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 폭력이 펼쳐지는 시대마다 누가 숨은 이득을 챙기는가
던컨 웰던 지음, 윤종은 옮김 / 윌북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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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오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전쟁은 언제나 두 곳에서 동시에 벌어진다. 하나는 포연이 자욱한 전장이고, 다른 하나는 수치와 서류가 가득한 회계실이다. 역사는 대개 전자만 기억한다. 영웅의 이름과 결전의 날짜, 깃발이 꽂힌 언덕의 이름을 기록한다. 그러나 진정한 승패를 결정한 것은 종종 후자였다. 군량미가 얼마나 남았는지, 국채를 누가 사주는지, 세금을 얼마나 걷을 수 있는지가 전쟁의 운명을 갈랐다. 경제학자이자 역사가인 던컨 웰던은 그의 저작에서 이 오래된 진실을 정면으로 다룬다. 그는 돈의 흐름을 따라가면 전쟁의 뿌리가 보인다고 주장한다. 역사 속의 전쟁은 가시적인 총칼의 싸움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오래 지속되고 더 깊은 흔적을 남긴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이기도 했다. 돈을 둘러싼 그 보이지 않는 전쟁의 역사를 이야기 한다.


역사속의 바이킹의 습격. 우리는 뿔 달린 투구와 용머리 뱃머리를 떠올리지만, 그 약탈은 냉정하게 보면 경제적 행위였다. 9세기 유럽은 생산성이 낮았고, 잉여를 축적하는 방법은 제한적이었다.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직접 생산하는 것보다 효율적인 경우가 많았다. 폭력은 일종의 사업 모델이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그 이후다. 약탈로 시작한 세력들이 일정 규모에 이르면, 계속 약탈하는 것보다 정착하여 세금을 걷는 편이 더 이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농민을 죽이면 그 해의 곡식을 빼앗을 수 있지만, 살려두고 보호해주면 매년 세금을 걷을 수 있다. 이렇게 약탈자가 보호자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국가라는 제도가 탄생했다. 사회학자 찰스 틸리의 명제인 '국가가 전쟁을 만들고 전쟁이 국가를 만든다'는 이 역설적 진실을 담고 있다. 전쟁 자금 조달의 필요성은 국가 제도 전반을 혁신했다. 잉글랜드 은행이 대표적인 사례다. 1694년 설립된 이 기관의 창립 목적은 물가 안정이나 금융 시스템 감독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하나, 프랑스와의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전쟁이 중앙은행을 낳았고, 중앙은행은 근대 금융 시스템을 낳았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국채, 지폐, 복식부기 등 근대 금융의 핵심 도구들은 상당 부분 전쟁의 필요에서 발명되거나 정교화되었다. 죽음을 위한 회계가 삶을 위한 경제의 토대가 된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전쟁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19세기 이전의 전쟁에서 국민총생산의 10~15%를 군비에 쏟아붓는 것은 대단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20세기의 두 차례 세계대전은 그 비율을 50%까지 끌어올렸다. 경제의 절반이 전쟁을 위해 돌아가는, 이른바 총력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새로운 전쟁에서는 공장이 전장만큼 중요했다. 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가 무너진 것은 전선의 패배 이전에 경제의 붕괴였다. 농촌 인구의 85%를 차지하던 러시아는 전쟁이 길어지자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군수품 생산을 위해 공장들이 소비재 생산을 중단하자, 농민들은 팔 물건이 없어진 도시에 식량을 팔 이유가 없어졌다. 경제적 교환의 사슬이 끊어지며 도시는 굶주렸고, 평화와 빵을 외친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았다. 전선에서 진 것이 아니라, 돈의 흐름이 막혀 무너진 것이다. 반면 영국은 역설적이게도 식량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음에도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견뎌냈다. 그 비결은 유연성에 있었다. 식량을 스스로 기르지 않는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농업 인구가 적다는 뜻이었다. 영국은 그 인력을 공장과 군대로 신속하게 재배치할 수 있었다. 해상 수송로만 지킨다면, 세계의 자원이 곧 영국의 자원이었다. 자급자족이 강점이 아니라 개방과 연결이 강점이 되는, 경제적 전쟁의 역설이었다.


20세기의 두 세계대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전선을 열었다. 바로 경제 봉쇄와 자원 차단의 전쟁이다. 영국은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향한 해상 봉쇄를 실시하며 흥미로운 무기를 동원했다. 회계사들이었다. 네덜란드처럼 중립국을 통한 우회 수입을 차단하기 위해, 영국은 해당 국가의 전전 수입 통계를 분석하여 그 이상의 물자가 들어오면 독일로 흘러간다고 간주하고 차단했다. 장부와 통계표가 무기가 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전략 폭격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다. 미군은 독일의 합성 연료 공장, 볼베어링 공장 등 전쟁 경제의 목줄을 끊으면 전쟁이 빠르게 끝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 기대를 배반했다. 현대 경제는 한 고리가 끊어지면 전체가 붕괴하는 사슬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많은 연결로 얽힌 그물망이었다. 독일은 대체재를 찾고, 생산 공정을 바꾸고, 비축분을 소진하며 버텼다. 경제는 폭격보다 질겼다. 이 교훈은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오늘날의 경제 제재는 그 논리적 계승자다. 러시아를 향한 서방의 제재가 전쟁을 빠르게 끝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현대 경제의 그 질긴 그물망 때문이기도 하다. 그물망을 완전히 잘라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사람들은 죽는다.


전쟁이 경제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의 또 다른 얼굴은, 전쟁이 경제적 오판에 의해 시작된다는 것이다. 1909년 저널리스트 노먼 앤젤은 '거대한 환상'에서 국가들이 서로 너무나 긴밀하게 경제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전쟁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그 분석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5년 후 세계는 4년간의 대학살을 경험했다. 역사는 경제적 이익이 전쟁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거듭 증명해왔다. 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은 처음에는 황금을 향한 욕망으로 시작되었지만, 거대한 은 유입이 오히려 본국의 인플레이션을 불러오고 산업을 피폐화시키는 역설을 낳았다. 부를 위한 전쟁이 부를 갉아먹었다. 냉전이 끝난 후 역사의 종언을 선언한 학자들도 비슷한 실수를 반복했다. 자유무역과 민주주의의 확산이 전쟁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었지만, 21세기에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군비 분야에서도 경제적 유인이 분석을 왜곡하는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냉전 시절 미국의 각 군은 소련의 위협을 자신들의 관할 영역에서 가장 크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적이 강해야 예산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도 서방 군사 전문가들이 러시아군을 과대평가했던 것 역시, 수십 년간 러시아를 강한 적으로 규정해온 제도적 유인과 무관하지 않다. 전쟁에 대한 분석 자체가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오염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은 결국 돈의 문제인가? 웰던 자신도 인정하듯, 7점짜리 대답이 가장 정직하다. 경제는 전쟁의 결정적 요소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경제적 논리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완전하다. 물론 에너지 자원, 공업 지대, 흑해 접근권 같은 경제적 요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푸틴의 행동에는 구소련 제국의 영광 회복이라는 역사적 강박과, 슬라브 민족의 통합이라는 문명적 집착이 깔려 있다. 그것은 경제학 교과서가 아니라 역사 신화에서 나온 것이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없었다면 20세기는 어떻게 달랐을까? 이 가정적 질문은 개인과 광기와 이념이 경제적 구조만큼이나 역사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경제는 전쟁의 토양이지만, 씨앗을 뿌리는 것은 사람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 돈의 전쟁은 오늘도 계속된다. 환율 조작과 관세 전쟁, 기술 수출 통제와 공급망 재편, 에너지 가격 무기화와 금융 제재. 총성은 없지만 그 피해는 실제적이다. 그리고 이 보이지 않는 전쟁이 언제, 어떻게 가시적인 폭력으로 전환되는지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다. 역사를 돌아보면, 그 전환점에는 언제나 경제적 논리와 인간적 감정이 뒤엉킨 복잡한 방정식이 있었다. 그 방정식을 읽어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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