 폭풍이 몰아쳐도 언젠가는 그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잠시 숨을 수 있는 그림 속이 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 속 주름진 눈빛 앞에서, 칼로의 자화상이 품은 꽃과 상처 앞에서, 루소가 주말마다 혼자 그려낸 정글 앞에서, 우리는 잠시 멈출 수 있다.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조금씩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다. 촛불처럼 흔들렸던 저자가 자신에게 건네는 편지처럼 시작된 이 책은, 결국 흔들리는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가장 조용한 위로의 말이 된다. 예술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준다. 그 거울 앞에서 우리는 울어도 되고, 웃어도 되고, 그냥 멍하니 서 있어도 된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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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 폭력이 펼쳐지는 시대마다 누가 숨은 이득을 챙기는가
던컨 웰던 지음, 윤종은 옮김 / 윌북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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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오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전쟁은 언제나 두 곳에서 동시에 벌어진다. 하나는 포연이 자욱한 전장이고, 다른 하나는 수치와 서류가 가득한 회계실이다. 역사는 대개 전자만 기억한다. 영웅의 이름과 결전의 날짜, 깃발이 꽂힌 언덕의 이름을 기록한다. 그러나 진정한 승패를 결정한 것은 종종 후자였다. 군량미가 얼마나 남았는지, 국채를 누가 사주는지, 세금을 얼마나 걷을 수 있는지가 전쟁의 운명을 갈랐다. 경제학자이자 역사가인 던컨 웰던은 그의 저작에서 이 오래된 진실을 정면으로 다룬다. 그는 돈의 흐름을 따라가면 전쟁의 뿌리가 보인다고 주장한다. 역사 속의 전쟁은 가시적인 총칼의 싸움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오래 지속되고 더 깊은 흔적을 남긴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이기도 했다. 돈을 둘러싼 그 보이지 않는 전쟁의 역사를 이야기 한다.


역사속의 바이킹의 습격. 우리는 뿔 달린 투구와 용머리 뱃머리를 떠올리지만, 그 약탈은 냉정하게 보면 경제적 행위였다. 9세기 유럽은 생산성이 낮았고, 잉여를 축적하는 방법은 제한적이었다.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직접 생산하는 것보다 효율적인 경우가 많았다. 폭력은 일종의 사업 모델이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그 이후다. 약탈로 시작한 세력들이 일정 규모에 이르면, 계속 약탈하는 것보다 정착하여 세금을 걷는 편이 더 이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농민을 죽이면 그 해의 곡식을 빼앗을 수 있지만, 살려두고 보호해주면 매년 세금을 걷을 수 있다. 이렇게 약탈자가 보호자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국가라는 제도가 탄생했다. 사회학자 찰스 틸리의 명제인 '국가가 전쟁을 만들고 전쟁이 국가를 만든다'는 이 역설적 진실을 담고 있다. 전쟁 자금 조달의 필요성은 국가 제도 전반을 혁신했다. 잉글랜드 은행이 대표적인 사례다. 1694년 설립된 이 기관의 창립 목적은 물가 안정이나 금융 시스템 감독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하나, 프랑스와의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전쟁이 중앙은행을 낳았고, 중앙은행은 근대 금융 시스템을 낳았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국채, 지폐, 복식부기 등 근대 금융의 핵심 도구들은 상당 부분 전쟁의 필요에서 발명되거나 정교화되었다. 죽음을 위한 회계가 삶을 위한 경제의 토대가 된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전쟁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19세기 이전의 전쟁에서 국민총생산의 10~15%를 군비에 쏟아붓는 것은 대단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20세기의 두 차례 세계대전은 그 비율을 50%까지 끌어올렸다. 경제의 절반이 전쟁을 위해 돌아가는, 이른바 총력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새로운 전쟁에서는 공장이 전장만큼 중요했다. 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가 무너진 것은 전선의 패배 이전에 경제의 붕괴였다. 농촌 인구의 85%를 차지하던 러시아는 전쟁이 길어지자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군수품 생산을 위해 공장들이 소비재 생산을 중단하자, 농민들은 팔 물건이 없어진 도시에 식량을 팔 이유가 없어졌다. 경제적 교환의 사슬이 끊어지며 도시는 굶주렸고, 평화와 빵을 외친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았다. 전선에서 진 것이 아니라, 돈의 흐름이 막혀 무너진 것이다. 반면 영국은 역설적이게도 식량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음에도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견뎌냈다. 그 비결은 유연성에 있었다. 식량을 스스로 기르지 않는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농업 인구가 적다는 뜻이었다. 영국은 그 인력을 공장과 군대로 신속하게 재배치할 수 있었다. 해상 수송로만 지킨다면, 세계의 자원이 곧 영국의 자원이었다. 자급자족이 강점이 아니라 개방과 연결이 강점이 되는, 경제적 전쟁의 역설이었다.


20세기의 두 세계대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전선을 열었다. 바로 경제 봉쇄와 자원 차단의 전쟁이다. 영국은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향한 해상 봉쇄를 실시하며 흥미로운 무기를 동원했다. 회계사들이었다. 네덜란드처럼 중립국을 통한 우회 수입을 차단하기 위해, 영국은 해당 국가의 전전 수입 통계를 분석하여 그 이상의 물자가 들어오면 독일로 흘러간다고 간주하고 차단했다. 장부와 통계표가 무기가 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전략 폭격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다. 미군은 독일의 합성 연료 공장, 볼베어링 공장 등 전쟁 경제의 목줄을 끊으면 전쟁이 빠르게 끝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 기대를 배반했다. 현대 경제는 한 고리가 끊어지면 전체가 붕괴하는 사슬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많은 연결로 얽힌 그물망이었다. 독일은 대체재를 찾고, 생산 공정을 바꾸고, 비축분을 소진하며 버텼다. 경제는 폭격보다 질겼다. 이 교훈은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오늘날의 경제 제재는 그 논리적 계승자다. 러시아를 향한 서방의 제재가 전쟁을 빠르게 끝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현대 경제의 그 질긴 그물망 때문이기도 하다. 그물망을 완전히 잘라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사람들은 죽는다.


전쟁이 경제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의 또 다른 얼굴은, 전쟁이 경제적 오판에 의해 시작된다는 것이다. 1909년 저널리스트 노먼 앤젤은 '거대한 환상'에서 국가들이 서로 너무나 긴밀하게 경제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전쟁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그 분석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5년 후 세계는 4년간의 대학살을 경험했다. 역사는 경제적 이익이 전쟁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거듭 증명해왔다. 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은 처음에는 황금을 향한 욕망으로 시작되었지만, 거대한 은 유입이 오히려 본국의 인플레이션을 불러오고 산업을 피폐화시키는 역설을 낳았다. 부를 위한 전쟁이 부를 갉아먹었다. 냉전이 끝난 후 역사의 종언을 선언한 학자들도 비슷한 실수를 반복했다. 자유무역과 민주주의의 확산이 전쟁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었지만, 21세기에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군비 분야에서도 경제적 유인이 분석을 왜곡하는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냉전 시절 미국의 각 군은 소련의 위협을 자신들의 관할 영역에서 가장 크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적이 강해야 예산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도 서방 군사 전문가들이 러시아군을 과대평가했던 것 역시, 수십 년간 러시아를 강한 적으로 규정해온 제도적 유인과 무관하지 않다. 전쟁에 대한 분석 자체가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오염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은 결국 돈의 문제인가? 웰던 자신도 인정하듯, 7점짜리 대답이 가장 정직하다. 경제는 전쟁의 결정적 요소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경제적 논리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완전하다. 물론 에너지 자원, 공업 지대, 흑해 접근권 같은 경제적 요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푸틴의 행동에는 구소련 제국의 영광 회복이라는 역사적 강박과, 슬라브 민족의 통합이라는 문명적 집착이 깔려 있다. 그것은 경제학 교과서가 아니라 역사 신화에서 나온 것이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없었다면 20세기는 어떻게 달랐을까? 이 가정적 질문은 개인과 광기와 이념이 경제적 구조만큼이나 역사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경제는 전쟁의 토양이지만, 씨앗을 뿌리는 것은 사람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 돈의 전쟁은 오늘도 계속된다. 환율 조작과 관세 전쟁, 기술 수출 통제와 공급망 재편, 에너지 가격 무기화와 금융 제재. 총성은 없지만 그 피해는 실제적이다. 그리고 이 보이지 않는 전쟁이 언제, 어떻게 가시적인 폭력으로 전환되는지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다. 역사를 돌아보면, 그 전환점에는 언제나 경제적 논리와 인간적 감정이 뒤엉킨 복잡한 방정식이 있었다. 그 방정식을 읽어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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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의 탄생 - 실리콘밸리식 팀장 수업, 개정증보판
줄리 주오 지음, 김고명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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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나는 잠시 멈칫했다. '팀장'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팀장이라는 역할은 늘 내게 딱딱하고 권위적인 이미지로 다가왔다. 명령을 내리고, 성과를 평가하며, 조직의 톱니바퀴를 관리하는 사람. 그것이 내가 막연히 그려온 관리자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페이스북에서 25세에 팀장이 된 저자 줄리 주오의 이야기는 내가 가진 편견을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허물어뜨렸다. 주우는 책의 첫 장부터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녀 역시 처음에는 두려웠다고. 준비되지 않은 채 리더의 자리에 앉았고, 매일 '내가 정말 이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인가'라는 의심과 싸웠다고. 그 솔직함이 책의 첫 번째 선물이었다. 완벽한 영웅의 무용담이 아니라, 나처럼 평범하게 넘어지고 배운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안도감. 그것이 나를 페이지로 끌어들였다.


주오가 제시하는 가장 근본적인 통찰은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관리자라는 직함이 곧 리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 직책은 부여받는 것이지만, 리더십은 증명하는 것이다.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권위에만 기대는 관리자는 오히려 팀의 동력을 잃게 된다. 이 말은 내 과거의 어떤 경험을 떠올리게 했다. 예전에 한 프로젝트에서 직함상 리더였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회의 때마다 결정을 내리는 대신 승인만을 기다렸다. 팀원들은 점점 그에게 문제를 가져오지 않게 되었고, 결국 비공식적인 리더가 따로 형성되었다. 저우의 언어로 설명하자면, 그는 관리자였지만 리더는 아니었다. 팀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동일시하지 못했고, 사람들이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주지 못했다. 진정한 리더십은 정렬(alignment)에서 시작된다. 팀원 각자가 가진 개인의 목표와 조직의 목표가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될 때, 비로소 팀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관리자의 역할은 그 방향을 제시하고, 각 사람이 그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도록 돕는 것이다.

주오는 훌륭한 관리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대신, 왜 해야 하는지를 말한다고 강조한다. 이 구분은 얼핏 사소해 보이지만, 팀의 분위기와 성과에 미치는 영향은 극적으로 다르다. 지시를 받은 사람은 그 일이 끝나면 멈춘다. 하지만 이유를 이해한 사람은 그 너머를 보기 시작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예상치 못한 문제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며, 단순한 실행자가 아닌 공동 창조자가 된다. 저우가 페이스북에서 팀원들과 진행했다는 '비평 회의(critique meeting)'가 인상적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솔직한 피드백을 교환하는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단순히 시킨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물을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가 된다. 학교나 직장에서 우리는 종종 아이디어를 감춘다. 빼앗길까봐, 무시당할까봐. 그러나 저우는 그 반대의 문화를 제안한다. 아이디어를 공개하고, 불완전한 상태에서도 피드백을 받으며 발전시켜 나가는 것. 그것이 신뢰의 토양이 되고, 결국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그녀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책에서 내가 가장 오래 머문 대목은 관리자가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는 부분이었다. 관리자의 임무는 방 안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똑똑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는 저우의 말은 그 자체로 하나의 해방감이었다. 나는 늘 리더는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면 권위가 흔들린다고 여겼다. 그러나 저우는 그 두려움이 오히려 팀을 약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리더 앞에서, 팀원들은 비로소 자신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그 안에서 진짜 학습이 시작된다. 신뢰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일관성, 솔직함,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시간이 쌓여야 한다. 저우가 일대일 면담에서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 시간은 관리자가 업무를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팀원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관리자가 귀를 기울이는 자리여야 한다.

주오는 피드백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그것이 관리자가 가진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드백은 잘못 전달될 경우 오히려 동기를 꺾고 관계를 손상시킨다. 그녀가 강조하는 것은 피드백의 적시성과 구체성이다. 연간 평가에서 처음으로 문제를 듣게 되는 팀원은 배신감을 느낀다. 그 자리는 성장의 기회가 아니라 심판의 자리가 된다. 반면 업무 직후에, 구체적인 행동을 기반으로 전달되는 피드백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보고서가 별로였어'가 아니라, '이 섹션에서 독자의 관점이 빠져 있어서, 다음에는 이런 방식을 시도해보면 어떨까?'라는 식의 언어가 필요하다. 긍정적 피드백도 마찬가지다. 잘했다는 한 마디가 사람을 얼마나 오래 붙들어두는지, 나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인정받는다는 느낌은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일에 대한 태도와 헌신의 깊이를 바꾼다. 저우의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자주 그 선물을 건네는 것을 잊고 살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관리자가 되고 나서 가장 흔하게 빠지는 함정 중 하나는 '내가 하면 더 빠르다'는 생각이다. 자신이 그 분야의 전문가일수록 이 유혹은 커진다. 하지만 주오는 단호하게 말한다. 관리자의 역할은 직접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잘 처리될 수 있는 시스템과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위임은 단순히 일을 나누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신뢰의 표현이고, 팀원의 성장 기회를 만드는 투자다. 내가 모든 것을 쥐고 있는 한, 팀은 나 없이는 기능하지 못하는 구조가 된다. 그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진정한 리더십의 목표와도 어긋난다. 주오가 말하는 '승수 효과(multiplier effect)'가 바로 여기서 등장한다. 내가 천 잔의 레모네이드를 팔 수 있다면, 그 방법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서 함께 이천 잔을 파는 것. 리더십의 본질은 나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팀 전체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데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문장은 이것이었다. "훌륭한 관리자는 리더이기 이전에, 리더를 길러내는 사람이다." 이것은 단순한 명제처럼 들리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빛을 팀원에게 양보하는 것, 성과의 공을 나누는 것, 그리고 자신이 없어도 잘 돌아가는 팀을 만드는 것. 이 모든 것은 자기 자신보다 팀의 성장을 우선시하는 마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줄리 주오의 책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어떤 기술이나 방법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태도였다. 리더십은 완벽한 사람이 되려는 노력이 아니라, 팀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자신을 계속해서 다듬어가는 과정이라는 것. 실수를 인정하고, 배우고, 타인의 성장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정한 리더가 된다. 리더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그것은 저우의 말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 나 자신에게 건네는 다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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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 - 말보다 깊은 눈빛, 양조위의 삶·사랑·작품
주성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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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990년대 말, 대학 시절의 어느 날 밤이었다. 친구가 권해준 비디오테이프 하나가 내 손에 쥐어졌다. 〈중경삼림〉이라는, 당시로서는 제법 낯선 제목의 영화였다. 낡은 화질 속에서 등장한 한 남자의 얼굴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경찰 유니폼을 입고 패스트푸드점으로 천천히 걸어오던 그 사람.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묘하게 마음이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첫눈에 반한다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무언가 더 깊은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공명 같은 것이 일어났다.

양조위. 그 이름을 알게 된 건 그날 밤이었다. 그리고 나는 곧 깨달았다. 이 배우는 말이 아니라 침묵으로 연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의 얼굴은 크게 웃거나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다만 눈빛이 흔들리고,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고, 시선이 어딘가를 향해 조용히 머물렀다. 그 모든 것이 언어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 시절, 홍콩영화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이었다. 비디오 가게 진열대는 늘 홍콩 액션 영화로 가득했고, 주윤발의 트렌치코트와 장국영의 우울한 미소는 우리의 상상 속 멋진 어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양조위는 그들과 달랐다. 그는 화려하게 등장해서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아니었다. 오히려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조용히 기다렸고, 때로는 떠나지 못한 채 남겨진 사람처럼 보였다.

〈화양연화〉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느린 화면, 반복되는 장면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침묵. 주 선생으로 나온 양조위는 한 문장을 말하기 위해 오랜 시간 머뭇거렸다. 벽 너머로 여인이 들려주는 무협소설 구절에 귀 기울이고,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스쳐 지나가고, 국수를 먹으며 고독을 씹어 삼켰다. 영화는 이렇게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는데 손 내밀 수 없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가?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영화관 밖으로 나왔을 때 서울의 거리는 여전히 시끄럽고 분주했지만, 내 안에서는 무언가가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절제되고 우아하게 표현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를 그 영화는 보여주었다. 양조위의 얼굴에 담긴 그 모든 망설임과 그리움이, 20대 초반이었던 나에게도 이상하게 이해되었다.

〈무간도〉가 개봉했을 때, 나는 이미 사회인이 되어 있었다. 영화관에서 그의 얼굴을 다시 만났을 때, 묘한 안도감 같은 것이 밀려왔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홍콩영화는 많이 변했고, 그 황금기는 이미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양조위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잠입 경찰이라는 이중적 정체성 속에서 갈등하는 진영인 역할 속에서도, 그의 눈빛은 여전히 조용한 고통을 담고 있었다. 왕가위 감독이 그를 자신의 페르소나로 삼은 이유를 이제는 안다. 양조위라는 배우는 감독이 원하는 모든 감정을 눈빛만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크게 연기하지 않았다. 절제하고 숨기고 참아내면서, 그 모든 것을 눈과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전달했다. 관객은 그의 표정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연기는 관람이 아니라 공명이었다.

세월이 흘러 〈색, 계〉가 개봉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친일파 장군이라는 악역. 그것도 격정적인 정사 장면까지 포함된 파격적인 역할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깨달았다. 그는 여기서도 양조위였다. 차갑고 잔혹한 인물이지만, 동시에 두려움과 외로움을 안고 사는 인간이었다. 리안 감독이 말했듯, 악역을 연기하면서도 언젠가는 마음이 바뀔 것 같은 눈빛을 가진 배우. 그것이 양조위였다. 그의 연기에는 어떤 유동성이 있다. 남성과 여성, 강함과 약함,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래서 그는 홍콩 영화 산업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마초 남성상을 깨뜨릴 수 있었다. 관금붕 감독이 일찌감치 그 가능성을 알아본 것은 행운이었다. 그리고 그 후 허우샤오시엔, 오우삼, 리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거장들이 그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비전을 실현했다.

이제 50대를 넘긴 양조위는 여전히 현역이다. 〈골드핑거〉, 〈샹치〉 같은 작품들을 통해 그는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내게 그는 여전히 〈중경삼림〉의 경찰 663이고, 〈화양연화〉의 주 선생이며, 〈해피 투게더〉의 요휘다. 그 모든 역할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떠나지 못하고 남겨진 자의 슬픔이다. 장국영이 떠나는 자였다면, 양조위는 기다리는 자였다. 장국영이 유배의 정서를 담았다면, 양조위는 귀향의 갈망을 표현했다. 한 사람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고, 다른 한 사람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홍콩배우'라 불린다. 황금기의 홍콩영화를 기억하는 마지막 증인이자, 그 정신을 지금까지 이어오는 유일한 존재다.

지금도 가끔 그의 영화를 다시 본다. 세월이 지났지만 그 영화들은 여전히 새롭다. 아니,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화양연화〉의 앙코르와트 장면에서 주 선생이 돌벽의 구멍에 비밀을 속삭이던 그 순간. 말하지 못한 감정들을 영원히 봉인하는 그 행위가, 이제는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양조위는 내게 단순한 배우 이상의 의미다. 그는 한 시대의 기억이고, 잃어버린 낭만의 상징이며, 여전히 지속되는 아름다움의 증거다. 홍콩영화의 황금기는 끝났을지 몰라도, 그가 존재하는 한 그 시절의 정신은 살아 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그가 말했다고 한다. 힘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숨어 살고 싶다고.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대배우가 연인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말했던 그 사람. 그는 영화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여전히 같은 사람인 것 같다. 떠나지 못하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이제 나도 중년이 되었다. 청춘은 지나갔고, 그 시절의 열망과 불안은 다른 형태의 고민들로 바뀌었다. 주성철님의 책은 다시한번 나의 청춘 시절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감동적인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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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스피치 마스터 : 실전편 - 상대를 압도하는 말의 메커니즘 골든 스피치 마스터
김양호.조동춘 지음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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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모두 말을 한다. 하지만 그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가, 행동을 이끌어내는가, 기억에 남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김양호님과 조동춘님이 함께 펴낸 <골든 스피치 마스터: 실전편>은 바로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한 책이다. 말을 내뱉는 행위가 아닌 '설계'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고, 청중과 상황에 맞춰 정교하게 조율하는 법을 알려준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스피치를 추상적 재능이 아닌 구체적 기술로 다룬다는 점이다. 프롤로그에서부터 저자는 단호하게 선언한다. "말의 기술은 노력으로 얻지만, 말의 용기는 선택으로 완성된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다. 스피치는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훈련과 준비, 그리고 무대에 서겠다는 결단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실전편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 책은 우리 삶에서 마주치는 구체적인 순간들을 다룬다. 결혼식 축사, 수상 소감, 정년 퇴임사, 위촉장 수여식, 심지어 공식 사과문까지. 각각의 상황은 서로 다른 목적과 청중, 감정의 결을 가지고 있다. 저자들은 이 다양한 맥락 속에서 어떻게 말을 구조화하고 전달해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행사 스피치가 더 이상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는 통찰이다. 과거에는 누가 말하는지, 얼마나 짧은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말의 메시지와 진정성, 방향성이 행사 자체의 성격을 결정한다. 조직의 첫마디와 마지막 한마디가 그 조직의 철학과 문화를 드러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는 단순히 말을 잘하는 것을 넘어, 말을 통해 조직과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책의 핵심은 연설문 작성 7단계다. 상황 분석, 청중 파악, 주제 설정, 구조 설계, 단어 선택, 표현 강화, 리허설과 퇴고. 이 과정은 마치 건축가가 설계도를 그리듯 말을 짓는 과정이다. 상황 분석에서 시작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말은 진공 상태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맥락이 있고, 그 맥락 위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왜 이 말이 필요한가, 무엇을 해결하거나 전달해야 하는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중 파악 역시 마찬가지다. 누가 듣는가에 따라 같은 메시지도 다르게 전달되어야 한다. 연령대, 관심사, 기대치를 면밀히 살펴야 말이 공허한 메아리가 아닌 살아있는 대화가 된다. 주제 설정에서 강조하는 '하나의 등대' 개념도 설득력 있다. 연설문도 결국 글이고, 글에는 명확한 중심이 있어야 한다. 중언부언하는 순간 신뢰는 무너진다. 하나의 메시지를 정하고, 그것을 향해 모든 문장이 수렴하도록 만드는 것이 설계의 핵심이다. 구조 설계는 도입-본론-결론의 3단 구조를 기본으로 한다. 도입에서 흥미를 끌고, 본론에서 공감과 메시지를 전하며, 결론에서 행동을 촉구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 구조 안에서 얼마나 정교하게 감정선을 조율하는가가 스피치의 성패를 가른다. 단어 선택에서는 품격이 강조된다. 같은 의미라도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화자의 수준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실전편의 백미는 세계적 명연설 43인의 사례 분석이다. 마틴 루터 킹의 연설,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선언, 호세 무히카의 철학, 테레사 수녀의 언어까지. 이들의 말이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의 나열이 아니라 치밀한 전략과 구조, 그리고 진정성의 결합임을 보여준다. 마틴 루터 킹이 1967년 고등학생들에게 한 연설은 특히 인상적이다. "만약 당신이 거리 청소부라면,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리듯 거리를 쓰십시오. 베토벤이 교향곡을 작곡하듯 거리를 쓰십시오." 이 문장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어떤 일이든 탁월함을 추구할 때 존엄이 생긴다는 메시지를 구체적 이미지로 각인시킨다. "날 수 없다면 뛰고, 뛸 수 없다면 걸으며, 걸을 수 없다면 기어서라도 가라"는 구절은 리듬감과 상승의 구조를 통해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전달한다. 시위 연설 분석도 흥미롭다. 거리에서의 스피치는 무대와 완전히 다르다. 조명도, 음향도, 좌석도 없다. 바람과 소음, 경찰과 행인이 있을 뿐이다. 그 속에서 군중의 심장박동을 하나의 리듬으로 묶어내야 한다. 베이다오의 시 「대답」이 아시아와 유럽, 미국의 시위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이유를 저자들은 압축성, 상징성, 리듬감, 초국가성으로 설명한다. 짧지만 강렬하고, 각자의 경험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함께 외치기 쉽고, 국경을 넘어 공감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책이 제시하는 연설문 작성 7단계도, 43인의 명연설 분석도 결국 하나를 향한다. 무대에 서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저자들은 "영웅은 강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견디기로 결심하는 순간 비로소 탄생한다"고 말한다. 말을 잘 못한다는 생각은 대부분 준비 부족에서 온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어떻게 구조화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두렵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리허설하고, 퇴고한다면 그 두려움은 줄어든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안내하는 지도이자, 대장간이며, 훈련소다. 책은 우리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어떻게 언어로 완성할 것인가에 대한 실용적 철학서다. 정년을 맞이하는 사람에게, 상을 받는 사람에게, 조직을 대표해 말해야 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언젠가 자신의 생각을 공적 언어로 만들어야 하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은 구체적인 답을 제시한다.

말은 그 사람의 수준이라는 문장이 있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어떤 구조로 생각을 펼치며, 어떤 태도로 청중을 대하는가는 단순히 스피치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됨의 표현이다. 이 책은 그 표현을 더 품격 있게, 더 진정성 있게, 더 효과적으로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 "나는 말을 잘 못해"라는 생각으로 수많은 기회를 놓쳤다면, 이제 그 문장을 바꿀 때다. "나는 말을 설계할 줄 안다"로. 이 책은 그 변화를 위한 가장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안내서 역할을 할 것 같다. 말의 대장간에서 문장을 벼리고, 논리를 구축하며, 언어의 칼날에 윤기를 더하는 법을 익힐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첫 페이지를 펼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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