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 - 말보다 깊은 눈빛, 양조위의 삶·사랑·작품
주성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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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990년대 말, 대학 시절의 어느 날 밤이었다. 친구가 권해준 비디오테이프 하나가 내 손에 쥐어졌다. 〈중경삼림〉이라는, 당시로서는 제법 낯선 제목의 영화였다. 낡은 화질 속에서 등장한 한 남자의 얼굴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경찰 유니폼을 입고 패스트푸드점으로 천천히 걸어오던 그 사람.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묘하게 마음이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첫눈에 반한다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무언가 더 깊은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공명 같은 것이 일어났다.

양조위. 그 이름을 알게 된 건 그날 밤이었다. 그리고 나는 곧 깨달았다. 이 배우는 말이 아니라 침묵으로 연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의 얼굴은 크게 웃거나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다만 눈빛이 흔들리고,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고, 시선이 어딘가를 향해 조용히 머물렀다. 그 모든 것이 언어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 시절, 홍콩영화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이었다. 비디오 가게 진열대는 늘 홍콩 액션 영화로 가득했고, 주윤발의 트렌치코트와 장국영의 우울한 미소는 우리의 상상 속 멋진 어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양조위는 그들과 달랐다. 그는 화려하게 등장해서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아니었다. 오히려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조용히 기다렸고, 때로는 떠나지 못한 채 남겨진 사람처럼 보였다.

〈화양연화〉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느린 화면, 반복되는 장면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침묵. 주 선생으로 나온 양조위는 한 문장을 말하기 위해 오랜 시간 머뭇거렸다. 벽 너머로 여인이 들려주는 무협소설 구절에 귀 기울이고,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스쳐 지나가고, 국수를 먹으며 고독을 씹어 삼켰다. 영화는 이렇게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는데 손 내밀 수 없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가?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영화관 밖으로 나왔을 때 서울의 거리는 여전히 시끄럽고 분주했지만, 내 안에서는 무언가가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절제되고 우아하게 표현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를 그 영화는 보여주었다. 양조위의 얼굴에 담긴 그 모든 망설임과 그리움이, 20대 초반이었던 나에게도 이상하게 이해되었다.

〈무간도〉가 개봉했을 때, 나는 이미 사회인이 되어 있었다. 영화관에서 그의 얼굴을 다시 만났을 때, 묘한 안도감 같은 것이 밀려왔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홍콩영화는 많이 변했고, 그 황금기는 이미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양조위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잠입 경찰이라는 이중적 정체성 속에서 갈등하는 진영인 역할 속에서도, 그의 눈빛은 여전히 조용한 고통을 담고 있었다. 왕가위 감독이 그를 자신의 페르소나로 삼은 이유를 이제는 안다. 양조위라는 배우는 감독이 원하는 모든 감정을 눈빛만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크게 연기하지 않았다. 절제하고 숨기고 참아내면서, 그 모든 것을 눈과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전달했다. 관객은 그의 표정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연기는 관람이 아니라 공명이었다.

세월이 흘러 〈색, 계〉가 개봉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친일파 장군이라는 악역. 그것도 격정적인 정사 장면까지 포함된 파격적인 역할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깨달았다. 그는 여기서도 양조위였다. 차갑고 잔혹한 인물이지만, 동시에 두려움과 외로움을 안고 사는 인간이었다. 리안 감독이 말했듯, 악역을 연기하면서도 언젠가는 마음이 바뀔 것 같은 눈빛을 가진 배우. 그것이 양조위였다. 그의 연기에는 어떤 유동성이 있다. 남성과 여성, 강함과 약함,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래서 그는 홍콩 영화 산업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마초 남성상을 깨뜨릴 수 있었다. 관금붕 감독이 일찌감치 그 가능성을 알아본 것은 행운이었다. 그리고 그 후 허우샤오시엔, 오우삼, 리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거장들이 그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비전을 실현했다.

이제 50대를 넘긴 양조위는 여전히 현역이다. 〈골드핑거〉, 〈샹치〉 같은 작품들을 통해 그는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내게 그는 여전히 〈중경삼림〉의 경찰 663이고, 〈화양연화〉의 주 선생이며, 〈해피 투게더〉의 요휘다. 그 모든 역할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떠나지 못하고 남겨진 자의 슬픔이다. 장국영이 떠나는 자였다면, 양조위는 기다리는 자였다. 장국영이 유배의 정서를 담았다면, 양조위는 귀향의 갈망을 표현했다. 한 사람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고, 다른 한 사람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홍콩배우'라 불린다. 황금기의 홍콩영화를 기억하는 마지막 증인이자, 그 정신을 지금까지 이어오는 유일한 존재다.

지금도 가끔 그의 영화를 다시 본다. 세월이 지났지만 그 영화들은 여전히 새롭다. 아니,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화양연화〉의 앙코르와트 장면에서 주 선생이 돌벽의 구멍에 비밀을 속삭이던 그 순간. 말하지 못한 감정들을 영원히 봉인하는 그 행위가, 이제는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양조위는 내게 단순한 배우 이상의 의미다. 그는 한 시대의 기억이고, 잃어버린 낭만의 상징이며, 여전히 지속되는 아름다움의 증거다. 홍콩영화의 황금기는 끝났을지 몰라도, 그가 존재하는 한 그 시절의 정신은 살아 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그가 말했다고 한다. 힘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숨어 살고 싶다고.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대배우가 연인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말했던 그 사람. 그는 영화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여전히 같은 사람인 것 같다. 떠나지 못하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이제 나도 중년이 되었다. 청춘은 지나갔고, 그 시절의 열망과 불안은 다른 형태의 고민들로 바뀌었다. 주성철님의 책은 다시한번 나의 청춘 시절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감동적인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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